새 부대를 준비하는 교회
본문
마 9 : 14 - 17
목사 고시를 볼 때 면접하는 목사님이 저에게 '김 전도사는 목회 할 때 보수주의적으로 할 것인가 아니면 자유주의적으로 할 것인가?'를 물었습니다. 저는 그 질문이 옳은 질문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그 자리가 논쟁을 할 만한 자리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보수주의적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하여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대개 '보수'와 '자유가'가 서로 대립되는 개념인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보수'와 '자유'는 서로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개념입니다. 우리는 그와 같은 사실을 우리가 잘 아는 오늘 본문의 말씀인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라는 말씀 속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새 포도주'는 하나님의 말씀과 법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법을 '새 포도주'에 비유한 것은 얼마나 적절한지 모릅니다. 새 포도주는 발효하는 힘이 아주 강합니다. 다시 말해서 운동력이 강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법이 바로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법에는 그와 같은 운동력과 생명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하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과 사회를 변화시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법에는 새 포도주와 같은 운동력과 생명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법은 언제나 새 포도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법은 시간과 세월이 지나도 절대로 묵은 포도주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법은 시간과 세월이 지나도 절대로 운동력과 생명력이 감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법은 아무리 많은 시간과 세월이 지나도 언제나 강한 생명력과 운동력을 가지고 있는 새 포도주와 같습니다.
새 포도주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과 법을 담으려면 언제나 새 부대를 준비하여야만 합니다. 보통 포도주는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담아 놓으면 부대와 함께 포도주도 힘이 약해지기 때문에 구태여 부대를 바꿀 필요가 없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과 법은 언제나 끊임없이 발효하는 새 포도주와 같아서 수시로 부대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부대가 터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보수와 자유를 생각할 때 새 포도주는 보수를 의미합니다. 영원히 변함이 없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새 부대는 자유를 의미합니다. 끊임없이 바뀌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끊임없이 부대를 바꾸어야만 새 포도주를 담아낼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끊임없이 자유 해야만 진정한 보수를 이룰 수 있다는 말씀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수와 자유는 서로 상반되는 개념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개념이 되는 것입니다. 자유 하는 사람만이 보수할 수 있습니다. 자유 할 수 없는 사람, 자유하지 못한 사람은 절대로 보수주의자가 될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개의 경우 보수신앙을 논하는 사람의 경우를 보면 진리의 보수를 앞세워 자기의 자리와 기득권을 보수하려는 경향이 많았습니다. 그것은 자유주의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많은 자유주의자들은 변화를 주장하면서 기득권층을 공격하고 그 기득권층을 무너트린 후 그 기득권을 다시 자신들이 차지하려 하였습니다. 보수와 자유 모두가 다 진리의 보수와 진리를 위한 자유가 아니라 자기 자리와 기득권의 보수와 자기 자리와 기득권을 위한 자유가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자리와 권한은 보수해야 할 개념이 아니라 자유 해야 할 개념입니다. 자기의 자리와 권한을 끊임없이 부인 할 때 우리의 부대는 늘 새 부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될 때 새 포도주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과 법이 우리의 삶 속에 있어서 끊임없이 우리를 변화시키고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기적인 욕심에 사로잡혀 진리의 보수를 가장하여 자기의 자리와 권한을 보수하려고 하다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낡은 부대가 되어 새 포도주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과 법이 쏟아지게 되고 자기의 자리와 권한도 상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사랑하는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와 사랑하는 높은 뜻 숭의교회 교인 여러분들이 새 포도주와 같은 교회와 교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민감하고 예민한 교회와 교인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즉시 반응이 나타나는 교회와 교인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옥토와 같은 마음 밭을 가진 교회와 교인들이 되어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그 말씀 하나가 30배 60배 100배로 결실 하는 그런 교회와 교인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뜻이 이루어지는 곳은 그 어디나 하늘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새 포도주와 같은 살게 되면 우리는 교회와 가정과 세상에서 천국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높은 산과 거친 들 그리고 초막과 궁궐에 상관없이 그 어디나 천국이 되는 놀라운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게 사는 것이 예수 믿는 목적입니다. 그것이 교회의 목적입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그와 같은 천국의 삶을 살게 하는 것이 이 땅에 교회를 세우신 하나님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 곳에 높은 뜻 숭의교회를 세우신 하나님의 뜻이고 목적입니다.
