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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과 장애를 극복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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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과 장애를 극복하는 길
느헤미야 4장 1-14절

< ‘자신의 비전’을 가지십시오 >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 비전 성취를 판단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비전을 붙들고 지속적으로 땀을 흘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으로 인생을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훨씬 크고 중요합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수시로 “시야를 넓히고 마음을 넓히라!”고 말합니다. 경쟁에서 1등을 하는 것보다 1등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1등이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더 쓸모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최고의 사람(the best one)’이 되기보다는 ‘유일한 사람(the only one)’이 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최고보다 장인이 더 필요합니다. 다 최고가 될 필요는 없지만 어떤 일에 꼭 필요한 장인은 되어야 합니다. 남과 나를 비교하지 말아야 합니다. 물과 포도주를 누가 더 나으냐고 비교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이 물을 포도주로 만드셨다고 해서 다 포도주가 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나의 사명을 생각해야 합니다.

주님은 남처럼 되지 못하고 1등이 되지 못한다고 책망하지 않습니다. 다만 내 사명을 다하지 못하면 책망하실 것입니다. 누가 수치스런 사람입니까? ‘남처럼 되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답게 살지 못하는 사람’이 수치스런 사람입니다.

유명한 흑인 팝송 가수인 마이클 잭슨은 얼굴을 백인처럼 만들려고 얼마나 많은 성형수술을 했는지 4번에서 52번까지 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 성형수술로 80년대는 흑인으로서 상당한 미남으로 군림했지만 지금은 얼굴이 강시처럼 변했습니다.

내가 남처럼 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이 존엄하게 되는 길은 ‘나답게 내 비전에 최선을 다하는 것’에 있습니다. 우리는 남의 형편과 은사를 부러워하지 말고 나의 형편과 재능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유익을 남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비전과 욕심은 다릅니다. 욕심은 남처럼 되려는 것이고 비전은 나답게 살려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다른 교회처럼 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맡기신 특유한 사명을 발견하고 감당하면 됩니다. 우리는 ‘아무개처럼 되지 못한 것’을 한탄하지 말고 사도 바울처럼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처럼 자기 존재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나만의 길을 찾아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비전을 가진 사람입니다.

자신의 부족한 모습에 연연하지 마십시오. 부족해도 얼마든지 하나님 앞에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작고 보잘것없는 것을 가치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작은 것의 소중함을 무시하는 사람은 결코 참된 비저너리(visionary)가 될 수 없습니다. 사실 모든 큰일은 작은 일에서 시작이 됩니다. 그러므로 작고 보잘것없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작은 사건이 없습니다. 다 의미 있는 사건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작은 교회가 없습니다. 다 필요한 교회입니다. 아무리 작은 교회라도 그 교회를 통해서 한 사람이라도 변화되었다면 그 교회는 있어야 하는 교회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작은 사람이 없습니다. 다 가치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만남이 의미 있는 만남입니다.

예수님이 가장 사랑하셨던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 들린 창녀였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예수님이 다치셔서 우연히 한적한 곳에 있는 그녀의 집을 찾았을 때 그녀는 말했습니다. “선생님! 이 집이 어떤 집인지 알고 오셨습니까? 이곳은 창녀의 집입니다.” 그때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게 무슨 상관이냐?”

자신의 비천함을 상관하지 않으시는 주님의 말씀에 그날 막달라 마리아는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얼마 후, 예수님은 근처를 지나시다가 그녀가 어떻게 지낼까 궁금해서 그 집을 들렸습니다. 얘기 중에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요새 손님이 많으냐?” 그때 그녀는 말했습니다. “주님! 저는 주님을 만난 이후에는 손님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 말을 듣고 예수님이 “나를 따르라!”고 해서 그녀가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창녀도 새롭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작고 부족함을 탓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작은 공동체도 비전과 통찰력이 있으면 일어서고 아무리 큰 공동체도 비전과 통찰력이 없으면 스러집니다. 왜 1백 년 동안 세계를 석권했던 스위스 시계 산업의 지금 거의 몰락했습니까? 디지털 시대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할 때 아무리 거대한 공룡이라도 멸종됩니다.

