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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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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                                                                  창세기 26:1-29
  본문에 나오는 이삭은 아브라함의 아들입니다. 그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였습니다. 이삭은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었습니다.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노복도 심히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지켜보던 블레셋 왕 아비멜렉의 반응이 흥미롭습니다. 
26:14-17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그 아비 아브라함 때에 그 아비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가라.”
  이와 같이 블레셋 사람들은 이삭을 시기했습니다. 마침내 아비멜렉은 이삭에게 “우리를 떠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훗날 아비멜렉은 자기가 쫓아낸 이삭을 제 발로 찾아옵니다. 
26:26-29 “아비멜렉이 그 친구 아훗삿과 군대장관 비골로 더불어 그랄에서부터 이삭에게로 온지라. 이삭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미워하여 나로 너희를 떠나가게 하였거늘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의 사이에 맹세를 세워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네게 행하며 너로 평안히 가게 하였음이니라.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
  이와 같이 이삭이 받은 복을 시기하고 대적했던 블레셋 왕이 이제는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라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시기하고 대적했으나 마침내 인정하고 굴복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큰믿음교회가 지금 이삭이 밟았던 과정을 밟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난 1년 어간에 큰믿음교회에 숫자, 재정, 사역 모든 면에서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큰 복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큰믿음교회를 시기하고 대적합니다. 최근 천국은 확실히 있다 카페에 큰믿음교회를 교묘하게 음해하는 글들이 실린 것이 그 한 증거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결국 우리의 대적들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아비멜렉처럼 인정하고 굴복하게 될 것입니다.    한편, 저는 교회뿐 아니라 우리들 각 개인도 이렇게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모두 우리의 이웃이나 대적들이 시기할 정도로 복을 받아야 합니다. 나아가서 우리는 대적들이 인정하고 굴복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까지 복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들이 그런 복을 받는 것이 가능할까요? 예 가능합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대적을 시기 나게 하고 결국에는 인정하고 굴복할 정도로 큰 복을 받을 수 있는 비결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은 여러분 모두가 그런 복 받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그 비결에 대해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1. 이삭은 아브라함의 자손이었기 때문에 복을 받았습니다.
26:1-5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 이 땅에 유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비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을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니라 하시니라.”
  이삭이 복을 받은 것은 그가 하나님께 순종한 아브라함의 자손이었기 때문입니다. 훗날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경계하셨습니다.
  출 20:5-6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그때는 아직 하나님께서 이 말을 하지 않으신 때였지만 그러나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한 분입니다. 그래서 이삭에게 복이 임한 것입니다. 이삭은 하나님께 순종한 아브라함의 아들이었습니다. 이것이 그가 복을 받은 가장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어떤 분들은 이 말을 듣고 낙담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우상을 숭배하는 분이셨고,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했습니다. 저는 복을 받기는 글렀군요.”
  그러나 여러분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부모가 누구이든 여러분 모두 이삭처럼 아브라함의 아들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한국인인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믿음을 통해서입니다.
  갈 3:7-9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지어다.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아브라함의 영적 자손이 됩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인 우리에게도 미치게 됩니다.   그러면 예수를 믿으면 왜 아브라함이 복이 우리에게 미치게 될까요? 그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셔서 우리의 모든 저주를 청산하셨기 때문입니다.
