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내 인생에 새 일을 행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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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이사야 43장 15-28절 마경훈 목사
본문 : 이사야 43장 15-28절
15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자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 왕이니라
16 바다 가운데 길을, 큰 물 가운데 첩경을 내고
17 병거와 말과 군대의 용사를 이끌어 내어서 그들로 일시에 엎드러져 일지 못하고 소멸하기를 꺼져가는 등불 같게 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18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20 장차 들짐승 곧 시랑과 및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들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나의 택한 자로 마시게 할 것임이라
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함이니라
22 그러나 야곱아 너는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고 이스라엘아 너는 나를 괴로와하였으며
23 네 번제의 양을 내게로 가져 오지 아니하였고 네 제물로 나를 공경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나는 예물로 인하여 너를 수고롭게 아니하였고 유향으로 인하여 너를 괴롭게 아니하였거늘
24 너는 나를 위하여 돈으로 향품을 사지 아니하며 희생의 기름으로 나를 흡족케 아니하고 네 죄 짐으로 나를 수고롭게 하며 네 죄악으로 나를 괴롭게 하였느니라
25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26 너는 나로 기억이 나게 하고 서로 변론하자 너는 네 일을 말하여 의를 나타내라
27 네 시조가 범죄하였고 너의 교사들이 나를 배역하였나니
28 그러므로 내가 성소의 어른들로 욕을 보게 하며 야곱으로 저주를 입게 하며 이스라엘로 비방거리가 되게 하리라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행하시는 새 일에 대해서 다양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겔36:35에서는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하시면 황무한 성읍이 에덴동산 같이 될 것이라고 예언 합니다. 겔37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하시니 생수의 강이 흐르고 그 강물이 흐르는 곳마다 소성하고 번성하는 역사가 일어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겔47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하시니 마른 뼈가 살아나서 하나님의 군대를 이루게 됩니다. 본문 20절에서는 사막에 물들을 사막에 강들을 낸다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하시는 역사가 필요했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범죄 하고 그 결과로 인하여 바벨론에 포로가 되었습니다. 포로 된 그들의 형편을 28절에 보면 세 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성소의 어른들이 욕을 보게 되었습니다. 지도자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가면서 눈이 뽑히는 수치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둘째, 백성들이 저주를 받았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과 단절된 저주, 국가를 잃어버린 저주, 포로였기에 환경적인 저주까지 받게 된 것입니다. 셋째, 이스라엘이 이방인들에게 비방거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그들이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부끄러움을 당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조롱당하는 자리에 까지 떨어지게 된 것입니다.
저는 제 생활과 사역에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하시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만 지금 보다 더 강력하게 새 일을 행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지금 주님께서 여러분의 영혼과 생활 가운데 새 일을 행하고 계십니까? 혹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영적으로 환경적으로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지는 않습니까?
1. 하나님은 내 인생에 어떻게 새 일을 행하시는가?
1) 나의 하나님이 되셔서
15절에 보니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자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 왕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사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든지 믿지 않든지 언제나 거룩하시고 언제나 창조자이시며 언제나 왕이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분을 믿지 않으면 그분과 우리는 상관이 없는 것이고 우리가 그분을 믿음으로 받아드리면 그분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개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능력이 탁월한 어른이 내 친구의 아버지인 것과 내 아버지인 것은 엄청난 차이입니다. 그 어른이 내 친구의 아버지라면 내게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분이 내 아버지라면 그분의 모든 것은 나와 상관이 있으며 그분의 능력은 내 행복에 직결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상관있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그분이 나의 하나님이 되셔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그분이 나의 하나님이 되십니까? 요1:12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됩니다.
그러므로 아직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이 시간 영접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은 하나님이 나와 상관없는 분이 아니라 나의 아버지이시며 나의 하나님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강하고 담대하게 사시기를 바랍니다.
2) 불가능한 일을 행하셔서
16절에 보니 하나님은 바다 가운데 길을 내신분이시고 큰 물 가운데 첩경을 내신 분입니다. 20절에 보면 광야에 물들을 사막에 강들을 내신 분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새 일을 행하시는데 불가능한 일을 행하시므로 새 일을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로 나올 때 하나님께서는 바다 가운데 길을 내시므로 불가능한 일을 행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을 할 때는 반석에서 샘물을 나게 하셔서 사막에서도 물에 부족함이 없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위해서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말씀합니다. 로버트 슐러 목사님은 말했습니다. “불가능한 일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존재할 뿐이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분의 뜻을 행하려 한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불가능을 가능케 하셔서라도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게 하실 것입니다.