우리는 시대의 흐름을 읽고 그 시대를 선도하며, 비전을 따라 남이 가지 않는 길을 갈 수 있어야 합니다. 인생은 자기 재능대로 되지 않고 자기 비전대로 됩니다. 큰 비전을 가지면 크게 되고, 작은 비전을 가지면 작게 되고, 비전이 없으면 쓸모없는 사람이 됩니다. 비전을 가지는 것은 봄에 씨를 뿌리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비전이 없는 사람입니다.

요셉은 다른 형제들보다 재능이 많아서가 아니라 비전이 있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때로 시련이 있어도 자기 비전을 잃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비전은 시련을 먹고 자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자기 비전대로 정한 때에 그는 그 비전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성공과 행복의 주인공이 되기를 원하면 찬란한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 역경과 장애를 극복하는 길 >

본문의 느헤미야는 당시에 왕의 술 맡은 관원이었습니다. 이미 그는 권력과 부를 얻었습니다. 야망은 거기에서 끝납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자기 권력과 부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성벽 재건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것이 바로 비전입니다. 비전은 자기 욕심과 책임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 비전을 이루려고 하는 인생이 가장 아름다운 인생입니다.

그러나 모든 비전에는 장애물이 있습니다. 그 장애물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을 보면 비전의 장애물을 극복하는 몇 가지 원리를 배우게 됩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1. 기도해야 합니다.

본문 1-2절 말씀을 보면 성벽 재건 소식을 듣고 산발랏은 자기 부하들과 군사들 앞에서 “아무 힘도 없는 자식들이 뭘 한다고 그래! 정말 웃기네!”라고 비웃었습니다. 그러자 그의 부하 도비야도 본문 3절 말씀에서 “저들의 건축하는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질 것입니다.”라고 맞장구를 쳤습니다. 그 말을 듣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본문 4-5절 말씀에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고, 저들이 오히려 수치를 당하게 하소서!”

비전을 향해 나갈 때 장애물을 만나면 제일 먼저 기도부터 해야 합니다. 우리가 비전을 이루려면 좋은 사람도 만나야 하고, 선견지명과 판단력도 좋아야 하고, 창의력과 추진력도 있어야 하고, 전문지식과 윤리의식도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모든 비전에는 반드시 어려움과 난관이 있기 때문에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해도 바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도하며 포기하지 않고 6절에서 성을 절반쯤 쌓으니까 7-8절 말씀을 보면 이번에는 더 많은 대적들이 연합해서 성벽 건축을 방해했습니다. 그래도 9절 말씀을 보면 그들은 기도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기도 중에 어려움이 더욱 커져도 기도를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귀도 기도의 능력을 압니다. 그래서 마귀의 제일 전략은 성도들이 기도를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에 회의를 가지게 하고, 기도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고, 기도를 미루게 합니다. 그 전략에 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의 능력을 믿어야 하고, 기도에 집중해야 하고, 매일 기도해야 합니다.

왜 시험에 빠집니까? 기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마태복음 26장 41절 말씀에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왜 기적이 없습니까? 기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9장 29절에서 주님께서는 “기도 외에는 이런 기적이 나올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왜 실망합니까? 기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성도의 가장 큰 무기입니다. 아무리 바빠도 비전을 가진 성도에게 기도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옛날에 한 여공이 방직 공장에 취직했습니다. 어느 날, 방직 기계를 작동하다가 옷감의 올이 하나 풀렸습니다. 기계를 멈추고 그 올을 바로잡으려고 몇 시간 동안 실랑이를 하다가 실이 더 엉켰습니다. 할 수 없이 반장에게 달려갔습니다. 반장이 와서 보고는 간단히 고쳐주며 왜 이제야 왔느냐고 물었습니다. 여공이 대답했습니다. “반장님께 죄송해서 제가 먼저 고쳐보려고 최선을 다 했습니다.” 반장이 말했습니다.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고장 났을 때 즉시 내게 달려오는 거야! 알았어!”

