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진단 방법
본문
이석권목사
[성경본문] 행2:42
(행 2:42)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사람이 이 땅위에서 살 동안 건강하게 산다는 것은 놀라운 축복 인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사람들마다 건강하게 살려고 무척 노력을 합니다. 그런데 살다가 보면 본의 아니게 건강이 약해져서 불행하게 살 때가 많습니다. 건강에 이상이 생기면 우선은 병원에 가서 어느 부분이 약한지를 진단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전문 의사의 지시를 받아서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이런 정도는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신앙인들 에게는 육신이 건강 못지 않게 신앙의 건강이 있어야 합니다. 신앙적으로 건강하지 못하면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없으며 올바른 신앙생활을 못하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건강한 신앙은 어떤 신앙인가를 생각하면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⑴, 식욕이 왕성해야 건강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초대 교회 성도들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이 사도들에게서 무엇을 배웠겠습니까? 이는 다름 아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배웠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을 잘 하고 은혜스럽게 하려면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공부하는 일을 열심히 해야 합니다. 성도들이 매일의 생활에서 말씀 읽는 것과 듣는 것을 부지런하게 하고 좋아하면 이는 분명히 신앙생활을 정상적으로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말씀 읽지 않거나 말씀을 읽는 시간이 지루하게 생각되고, 또 말씀을 읽기 싫어하고, 말씀을 멀리하면서 사는 사람은 분명히 신앙이 병들어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자신이 말씀을 가까이 하고 산다고 느껴지면 여러분의 신앙은 건강한 신앙이며, 만약에 여러분이 말씀을 멀리하고 살고 있다고 느껴지면 이는 병이 들어 있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벧전2:1-2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신령한 젖을 사모하는데 갓난아이처럼 사모하라는 말씀입니다. 갓난 아이, 갓난아이에게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또 갓난아이가 간절하게 찾고 있는게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어머니의 젖뿐입니다. 그리고 갓난아이가 어머니의 젖꼭지를 빨 때 아주 힘있게 빨아 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종일 젓만 있으면 만족입니다. 그래서 두 눈을 감고 자면서도 젖을 물고 잠이 듭니다.
다윗 왕은 하나님의 말씀 사모하면서 살았던 사람의 대표입니다. 시편119편에서 97절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 또 103절에서는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 123절에서는 "내 눈이 주의 구원과 주의 의로운 말씀을 사모하기에 피곤하니이다". 127절에서는 "그러므로 내가 주의 계명을 금 곧 정금보다 더 사랑하니이다". 131절에서는 "내가 주의 계명을 사모하므로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믿음이 성장하기 위하여 신령한 젖인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사모하면서 살고 있습니까? 육신의 양식과 비교해서 더 많은 양의 신령한 젖을 사모해야 합니다. 우리는 신령한 젖인 하나님의 말씀을 더 많이 연구하고 또 말씀을 붙들고 더 많이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을 완전한 구원으로의 성장은 신령한 젖을 사모하는 일 뿐입니다. 갓난아이처럼 신령한 젖을 사모하십시오.
사도 바울은 롬10:17 절에서 가르치기를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가을을 가리켜 독서의 계절이라 하는데 이 가을에 우리 성도 모두는 말씀을 가까이 하고 말씀을 묵상하면서 신앙이 아주 건강해지기를 바랍니다.
⑵, 신진대사가 잘 되어야 건강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했다고 했습니다. 사랑의 교제를 잘해야 건강한 신앙인 것입니다. 사랑의 교제는 성도 상호간에 주고받는 역사를 통해서 이룩될 수 있습니다. 이는 마치 우리가 육체의 건강을 위해서 음식물을 먹으면 몸에 이로운 영양분은 다 섭취되지만 몸에 필요치 않은 물질은 다 배설물이 되어 몸밖으로 나오는 것과 똑 같습니다. 그러니까 건강한 사람은 섭취와 배출 즉 신진대사를 잘해야 건강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데 신앙 생활을 잘하려면 사랑의 신진대사가 잘 이루어 져야 합니다. 사랑의 신잔 대사를 잘 하려면 무엇보다 이웃에 대한 관심이 있어야 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현대인들은 극단적인 이기주의적인 삶을 살기 때문에 이웃에 대한 관심이 많지 않습니다. 모두들 자기 중심적으로 살려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자기 중심적으로 살게 되면 신앙이 병들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음식을 먹었으면 또 찌꺼기를 내 보내야 건강한 것 같이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엄청난 사랑을 받았으니 또 이웃에게 이 사랑을 전해야 당연한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이웃에 대한 관심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지금 당신의 신앙은 정상적입니다. 그러나 이웃에 대한 관심이 없으면 이는 당신의 신앙이 이상이 있다는 신호이니 빨리 회복하기를 바랍니다.