다른 것은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포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만은 포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법이 새 포도주와 같이 역사 하는 그것만은 절대로 잃어버릴 수도 없고 포기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법이 살아서 새 포도주처럼 역사 하는 것이 은혜가 아니겠습니까? 축복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오늘 날 많은 교회와 교인들이 그와 같은 은혜와 축복을 상실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법이 살아서 새 포도주처럼 역사 하는 은혜와 축복을 받으려면 끊임없이 자기를 부인하여만 합니다. 끊임없는 자기 부인과 개혁이 바로 새 부대를 준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기적인 욕심에 사로 잡혀 자기의 자리와 권력에 눈 어두워 자기를 부인하지 못하고 자기를 개혁하지 못하면 낡은 부대가 되어 절대로 새 포도주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과 법을 지켜 낼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없는 교회와 교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회칠한 무덤과 같이 겉은 깨끗하고 아름다운 것 같으나 속에는 썩고 냄새나는 죽엄이 가득한 무덤과 같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가 작고 가난할 때에 교회 안의 자리와 권한은 초라하고 보잘 것이 없었습니다. 그것이 너무도 초라하고 보잘 것이 없어서 그와 같은 자리와 권한에 욕심을 내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당시의 사람들이 교회에 다닌 것은 오로지 새 포도주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과 법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당시의 교회는 사람들 보기에 작고 초라했지만 능력이 있는 교회였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이끌고 나가는 능력이 있는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점점 커지고 부흥하면서부터 교회 안에도 세상 못지 않은 권력과 자리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매력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그와 같은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무척이나 애를 쓰고 노력을 하였지만 그 권한과 자리가 너무나 크다보니 그만 그에 대한 욕심을 이겨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법보다는 교회 안에 생겨난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자리와 권한에 맛 들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하나님의 말씀과 법에 대한 맛을 잃어버리기 시작했습니다. 잊어버리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법에 대하여 무관심해 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셔도 듣지도 않고 깨닫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순종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가슴을 쳐도 애통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교회와 교인들의 부대가 터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터진 틈으로 새 포도주와 같은 하나님의 법과 말씀이 쏟아져 버리기 시작하였습니다. 한국 교회는 숫적으로는 부흥하고 발전하였고 세상적으로 엄청난 힘을 갖게 되었지만 정작 중요한 참 능력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을 가르치고 세상을 이끄는 교회가 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세상이 교회를 가르치기 시작하였습니다. 세상의 비난과 비판을 받는 그런 무능력한 교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는 과연 어떠한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까?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는 과연 무엇을 욕심내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까?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자리와 권한이겠습니까 아니면 새 포도주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과 법이겠습니까? 여러분은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가 과연 어떠한 교회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새 포도주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과 법이 언제나 넘치는 교회가 되어야만 합니다. 말씀의 능력이 교회와 교인들뿐만 아니라 교계와 세상에 까지 넘치는 그런 교회가 되어야만 합니다.
그와 같은 교회가 되기 위하여 언제나 새 부대를 준비하는 교회가 되어야만 합니다. 언제나 자기를 부인하고 끊임없이 개혁하는 교회가 되어야만 합니다. 교회 안에 생겨나게 될 인간적인 권한과 자리에 연연해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법만을 사랑하여 그 말씀과 법에 연연해하는 교회와 교인들이 되어야만 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벌써 높은 뜻 숭의교회는 큰 교회가 되었습니다. 지난 주 저희 교회는 정식으로 노회에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막 노회에 가입한 개척교회임에도 불구하고 수적으로나 재정적으로 볼 때 벌써 노회 안에서 두 번째 내지 세 번째로 큰 교회가 되었습니다.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는 개척의 성장 속도가 이제껏 우리 한국의 그 어떤 교회보다도 빠른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매우 위험한 교회입니다. 교회가 빠른 속도로 성장하기 때문에 교회 안에 수도 없이 많은 자리와 권한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교회가 생겨 난지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그 권한과 자리들이 대개는 임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세상적으로는 매력적일 수 있지만 신앙적으로 볼 때 아주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다 원죄를 가지고 있는 죄인들이기 때문에 그에 대하여 큰 소리 칠 수 없습니다.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는 무작정 좋은 교회만이 아닙니다. 매우 위험한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말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가 좋은 교회가 되려면, 정말 여러분들이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를 통하여 넘치는 은혜와 복을 받으시려면 그와 같은 인간적인 욕심을 버려야만 합니다. 그리고 오직 새 포도주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과 법에 욕심을 가지셔야만 합니다. 오직 그 말씀과 법에만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 되셔야만 합니다.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는 인간적인 자리와 권한을 대폭 축소하는 교회가 되려고 합니다. 목사 한 사람에게 교회의 모든 권력이 집중되지 아니하도록 우리 교회는 담임목사제도를 택하지 아니하고 공동목회제를 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앞으로 당회와 제직회를 운영할 때도 마찬가지가 될 것입니다. 교회의 권력이 너무 지나치게 당회에 편중되지 아니하도록 권력과 권한을 당회와 제직회에 균형 있게 그러나 질서 있게 분할하게 될 것입니다.
