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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나님 안에 감취인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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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나님 안에 감취인 생명 골3:1-4(05,12,11 오전)
여러분 ! 생명이 무엇이며 생명은 누구 것이며 생명의 정체는 무어냐? 이는 생물학적인 질문입니다. 그리고 생명이 왜 존재하느냐? 존재의 목적이 무엇인가? 이는 철학적 질문입니다.
역시 생명이 무엇인가? 삶이 무엇인가? 하는 특성과 성격과 질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생명은 어디 있느냐? 생명은 언제부터 존재했느냐? 또한 얼마나 살아갈 것인가? 질문할 것이 참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여러 가지 질문 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생명은 누구의 것이냐? 어디에 속한 것이냐? 는 소속을 묻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질문이 있는데, 여기에 우리는 답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 ! 여러분은 누구에 속해 있습니까?
돈과 함께 있다가 돈과 함께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가치 없는 존재도 있음을 성경은 말합니다.
야고보기자는 약4:13절에 돈버는 것이 생의 목적이 되어 사는 사람을 향해서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요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안개처럼 가치 없는 존재도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이야말로 돈 때문에 살고 돈 때문에 죽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은 어디에 속하여 있습니까? 깊이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 이 시간 여러분의 생명의 정체와 그 속성은 어떻게 평가되고 있습니까? 나는 도대체 누구의 소속이며, 누구의 것이냐고 자신을 향해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땅에 속한 생명은 땅의 것만을 생각할 것이고, 하늘에 속한 생명은 하늘의 것을 생각한다고 하는 것은 정한 이치입니다.
오늘 본문 1-2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와 다시 살리심을 받은 자라면, 이제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생명, 그리스도에게 속한 생명은 땅에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위엣 것을 생각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3절 이하에서는 그리스도의 생명 정체를 본질적으로 설명해 주는 아주 기본적 평가 기준이 있습니다.
아주 신비로운 이야기입니다. 오묘한 이야기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순간도 여기서 떠날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생명에 대한 중요한 설명입니다. 그 내용을 살필 때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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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죽음에서부터 시작하는 생명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산 생명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절에서도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 그리스도인이란 것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죽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일 죽는다는 것이 아니라, 벌써 죽었다고 하는데서부터 시작합니다.
오늘 예배드리는 여러분 ! 근심 걱정이 있으십니까?
물론 살다보면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지요. 그러나 근심 걱정 염려는 믿는 자가 가져야할 소지품은 아닙니다. 성경에 근심하며 걱정하며 살라고 말씀하시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죽지 못해서 그런 문제로 고심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죽지 못했다는 말입니까?
욕심이 죽지 않고, 내 자랑이 죽지 않고, 자존심이 죽지 않고, 성질이 죽지 않고, 정욕과 이성의 자랑과 허영이 죽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근심 걱정 불안 초조 긴장이 따르는 고통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문제가 생기고, 생긴 문제는 풀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철저히 내가 죽어야 합니다. 아직도 덜 죽어서 버둥거립니다.
아직도 설죽어서 그렇게 생각도 복잡하고, 문제도 많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철저하게 죽어야 합니다. 이미 죽었다면 아무 문제도 없는 것입니다.

참으로 웃지 못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신혼부부가 신혼여행을 갔습니다. 신부가 옛 애인을 잊지 못하고 몰래 전화를 걸다가 들켜, 신랑한테 얻어맞은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 있을 법입니까? 결혼과 동시에 이제는 옛 생활, 옛 친구를 다 잊어야 하지요, 남자 친구, 여자 친구 할 것 없이 딱 끊어 버려야 됩니다. 죽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이 남아 있어서는 절대로 안 되는 것입니다.

과거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 합니다. 과거의 모든 죄를 완전히 십자가 밑에 묻어 버리고, 죄악 된 과거와 관련을 아주 끊고, 그 자리에서 돌아서서 주님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를 믿는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믿는 자는, 율법 앞에서 완전히 죽은 것입니다. 그 뿐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앞에서도 죽어야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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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 가운데서 우리를 다시 살리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를 생각하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나'라는 존재는 적어지고 마지막에는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처럼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 고맙고, 은혜가 너무 고마운 나머지, 내가 산 것이 아니라 내 속에 그리스도가 사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 너무 크고, 너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에 내가 감격하는 순간, 내 모든 것, 내 욕심, 나 중심적인 교만, 세속적인 욕망과 고집은 다 사라지게 되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느 날 홍수가 나서 물이 많이 불었는데 수영할 줄 모르는 사람 하나가 빠져서 허우적 그리면서 살려 달라고 소리를 지릅니다.
수영을 잘하는 구조 대원 두 사람이 그쪽으로 헤엄을 쳐갔습니다. 그런데 건질 생각은 하지 않고 가까이 다가간 채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은 죽는다고 야단입니다.
그러다가 이윽고 기진맥진해서 버둥거리지를 않습니다. 두 구조 대원은 그제 손을 써서 그 사람을 건져냅니다.
구경하던 사람들이 왜 빨리 건지지 않고 기다렸느냐고 물으니까 그들은 대답합니다.
'저 사람이 힘이 남아 있어서 버둥거릴 때에 손을 잡게되면 내 목까지 끊어 안기 때문에 나도 함께 죽게됩니다. 살겠다는 생각을 아주 버리고 손을 들어야 안심하고 건져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라고 말하더랍니다.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 앞에 철저히 죽어야 합니다. 율법 앞에 죽고, 은혜 앞에 죽고, 하나님의 크신 사랑 안에 완전히 죽어야 합니다.

