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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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사도행전 19장 1절 - 7절 마경훈 목사
본문 : 사도행전 19장 1절 - 7절
1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 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2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3 바울이 가로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로라
4 바울이 가로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5 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6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7 모두 열 두 사람쯤 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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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장에서 교회 가운데 성령이 강림하신 때는 유대인의 절기중의 하나인 오순절 때였습니다. 이 오순절을 구약에서는 칠칠절 또는 맥추절이라고도 해서 일종의 추수감사절이었습니다. 곡식의 첫 열매를 따서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구약시대의 오순절이 육의 열매가 맺히는 날이었다면 신약시대의 오순절은 영의 열매가 맺히는 날이었습니다.
오순절에 성령께서 임하신 후에 교회는 계속해서 성령의 능력으로 부흥되었고, 핍박으로 흩어진 믿음의 사람들이 가는 곳마다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에베소에서 일어난 성령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 갔더니 몇 명의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사람들은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고 대답합니다. 그래서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하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안수하는데 성령께서 그들에게 임하시고 방언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성령 받은 사람들이 대략 열 두 사람쯤 되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집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그 당시 바울에게 안수 받고 성령 받은 자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그들은 이미 주님을 믿는 자들이었습니다. 그 사실은 1절에 그들을 제자라고 했던 대목에서 알 수 있습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동안에 제자라고 하면 12제자를 말 하지만, 사도 시대에 들어오면서 12제자는 사도라고 불렀고, 제자라고 하면 일반 성도들을 지칭하는 말이었습니다. 에베소에서 바울의 안수를 통해서 성령을 받은 자들은 미음이 미미하지만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에게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라고 물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이미 믿은 자들입니다.
사실 이 문제는 신학적으로 민감한 문제입니다. 어떤 교단에서는 믿는 것과 성령을 받는 것은 다르다고 봅니다. 믿음을 갖는 것도 성령의 역사이지만 성령을 받은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교단의 견해는 본문과 같은 사상처럼 보입니다. 그러데 어떤 교단에서는 믿는 것이 곧 성령을 받은 것이라고 봅니다. 이런 교단의 주장은 본문의 내용과는 충돌이 일어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고전 12:3에 보면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는 말씀을 근거로 주장합니다.
저는 예수를 믿는 것과 성령을 받는 것은 다른 차원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에베소 교인들은 이미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들에게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라고 질문했고, 그들은 이미 믿었지만 성령을 받지 못한 상태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복음서에 보면 제자들은 이미 올바른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마 16장에 보면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정확한 신앙고백을 했고, 주님은 그들에게 이를 알게 하신 분은 혈육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고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반석 위에 음부의 권세가 이길 수 없는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이미 믿던 그들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셨고, 그들은 주님의 말씀대로 열심히 기도하고 기다리다가 불같은 성령, 바람같은 성령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 중 하나는 성령 받지 않고 교회를 나오고 예수를 믿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다는 말씀은 성령을 받아야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있다는 뜻으로만 해석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을 받지 않았어도 성령께서 도우셔야 믿음을 가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성령이 그 사람 속에 오시지 않았지만 그를 도울 수는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가 중요하게 거론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에베소 교인들처럼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데 성령을 받았느냐는 것입니다. 혹시 성령 받지 않고 신앙생활 하는 사람은 없습니까?
유명한 일본의 신학자 우찌무라간조는 “성령을 받지 못한 기독교인처럼 불쌍한 사람은 없다. 왜냐하면 그는 세상의 것을 가지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하늘나라의 것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상이 그를 업신여겨도 그는 세상을 이길 힘이 없으며, 깨끗하게 되기를 힘써도 그는 결코 깨끗해질 수 없다. 그는 성령을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불신자보다도 못한 사람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그는 성령을 받지 못한 그리스도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그리스도인입니다. 주님을 믿습니다. 그런데 성령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믿을 때 물로 세례만 받은 표면적 그리스도인입니까? 아니면 진정 성령으로 거듭난 이면적 그리스도인입니까?
롬 8:9에 말씀하시기를 "저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저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은 지 몇 십 년이 되고 장로, 권사, 집사, 구역장의 직분을 받았다 하더라도 마음속에 성령이 내주하지 아니하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설교는 크게 두 가지를 다룹니다. 먼저는 성령을 받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언제 어떻게 성령이 임하시느냐는 것입니다.