교회도 너무 지나치게 성장하여 한 교회에 힘이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교회가 어느 정도 성장하게 되면 분립 개척을 하게 될 것입니다. 교회를 분립한 후 그 분립한 교회를 연합하여 공동목회를 하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목사와 장로를 비롯한 중직을 맡은 사람들은 몇 년에 한번 꼭 교인들에게 재신임을 받도록 할 작정입니다. 함부로 교회의 주인 노릇을 못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뿐만 아니라 목사의 정년도 축소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원로목사와 공로목사가 되지 않겠습니다. 그것은 장로님들도 마찬가지가 될 것인데 장로님들도 원로장로가 되지 못하게 하고 임기제를 도입하여 한 사람이 너무 오래 동안 교회의 권력을 장악하지 못하도록 할 것입니다.
지난 주 에도 말씀을 드렸듯이 교인들로 하여금 너무 열심히 교회를 봉사하지 못하게 할 작정입니다. 할 수 있는 대로 교인 여러분들을 교회 밖으로 내 몰 것입니다. 그와 같은 것을 통하여 할 수 있는 대로 교회 안에 있는 자리와 권한들을 축소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이런 말씀을 들을 때 이해는 쉽게 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막상 이와 같은 일을 시행하게 되면 여러분들도 많이 오해하고 힘들어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여러분들이 아무리 힘들어하시고 오해하셔도 이 일은 절대로 양보 없습니다. 교회의 생사가 걸린 일이기 때문입니다. 각오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들의 자리와 영향력이 교회 안에서 너무 커지지 않도록 늘 깨어서 조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끊임없이 자기를 부인하고 개혁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새 부대를 준비하는 가장 확실하고 분명한 길입니다.
낡은 부대를 버리는 것이 새 부대를 준비하는 길이 됩니다. 낡은 것을 버리면 새 것을 얻고, 작은 것을 버리면 큰 것을 얻습니다. 자리와 권한에 연연하지 않고 과감히 그것을 버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버린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자리와 권한을 주십니다. 그러나 자리와 권한에 연연하여 그것을 버리지 못하면 새 포도주만 잃어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그렇게 연연해하던 그 자리와 권한도 결국은 잃어버리게 되고 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 낡은 부대를 터트려 버리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날 우리 한국 교회는 예수 믿는 재미보다 엉뚱한 재미에 맛들려 있는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덩치는 커졌지만 오히려 힘과 능력은 상실한 교회가 되고 만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과감하게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교회를 개혁하십시다. 새 부대를 준비하는 교회가 되십시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에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생명이 있습니다. 자리와 권한을 보수하는 엉뚱한 재미에 속아 새 포도주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과 법을 잃어버리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실 수 있기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들에게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 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자기 자리와 권한을 보수하려는 욕심을 버리고 새 포도주와 같으신 하나님의 말씀과 법을 보수하려는 욕심을 가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하여 끊임없이 자기를 부인하고 개혁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늘 새 부대를 준비하는 마음과 자세를 가지고 살아 새 포도주와 같으신 하나님의 말씀과 법을 담고 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말씀과 법이 주시는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만끽하여 이 땅에서 천국을 사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출처/김동호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