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다 내 탓입니다
본문
말씀 : 요나 1 : 4 - 10
신다윗 목사
1. 요나라는 이름은 히브리어로 비둘기를 뜻한다. 비둘기는 평화, 순결, 순종을 상징하는 새다. 따라서 요나는 비둘기처럼 평화롭고 순결하고, 순종을 잘한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비둘기가 가라는데 가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날아가 버렸습니다.
2. 책임을 회피한 비둘기 요나
우리는 요나의 사건을 통해 많은 교훈을 얻는다.
이 요나서의 주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할 때 복을 받을 그릇이 되고, 지혜와 능력이 생산된다. 우리가 불순종할 때 하나님의 마음이 아프시고, 나는 괴롭고, 주위가 힘들어지고 어려워진다.
살아가면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성경을 통해서 보면서 책임을 누구에게 돌리지 않고, 자신에게 돌리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야 한다.
오래전 미국에 흑백간에 많은 차이가 있었던 때였다. 어느 흑인 청년이 두손에 무거운 가방을 가지고 공항 길을 걷고 있었다. 이것을 본 백인 청년이 한 손에 가방을 들어 주겠다고 하였다. 흑인 청년은 상당히 긴장을 하다가 그의 겸손한 모습과 친절에 한 손의 가방을 건네 주었다. 그들은 오랜 친구처럼 이야기하며 길을 걸었다. 훗날 그 백인이 루즈벨트 대통령이란 사실은 안 흑인들은 링컨 다음으로 흑인들의 지지를 받은 대통령이 되었다고 한다. 루즈벨트가 하는 말 중에 "흑백의 갈등은 모두 우리의 책임이며, 또 나의 책임이다"라고 한 점이다.
오늘 요나가 불순종하는데는 모두들 긍정하는 그만한 인간적인 생각의 이유가 있었다.
성경을 알든 모르든 간에 이런 일이 닥쳐왔을 때는 결국 인간은 인간적인 환경과 생각을 바라보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공감하는 것이고,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인간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우리에게 늘 알려 주는 것이다.
요나가 하나님이 가라하는 느니웨로 가지 않고, 다시스로 간 이유가 있다.
첫째 - 니느웨성은 거리가 멀고,
둘째 - 어려운 사막길을 걸어야 하고 가는 길도 험난했으며,
셋째 - 니느웨는 앗수르 나라의 수도로서 이스라엘과 원수 관계이므로 오히려 멸망 당하도록 놔두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그냥 있자니 불안해서 어디론가 떠나기는 해야 한다.
그때 마치 스페인 해양도시 다시스로 떠나는 배가 있어 거기로 올라탄 것이다.
그러나 양심의 가책을 받아 배 밑으로 들어가 잠을 청하였다. 모두가 이것을 몰랐을 것이다.
완벽하게 한다고 했으나 하나님을 피할수 있겠는가?
앤드류 머레이(신학자)는 "우리가 예수를 믿는 동시 모두가 순종 학교에 등록한다"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모든 생물을 창조 하실 때 행복의 범주를 주셨다.
가령 식물은 땅속에 뿌리를 깊이 박고 있는 한 행복하다.
새는 공중에서 행복하게 살수 있다.
물고기는 물 속에서 쉬지 않고 돌아다니는 것이 행복하다.
역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고, 순종할 때 행복하도록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모세가 백성을 출애굽 시킨후 광야에서 고별 설교를 할 때 이렇게 경고하고 있다.
"너희가 요단을 건너 가나안 땅을 들어가면 산이 둘이 있는데 하나는 그리심산이고, 하나는 에발산으로 너희가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지키면 그리심산 같이 울창하게 될것이지만 하나님의 명령을 어길때는 에발산 같이 벌거숭이가 될것이다"라고.
3. 우리의 일어나는 일들과 앞으로 우리들의 삶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해결점이 무엇인가?
문제 해결은 자기 잘못을 인정할 줄 알아야 된다. 여기서 우리는 이 교훈을 받아야 한다.
12절 <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이큰 폭풍 만난 것이 나의 연고인줄 아노라>
요나는 단호하게 <내탓이라>고 하였다.
인류의 불행이 어디서 왔는가? 여자의 죄와 남자의 핑계로 부터이다. 실수를 인정하고 무릎을 끓을 줄 아는 사람은 용감한 사람이다.
다윗도 죄를 숨기고 합리화할 때 괴로워했다.
시32:3-4<내가 토설치 아니할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
이런 상태에서 다윗에게 생활은 짜증스러워 갔고, 모든 주변이 원망스럽고, 행동은 점점 거칠어저 갔으며, 그러므로 생활은 점점 썩어가기만 하였다.
곧 자기 파멸, 자기 상실된 인간의 상태가 되어간 것이다.
그러나 나단 선지자의 충고를 듣고 즉시 회개의 무릎을 꿇고 철저히 회개하였다.
그랬더니 무섭기만 한 하나님이 기쁘게 느껴지고 하나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졌으며 하나님은 그의 인생길에 동반자가 되어 주셨다. 하나님은 구원의 방패가 되어 주셨다.
그에게는 하나님처럼 귀한 존재가 없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다 쏟아 놓았으며, 찬양하고, 감사하며, 모든 것은 다 털어 내놓고도 부족해 하였다.
4. 요나는 철저한 자기 합리 주의자였다. 그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자신의 생각대로 선택한 일은 그런대로 성공처럼 보였다. 그러나 성공처럼 보였던 당장의 현실이 자신을 돌이키기 힘든 비참한 불행으로 안내한다는 사실은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다음에 인간의 그릇된 관심이 미치는 엄청난 파장을 보게될 것이다.
5. 자기 합리화의 사람들 - 자기 정당화. (문제를 재울수 있는 것 같지만... 문제가 더 크게 일어납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부분이 자기 합리화의 사람입니다.
결론 :
하나님 앞에 "모두가 내탓입니다" 하는 사람은 주님을 이렇게 사랑한다.
이런 사람들로(많지 않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이루어가고 있다.
요나는 자기의 정체를 밝혔지만, 풍랑이 그치지 않자 자기가 죽어야 바다가 잔잔해진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이 자기 책임을 깨달으면 강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가 어린 자식을 볼 때 강하여 불속에 뛰어들수도 있는 것이다.
요나를 바다에 던지니 하나님께서 큰 물고기를 예비하시고 통체로 삼키게 하셨다.
그리고 바다가 잔잔해졌다.
요나는 고기 뱃속에서 회개하는데 몸부림친 회개가 터저 나온다,
그말씀이 2장 전체에 나와 있다.
이 기도를 "지옥을 경험한 기도"라고 한다.
우리 깊이 이 기도를 음미하며 내영혼의 회개가 되기를 바란다.
바다는 잔잔해지고 요나는 3일만에 고기가 토해내서 살게 되었다.
뱃사람들은 무사히 다시스로 갔다.
그리고 느니웨 사람들은 회개하여 구원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도 백성들에게 나타나게 되었다(회개하면 고치신다)
또 요나도 하나님의 선지자로 재 복귀되고 사명도 감당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