요한 서신을 기록한 사도 요한의 이름의 뜻은 "여호와는 은혜로우심"이란 뜻입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 님의 12제자 중 한 사람입니다. 어부 출신으로 세베데의 아들로서 예수 님의 제자 야고보의 형제가 되는 사람입니다. 남달리 부유한 가정에서 고용인을 두고 어업에 종사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수 님의 부름을 받고 제자의 길을 걸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본래부터 성격이 매우 과격한 사람이었습니다. 한번은 사마리아 지방을 지날 때였습니다. 그때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 님의 일행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요한이 예수 님을 향하여 한다는 말이 눅9;54절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가로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 좇아 내려 저희를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라고 성급하게 굴다가 주님께 호된 꾸중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나중에 그의 별명이 "우뢰의 아들"이라고 할 정도로 요한의 본래 성품은 아주 급했습니다.(막3:17)
그러던 요한이 변화된 것입니다. 사랑의 사도의 대명사가 된 것입니다. 그의 서신들은 사랑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강단에 설 수 없는 순간까지 사랑을 외치다가 하나님의 부름 심을 받은 사랑의 사도였습니다. 사도 요한은 요일3:10절에서 그의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즉 그의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마귀의 자녀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자녀들을 키우다 보면 참으로 신기한 면들을 많이 발견하게 됩니다. 그 중에 한 가지는 특히 남자 형제를 둔 가정에서 많이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별것도 아닌 것을 놓고 형제가 싸우는 것을 자주 보게 됩니다. 그렇게 잘 싸우던 사이이면서도 동생이 길에 나가 다른 아이들에게 매 맞는 것을 보면 한편이 되어 달라붙어 함께 싸움질을 하는 것을 봅니다. 이것은 그들이 같은 아버지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한 아버지의 자녀인 형제이기 때문입니다.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창4장에 보면 최초의 살인자 가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처음으로 가인과 아벨이란 형제가 등장을 합니다. 그런데 그 형제의 등장은 비극으로 막을 내리고 맙니다. 형이 그의 아우를 시기하여 돌로 아우를 쳐죽이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가인과 아벨은 형이고 아우인데 이럴 수가 있겠습니까? 설령 그의 아우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가정을 합시다. 그래도 가인은 형인데... 형인 가인은 그의 아우인 아벨을 무참히 돌로 쳐죽였습니다. 성경은 저와 여러분을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가인같이 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모두는 다 형이자 아우들인 것입니다. 믿습니까? 믿으면 아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다들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그를 미워하는 것은 그가 미움받을 짓을 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합니다. "내가 저를 멀리하는 것은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들을 합니다." 내가 지금 이렇게 분노하는 것도 그럴 만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라고 합니다.
여러분들도 그렇게 말합니까? 그렇게 말하시는 분들은 다 자기를 속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위선자들입니다. 외식하는 자들입니다. 형식 주의자들입니다. 물론 미워할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또 멀리할 수밖에 없는 타당한 근거가 있을 것입니다. 모두가 인정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안에 죄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십니다. 성경은 "가인같이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가인이 살해한 것은 마귀에게 속한 자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미움, 시기, 질투, 살인...은 다 마귀의 속성들입니다. 그러기에 요일3:11절에서 "우리가 서로 사랑할지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라고 합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할 것은 우리가 다 함께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증거는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있음입니다. 우리 서로의 사랑이 하나님의 자녀인 증거인 것입니다.
고전13장은 사랑 이야기로 가득 차 있는 장입니다. 말을 아무리 잘 하여도 산을 옮길 만 능력이 있어도 구제를 아무리 많이 한다 할지라도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전체 메시지는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고 신약의 전체 메세지는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신구약을 합친다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라고 말합니다. 사랑이 무엇입니까? 오래 참는 것입니다. 자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무례히 행치 않는 것입니다.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입니다. 형제의 허물을 덮는 것입니다. 형제의 짐을 대신 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번 따라 하자!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⑶, 호흡이 정상적이어야 건강한 것입니다.
본문 42절에 보면 초대 교회 성도들은 기도하기를 전혀 힘썼다고 했습니다. 초대 교회가 왕성할 수 있었던 것은 교인들이 모이면 기도하기를 힘썼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신앙생활에 있어서 호흡이라고들 합니다. 사람이 왜 숨을 쉽니까? 죽지 않으려니까 숨을 쉬는 것입니다. 만약에 사람이 숨을 쉬지 않으면 죽고 맙니다. 신앙 인이 호흡인 기도를 쉰다면 이는 곧 죽은 신앙입니다. 신앙이 죽어 있으니까 신앙의 호흡인 기도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살전5:17절에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예수 님은 마26:41절에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깨어 기도하지 않으면 신앙은 자연히 병들게 되어 있습니다. 신앙이 병들게 되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지금 여러분들의 신앙이 정상적인가 아니면 병들어 있는지 여러분 자신이 스스로 진단해 보고 만약에 이상이 있다고 진단이 되어지면 미루지 말고 빨리 회복하여 정상적인 신앙을 되찾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주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불행한 운명을 바꿔 주실 수 있는 분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죄인으로 태어납니다. 죄인은 지옥 갈 운명을 갖고 태어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천국 갈 운명으로 바꿔 주십니다. 우리는 누구나 벌거벗고 가난하게 태어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운명을 부유하게 바꿀 수 있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낮은 자를 높여 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운명을 바꾸는 권세를 갖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은 운명을 바꿀 수 있습니다. 자신의 운명을 탄식하며 비관하는 것은 잘못된 운명관입니다. 여러분의 운명을 하나님께 가지고 나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세계 2차 대전 때 히틀러가 전재에 승리했다면 지금 세계의 운명은 비참했을 것입니다. 독재자들의 통치하에서 고생하게 됐을 것입니다. 2차 대전 때 세계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대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프랑스가 단 2주만에 독일 군에게 함락되자 프랑스를 도우러 갔던 영국 군 주력부대 35만 명이 던커크 반도에서 독일 군의 총 공격을 받게 됐습니다. 독일 군은 이 영국 군만 섬멸하면 영국 함락이 눈앞에 있다고 생각하고 육, 해, 공군의 총공세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영국 군은 큰 위기를 맞았습니다. 그래서 처칠 수상은 영국에 비상 방송 연설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