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근심 하고 있습니까? > 설교자료실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Home > 설교자료실 > 설교자료실
설교자료실
설교자료실

무엇을 근심 하고 있습니까?

본문

무엇을 근심 하고 있습니까? 고후7:5-11   2005년10월2일 주일 예배
최수인 목사   세계 제2차 대전 때에 미군이 전쟁에서 잃은 생명이 35만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2차대전 때 전쟁에 대한 염려와 공포 때문에 심장마비 등으로 죽은 사람이 훨씬 더 많다고 합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전쟁보다는 염려와 근심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람이 하는 걱정을 분석해 보면 우리의 지나친 염려를 알 수가 있습니다.
어던 조사에 의하면 이런 통계가 나왔습니다. 사람들이 하고 있는 염려와 근심은 40%는 없는 일을 걱정하고, 30%는 지나간 일들을 걱정하고, 12%는 내가 걱정 인해도 될 일을 걱정하고, 10%는 불확실한 일을 걱정하는 것이고, 8%만이 어쩔 수 없는 걱정이라는 조사가 나왔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 8%마저도 없는 0%의 걱정 없는 평안의 삶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들의 염려와 근심이라고 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고 미련한 것임에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내가 염려하고 근심한다고 해서 되어질 일은 하나도 없는 것이 이세상의 근심과 염려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마6:34에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날의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 말씀 하셨으며 요14:1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말씀 하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은 이와는 반대로 해야 할 근심이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0절을 보십시요 “하나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하였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근심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해야 할 근심과 하지 말아야할 근심이 있습니다. 하지 말아야할 근심 즉 세상 근심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니 하지 말아야 하고 해야 할 근심 즉 하나님 뜻대로 하는 근심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니 해야 합니다. 하지 말아야 할 근심 -육적인 근심은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 해야 할 영적인 근심은 사람으로 하여금 회개하게 하여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합니다..
왜 세상근심과 염려는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일 것일까요 세상의 염려와 근심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고 뼈를 마르게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세상일에 염려하고 근심하는 것은 우리 예수님께서 말씀 하신대로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가 싹이 나고 자라나지만 가시떨기 나무에 막혀서 결실을 할 수 없음같이 근심과 염려는 성도들에게 신앙의 열매를 맺지 못하도록 막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여러 가지 염려는 우리의 신앙이 성숙하지 못하도록 할뿐만 아니라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하고 더욱 심해지면 사망을 가져온다고 오늘 본문에서는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세상 걱정근심 염려에 사로잡히지 말아야 하고 하나님 뜻대로 하는 염려와 근심, 구원에 이르게 하는 근심, 회개를 이루는 근심을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오늘은 하지 말아야 할 근심에 대한 말씀이 아니라 우리가 해야 할 근심이 어떤 것인지에 대하여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쓸데없는 근심하다가 사망에 이르지 말고 하나님의 원하시는 근심을 통하여 구원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바울사도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 육체적으로 편치 못하고 사방으로 환난과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때에 디도가 바울을 찾아옴으로 큰 위로를 받았으며 디도의 전해준 소식을 듣고 기뻐하였다고 말씀 합니다 바울 사도가 위로를 받고 기뻐했던 것은
바울 사도가 고린도전서를 써서 보냈는데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잘못된 성도 간에 파당문제 성찬예식 우상 할례 등 여러 가지 잘못된 신앙생활을 강하게 책망을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 놓고 한편으로는 혹시라도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잘못을 고치면 좋으련만 오히려 불순종 하고 거역한다면 안 되는데 하는 걱정이 바울 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디도가 고린도교회 소식을 전해 주시기를 바울 사도가 전해준 편지를 읽은 성도들이 죄를 회개하고 애통하고 바울을 사모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바울사도는 8절에서 이렇게 말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 하였으나 지금은 후회 하지 아니함은 그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로 앎이라”9절“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도 아무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 그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요 우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근심인줄로 믿습니다. 후회함이 없는 하나님 뜻대로 하는 염려와 근심은 어떤 것일까요 바울 사도는 어떤 염려를 하였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1.교회를 위하여 염려했다고 말씀 합니다
고후11:28“이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바울 사도의 이러한 염려는 자신의 안정과 행복을 위한 염려가 아니었으며 주님을 사랑하고 성도들을 사랑하는 마음속에서 나오는 염려였던 것입니다 주님의 피로 사신교회 그러기에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주의 몸 된 교회를 사랑하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고후11:23-29에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하였으니 ---많은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며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굶고 춥고 헐벗었었노라 이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고 사도 바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교회를 염려하였다고 하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뜻입니다 성도의 염려는 반듯이 기도로 이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수고와 충성과 봉사하고 옥에 갇혀 수없이 고문을 당하여 죽을 고비를 많이 넘기고 많은 위험에서도 ,주리고 목마르고 춥고 헐벗음을 당하면서도. 이 얼마나 원통하고 분통이 터졌겠습니까. 그래도 이런 것은 아무것도 아니고 오히려 그에게 속에 짓눌리는 염려가 있는데 그것이 교회를 위하여 하는 염려라고 했습니다.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어떠한 삶을 살기를 바라시는지를 알고 순종해야 합니다.