1. 성령 받으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해외 토픽에 재미있는 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스웨덴의 칼스타트 대학교가 있는데, 어느 날 그 학교에 수천 마리의 새들이 떼를 지어 몰려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그 새들이 아무 이유도 없이 학교 창문에 와서 자꾸 부딪히며 소동을 피우더랍니다. 결국 50여 마리의 새가 학교 창문과 부딪혀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학교 당국에서는 궁금했습니다. 도대체 학교가 새들과 원수 진 적도 없는데, 무슨 이유로 학교 창문에 부딪혀 자살 소동을 일으키나하고 조사를 했습니다. 조사 결과 새들이 학교 앞에 있는 나무로 날아들어 발효된 마가목이라는 열매를 먹은 뒤, 술에 취해서 그러한 일이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다행히 마가목 열매가 고갈되기 시작하면서 술 취해서 죽는 새의 수는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발표한 것을 읽어 본 적이 있습니다. 발효된 마가목 열매를 먹은 새들에게도 변화가 나타나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으로 충만하면 변화가 나타나지 않겠습니까? 변화가 나타납니다. 무슨 변화가 나타납니까?
1) 인격을 변화시키십니다.
주님은 물이 변해서 포도주가 되게 하신 분입니다. 지금은 성령으로 사람이 변화되도록 역사하십니다. 종교생활을 오래했는데도 자기 믿음이 자라지 않고 인격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성령을 사모하십시오. 성령께서 오시면 여러분의 인격을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삼상 10:6에 보면 사무엘이 사울에게 성령께서 임하실 것에 대해서 예언을 합니다. 그 예언의 내용은 사울에게 성령께서 임하시면 은사가 나타나고 사울이 변해서 새 사람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교회를 몇 십 년을 다녀도 여전히 변화가 없고, 여전히 세속에 물들어 있고, 세상에서는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다면 그 사람은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2) 성결하게 만드십니다.
레슬리 B. 플린이란 분이 정리해놓은 글을 보니까 세례 받을 때의 흥미 있는 이야기를 적었습니다. 한 젊은이가 침례를 받는데 한사코 오른 손을 물 속에 넣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물으니까 소매치기를 해서 먹고 사는데 만일 이 손까지 세례를 받아버리면 무엇으로 먹고살겠느냐 하더라는 것입니다.
물세례가 사람을 거룩하게 성결하게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물세레는 내가 주님의 가족이라는 공식적인 선포와 같습니다. 그러나 물세례로 사람이 성결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이 오셔야 합니다.
요 16:8에 보면 성령께서 오시면 죄에 대해서 책망하신다고 말합니다. 성령을 받기 전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않았는데 성령을 받고나면 죄가 죄로 여겨집니다. 전에는 아무런 죄책감도 못 느끼던 일도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양심에 가책을 받게 되고 괴로움을 느낍니다. 그래서 그의 생활이 성결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를 다녀도 그리스도인으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면서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아직 성령 받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3) 인도해 주십니다.
갈 길을 알지 못하는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셨습니다.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이 세상을 사는 그리스도인도 마찬가지로 성령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십니다. 롬 8:14에 보면 하나님의 자녀인 증거 중에 하나가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인간의 생각으로 측량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잘못된 길로 가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원망도 하고 불평도 해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면 하나님께서 기가 막히게 좋은 길로 인도하고 계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께서 인도하시지만 목사인 저마져도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여 답답해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면 측량할 수 없는 지혜로 인도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생길을 혹시 자신의 힘만으로 개척해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그런 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성령을 받는 것이며 성령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4) 능력을 주십니다.
행 1:8에 보면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능력은 넓게는 영적인 능력과 육적인 능력을 모두 포함하고 있지만 좁게 보면 성령의 아홉 가지 은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어디를 가면 내가 들고 있는 물건도 함께 그곳에 가게 되는 것처럼 성령께서 임하시면 성령의 은사도 함께 오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를 오래 다녔어도 아직 한 가지도 은사를 받은 것이 없다면 그 사람은 성령을 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은 먼저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5) 꿈과 환상을 갖게 하십니다.
여기서 꿈과 환상이라는 것은 비전을 말하는데 이 비전은 세속적인 욕망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나 자신이 어떤 일을 할 것인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꿈은 꿈인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꿈이라고 보면 됩니다.
성령이 역사하시는 분들을 보면 한결같이 꿈과 비전을 갖습니다. 그 이유는 요엘 선지자가 예언한대로 자녀들은 예언을 하고 청년들은 환상을 보고 노인들은 꿈을 꾸게 되기 때문입니다(행 2:17).