여러분 !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안에서 죽은 자들입니다. 날마다 십자가 붙들고 죽어야 사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말이 많습니까?
무슨 이유가 그렇게 많습니다. 십자가를 붙들고 날마다 죽는 다고 입으로는 죽음을 고백하면서, 행동으로는 하나도 죽은 흔적을 찾아볼 수 없으니, 이 어찌된 일입니까?
그리스도안에 죽은 사람은 반응이 없습니다. 칭찬해도 교만할 것도 없고, 모략 중상을 당해도 말이 없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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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 빌라도 앞에 서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십시오. 온갖 중상 모략을 당해도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대답할 가치도 없을 뿐 아니라. 세상에 대해서 이미 죽었기 때문입니다. 깨끗이 죽었기 때문에 상관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란 말씀입니다.
갈 5:24절에는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내 정과 욕심도 십자가에 다 못박아 버렸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2.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산 생명입니다.
우리는 율법 앞에 죽고, 이제는 은혜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로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새 생명입니다. 그리스도에게 속한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나의 나 된 의미, 나의 나 된 목적, 전부가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이제 내가 나를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하여 죽으신 주님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빌3:12절에는"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오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그렇습니다. 이제는 이것이 내 이상이어야 합니다.
내 기쁨도 그리스도요, 내 영광도 그리스도요,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합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모습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돌아온 탕자의 모습을 보십시오. 전에는 자신을 위해서, 썩어질 것을 위해서 살았습니다. 잠깐 누리는 쾌락은 그를 고통 속으로 몰아 놓고 말았습니다. 남은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잃었습니다. 가련하고 처절한 모습밖에 남은 것이 없습니다. 참된 생명을 잃고, 껍데기만 남은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 품에 돌아온 탕자는 과거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오직 은혜로 살게 되었습니다. 다시 태어났습니다. 다시 살아난 그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이제는 아버지를 위해서 삽니다.
여기에 감사가 있고, 영원한 즐거움이 있습니다. 어떤 일을 당하든지, 무슨 일이 있든지 오직 돌아온 감격과 감사, 그것으로만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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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복이 나의 복이요, 아버지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요, 아버지의 것이 나의 것이 됨을 탕자는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탕자는 진정한 복과 기쁨이 돈에 있고, 이 세상에 있는 줄 알았는데,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것이 아버지께 있음을 깨닫고 이제야 진정으로 행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왜 탕자 이야기를 하신 줄 아십니까?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죽은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 죽은 것입니다. 죽어 버리면 편합니다. 걱정에 매이고, 근심에 매일 일이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져 있든 신비로운 생명을 다시 얻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 씨 안에 감추어져 있는 생명은 설명으로 되지 않는 것처럼, 그리스도안에 감추어진 생명도 그렇습니다.
어떤 생물학자가 세미나에서 강연을 하는데, 조그마한 씨를 집어들고, 이 씨앗 하나가 참으로 신비한 것입니다. 이것은 얼마든지 그 성분을 분석할 수 있습니다. 이 씨는 질소, 수소, 탄소로 합성된 것입니다. 우리도 이 성분대로 씨앗을 말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만든 것은 땅에 심으면 썩어 버립니다.
그러나 여기 내 손에 있는 이 조그마한 씨앗은 땅에 심으면 싹이 납니다. 그리고 똑 같은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그 이유는 "이 안에 감추어진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만들고, 사람의 손에 있는 씨는 죽은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만드시고 하나님 안에 있는 씨는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적 존재입니다. 그러한 생명의 신비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이 오묘한 신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생명을 소유한 자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복된 삶을 이 땅에서도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 우리는 예수 안에 있는 자요 예수의 생명이 내 안에 있음을 믿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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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제 그리스도인은 땅엣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위엣 것을 생각합니다.
오늘을 사는 성도들은 잠깐 있다 없어질 것보다는 영원하고, 복된 하늘나라의 것을 생각하고 사모하면서 오늘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비록 몸은 땅에 있을지라도 그리스도인의 생명은 신비로운 천국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나타날 바로 그 영광의 날을 바라보며 오늘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신비로운 생명을 거듭 확인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렇습니다.

찬송495장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 나라"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의 역사가 우리의 삶 속에서 싹이 나고, 꽃이 피고, 많은 열매를 맺게 합니다. 신비로운 생명의 역사를 그리스도안에서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만든 씨는 땅 속에서 썩어 버리지만, 생명이 있는 씨는 오히려 땅 속에서 신비로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안에서 새롭게 변화되는 신비롭고도 놀라운 생명의 역사요, 구원의 역사입니다.
생명을 소유한자는 슬퍼하던 자가 기뻐하는 자가 됩니다.
원망하고 불평하든 자가 범사에 감사하는 자가 됩니다.
실망하고 낙심하던 자가 무슨 일을 만나든지 담대하고 용기 있는 자가 됩니다.
미워하든 자가 사랑하는 자가 됩니다.
받기만을 좋아하든 자가 주기를 기뻐하는 자가 됩니다.
섬김 받기를 좋아하든 자가 섬기기를 기뻐합니다.
이것이 위엣 것을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새 생명을 소유한 자입니다.

사랑하는 석교의 가족들이시여 ! 가장 소중한 것은 영원한 생명뿐입니다.
우리는 그리 중요하지도 않은 문제들을 너무 많이 생각하며 염려하며 살아왔습니다. 피곤하고 지친 우리 심령들입니다.
우리가 주안에 감추어진 신비로운 생명을 생각하면서 살아갈 때에, 주님의 그 크신 은혜를 확인하고 체험하며 살아가는 복된 그리스도인들이다 되시기를 존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두 손들어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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