우리는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최선은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 힘으로는 안 되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비전은 더욱 그렇습니다. 우리는 비전이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가장 먼저 하나님을 찾아 기도해야 합니다.

2. 대비해야 합니다.

아무리 위협해도 기도를 앞세워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도하며 계속 건축을 진행하자 대적들의 방해공작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본문 7절 말씀을 보면 처음에는 산발랏과 도비야가 주축이 되어 방해를 했지만 나중에는 아라비아 사람, 암몬 사람들, 아스돗 사람들까지 성벽 재건을 방해하려고 했습니다. 또한 본문 8절 말씀을 보면 그들은 다 함께 모여서 예루살렘으로 가서 무력행사까지 하려고 했습니다.

그때 느헤미야는 어떻게 합니까? 본문 9절 말씀을 보십시오.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며 저희를 인하여 파숫군을 두어 주야로 방비하는데.” 방해공작이 심해지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함께 기도하고, 기도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파수꾼을 두어 밤낮으로 그곳을 지켰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기도해야 하지만 기도하는 것으로 끝나지 말고 최대한 준비하고 대비해야 합니다.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면 대처하기가 훨씬 쉽습니다. 지난번에 꿈에 누가 저의 새 차를 받은 꿈을 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꿈속에서 그 사람의 멱살을 잡고 난 후에 꿈에서 깨서 저의 부족한 인격을 놓고 회개했다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주간에 정말 식당에 갔다가 주차해주는 사람에 주차해달라고 키를 맡겼는데 식사 후에 보니까 누가 그랬는지 차 앞부분 범퍼에 기스가 나 있었습니다.

그때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신기하게도 꿈 꾼대로 되는구나!” 그런데 꿈속에서 사람의 멱살을 잡고 나서 회개했는데 어떻게 다시 사람을 붙잡고 따지겠습니까? 그래서 주차요원에게 그냥 말했습니다. “괜찮아요. 언젠가는 차에 상처 날 텐데...” 그처럼 꿈을 통해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서인지 현실에서는 훨씬 더 침착하게 그 상황에 대처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것이든지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대처하면 위급한 상황을 보다 잘 극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고난이 있을 수 있다고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고난은 나쁜 것이 아니며 모든 고난이 하나님의 선한 손길에 통제되고 있다고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러면 고난도 적게 오고 고난이 와도 비교적 넉넉히 극복할 수 있습니다.

3.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그처럼 기도하고 대비해도 대적들의 끝없는 공세에 점차 사람들의 마음은 흔들렸습니다. 본문 10절 말씀을 보십시오. “유다 사람들은 이르기를 흙무더기가 아직도 많거늘 담부하는 자의 힘이 쇠하였으니 우리가 성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하고.” 그들은 짧은 시일에 성벽을 반이나 쌓았던 점은 보지 못하고, 파괴된 성벽의 흙무더기를 보았습니다. 그렇게 부정적인 것을 보니까 낙심이 되어 “우리는 성을 건축하지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이 낙심은 외적인 공격보다 더 무서운 내적인 장애입니다. 비전을 이루는데 가장 무서운 것은 “나는 할 수 없다!”는 마음입니다. 모든 큰 비전은 큰 희생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힘들 수 있습니다. 그래도 낙심하지 말고 비전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병은 절망이라는 병입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마가복음 9장 23절에서 주님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현실이 어려워도 “살 길은 반드시 있다! 나는 반드시 비전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처럼 75세가 되어도 희망을 잃지 말고, 모세처럼 80세가 되어도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미국에 한 고아가 있었습니다. 중학교 때는 학교에서 사고를 치고 퇴학을 당했습니다. 씁쓸하게 교문을 나설 때, 갑자기 그에게 고아원 시절의 수녀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타미야! 하나님은 절대 너를 버리시지 않아! 절대 실망하지 말라!” 그 말씀을 기억하고 그는 피자 가게에 취직해서 피자 한 판을 11초 만에 반죽하는 선수가 되었습니다. 그가 도미노 피자의 창업주 토머스 모너건입니다. 그는 가는 곳마다 “결코 희망을 잃지 말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패배주의를 멀리해야 합니다.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실패를 숙명으로 알아야 할 사람은 없습니다. 전쟁에서 부상을 입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마음의 패배의식입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마음과 생각이 먼저 무너지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은 자신의 생각보다 더 크게 되지 못합니다. 성공은 우연의 산물이 아닙니다. 생각에서 승리한 사람이 성공합니다. 우리는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 있어도 생각할 때부터 승리해야 합니다.