늘 꾸는 꿈이 세속적인 것이라면 자신의 신앙을 점검해 봐야 할 것입니다. 진정으로 성령을 받은 사람인가? 믿기는 믿지만 성령 세례를 받지는 못한 것이 아닌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6) 진리를 깨닫게 하십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십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오시면 우리를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요 16:13).
주님이 비유를 가지고 설교를 하셨을 때 제자들도 다른 사람들처럼 깨닫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설교 후에 제자들을 따로 데리고 가셔서 말씀을 풀어주셨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 말씀을 깨닫는 것도 동일한 원리입니다. 설교를 들어도 지루하기만 하고 무슨 뜻인지 도대체 모르겠다면 성령을 받지 않았던지 성령을 받기는 했으나 소멸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전에는 거짓말 같던 성경의 내용들이 진리로 믿어지고 자신의 생활에 적용이 됩니다. 성령이 없으면 성경의 내용들은 신화에 불과하고 자기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7) 진리대로 살게 하십니다.
성령이 없으면 자기의 힘으로 말씀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신앙생활이 너무나 힘들고 무거운 짐입니다. 그런데 성령을 받고 성령께 사로잡히면 말씀을 행할 능력이 생겨서 말씀대로 살기가 쉬어집니다.
겔 36:27에 보면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찌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신 즉 성령께서 임하시면 전에는 행할 수 없었던 말씀이 행해지는 일이 일어납니다.
8) 예수를 증거 하게 하십니다.
우리에게 성령의 기름을 부어주신 것은 복음의 등대를 밝히라고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복음을 증거 하게 됩니다.
존 맥스웰이 쓴「당신 안에 잠재된 리더십을 키워라」라는 책에 보면 한 등대지기 이야기가 나옵니다. 암벽 해안에서 일하던 등대지기는 한 달에 한번씩 기름을 받아 등댓불을 지켰습니다. 등대가 마을에서 멀지 않다 보니 손님들이 자주 왔습니다. 하루는 어떤 여자가 난방에 필요하다며 기름을 구하러 왔습니다. 또 하루는 어느 남자가 등잔불을 켠다며 기름을 청했습니다. 모두 그럴듯한 요구인지라 이 등대지기는 달라는 대로 기름을 다 주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등대의 불을 켜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 바람에 여러 척의 배가 암초에 부딪쳤습니다. 그래서 상부에서는 이 등대지기를 다음과 같이 질책했습니다. "당신에게 기름을 공급한 이유는 단 한 가지, 즉 등대를 밝히라는 것이었소."
지금 이 시대에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은사와 능력을 받았다고 하면서 돈이나 받고 예언이나 하며 건강하게 사는 사람들을 어둠으로 이끄는 자들이 있습니다. 정말로 잘 못된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을 주신 것은 복음을 증거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전도에 대한 부담이 없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자기를 점검해야 합니다. 나는 성령을 받은 사람인가? 성령 받은 그리스도인은 전도에 대한 부담을 갖게 됩니다. 왜냐하면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께서 전도에 대한 부담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9) 성령의 나타남을 주십니다.
본문에서는 방언으로 성령께서 임하신 것을 나타내 보여주셨습니다. 행 2장에서는 바람처럼 불처럼 역사하셨습니다.
사도행전에 보게 되면 거의 방언으로 성령께서 임하신 것을 나타내 보여주셨습니다. 우리가 방언 하나만 가지고 성령을 받았다 받지 않았다고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성령께서 임하시면 임하신 증거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보게 되면 성령이 임한 것을 자신들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알 수 있는 증거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물세례를 받으면 물세례를 받는 자신도 알고 다른 사람들도 아는 것처럼 성령세례를 받는 것도 똑같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성령께서 임하실 때마다 확실한 증거가 있었습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체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이 내게 임하시면 확실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120문도나 사도 바울도 그랬고 본문에 나오는 12제자도 그랬습니다. 저 역시 성령이 임하시는 확실한 체험이 있습니다.
2. 성령은 언제 어떤 때에 임하시는가?
요엘서에서는 ‘그 후에’ 라고 말씀하십니다(욜 2:28). 베드로는 그것을 ‘말세’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행 2:17). 그것은 ‘모년, 모월, 모일’이라고 어느 한 날을 지칭한 것이 아닙니다. 이 ‘말세’라는 말은 영어로 ‘In the last days’라고 하는데, 이것은 ‘마지막 날들’이라는 복수로서 ‘마지막 때‘라는 의미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부터 다시 오시는 재림까지의 전 기간을 의미합니다.
말세를 사는 우리들에게 성령께서 임하시는데 우리가 다음과 같이 할 때 임하십니다.