  갈 3:13-14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제가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전 세계를 볼 때 하나님을 믿지 않는 나라들은 대개 가난하고 못 살고 복음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잘 믿는 나라들은 경제적으로 부요하고 선진국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실입니다. 과거 박정희 대통령 시절 2인자였던 김종필 씨가 정치 일선에서 잠깐 물러나서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여 시간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그때 그는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우상숭배를 하는 나라들이 찢어지게 가난하고 못사는 것을 보았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잘 섬기는 나라들은 번성하고 잘 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귀국하자마자 즉시 기독교로 종교를 바꾸어버린 일이 있습니다.   또, 저는 조용기 목사님의 설교에서 조 목사님이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에 가면 너무나도 가난하고 어디나 거지 떼들이 들끓습니다. 그런데 유독 한 도시는 거지가 없고 경제적으로 부유합니다. 그래서 왜 그런가 알아보았더니 그 도시는 사도 도마에 의해 복음을 일찍 받아들여서 복음화 율이 가장 높은 곳이었다고 합니다. 어떻습니까? 흑과 백이 대비되듯이 우상을 숭배할 때 저주를 받고 하나님을 섬길 때에 복을 받는다는 것이 분명하게 보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실 그렇게 먼데까지 갈 필요도 없습니다. 가까운 예로 북한과 남한을 비교해보십시오. 남한에는 곳곳에 교회들이 있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깁니다. 그러나 북한은 공산주의 국가로 교회를 허물고 김일성 부자를 신격화해서 섬겨왔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비행기로 한 시간도 한 되는 지근거리인데도 마치 천국과 지옥처럼 그 경제적인 차이가 극명합니다. 그리고 북한 뿐 아니라 무신론을 표방하는 공산주의 국가치고 전 세계적으로 잘 사는 나라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자명하지 않습니까? 복을 받으려면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삭처럼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은 이렇게 반문할 것입니다. “왜 우리 가정은 예수를 믿는데도 복을 받지 못하고 이렇게 지지리도 못삽니까?”   여러분 오해하지 말고 들으십시오. 지금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이 의문에 대한 유일한 대답은 아닙니다.   저는 그 대표적인 이유가 진짜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에서 세례 요한은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세례 베푸는 데 오는 것을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 3:7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이처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닌 사람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은 예수를 믿지만 회개를 하지 않은 자들로 믿기는 믿지만 순종이 없습니다. 즉 아브라함과 그 행사가 다릅니다. 이런 사람들을 우리는 요한복음 8장에서 더 자세하게 살펴볼 수 있습니다. 
  요 8:31-32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여기서 예수님은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당연히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요 8:33 “저희가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
  그러자 예수님은 바로 그들의 습관적인 죄를 지적하셨습니다.
  요 8:34-3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그러시면서 예수님은 결국 그들의 행위가 아브라함의 행위와 다른 것을 지적하시면서 그들은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 8:37-40 “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아노라. 그러나 내 말이 너희 속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 도다.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말하고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행하느니라.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의 행사를 할 것이어늘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 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다고 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닙니다. 자식이 부모를 닮는 것처럼 아브라함처럼 행해야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복을 받을 수 있는 비결입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면 복을 받는 이유가 뭡니까? 하나님은 이삭에게 복을 약속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26:5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니라 하시니라.”
  이처럼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신 28:1-14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네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네 대적들이 일어나 너를 치려하면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패하게 하시리니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러 들어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 여호와께서 명하사 네 창고와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이며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면 여호와께서 네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세워 자기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니 너를 여호와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세계 만민이 보고 너를 두려워하리라. 여호와께서 네게 주리라고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사 네 몸의 소생과 육축의 새끼와 토지의 소산으로 많게 하시며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열으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 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오직 너는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며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그 말씀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따라 섬기지 아니하면 이와 같으리라.”
  복을 받을 수 있는 쉽고 빠른 길은 없습니다. 먼저, 우리는 죄를 끊어버리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먼저 이것이 되고 그 다음에 다른 것들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복을 받는데 있어서 기초가 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정말로 복을 받기 원한다면 죄를 회개하고 행함이 있는 산 믿음을 가지십시오. 그래야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2. 이삭은 주의 인도를 받았기 때문에 복을 받았습니다.