부모님이 원하는 삶을 살고, 부모님의 뜻에 순종하면 그는 효자입니다. 임금의 명령에 순종하며 살면 충신이고, 선생님의 말씀을 잘 따르면 모범생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잘 믿어 보려면 염려도 많게 됩니다. 순종하고자 할 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순종할까 염려를 하고, 어떤 일을 결정하고자 할 때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하면서 염려를 하고, 회개하고자 할 때 자신이 지은 무수한 죄 때문에 염려하고 슬퍼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영육간의 축복을 받아 누리기 위해서 우리는 마음을 쓰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바울은 빌4:6에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은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하였습니다 만 해야 할 염려가 있는데 그것은 “교회를 위하여는 염려해야 된다, 염려 하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진실된 성도라면 자기의 집안 살림 못지않게 주님의 피로사신 몸된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것은 곧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위하여 근심하며 기도하고 봉사해야 합니다. 교회 부흥을 위하여 교회 성장을 위하여 어떻게 하면 아름다운교회가 될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는 교회가 될까 어떻게 하면 한 영혼이라도 구원 할까 어떻게 하면 아름다운성전을 건축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까 하는 염려 참으로 아름다운 염려인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는 주님과 교회를 결혼관계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남녀간의 사랑은 결혼으로 그 열매를 맺습니다. 결혼 할 수 없는 사랑은 불안전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을 진정 사랑한다면 우리도 주님과 결혼을 해야 합니다. 세례식이 바로 결혼식입니다. 결혼했으면 반듯이 가정을 이루어야 합니다. 가정을 이루지 못한 부부라면 어떤 이유가 있더라도 불행한 일입니다. 삯을 셋방이라도 내집이 있고 무러무럭 커가는 자녀들이 있으면 행복 합니다.
교회는 주님의 가정집입니다. 그러기에 성도는 열심히 전도하여 믿음의 형제자매들을 많이 생산해 내야 합니다.
좋은 성도에게는 4가지를 소유하고 있어야 합니다. 내 목자, 내 교회, 내 가정, 내 사명 전도가 바로 그것입니다. 비록 부족 한 것이 많을지라도 한 가정을 가지고 알뜰하게 살아가는 주부가 훌륭한 것처럼 우리교회가 완전하지는 못해도 우리 평강교회에 몸담아 충성을 다하면 그 신앙은 바르게 성장하고 하나님의 축복도 상급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으로 떨어져 나가는 사람들을 믿음의 자리로 들어서게 하는 곳입니다. 우리 평강 성도들은 우리 평강교회가 부흥되도록 염려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주일학교 교사들 구역장들 그리고 모든 성도들은 우리 교회가 시대적인 사명을 다 할수 있도록 염려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교회가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가지 아니하도록 염려하고 기도하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 바랍니다.