1) 주의 이름으로 모일 때 임하십니다.
마 18:20에 보면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성령께서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믿음의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임하셨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도 그들이 한 곳에 모였을 때 임하셨다고 말씀합니다. 본문에서는 12명 쯤 되는 제자들이 모인 곳에서 임하셨습니다.
특별히 성령이 강하게 임하시는 장소가 있습니다. 그런 곳에서는 다른 곳 보다 성령의 역사가 강하게 나타나서 많은 사람들이 성령을 받게 됩니다. 삼상 19장에 나오는 라마나욧이 그런 장소입니다. 라마나욧은 사무엘 선지자가 선지생도들을 훈련시키던 곳입니다. 다윗이 사울의 칼을 피해서 그곳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죽이기 위해서 군사들을 보냈니다. 그런데 다윗을 잡으러 온 사울의 사람들이 라마나욧에 왔다가 성령을 받게 됩니다. 사울이 도 다른 사자들을 보냈는데 그들도 성령을 받고 사울에게로 돌아기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사울은 또 른 사람들을 보내고 그들 역시 성령을 받고 돌아가지 않습니다. 결국 사울이 직접 라마나욧으로 갔는데 사울도 성령을 받았던 사건이 있습니다. 특별히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장소입니다.
우리 비전교회의 비전 중에 하나가 우리의 예배당이 라마나욧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성령이 역사하시고 이곳에 사람들이 오면 성령을 받고 변화가 일어나는 라마나욧이 되는 것이 우리의 소원입니다.
2) 기도할 때 임하십니다.
성경에서 제시하는 성령 받는 방법 중에 하나는 기도하는 것입니다. 눅 11:13절에 보면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라고 말씀합니다.
그 말씀대로 초대교회 때는 기도할 때 성령께서 임하셨습니다. 120문도가 모여서 10일간을 전혀 기도에 힘을 쓸 때 성령께서 임하셨습니다. 저도 기도하다가 성령을 받았습니다.
성령께서 기도할 때 임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힘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성령께서 임하십니다. 우리가 쉬지 않고 기도하면 성령께서도 쉬지 않고 임하십니다. 우리가 더 강력하게 기도한다면 성령께서도 더 강력하게 역사하실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기도하기에 좋은 장소입니다. 우리교회의 기도는 뜨겁습니다. 몇 주 전에 인도 선교사임이 금요기도회에 참석을 하시고 돌아가시면서 저에게 “목사님! 기도원 보다 더 뜨겁습니다.”라고 하셨는데 그런 말은 그 선교사님에게만 듣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새벽에 기도합니다. 또 낮에 모여서 기도합니다. 여러분들이 원하시기만 한다면 언제든지 기도할 수 있는 곳이 우리비전교회입니다.
교회가 기도하는 것과 내가 기도하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교회가 기도를 많이 한다고 내가 기도를 많이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이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고 싶다면 자신이 기도를 시작하십시오. 특히 이번에 열리는 비전중보기도센터 개원 집회는 여러분들이 성령을 받기에 아주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3) 회개할 때 임하십니다.
행 2:38에 보면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성령은 거룩한 영이시기에 죄를 품고 있다면 성령을 근심시키게 됩니다. 죄를 회개하고 깨끗한 심령으로 성령을 부르십시오. 거룩한 성령께서 임하실 것입니다.
1907년 평양에 대각성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원산과 평양을 중심으로 선교하던 하디 선교사를 중심으로 한 회개운동이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그 후 장대현 교회에 길선주 목사님이 교인들 앞에서 회개의 고백을 할 때 성령의 기름부으심의 역사가 임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눈물로 통곡하며 기도했습니다. 이것이 전국에 대각성 운동과 부흥의 역사를 일으키는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거룩하신 성령을 받기를 원하시고 그분의 생명과 능력으로 살기를 원하시면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으십시오.
4) 말씀을 들을 때 임하십니다.
행 10장에 보면 베드로가 이방인인 고넬료의 집에 갔더니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그들에게 임을 열어 설교하기 시작했는데 말씀을 듣는 사람들 가운데 성령께서 내려오셨습니다. 성령께서 내려온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었을 까요? 행 11:17에 보니까 자기들이 처음 성령을 받을 때와 같은 선물을 저희에게 주셨다고 하므로 에베소의 제자들에게 방언이 임하므로 성령이 임한 것을 알았다고 말합니다.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하셨는데 설교를 듣는 순간에도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의역사가 있고, 하나님의 생명이 전달되는 것입니다.
