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열매를 맺으라
본문
본문 : 누가복음 3장 7절 - 14절 마경훈 목사
본문 : 누가복음 3장 7절 - 14절
7 요한이 세례 받으러 나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9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10 무리가 물어 가로되 그러하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11 대답하여 가로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
12 세리들도 세례를 받고자 하여 와서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13 가로되 정한 세 외에는 늑징치 말라 하고
14 군병들도 물어 가로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가로되 사람에게 강포하지 말며 무소하지 말고 받는 요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
본문과 관련된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1779년 존 뉴톤이라는 사람은 노예선 선장이었습니다. 노예장사를 해서 큰돈을 벌었습니다. 뉴톤 주변에는 언제나 술과 여자가 따라 다녔습니다. 한 번은 노예장사 차 런던에 갔습니다. 노예 선을 런던 앞 바다에 정박하고 부하들을 거느리고 런던 시내를 구경했습니다. 지금처럼 자동차로 시내 관광을 하던 때가 아니고 걸어서 다닐 때였으니 다리가 아팠습니다. 쉴만한 곳을 찾아도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마침 길가에 작은 교회가 하나 있었습니다. 마침 그 날은 주일이었습니다. 뉴톤은 예배당으로 들어갔습니다. 예배하러 들어간 것이 아니라 다리가 아파서 좀 앉아 쉬려고 들어갔습니다. 한 쪽 구석에 앉아서 잠이나 좀 잘까 하고 들어왔는데 목사님의 열정적인 설교에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목사님의 설교는 계속됩니다. “회개하라.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 노예 선장 뉴톤의 얼굴이 차차 변하면서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도도하던 그의 고개는 깊숙이 숙여지고, 드디어 뉴톤은 예배당 바닥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탕자가 아버지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비로소 잃었던 생명을 찾았고 광명을 얻었습니다. 이런 은혜를 체험한 뉴톤이 지은 찬송이 찬송가 405장입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O았고 광명을 얻었네”
오늘은 추석입니다. 추석은 예축적 의례이면서 수확 경축적 의례입니다. 보통 우리나라의 불신앙의 가정에서는 예축적 의례로 조상의 은덕에 감사하며 예를 지내기도 합니다. 수확 경축적 의례로서 한해 농사를 마무리 단계에서 갖는 새로운 소출로 인한 축제이기도합니다. 오늘 우리는 추석을 맞이하여 신앙인들이 맺어야 할 좋은 열매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성경은 사람을 나무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나무 가운데서도 특히 열매 맺는 과실수로 비유합니다. 과실수는 열매를 맺어야 하듯이 신자는 신앙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의미를 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열매를 몇 가지로 나눠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성품의 열매를 말합니다. 주님을 닮아야 하는 신자는 변화된 인격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둘째는 전도의 열매 즉 영혼을 추수하는 것을 말합니다.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는 일은 우리 모두의 사명입니다. 셋째는 달란트에 대한 열매입니다. 자신의 달란트를 잘 사용해서 남길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넷째는 사명의 열매가 있습니다. 각 사람에게는 자신만의 사명이 있습니다. 그 사명을 잘 감당해서 아름다운 열매로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고 이 세상에는 유익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과수원에 있는 과실수가 열매가 없다면 땅만 버리는 일이기 때문에 잘라내야 합니다. 눅13장에 보면 과수원 주인과 과수원지기의 대화가 나옵니다.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었는데 3년이 지나도 열매가 없습니다. 과수원주인이 과수원지기에게 무화과나무를 찍어버리라고 말합니다. 3년을 와서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땅만 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수원지기가 주인에게 1년의 여유를 갖자고 말합니다. 금년에 그대로 놓고 내년에 봐서 그 때도 열매가 없으면 찍어버리자는 것입니다.
막11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베다니에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다가 잎이 풍성한 한 무화과나무를 보셨습니다. 그 나무에 잎사귀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보니 그 무화과나무가 뿌리로부터 말라있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는 믿음의 능력, 말씀의 능력, 기도의 능력, 말의 능력을 가르쳐주기 원하셨지만 열매 없는 신앙은 심판을 받는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오늘 다루는 열매는 성품의 열매 즉 신앙인들이 맺어야 하는 인격의 열매를 다루려고 합니다. 신앙생활은 주님을 닮는 것입니다. 주님의 인격을 닮고 주님의 능력을 닮고 주님의 사역을 닮아야 합니다. 이 중에 가장 기초가 되며 중요한 것은 인격을 닮는 것입니다.