맥아더 원수가 한국군 사령관으로 임명을 받았을 때 그는 인천상륙작전을 계획했습니다. 상륙작전이라는게 배 한 척만 침몰하면 그것으로 실패할 것이기 때문에 대단히 위험한 작전입니다. 그가 상륙작전들을 연구해 보니 지구상에 500번 정도의 상륙작전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노르만디 상륙작전을 제외하고는 499번이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부하들이 그 작전을 수정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때 맥아더 원수는 대답했습니다. “1/5 00의 확률의 아니라 1/1000의 확률이라 할지라도 이 작전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하나님이 이 작전과 함께 하시면 우리는 승리할 수 있다. 노르만디 상륙작전이 성공했다면 인천 상륙작전도 성공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과 함께 전 세계에 있는 자유 우방국들과 함께 우리는 전진해 가게 될 것이다.”
사실 우리에게 일어난 구원의 역사는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더 쉽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불가능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하시고 곧 이어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자신의 환경을 보면 절대 하나님의 새 일을 기대할 수 없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분들은 불가능한 환경을 보지 말고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보시기 바랍니다.
3) 적을 물리치셔서(17절)
17절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쫓아오는 애굽 군대를 일시에 홍해 바다에 수장시킨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새 일을 행하시기 위하여 그 일을 방해하는 적들을 물리쳐 주셨습니다.
이 사건은 실제적인 사건이면서 영적인 비유입니다. 골2:15에서는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사단의 머리를 박살내고 어둠의 권세들을 깨드리고 승리하셔서 우리들을 구원하시는 새 일을 행하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새 일을 행하셔야 하는데 항상 적들은 그 일을 방해합니다. 부정적인 생각과 부정적인 말들 그리고 사단의 도구가 되는 사람들과 저주 받은 환경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새 일을 방해 합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적들을 물리치시고 계획하신 새 일을 행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우리의 적들을 그분이 제거하실 것입니다.
2. 새 일을 행하시는 목적은 무엇인가?
21에서는 하나님의 찬송을 부르게 하기 위하여 새 일을 행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25절에서는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의 허물을 사하시며 새 일을 행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결국 우리에게 새 일을 행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존재합니다. 인생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올바른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인생의 목적을 모른 채 살아가기 때문에 산만한 것입니다. 인생의 목적을 알 때 집중력이 생기는 것이고 더욱 풍성한 인생을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 미국 새들백 교회 릭 워렌(Rick Warren) 목사님은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살아 갈 때에 5가지 유익이 있다고 말합니다. 1) 목적을 아는 것은 삶에 의미를 부여해 줍니다. 우리의 삶에 귀중한 의미와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면 어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모든 것을 견디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삶의 의미를 상실하면 그 어떤 것도 참아낼 수 없습니다. 2) 목적을 알면 우리의 삶이 단순해집니다. 목적을 알 때 우리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갈 곳과 못 갈 곳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기 때문에 헛된 것에 우리 인생을 허비하지 않게 됩니다. 3) 목적을 알면 초점을 맞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목적이 있고 삶에 초점을 찾은 사람들은 인생을 힘 있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돋보기로 태양과의 초점을 잘 맞추면 종이를 태우듯이 목적이 분명하면 더 강력한 사람과 사역이 가능해집니다. 4) 목적을 알 때 삶의 동기가 유발됩니다. 목적은 열정을 만들어내고, 그 목적을 향한 열정이 우리의 삶을 이끌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5) 목적을 앎으로서 영생을 준비할 수 있게 됩니다. 인생의 목적을 알게 되면 세상적인 것, 먹는 것, 입는 것, 사는 것, 쾌락이나 무슨 일에 그렇게 연연한 삶을 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잠간 지나가는 것이고 영원한 세계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찬송하며 사는 인생은 행복한 인생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목적대로 살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감사와 찬송으로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수년 전 미국의 프란시스 로셔 박사와 고든 쇼우 박사가 이색적인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내용인즉슨 이렇습니다. 