26:1-3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 이 땅에 유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이삭이 거하던 땅에 또 다시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살기 좋은 땅 애굽으로 이민을 계획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나타나서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계산상으로는 이 말이 맞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모든 계산을 버리고 주의 음성에 순종했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큰 복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복을 받는 진정한 비결이 이것입니다. 주의 음성을 듣고 그 인도를 따르는 것입니다.   사실 저는 이 설교를 이 두 번째 대지 때문에 합니다. 그만큼 이 설교에서 지금 말씀드리고 있는 이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인도를 따라야 복을 받고 형통하고 번창하게 된다” 이 진리를 하나님은 저에게 최근 두 번 거듭 확증해 주셨습니다.      (1) 하나님의 말씀과 저 자신의 경험을 통한 내적 확신을 주셨습니다.   저는 지금 43살입니다. 저는 순탄하거나 형통한 삶을 살아오지 못했습니다. 제 인생은 결코 성공적인 인생이 아니었으며 늘 남에게 뒤쳐졌습니다. 꿈만 컸지 무슨 일을 하든 제대로 되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지난해와 올해에 걸쳐 생애 처음으로 연속 3번의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하나는 강한용사훈련학교를 시작한 일이고, 다른 하나는 “지옥에 가는 크리스천들”과 몇 가지 책을 출판한 일이고, 마지막 하나는 서울에 큰믿음교회를 개척한 일입니다. 그리고 이 세 가지는 저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러면 왜 갑자기 나에게 이런 성공들이 찾아온 것일까요? 저는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러자 가장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생각났습니다.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이 세 가지는 모두 저의 인생에 제가 가장 주저하고 망설였던 일들입니다. 저는 저의 욕심으로 이 일들을 행하지 않고 주님의 뜻을 알기 원했고 주님의 뜻에 굴복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주님의 인도하심을 구했습니다.   그래서 세 경우 다 제가 주님의 음성을 정확하게 듣고 인도를 받으려고 애를 썼고 어떤 형태로든 주의 음성을 듣고 확신을 얻은 후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그 일에 뛰어들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실패로 얼룩진 저의 인생에 갑자기 3번의 연속적인 성공이 들이닥친 이유입니다.    잠 3:5-6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이 말씀에 나오는 것처럼 우리는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여호와를 인정하고 의지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의 길을 지도해주십니다. 그때 우리는 믿음으로 주의 지도를 따라야 합니다. 제 경험에 의하면 이것이 곧 성공과 형통의 비결입니다. 이것은 지식이 아닙니다. 저의 경험이요 간증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주의 음성을 듣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저는 저를 향하신 주의 뜻이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알기를 원하며 주님의 인도함을 받고 따르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저는 주의 인도하심을 따라 순종하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저의 미래가 바로 여기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2) 주님은 케네스 해긴 목사님의 신간을 통하여 다시 제게 확증을 주셨습니다.   제가 주의 인도를 따르는 것의 중요성을 성도님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 설교를 구상하고 있는데, 때맞춰 VIP고객이라 하여 믿음의 말씀사에서 케네스 해긴 목사님의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과 추구”라는 책을 선물로 보내왔습니다. 그 책을 읽으면서 저는 더욱 깊이 주를 의지하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삶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1987년 7월 16일 새벽 3시부터 6시까지 3시간 동안, 케네스 해긴 목사님은 주님의 특별한 방문을 받았습니다. 주님은 그에게 “계획과 목적과 추구”에 대한 환상과 계시를 주셨습니다. 그 특별한 방문에 대해 그의 책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1987년 나를 방문하신 주님은 오늘날 교회를 향한 그분의 계획을 말씀하셨고 왜 그것을 지금까지는 이루시지 못했는지도 말씀해주셨습니다. 진정 주님의 몸 된 교회가 협력하여 주님의 계획과 목적에 맞추어 그 계획을 추구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원하시는 일을 이루실 수 있습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는 지난 2, 3년 동안 새로운 시작의 낮은 물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겨우 새로운 시작의 문턱에 와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교회는 오늘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들 중 몇 가지 일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이제 겨우 나가는 중입니다.   이번 방문에서 주님이 내게 보여주신 중요한 메시지는 주님의 몸 된 교회가 오늘날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크신 영적인 역사의 체험을 위해 준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추구해 나간다면 지금까지는 전혀 볼 수 없었던, 그리고 경험해 보지 못한 일들을 보고 경험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아주 미미하게 부분적으로 일어났던 하나님의 영적인 축복의 역사들이 이제는 주님의 몸 된 교회 안에서 언제고 일어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고,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영광과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날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오, 친구여! 정말 하나님은 역사하실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이런 하나님의 영적 축복이 아무런 준비 없이 우리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잘 '추구'해 나갈 때 그것이 우리의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은 분명히 내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분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것을 배우지 못하면 이러한 영적 축복을 영원히 잃어버릴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한 부분을 더 소개해 드리기를 원합니다.