본문은 세례요한이 사역 중에 설교한 내용 중 일부입니다.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고 심판의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다는 말은 심판이 임박했다는 말입니다. 찍혀 불에 던지운다는 말은 심판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심판이 임박했고 결국 심판을 받게 되는데 그럼 심판의 대상은 누구입니까? 심판의 대상은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입니다.
좋은 열매가 있고 나쁜 열매가 있습니다. 그럼 좋은 열매는 무엇이고 나쁜 열매를 무엇입니까? 본문을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8절에 보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10절에 보면 무리들이 요한에게 “그러하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라고 질문합니다. 11-14절에 요한의 답변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무엇인지 가르쳐줍니다. 첫째는 나누는 삶입니다. 옷 두 벌 있는 자들은 없는 자들에게 나눠주고, 먹을 것이 있는 자들도 없는 자들에게 나눠주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힘으로 다른 사람을 괴롭혀서는 안 됩니다. 세리들은 정한 세 외에 더 받아서는 안 됩니다. 군병들은 사람들의 것을 강제로 빼앗지 말고 이유 없이 고소하지 말아야 합니다. 셋째는 족한 줄 아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군병들에게 받는 봉급에 만족하라고 말합니다. 이 세 가지를 합쳐보면 회개에 합당한 열매란 말씀대로 사는 삶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은 좋은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아주 오래전 얘기입니다. 한 50년 전쯤 됩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이 영국 런던에서 부흥회를 인도하는데 얼마나 은혜스러웠던지 연일 만 명 이상 모였고, 집회 마지막 저녁에는 큰 스타디움에 10만 명 이상이 운집했답니다. 어느 목사님 부인도 그 마지막 집회에 참석해서 뒷자리에 앉았습니다. 조금 있으니 어떤 남자가 그 부인 옆자리에 앉았습니다. 힐긋 쳐다보니 도무지 믿는 냄새가 나지 않더랍니다. 조금 있으니까 또 한 사람이 그 남자 옆에 앉는데 약간 술 냄새도 났습니다. 두 남자는 서로 모르는 사람인 것 같은데 금방 친해져 가지고 설교 시간에 잡담을 합니다. “저 목사 얘긴 전부 거짓말이야”. “그럼, 그럼, 헌금 뜯어내려고 저래”. 목사님 부인은 대단히 언짢았습니다. 믿으러 온 사람들이 아니라 비방하러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날 설교가 한 두 시간 동안 계속됐습니다. 설교시간 내내 불평하고 쑥덕거리던 두 사람의 말이 없어졌습니다. 잠들었나 하고 쳐다봤더니 두 눈을 말똥말똥 뜨고서 듣고 있습니다. 빌리 그레함 목사가 설교를 마치면서 “누구든지 이제부터 예수를 믿을 사람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이 앞으로 나오라”고 했습니다. 목사 부인 옆에 앉았던 사람 중 한 사람이 벌떡 일어나면서 옆 사람에게 말합니다. “나는 지금 저 앞으로 나가려고 하는데 당신은 마음에 없소?” 부인 바로 옆에 앉은 다른 남자가 좀 우물 주물 하더니 “예! 나도 나가지요” 하면서 일어나 자기 양복 주머니에서 돈지갑을 꺼내 목사 부인에게 주면서 “부인, 이 지갑을 받으시죠”. “웬 지갑이죠?”, “부인 돈지갑을 방금 훔쳤는데 이제 저 강단 앞으로 나가면서 돈 지갑을 주인인 부인에게 도로 돌려드립니다”라고 하더랍니다. 그 사람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 즉 좋은 열매를 맺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나쁜 열매를 맺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안일한 신앙에 빠진 사람들입니다. 안일한 신앙에 빠진 사람들은 나쁜 열매를 맺습니다. 그 때에 세례요한에게 나오는 자들은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유대인으로 태어난 것을 큰 특권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과 어떤 관계에 있느냐 보다 유대인이라는 특권의식이 더 중요했습니다. 그들은 안일한 신앙에 빠져있었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그들에게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고 경고했던 것입니다.
지금도 안일한 신앙에 빠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신앙은 관계인데 하나님과의 관계는 소홀히 한 채 교회에 나오니 심판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직분을 받았으니 심판이 없을 것으로 착각합니다. 헌금을 하니 심판이 없을 것이고, 봉사를 하니 심판이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주시는 경고의 메시지를 들어야 합니다. 주님은 사도 요한을 통하여 에베소 교회에 경고합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2:5)
그럼 좋은 열매를 맺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해야 좋은 열매를 맺습니까?
1. 좋은 나무가 되어야 합니다.