6개월간 모차르트 곡으로 피아노 레슨을 받은 미취학 아동들이 그렇지 않은 아동들에 비해 뛰어난 학습 능력을 발휘했다고 합니다. 특히 수학과 과학에 두각을 나타냈다는 것입니다. 좀 더 확실한 근거를 위해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연구해 봤는데 역시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눈 후 한 쪽엔 10분간 모차르트 곡을 들려주고, 다른 한쪽은 들려주지 않고 수학과 과학 시험을 보게 했답니다. 그랬더니 음악을 들은 쪽 학생들이 반대쪽 학생들에 비해 평균 30% 높은 점수를 얻었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음악은 어떨까 비슷한 실험을 했답니다. 록 뮤직(rock music) 등 시끄러운 음악을 들려주고 시험을 치렀더니 평소보다 낮은 점수가 나왔다고 합니다. 참 신기하죠. 더욱 흥미로운 것은 식물들도 음악에 대해 반응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미국의 도로시 리틸락 박사는 하루 3시간 록 뮤직(rock music)을 식물에게 들려주었더니 애호박에 주름이 생기고, 토마토가 납작해지고, 옥수수가 구부러졌다고 합니다. 반면에 왈츠나 세레나데를 들려준 식물은 싱싱하게 잘 자라고 열매도 실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좋은 클래식 음악을 듣는 게 여러 면에서 유익하다는 사실입니다. 두뇌 활성화, 학습 능력과 생산성의 향상 등의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사람들의 장애나 질병을 치료해 준다고도 합니다. 그래서 요즘 ‘음악 치료학’이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누군가 음악을 가리켜 ‘영적인 언어’라고 했는데, 이 말처럼 음악은 영혼뿐 아니라 육체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음악을 선별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감사하게도 우리에게는 가장 좋은 음악이 있습니다. 무엇이죠? ‘찬송’입니다
찬송은 승리의 능력입니다. 노벨상 수상 작가인 펄 벅의 어린 시절 이야기입니다. 그의 부모는 중국 선교사였습니다. 한번은 그 어머니 캐롤라인이 마침 남편이 전도 여행을 떠나고 집에 아이들 셋만 데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녁 무렵 밖에서 창가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는데 밖에서 중국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내용인즉슨 가뭄으로 온 동네가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게 다 서양인들이 들어와서 신이 노했다는 겁니다. 그러니 밤이 깊어지면 처치하자는 겁니다. 그 말을 들은 캐롤라인이 질겁했습니다. 대책이 없어 그냥 골방에 들어가 기도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용기와 지혜를 주셨습니다. 밤이 깊어지자 중국인들이 들이닥쳤습니다. 그러나 캐롤라인은 침착하게 그들을 맞이하였고 다과를 대접했습니다. 그리고는 오르간 앞에 앉아 중국어로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찬송이 끝날 때까지 방안은 조용했고, 신기하게도 중국인들은 얼굴을 마주보면서 멋쩍어하다가 하나 둘씩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역시 찬송 중에 임하셔서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찬송하는 인생은 행복합니다.
3. 하나님께서 내 인생에 새 일을 행하시도록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1) 과거를 잊어버리라
하나님은 18절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은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과거지향적인 사람과 미래지향적인 사람입니다. 과거 지향적인 사람은 늘 과거를 생각하고 과거를 말합니다. 그런 사람은 줄에 묶인 개와 같습니다. 개는 줄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는 자유로울 수 있으나 줄의 한계를 초월해서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자유가 아닙니다. 과거의 영광에 묶인 사람도 있고 과거의 실패에 묶인 사람도 있습니다. 미래지향적인 사람은 줄이 없는 개와 같습니다. 원하는 대로 어디든지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미래지향적인 사람은 비록 과거에 실패의 아픔이 있었어도, 지금 힘들고 어려워도, 미래에 하나님께서 펼치실 그림을 보는 사람입니다. 비전을 보는 사람입니다.
과거지향적인 사람들은 광야에서 애굽을 생각하고 애굽을 그리워했던 사람들과 같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미래지향적인 사람들은 광야에서 가나안을 바라보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광야에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가나안을 향하여 전진하고 결국 가나안에 들어가는 사람들입니다.
2) 하나님을 부르라.
22절에 보니 하나님께서 고통 중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새 일을 행하시기를 원하셨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고통 가운데 머물러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부르라는 말은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할 이유는 우리의 인생에 하나님의 새 일을 방해하는 적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은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가 가진 조건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 가운데도 어려울 때는 하나님을 의지하다가 조금만 환경이 좋아지면 하나님과 상관없이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런 사람은 차라리 환경이 어려운 것이 더 좋은 일일 수 있습니다.
