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십자가 (마10:34-39)
본문
강종수 목사
80년대 직전 후로 한국교회가 긍정적 사고방식이라는 새로운 신앙 관념
을 가지고 성경을 해석하게 되었고, 여전히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생명
길은 좁은 길, 십자가의 도, 이런 주제의 중심적 설교가 없어지고,웰빙으
로 소위 축복신앙, 기복신앙이 만연해져버렸습니다.
사람의 약점 중에 편안하기만 하면 복으로 아는 육체적인 습관이 있고,하
나님의 긴요하신 설계 가운데 고난을 주시거나 훈련하시는 과정에 대해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지만(히12:6) 그런 구절이 눈앞에서 잘 띄지
않습니다.
본문은 주께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주님의 제자로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과 그 도전될 여러 경우들을 예고하시면서 지켜져야 할 부분을 가르치
셨습니다. 넓은 의미에서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자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제자들입니다.
본 장은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주시고 끝 부분에서 아주 무거운 십자가
의 도를 교훈하셨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는 명령입니다.
자기 십자가란 어떤 것입니까?
1. 화평 대신 검을 주러 오신 예수
34-35,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
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불화하게 한다는 말은(화목, 디카죠, dicavzw) 절단하다, 조각을 내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식구끼리 원수가 된다고 까지 말씀하셨습니다.36,'사람
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오실 때,먼저 구약 성경에서 평화의 왕으로 예
고 되었습니다.
사 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
는데 ....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때문에 성경은 그리스도를 모시고 사는 자들은 화목을 이루며 살라고 교
훈하고 있습니다.
롬 12: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고후 5:19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
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
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한데, 먼저 주께서 탄생하실 때부터 평화가 이루어지기 전에 환난을 뜻하
는 검이 먼저 생깁니다.주님이 성령의 잉태로 인한 태중에서의 환난과 더
불어 나실 때,헤롯이 죽이려 하는 음모로 인하여(마2:) 고향을 떠나 애굽
으로 피신하시고 나중에 나사렛이란 동네서 사시니 나사렛 예수라는 별칭
으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중요한 문제는 우리가 화목에 대한 이해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점입니
다. 예수께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화목 제물이 되심같이 가능한 세상을
구원하는 일에 우리가 헌신하고 봉사하므로 그들을 포용해야 하지만 하나
님의 뜻을 무례하게 범하면서 통합 일치를 이룰 수야 없다는 말입니다.
오늘날 WCC(세계기독교연합회)의 다원화적 기독교 사상은 정통주의 신앙
계열까지 파고들어서 요즘은 이렇게 본문에서 주시는 주님의 교훈이 있음
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절대적 가치인 진리가 어차피 합리적인 세상에
부딪히게 마련인데도 아픔을 감수하지 않으려고 진리를 희석시키는 것을
오히려 잘 하는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진리는 절대적입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가령 다른 신을 인정치 않는다는
말입니다. 오직 예수님만 구원자라는 절대치를 진리라 합니다(요14:6).그
리고 진리는 일방적입니다.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다양하다는 식이 진리가
아니고 꼭 한 길 밖에 없다는데 문제를 일으킵니다.그리고 진리는 시대의
가치에 불변합니다. 요동치 않는 것이 유연하지 않는 것이 진리이어서 사
람의 생각에 부딪히는 것입니다.
2. 혈육보다 주를 사랑하는 것이 십자가
37,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
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여기 사랑은 물론 인간의 혈육적 사랑,필레오(filevw)라는 단어로 기록되
었습니다. 합당하다는 말의 악시오스(a[xio")라는 말은 알맞게 일치한다
는 말입니다. 혈육관계로 주님을 등한시하는 신자는 제자로서 부적절하다
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구약에도 마찬가지로 사람의 사정으로 봐서 금방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많습니다.인륜적으로 납득이 안가는 부분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
을 발견해야 합니다(고전2:).