4. 서로 격려해야 합니다.

백성들이 낙심에 빠지자 본문 11절 말씀을 보면 대적들은 “성벽 재건 공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죽여 그들의 공사를 막겠다.”고 더욱 나쁜 소문을 퍼뜨렸습니다. 그러자 본문 12절 말씀을 보면 대적들 근처에 사는 유다 사람들은 성벽 재건 공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그 일에만 매달리지 말라! 지금 이곳이 위급하니까 이곳으로 오라!”는 부정적인 메시지를 열 번이나 보냈습니다. 드디어 공동체에 내부 분열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사람이 외적인 공격을 받으면 오기로 더 뭉치지만 내부적으로 “이 일은 안 된다. 이제 그만 두라!”고 하는 부정적인 말이 떠돌아다니면 자멸하게 됩니다. 외부의 공격보다 내부의 분란이 더 무섭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정적인 말은 가급적 삼가야 합니다. 말하는 것도 삼가야 하고 듣는 것도 삼가야 합니다. 현실은 어려워도 힘써 서로를 격려해주어야 합니다.

광야생활을 할 때 이스라엘의 60만 명 이상의 장정이 부정적인 말 때문이 죽었습니다. 김구(金九) 선생님은 “할 일을 찾는 백성은 흥하고, 원망거리를 찾는 백성은 망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원망하는 일이 아니라 서로 격려하며 세워주는 일입니다.

그처럼 부정적인 말이 오고갈 때 느헤미야는 어떻게 했습니까? 본문 13절 말씀을 보면 느헤미야는 침투가 비교적 용이한 성 뒤의 낮고 넓은 곳에 수비대를 배치하고, 백성들에게 무엇보다 사기가 절실히 필요한 줄 알고 본문 14절에서 “두려워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가족을 위해 싸우라!”고 했습니다.

두려움은 무엇보다 큰 마음속의 대적입니다. 내 힘만 의지하면 두렵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주님은 요한복음 16장 33절에서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다!”고 하셨습니다. 힘들어도 참고 위로하고 사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세상을 이길 믿음의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사람은 난관이 있을 때 좋은 것을 많이 배우고 작품 인생이 됩니다. 정(情)도 편안하게 산 사람보다는 어렵게 산 사람에게 더 있습니다. 우리 부모님들에게 왜 정이 더 갑니까? 육이오 사변을 겪고, 배고픈 시대에 어렵게 살았기에 더 정이 갑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힘들 때 하나님을 추구하면 훨씬 더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가 깊어집니다.

사실 복은 성공이나 물질과 상관이 없고 인격과 상관이 있습니다. 인격이 없는 복은 진짜 복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은 복 하면 눈에 보이는 것만 찾는데 우리는 자기 신앙과 인격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그 신앙과 인격이 언제 형성됩니까? 대개 어려울 때 형성됩니다. 그러므로 난관을 두려워하지 말고 어려울수록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고 서로 격려하며 그 어려움을 이겨내야 합니다.