2. 사도의 염려는 골육 친척들을 위하여 염려 하였습니다(롬9:1-3)
롬9:1-3에 “내가 그리스도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으니 --성령 안에서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다”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령의 큰 감화 감동 안에서 형제와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큰 근심이 있었습니다. 이 근심은 곧 자기의 동족과 나라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육신적인 평안이나 행복을 위하여 하는 근심이 아니고 하나님을 떠나서 사는 불쌍한 영혼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원 하는 근심이었습니다. 우리도 바울과 같이 이민족을 위하여 골육과 친척들을 향하여 근심하며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예수 믿고 죄 사함을 받아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천국이 있고 지옥이 있다는 사실을 부명하게 믿는다면 그리고 죽음 후에는 믿는 자는 천국에 믿지 않은 자는 영원히 꺼지지 않은 지옥불속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확실히 믿는다면 하나님을 믿지 않은 부모를 위하여 남편을 위하여 자녀들을 위하여 근심하고 염려하여 얼마나 기도하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전도하고 있습니까. 눈에 보이는 질병에 걸리면 눈물을 흘리면서 안타까워하면서도 예수 믿지 않고 지옥을 향하여 달려가는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염려하며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성도들은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어 풍요롭게 하셨건만 부요함 때문에 오히려 부패하고 타락되어가는 이 민족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우상을 숭배하며 하나님께서 싫어하는 일을 행하는 이 백성을 용서해 달라고 우리는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정치 지도자들을 위하여 염려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조국의 평화스런 번영을 위하여 염려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애국선지자 예레미아는 당시의 슬픈 조국의 현실을 보고서 “슬프다 근심이여, 어떻게 위로를 얻을 수 있을까 나의 중심이 번뇌하도다 추수 때가 지나고 여름이 다 하였으나 우리는 구원을 얻지 못하였도다.” 탄식하였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한마디로 죄악 때문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에게 유산을 물려주지 못한 것 때문에 근심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바르게 신앙으로 살도록 가르칠 것인가에 대하여 염려하며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해야 합니다 히3:12
히3:12-19에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 말씀 합니다.
우리가 염려해야 할 것은 먹고 입고 살 것 때문에 하는 염려가 아닙니다 장래에 대한 염려가 아닙니다. 우리가 해야 할 염려는 우리 믿는 형제자매들 중에서 아니 내 자신이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 해야 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게 된 것이 내 인생 최대의 축복입니다.
이 축복의 대열에서 떨어질까 삼가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지는 것은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떨어져 있음”을 망각 할때 죽음은 순식간에 찾아옵니다. 생명의 근원에서 떨어져 나왔기 때문입니다. 물고기는 물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물을 떠나면 죽고 마는 것입니다 나무는 땅에다가 뿌리를 내리고 살아야 합니다. 땅에서 뽑혀지면 죽고 마는 것처럼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어야 합니다 믿음으로 주님과 연합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주님을 떠난 자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자들을 염려했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떠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잘 보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생명의 근원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가는 것은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을 읽어보면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생활 40년동안 하나님의 계속적인 기사와 이적을 체험하면서도 하나님을 시험하고 원망하고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가는 행동만 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성도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은혜를 듬뿍 받고 살아가면서도 마음이 강팍해 져서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감을 염려해야 합니다. 히3:15-16에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주님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할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팍케 하지 말라. 듣고 격노케 하던 자가 누구뇨” 하나님을  격노케하고 하나님의 노하심을 입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이 아니라 모세를 따라 애굽에서 나온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고전10:10-12에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저희에게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우리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 하였느니라 그런즉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말씀합니다.
넘어질까 조심하라.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의심하다가 떨어지고, 원망하다가 떨어지고, 교만하다가 떨어지고, 강팍하여 떨어져 나갑니다. 우리는 불순종의 사람이 되어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해야 합니다. 정녕 이 세상적인 염려는 아무 유익이 없읍니다. 그러나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갈까? 자신과 이웃의 영적인 상태를 걱정 염려하는 것은   진실로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해야 합니다. 아무쪼록 우리 일신성도들은 후회할 것이 없는 근심, 회개케 하는 근심을 하여 사람을 살리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근심하고 염려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근심하고 염려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 하나님께서 보시고 기뻐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입니까
이 시간 이후로 우리의 근심과 염려를 바꾸어 세상적인 것 때문에 염려하고 걱정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그리고 골육친척의 구원을 위하여 근심하며 우리 하나님께 기도 할 때에 반듯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여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모든 염려는 주님께 맡겨 버리고 이제부터 주님 안에 기뻐하며 감사 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고객센터 개인정보취급방침 서비스이용약관 기독정보넷공식트위터 Copyright © cjob.co.kr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