가령 웃사가 넘어지려는 법궤를 붙들다가 즉사를 했습니다. 그것은 그가
법궤에 손을 델 수 있는 자손이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대상 13:10 '웃사
가 손을 펴서 궤를 붙듦을 인하여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치시매 웃사가 거
기 하나님 앞에서 죽으니라').
이해를 하기 위해서는 이런 경우와 비슷합니다. 연구실에 전문성이 없는
사람이 와서 책장을 정리해버린다면 아주 곤란하게 됩니다.어지럽게 놓인
것같은데 함부로 손대면 안 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그런데 책을 색깔
별로 꽂아버린다든가 하면 연구실의 주인은 책장에서 혼란을 느낄 것입니
다.
하나님은 각각에게 맡기신 사명이 있고 허락과 금지사항들이 있습니다.실
로, 태초에 아담에게 시험하신 금령의 실과, 동산 중앙에 있는 실과를 먹
었다고 해서 도의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무슨 잘못도 아닌데,하나님의 법이
었으므로 범한 결과 죄가 되어 인류에게 사망과 징벌이 임한 것입니다.
신약에도, 주님이 십자가로 돌아가실 것에 대해 먼저 잡히실 것을 예고하
시니까, 베드로가 주님의 충심으로 죽으심을 만류했습니다. 그 때 우리가
보건데 제자가 스승의 죽음을 몸으로도 막고자 할 것이며 당연히 스승을
아끼는 말을 했다고 봅니다. 그러나 즉시로 "사단아 물러가라!"고 호통을
치시며 베드로에 사단이라고 직언을 하시며 그에게 역사하는 생각이 사단
의 생각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말씀하시며,
마 16: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
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
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성경은 십계명에서 위로는 하나님을 아래로는 먼저 부모를 공경하라는 명
령의 계명을 주시고 땅에서 첫째 되는 계명이라 하시며 축복 받는 비결로
명하셨습니다(엡6:1-3).그런데도 부모보다 주님을 더 사모할 것을 본문에
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모든 예수 믿는 자들에게 하신 말씀
으로 받아 들여야 합니다.
이것이 어렵습니다. 인정에 사로잡혀서 유한한 인간의 정에 못 이겨 무한
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놓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3. 목숨을 드리는 십자가
마 10:38-39,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여기 목숨은 신령한 목숨이 아니고 우리가 가진 육신의 목숨 푸쉬케(yuch
)입니다. 이 세상의 목숨을 버리고 영원한 가치의 새 생명인 영생의 목숨
을 바라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생명관입니다.제자가 된 성도가 가진 생명
관입니다.
듣기에는 세상을 평범하게 잘 살아가고자 하는 자들로서는 매우 극단적인
말씀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처음부터 영원한 생명을 위한
예수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목숨 걸고 믿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극단적인 기독교의 본
래 성격을 무시하거나 잘 듣지 않으려 합니다. 세상을 문화적으로 잘 살
아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집중합니다.
그래서 좋으신 하나님을 부르짖고 야베스의 기도에 대해 그렇게 관심이
많았고,대개 큰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 중에는 성경이 말하는 참 진리보다
사람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삶을 사는 방식과 고난보다 편안하게 사
는 길을 말 해주기 때문에 사람들이 선호를 합니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려면 오늘 주시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는 명
령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이미 특별 케이스로 살아가야 할 말
씀으로 충만합니다.이런 내용의 말씀은 단순히 각오로 감당하기도 어렵습
니다.
마지막으로 하신 목숨을 버리기까지 일사각오의 순교적 정신이어야 만이
앞서 주신 말씀의 십자가적 생활도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환
난이 정치적으로 없다할찌라도 오늘의 시대는 성도가 참되게 살아가기에
는 이처럼 십자가를 지고 가야만 하는 시대입니다.
우리에게 힘주셔서 주님이 바라시는 이상적 제자도를 따라 승리하여서,40
절 이하에 나오는 상급을 받게 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