밤나무에서는 밤이 열리고 사과나무에서는 사과가 열립니다. 밤나무에서 사과가 열릴 수 없고 사과나무에서 밤이 열릴 수 없습니다. 마7:18에 보면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고 말씀합니다.
문제는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으려면 좋은 나무로 변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능할까요? 가능합니다. 로마서 11장 17절에 보면 돌감람나무의 가지가 꺾여져서 참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아서 참감람나무의 진액을 공급받는 것에 대해서 말합니다. 그렇게 되면 참감람나무의 진액을 공급받은 돌감람나무 가지가 돌감람나무의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라 참감람나무 열매를 맺게 됩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돌감람나무의 가지였습니다. 돌감람나무의 진액을 공급 받으며 돌감람나무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 순간 돌감람나무에서 잘려서 참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았습니다. 참감람나무인 예수 그리스도에게 접붙임을 받은 순간부터 참감람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진액이 우리 속에 공급됩니다. 그분의 진액이 공급되니 믿는 사람들은 좋은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과거에 전과자였던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변해서 지금은 좋은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빛을 마셔라>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의 내용으로 영화도 나왔습니다. 소년원에서, 악흑가에서, 교도소에서 쓰레기 같은 인생을 살던 김덕팔이라는 사람이 주님을 만나고 변화되어 김유정 목사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는 전에는 돌감람나무였는데 이제는 참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아 참감람나무의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김유정 목사님처럼 극적인 인생을 살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범한 인생을 살아갑니다. 평범한 인생을 산다고, 악흑가에서 살지 않았다고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 없이 사는 인생은 모두가 돌감람나무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열매를 맺으려면 참감람나무이신 주님에게 접붙임을 받아야 합니다.
2.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좋은 나무가 되어도 나무의 진액이 말라버렸다면 좋은 열매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진액이 충만하면 좋은 열매가 풍성합니다. 나무의 진액의 역할을 하시는 분이 보혜사 성령님이십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지 못하면 성령의 열매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성령의 열매가 풍성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에 보면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성령께서 충만하게 역사하시면 성령의 열매를 맺는데,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는 것입니다. 금지 할 수 없다는 말은 막을 수 없다는 말인데, 성령의 열매는 막는 다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노력한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성령으로 충만하기만 하면 저절로 되어집니다. 성장 호르몬이 충분히 분비되면 키는 자동으로 자라듯이 성령으로 충만하면 성령의 열매는 자동으로 열리는 것입니다.
에스겔 36:27에서는 성령으로 충만할 때 말씀대로 사는 생활 즉 열매가 풍성한 생활이 가능하다고 가르쳐줍니다.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모든 것이 갖춰졌어도 성령의 충만이 없으면 신앙생활의 열매는 없습니다. 음향시스템을 놓고 생각해 봅시다. 앰프도 스피커도 그리고 마이크와 마이크 줄도 다 준비되어 있습니다. 어느 것 하나 이상 없이 좋은 제품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전기입니다. 전기가 없다면 아무리 좋은 제품의 음향시스템을 갖췄어도 소리가 증폭되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분을 근심시켜서는 안 됩니다. 그분이 충만히 역사하시도록 범사에 그분을 인정해드리고 그분을 기쁘시게 합시다.
3. 온전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집이 없다, 차가 없다, 옷이 없다, 먹을 것이 없다는 등 여러 가지를 없다고 하는데 한 마디로 돈이 없다는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기쁨이 없다, 감사가 없다, 구원의 확신이 없다, 영원한 생명에 대한 소망이 없다는 등 여러 가지로 없는 것을 말하지만 이것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믿음이 없다는 말입니다. 분명하고 확실한 믿음이 있다면 기쁨도, 감사도, 구원의 확신도, 영원한 생명에 대한 소망도 다 가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없다면 다 없는 것이요 믿음이 있다면 다 있는 것입니다.
온전한 믿음은 행함이 따라옵니다. 사람의 몸이 움직이면 그림자가 따라서 움직이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온전한 믿음이라고 말하는데 행함이 없다면 그 믿음은 가짜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2:26에서는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온전한 믿음이 있으면 신앙의 열매도 있는 것입니다.
야고보 장로는 귀신의 예를 들어서 행함 없는 믿음이 허탄한 것임을 말합니다. 귀신들은 하나님이 한 분이신 것을 믿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습니다. 또 야고보 장로는 아브라함의 예를 통해서 행함 있는 믿음이 온전한 믿음임을 말합니다.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믿음이 인정받은 것입니다. 그가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었기에 이삭을 제단에 드렸던 것입니다. 그가 믿지 못했다면 드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행함과 함께 일했습니다. 행함으로 그의 믿음이 온전하게 된 것입니다.