힘들 때일수록 더 사랑하고, 더 가족과 교회를 소중히 여기고, 더 비전을 붙들고 나아갸 합니다. 힘들다고 불평하고 두려워하고 야단 떨면 하나님이 말씀하실 것입니다. “네가 천당에는 가겠지만 큰일은 못하겠구나!” 그러나 난관에서도 굳은 믿음을 보여주면 하나님은 “이제 됐다!”고 말씀하시고 축복의 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 사명과 비전을 따라 사십시오 >

오늘 아침 교회에서 잠깐 눈을 붙였다가 꿈을 꾸었습니다. 한 운동장에 우리 교인들이 모여 있는데 저쪽에서 수많은 오리 떼들이 몰려왔습니다. 가까이 보니까 키가 사람 키 정도 되는 거대한 오리들이었습니다. 오리 표정도 무서웠습니다. 그처럼 거대한 오리 떼들이 빠른 속력으로 정면으로 달려오니까 우리 교인들이 두려워서 비명을 지르며 여기 저기 흩어졌습니다.

그때 저는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커도 오린데 뭘 두려워하나?” 그리고 내게 다가오는 한 마리 오리를 슬쩍 피한 후에 즐거운 마음을 가지고 그 오리를 갖고 놀았습니다. 그러자 점차 교인들도 안심하고 함께 거대한 오리랑 놀았습니다. 운동장에서 때 아닌 오리와의 댄스 파티가 벌어졌습니다. 자세히 보니까 오리의 표정도 어느새 온순한 표정이 되어 있었습니다.

아무리 큰 고난도 마음을 먹고 잘 대처하면 그 고난을 통해 오히려 기쁜 일이 다가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비전과 사명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모습은 나 자신에게도 유익이 되지만 자녀에게도 유익이 됩니다. 가장 위대한 자녀 교육은 부모가 사명과 비전을 따라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무리 자녀를 위해 기도해도 내가 사명을 따라 살지 않으면 그 기도는 허무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사명을 따라 사는 것은 하나님을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내 가족을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대개 우리를 통해서 가족으로 흘러갑니다. 우리가 정말 가족을 사랑하고 자녀들이 잘 되기를 원한다면 사명을 포기하지 말고 비전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사명을 이루면 우리 자녀도 축복 받습니다. 가족사랑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내 사명을 이루고 내 비전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가족 사랑입니다.

이번에 미국 CMA 총회에 참석하고 수많은 목사님들과 교제했습니다. 한국에 대한 그분들의 기대가 큰 것을 보면서 다시 한번 마음속에 비전이 불붙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우리 교회가 한국에 선교중심적인 지교회를 하나 세울 수 있게 해주세요. 그 소원을 이룰 수 있도록 저에게 동역자를 붙여주시고 후원자를 붙여주세요.”

지난 수요일에는 예배 후에 우리 교인들이 저를 위해 성대한 생일잔치를 마련해주었습니다. 그때 사회를 본 전도사님이 저에게 소원을 하나 말해보라고 할 때 제가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우리 교회가 지금 연약하지만 적당한 지역을 물색해서 지교회를 하나 세웠으면 좋겠습니다.” 현재 우리 교회의 규모로 지교회를 세우려면 엄청난 희생이 필요합니다. 그래도 해야 할 일이라면 기꺼이 희생을 감수하는 것이 거룩한 비저너리(visionary)의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두려움과 낙심이 임할 때 느헤미야는 분연히 일어서서 그 엄청난 부정의 기운을 긍정의 기운으로 돌려냈습니다. 결국 확고한 비전을 가진 한 사람 때문에 성벽 재건의 비전은 지속될 수 있었습니다. 그처럼 비전을 가진 한 사람의 힘이 그토록 큰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한국 교회를 새롭게 할 거룩한 비저너리를 찾고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크신 뜻을 이루는 거룩한 비저너리가 많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 이한규목사(분당 샛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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