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 (요 4:23~24)
본문
거룩하고 복된 주의 날, 교회에 나와 하나님 앞에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저와 여러분에게 크신 은혜와 축복을 넘치게 내려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지방으로 지나가시다가 수가성의 우물가에 물을 길러 나온 한 여인을 만납니다. 이 여인은 죄가 많은 아주 불행한 과거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평소에 예배에 대한 관심이 많았습니다. 드디어 이 여인이 예수님께 예배에 대한 질문을 하기 시작합니다. 요한복음 4:20을 보면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의 질문에 “하나님은 영이시니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해야 한다”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찾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여인과 같이 저와 여러분도 예배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살아야 할 줄 믿습니다. 왜냐하면 저와 여러분은 평생 하나님께 예배하며 살아야 할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의 모든 삶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예배는 하나님께 나아와 성도들과 함께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입니다. 마태복음 18:20을 보면 예수님께서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는 사람들은 두세 명 정도 적은 수의 사람일지이라도 모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그들 가운데 우리 주님이 항상 함께 계시겠다고 말씀하셨으므로 저와 여러분이 항상 모이기를 힘쓰고 하나님께 예배하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히브리서 11:6을 보면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반드시 믿음을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존재하심을 믿는 믿음과 누구든지 하나님을 찾기만 하면 외면하지 아니하시고 안아주시고 받아주시고 품어주시고 복을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을 믿고 나아갈 때 우리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오늘 이 자리에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오셨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반드시 상을 주시고 복을 주신다는 것을 믿고 하나님 앞에 나오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올 때 어떤 믿음을 가지고 나오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과 믿음이 없는 사람은 너무나 다르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똑바로 알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믿음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나아올 때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무엇을 하든지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기도를 해도 믿음으로, 찬양을 해도 믿음으로, 헌금을 해도 믿음으로, 봉사를 해도 믿음으로, 예배를 해도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따라서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께 예배할 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를 드리기를 힘쓰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를 드리려면?
1. 말씀의 진리에 바탕을 두어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에 기초하여 하나님을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오직 말씀의 진리에 바탕을 둔 올바른 예배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말씀의 진리를 바르게 알지 못하면 참 하나님이 아닌 하나님께 예배하는 실수를 범하기 쉽습니다.
마태복음 16:13 이하를 보면, 예수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에 가셨을 때에 수많은 군중이 따라다녔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더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이에 제자들이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사실 수많은 군중들이 예수님을 따라 다녔지만, 안타깝게도 예수님이 누구신지 똑바로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따라서 이런 사람들을 어찌 예수 믿는 사람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한마디로 주님과 상관 없는 사람들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수천 수만의 사람들이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린다 해도 예수님이 누구신지도 잘 모르고 말씀의 진리도 모른 다고 하면서 예배를 드린다고 하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러나 제자들 중에 베드로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정확히 알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질문에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말씀의 진리를 똑바로 알았습니다. 오늘날도 성령의 거듭난 믿음의 사람이라면 베드로와 같은 신앙고백을 진심으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를 드리려면,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인지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배하는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셔서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입니다. 절대주권을 가지고 계셔서 우리의 생사화복은 물론 한 나라의 흥망성쇠까지도 주장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한 번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입니다.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만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상을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입니다.
또 우리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똑바로 알고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예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만왕의 왕이 되십니다.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해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해주시고 영생을 얻게 해주십니다. 우리를 하나님 아버지께로 인도해주시는 유일한 길이 되십니다.
2. 진정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기도를 해도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를 해야하며, 찬양을 불러도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찬양을 해야합니다. 마음에도 없는 찬양은 더 이상 찬양이 아니며 가치 없는 일이고 하나님에 대한 모독입니다. 특별히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우리의 마음 중심을 보십니다. 따라서 어떤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느냐 하는 예배자의 자세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날 잘못된 자세를 가지고 예배드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마음에도 없는데 억지로 끌려나와 예배를 드리거나 또 예배에는 관심이 없고 딴 목적을 가지고 사람을 만난다거나 사적인 필요에 의해 교회에 나올 수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예배에 집중하지 못합니다.
교회 안에 예배의 태도가 바르지 못한 사람을 단적으로 꼬집어 표현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소위 '멀대파'로 불리는 사람은 설교시간에 집중하지 못하고 강단을 응시하며 눈은 목사님께 가 있으나 생각은 멀리 출장 중인 사람을 가리킵니다. 또 ‘꼼꼼파’는 주보에 밑줄 긋고 교정까지 보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또 설교가 시작되자마자 졸면서 끄덕끄덕 방아를 찧는 ‘아멘파’가 있으며, 수시로 시계를 들여다보는 ‘안절부절파’가 있습니다. 또 옆 사람과 글로 주고받는 ‘청각장애파’가 있는 반면에 누가 왔는지 안 왔는지 인원 체크하는 ‘경비파’도 있습니다. 그 외에도 딴청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배 시간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마음을 가지고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이 어려서부터 바른 예배의 자세를 가지도록 잘 가르칠 필요가 있습니다.