설교를 통해서 성령께서 역사하시기 때문에 설교 중에 거듭남의 역사도 일어날 수 있고, 성령세례를 받는 역사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또 설교를 통해서 병 고침이나 문제 해결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작년에 제가 속한 단체가 국민일보에 광고를 낸 일이 있는데 어떤 형제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그 청년이 제 집회에 참석해서 설교를 들었는데 설교를 듣던 중에 하나님이 역사를 하셔서 병 고침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아마도 말씀의 능력이 그 청년을 고친 것 같습니다. 이런 예는 그 외에도 많이 있습니다.
설교를 들을 때 중요한 것은 믿음으로 듣는 것입니다. 히4:2에 보면 말씀이 유익이 되려면 믿음으로 화합해야 한다고 가르쳐줍니다. 설교를 들으면서 비판적인 자세를 갖는다든지, 불신앙의 자세를 갖는다면 말씀이 그 사람 속에서 역사할 수 없습니다. 열린 마음으로 들어야 합니다. 믿음으로 들어야 합니다.
또 설교를 들을 때 중요한 것 중에 하나는 아멘으로 화답하는 것입니다. 고후 1:20에 보면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아멘해서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면 열심히 아멘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만들어진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5) 안수할 때 임하십니다.
본문에 보면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인들에게 안수하매 그들이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셨다고 말합니다.
안수할 때 안수자 속에 역사하시는 성령께서 안수 받는 사람 속으로 들어가시기도 합니다. 이것은 전이라고 하는데, 마치 전기가 흐르는 사람의 몸을 만지면 만진 사람 속에도 전기가 흐르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래서 안수를 사모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롬 1:11에서 로마로 가기를 원했던 이유는 신령한 은사를 나눠주기 위함이라고 했는데 신령한 은사를 나눠주는 방법 중에 하나가 안수를 하는 것입니다. 안수 받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별로 좋은 현상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권위자들을 통해서 안수하게 하시고 그 안수를 통해서 역사하시는데 안수를 거부하는 것은 교만함입니다.
그러나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영이 맑지 않은 사람에게 안수 받는 것은 삼가야 합니다. 아무데나 가서 안수 받는 일은 자신의 영혼을 우는 사자에게 내어주는 꼴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안수 받는 사람은 수동적이 되기 때문에 안수자 속에 역사하는 잘못된 영이 안수 받는 사람 속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6) 찬송 드릴 때 임하십니다.
제가 아쉽게 생각하는 것 중에 하나는 예배 중에 더 많은 찬송을 부르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찬송을 깊이 드릴 때 성령께서 임하시고 우리들을 만져주시는 것입니다.
사 43:21에보면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인간을 만드신 이유가 하나님을 찬송하기 위함인데, 예수를 믿는 우리들이 할 수만 있으면 많은 찬송을 부르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성경에 보면 찬송 중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일들이 많습니다. 여호사밧 왕 때는 찬송 중에 적들을 물리쳐 주셨고, 바울의 경우는 찬미하고 기도할 때 착고가 풀리고 옥문이 열리는 일이 있었습니다.
시 22:3에 하나님은 찬송 중에 임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할 수만 있으면 더 많이 찬송을 불러야 합니다.
예배를 드리러 오면서 찬송을 부르는 시간을 계산해서 일부러 늦게 오는 사람이 있다고 하는데 지혜로운 일이 아닙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해서 오는데 찬송 시간을 피하면서 어떻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겠습니까? 지혜로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열정적인 찬송을 원하십니다. 찬송은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노래입니다. 그런데 열정이 없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사람을 높일 때를 생각해 봅시다. 형식적으로 박수나치고 열정이 없이 형식적으로만 높인다면 상대가 기분이 좋겠습니까? 눈치가 있기 때문에 열정이 없는 칭송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열정적인 찬송을 원하십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소리를 지르고, 손바닥을 치고, 뒤고, 춤추고, 온갖 악기를 동원해서 찬송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요즘 청년들 찬양 집회에 가보십시오. 뛰고, 소리를 지르고, 춤을 추고 온갖 오두방정을 떱니다. 어른들은 그런 모습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떨까요? 하나님은 어른들이 부르는 경직된 자세의 찬송보다 청년들이 드리는 오두방정 찬송을 더 좋아하실 것입니다.
열정적으로 찬송해 보세요. 성령께서 임하시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를 사모하십시오. 성령께서 자신을 사로잡도록 성령께 자신을 내어드리십시오. 성령께 사로잡히는 것이 인생 성공의 비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