새들이 나무 위에다 집을 짓는 이유는 거기가 안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새 들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그 둥지를 공격하는 적이 있습니다. 뱀입니다. 새가 아무리 높은 곳에 집을 지어도 뱀은 나무를 감고 새 둥지가지 올라가 새끼들을 잡아먹습니다. 우리의 원수 사단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환경이 아무리 안전해 보여도 사단의 공격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이 세상에 안전한 곳은 없습니다. 엘비스 프레슬리를 아실 것입니다. 온 세계를 열광시켰던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56년부터 히트곡을 날렸는데 한 장에 50만 부 이상 팔려 나간 것만 80 몇 개가 넘습니다. 음반만 6억 장이 팔렸습니다. 하나에 1불이라고 해도 6억불, 최하 5불씩만 잡아도 엄청난 돈입니다. 영화에도 33편이나 출연을 해서 그 수입도 몇 억불입니다. 엄청난 별장도 여러 개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방송에 나가면 36개국에서 몇 억 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프레슬리를 보고 열광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도 1977년 42세로 7개월 동안 진통제만 5300알을 먹고 결국 이 세상을 떠나고야 말았습니다. 이 세상에 안전한 곳은 없습니다. 그래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3) 예배를 회복하라
23, 24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제사를 제대로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그들이 멸망당한 원인입니다. 한 때 영국에 큰 부흥이 일어나고 웨일스에서 큰 역사가 일어나서 세계 교회들과 세계를 움직이는 큰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영국교회들은 무기력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교회가 쇠잔하고 쇠퇴했는가를 역사가들은 몇 가지로 분석을 하는데 그 첫 번째가 교회가 예배시간을 짧게 해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설교 시간을 점점 줄이고, 모든 예배를 의식화 예식화 해서 1시간 내에 끝냅니다. 이런 예배의 쇠퇴가 교회의 쇠퇴를 가져왔고, 교회의 쇠퇴가 국가의 쇠퇴를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의 교회들은 예배의 형식화를 벗어나려고 노력중입니다. 우리 역시 예배의 변화를 꾀하고 있습니다. 예배가 변해야 하나님과의 관계가 변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타성에 젖어서 신앙이 의식화 형식화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았던 이유 중에 하나가 예배의 변질입니다. 그 사실을 알고 예배의 회복을 꾀합시다.
4) 죄 문제를 해결하라.
24-28절에 보면 죄 문제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렵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환경의 문제 등 여러 가지 어려움이 죄로 인하여 발생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래서 죄 문제를 해결할 것을 요청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죄가 사단이 역사하는 거점을 만들어주고 그로 인하여 여러 가지 어려움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를 해결하면 죄로 인하여 발생된 문제들 역시 해결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순서입니다.
죄는 주님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공로를 믿고 잘못을 자백하면 해결해 주십니다. 물론 사람들에게 잘못한 것은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 해결이 되어야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설교가 중에 류영모 목사님이 있는데 그분이 이런 예화를 들었습니다. 한 교회에 기도를 많이 하더니 하나님하고 직통 전화를 놓고 하나님하고 직접 통화한다는 어린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께서 그게 사실인가? 아닌가 궁금해서 아이를 불렀습니다. “얘야, 너는 하나님을 만난다며? 하나님을 만나면 목사님 몸에 점이 하나 있는데 어디에 점이 있는지 하나님께 물어 볼래?” 조금 있다가 아이가 돌아오더니 “목사님 등 뒤에 큰 점이 두 개 있데요.” 깜짝 놀랐습니다. 정확하게 맞았어요. “한 번 더 하나님께 물어보려무나. 얘야, 목사님이 굉장히 소중히 여기는 보물이 하나 있는데 그 보물이 뭔지 물어볼래?” 아이가 기도하고 오더니 “목사님께서 할아버지 때부터 물려받은 성경 책 한 권, 그걸 소중히 여긴다고 하나님이 말씀하네요.” 목사님이 또 깜짝 놀랐습니다. “얘야, 한번만 더 물어보려무나. 목사님이 기도할 때마다 목사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목사님을 못내 자신감 있게 살아가지 못하게 하는 죄, 두 가지가 있는데 그 죄가 뭔지 하나님 앞에 한번 물어볼래?” 아이가 기도하고 오더니 “하나님 앞에 목사님 죄가 무엇이냐고 물어봤더니 하나님께서 이미 목사님이 회개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용서하신 죄를 아무리 기억해 내려고 해도 기억이 안 나신답니다. ” 하나님은 우리의 온갖 허물을 알고 계실 수 있지요. 우리의 약점을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부족함을 알고 계십니다. 내가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가 하나님은 알고 계시죠. 그러나 한번 하나님 앞에 고백한 죄, 하나님이 용서 해 버린 죄, 기억할래야 기억할 수 없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랑의 빛 교회] 경기도 감이동 3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