자신의 신앙을 점검합니다. 내 신앙은 행함에 집중되어 있는가 아니면 믿음에 집중되어 있는가? 행함에 집중된 신앙은 처음에는 무엇인가를 행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열매는 약해지고 육체는 지치게 됩니다. 결국 자신이 말씀대로 행하지 못한 것 때문에 절망하고 믿음에서 멀어질 수 있습니다. 믿음에 집중하여 신앙생활을 하면 처음에는 약하여 넘어지고 시험에도 들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믿음은 자랍니다. 믿음이 자라면 전에는 행할 수 없었던 일들을 행하게 됩니다. 믿음이 강해진 만큼 말씀을 행할 능력이 강해지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어떻게 생깁니까? 로마서 10장 17절에서 해답을 줍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말씀을 읽고 들으십시오. 그러면 말씀 속에 숨겨진 보화를 발견하게 될 것이며 말씀의 능력이 나를 변화시킬 것입니다. 미국의 어느 마을에 아버지의 속을 무척이나 썩인 탕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낭비가 심하여 범죄를 일삼는 불효자였습니다. 재산이 많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그는 아버지의 유언을 듣기 위해 법관 앞에 왔습니다. 법관이 유언장을 읽었습니다. 그 유언장에는 탕자의 비행, 잘못한 것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탕자는 듣기가 싫어 자리를 박차고 나갔습니다. 법관은 계속 읽었습니다. 마지막 구절에 2만5천불의 유산을 준다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단 조건은 유언을 처음부터 끝까지 들었을 때 유산을 줄 수 있다고 했습니다.
4. 믿음의 말씀을 가져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4장 5,6절을 통해서 신자는 세 가지 말씀으로 양육 받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첫째는 기도가 있는 말씀입니다. 둘째는 믿음의 말씀입니다. 셋째는 실제가 된 말씀입니다.
믿음의 말씀은 사도들이 전한 말씀입니다. 믿음의 말씀은 마음에도 있고 입에도 있는 말씀입니다. 입에도 있다는 말은 입으로 시인한다는 말입니다. 로마서 10장 8절에 보면 “말씀이 네게 가까와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고 말씀합니다.
믿음의 말씀을 가지면 말씀을 행할 수 있게 되며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신30:14절에 보면 “오직 그 말씀이 네게 심히 가까와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고 말씀합니다. 믿음의 말씀을 가지면 말씀을 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믿음의 말씀을 갖는 것이 구원의 조건이 되기도 합니다. 롬10:10에 보면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말에 영향을 받습니다. 어떤 교수가 맹물 같은 액체를 가지고 모든 학생들에게 “이 액체는 냄새가 지독하고 또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어떠한지 알아보기 위해 여기 놓을테니 지나가면서 냄새를 맡아보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학생은 그 액체 앞에 가기도 전에 코를 막고 고개를 돌렸고, 어떤 학생들은 얼굴을 찡그렸습니다. 세 명을 제외하고는 지독한 냄새 때문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 액체는 냄새도 없고, 무해한 그냥 맹물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냄새가 많이 난다는 교수의 말만 듣고 냄새가 굉장할 거라고, 지독할 거라고 믿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고개를 돌리고 인상을 쓰는 결과가 나왔던 것입니다. 사람의 말에도 이렇게 능력이 있어서 말에 영향을 받은 행동들을 하게 됩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말씀은 어떻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내 입으로 고백하면 능력이 있는 하나님의 말씀에 나의 영, 혼, 몸이 영향을 받습니다. 그래서 말씀의 지배를 받고 말씀대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우리 자신의 모습을 돌아봅시다. 그리고 인생의 성공을 향한 야심찬 도전들도 잠간 내려놓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하여 조용히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교회통합 1주년 기념사업
(위하여 기도하시고 헌금으로 동참해 주시기 바랍니다)
2. 외국인 근로자 초청 잔치(9월 18일)
3. 말씀 사경회(12월 4-6일)
4. 신년 집회(12월 31-2006년 1월 2일)
5.베트남목화소망교회 입당예배 (2006년 1월 중)
6. 캄보디아 선교(2006년 1월 중)
7. 지역 미자립교회 목회자 한 가정 생계지원(2006년 1월부터)
8. 설교 테이프 정기회원 모집
9. 방송설교
10. 중보기도자, 바르실래, 평신도사역자 네트워크
[사랑의 빛 교회] 경기도 감이동 361-4
(02) 443-91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