루이 14세는
주일이면 가족과 왕족을 거느리고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 교회는 프넬론이라고 하는 대주교가 시무하는 교회로 왕이 출석하다 보니 예배당은 늘 좌석이 부족할 정도로 교인들로 넘쳐났습니다. 그러나 이 대주교의 마음은 결코 기쁘지 않았습니다. 정말 이들이 예배를 드리러 온 사람들인지 아니면 왕에게 잘 보이려고 왕을 만나러 오는 사람들인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루는 이를 시험해보기로 했습니다. 왕이 도착하기 전에, 다음 주일은 국왕께서 교회에 나오시지 못한다는 거짓 광고를 했습니다. 그 다음 주일, 왕이 왕족들과 교회에 도착했을 때 교회가 너무나 조용한 것을 보고 깜짝 놀라 대주교에게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대주교는 슬픈 얼굴로 “아무래도 이분들이 예배하러 오는 것이 아니라 왕을 만나러 오는 것 같아서 한번 제가 시험을 해보았습니다. 지난 주일 예배 전에 다음 주일에는 왕이 나오시지 못한다고 광고했더니 오늘 이렇게 다들 나오시지 않았습니다.”라고 자초지종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동안 그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온 것은 하나님을 예배하러 나온 것이 아니라 왕과 악수 한번하고 왕에게 잘 보이려는 마음으로 나왔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그 당시 실제로 있었던 충격적인 실화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요한복음 4:23을 보면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신령과 진정으로’는 ‘성령과 진리로’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는 성령이 함께 하는 예배이며, 성령의 은혜가 넘치는 예배입니다.
성령이 넘치는 예배는?
깨달음이 있습니다.
죄와 허물을 깨닫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많아집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너무 감사하여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으며, 자신의 사명을 깨닫고 충성하기로 다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변화가 있습니다.
사람이 달라집니다. 성품과 생각과 가치관이 달라집니다. 삶의 목적이 달라지고, 인생관이 바뀝니다.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타락의 근성은 사라지고 주님의 거룩한 형상을 닮아가게 됩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겸손하고 순수하며 온순하고 온유하며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능력이 있습니다.
기도의 능력, 찬양의 능력, 경건의 능력, 환난과 시험을 이기는 능력, 전도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따라서 성령의 은혜가 넘치는 예배를 드리는 교회는 부흥될 수밖에 없습니다.
3.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예배드릴 때 마음을 어디에 두느냐가 중요합니다. 다시 말해서 관심이 어디에 있느냐, 생각이 어디에 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생각하며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며, 그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생각하며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일절 딴 생각을 해서는 안됩니다. 따라서 예배에 대표 기도하시는 분도 내 기도를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것에 신경 쓰지 말고 오직 주님만 생각하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합니다. 찬양대도 찬양할 때 서로 비교하거나 성도들의 평가에 좌지우지할 것이 아니라 겸손한 자세로 우리의 찬양을 받으시고 기뻐하실 하나님을 생각하며 찬양을 드려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다해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릴 때 기뻐하실 줄 믿습니다.
4. 우리의 몸을 산제사로 드려야 합니다.
우리의 몸을 산제사로 드리는 예배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대가를 지불하는 예배가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사람이 조금도 고생하지 않으려 하고 절대로 손해보지 않으려 한다면 바른 예배자의 자세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를 드리려면 땀을 쏟아야 합니다. 아무리 생활이 어려워도 십일조를 드리고 감사예물을 드리고, 선교헌금을 드리며, 몸과 마음과 물질을 드리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우리 교회에는 먼 거리를 마다하고 마산, 창원, 경주, 포항에서 기쁨으로 달려오는 사람들이 많이 계십니다. 대가를 치르고 정성을 다해 예배를 드리는 이분들이 어찌 은혜를 받지 않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대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해주셨으니 우리가 그 주님을 위해 아깝다고 드리지 못하고, 힘들다고 하지 못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찬송가 356장의 가사를 보면, “성자의 귀한 몸 날 위하여 버리신 그 사랑 고마워라 내 머리 주 앞에 조아려 하는 말 나 무엇 주님께 바치리이까” “만가지 은혜를 받았으니 내 평생 슬프나 즐거우나 이 몸을 온전히 주님께 바쳐서 주님만 위하여 늘 살겠네” 이 찬송의 작사자의 고백이 저와 여러분의 신앙고백이 되기를 원합니다.
예배 시간은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신령한 복을 받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신령한 복을 받으면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게 될 줄 믿습니다. 예배 시간은 하늘의 양식으로 배부르며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즐거워하는 천국잔치의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이 항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를 드림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고 날마다 천국을 맛보며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정 필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