  “내가 이미 언급했던 바와 같이 주님의 방문이 시작될 때 나는 계속하여 ‘계획과 목적 그리고 추구’ 라는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단어인 추구를 내가 영어로 말했을 때 나는 성령에 크게 감동 되면서 우리 사람의 계획이 어떤 것인가 분별해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계획이 우리가 보기에는 아주 성경적이고 훌륭한 계획같이 보이기도 하지만 결코 그것은 우리들이 추구해야 할 하나님의 계획은 아니었습니다.   이와 함께 하나님의 계획도 볼 수 있었습니다. 주님은 '나는 내가 가진 모든 것으로 너희를 축복하고 싶지만 너희 가운데 더 확실한 하나님의 운영하심이 없고 성령의 깊은 흐름이 없고, 성령의 더 큰 역사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너희들이 더 많은 시간을 들여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의 계획을 더욱 가까이 할수록 더 큰 나의 능력이 나타나고 보여질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책에는 또 이런 간증이 들어있습니다. 한번은 해긴 목사님이 3주간 어느 교회에서 집회를 인도했습니다. 그 교회의 담임 목사님은 많은 계획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탐욕스럽고 인간적인 계획들이었습니다. 안타까움을 느낀 해긴 목사님이 주님께 이 목사님에 대하여 여쭈었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그 목사님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목사는 내게 한 번도 그의 삶이나 사역이나 그의 교회에 대한 계획을 물어 본적이 없다. 그는 자기가 계획을 다 세우고 내게 축복해주기만을 구한다. 나도 저 목사를 축복해주길 원하지만 그의 인간적인 계획과 재정적인 모든 요구를 다 들어줄 수는 없다. 그가 하고 있는 많은 일들이 나하고는 전혀 무관한 일들이다. 그는 늘 자기의 계획에 나를 끌어들이곤 한다. 그가 여기 저기 벌려놓은 계획에 내가 다 축복할 수는 없다. 나도 하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나의 계획과 사람들의 인간적인 계획을 둘 다 승인할 수는 없다. 그는 목적이 잘못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슨 일을 하기 전에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하며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정말 이 일이 주님이 원하시는 것인지 아닌지를 알아야만 합니다. 그래야 그 일이 형통하고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한편,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도 실수하는 것을 봅니다. 마찬가지로 해긴 목사님 자신도 하나님의 목적을 놓쳐버린 경험이 있습니다. 해긴 목사님이 한 교회의 담임목사로 목회를 할 때였습니다. 교회는 부흥하였고 가장 많은 수가 모였고 재정적으로 충분했습니다. 모든 것이 좋아보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영으로 무언가 잘못된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여쭈었을 때 주님께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문제는 내가 너를 목회자로 부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목회가 너의 소명은 아니다.”
  당시는 목회자 아니면 전도자뿐이었습니다. 그래서 해긴 목사님은 이 음성을 들은 후 성급하게 자신이 전도자의 일을 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나 전도자로 나선지 1년 만에 그는 비참한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그는 교사의 기름부음의 겉옷이 자신에게 내려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교사로 부름을 받았으며(해긴 목사님은 정말 가장 뛰어난 교사 중의 한 분입니다),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가르치며 선지자의 자리에 서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집회에서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비로소 그의 사역이 불같이 일어나고 번성했습니다. 이런 자신의 경험의 의거하여 해긴 목사님은 그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하든지 당신의 계획과 목적이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에 합치게 되면 당신은 분명히 성공할 수 있다...   당신은 무릎을 꿇고 자신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지 알아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계획안에서만 그분의 축복과 승인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 새벽의 일입니다. 새벽 기도회 때 성경을 읽고 말씀을 나누는데 하나님께서 저에게 중요한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울산 큰믿음교회와 특히 서울 큰믿음교회 성도들과 나누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우리 교회는 주보에 소개되어 있는 대로 사도적인 교회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제 말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전통적인 교회에서는 교회에서 어떤 중요한 일을 결정해야 할 때 장로님이나 안수집사나 권사님 등 중직자들을 소집하여 회의를 하고 결정합니다. 그러나 저는 중요한 결정 사항이 있을 때 예언사역 팀을 소집합니다.   사실 우리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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