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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값진 생애를 위하여 (눅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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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값진 생애를 위하여
본문 : 누가복음 5장 1절 - 11절
마경훈 목사



제가 필리핀 화이트 비치에 갔을 때 있었던 일입니다. 그곳에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 두 줄로 서서 약 200M 정도 되는 긴 그물을 거둬들이고 있었습니다. 저는 얼마나 많은 물고기가 잡힐까를 기대하며 오랜 시간을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물을 거둬보니 피라미 같은 작은 물고기 두 마리만 있었던 일이 기억납니다. 그 큰 그물을 내렸고 그 많은 사람들이 애를 썼던 것에 비하면 너무나 허무한 결과였습니다.
베드로가 밤을 새워가며 그물을 던졌지만 단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했습니다. 물고기 잡는데 실패한 베드로가 바닷가에서 그물을 씻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무리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배를 보시고 그 배에 오르셨습니다. 그리고 그 배에서 다시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말씀을 마치시고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그 말씀에 순종해서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렸고 생각지 못했던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잡힌 고기가 얼마나 많은지 그물이 찢어질 지경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배의 동료들을 불러서 두 배에 물고기를 채우니 배가 잠길 정도로 많았습니다. 베드로는 놀라 주님 앞에 엎드렸고 주님께서는 그를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셨습니다. 베드로는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보겠습니다.

1. 실패도 유익이 됩니다.

현명한 리더는 돈보다 사람을 귀하게 볼 줄 아는 사람입니다. IBM의 설립자인 톰 왓슨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한번은 젊은 부사장이 매우 모험적인 신제품 개발계획을 보고했습니다. 톰 왓슨은 과연 이 사업이 성공할 수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때 부사장은 위험부담이 큰 사업일수록 큰 수익을 올릴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신제품 개발사업은 회사에 1000만 달러 이상의 손해를 입히고 말았습니다. 톰 왓슨이 부사장을 불렀을 때 그는 사표를 제출하며 말했습니다. “회사에 막대한 손해를 끼친 책임을 느껴 사직서를 제출합니다” 그러자 톰 왓슨이 정색을 하며 말했습니다. “무슨 소린가. 나는 자네를 교육하는데 무려 1000만 달러를 들였는데….다시 시작하게” 사장의 격려에 고무된 부사장은 다시 한번 도전해 신제품 개발에 성공한 사례가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좋으신 아버지로 믿습니다. 좋으신 아버지는 우리의 실패를 실패로 내버려두시지 않습니다. 롬8:28 말씀대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지혜로우신 하나님은 세상의 리더들보다 더 지혜로우셔서 택한 백성들의 실패를 실패로 끝나게 하시지 않습니다.

만약 당신이 하고 있는 일에 실패했다면 실패의 경험을 발판 삼아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하지 않습니까!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께서 나의 아버지시라면, 내 생애에 일어나는 수많은 실패들은 내 인생의 걸림돌이 아닌 디딤돌이 될 것입니다.

베드로가 만약 만선으로 돌아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는 아마도 만선의 기쁨 때문에 예수님에게는 관심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가 만약 만선으로 돌아왔다 면 물고기를 파느라고 정신이 없어서 자기 배를 예수님이 설교하는 강대상으로 제공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가 만약 만선으로 돌아왔다면 그는 예수님이 일으켜 주시는 기적을 체험하지 못했을 것이고 예수님을 만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의 실패는 그를 망하게 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실패가 주님을 만나게 했던 것입니다.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실패하여 낙심 중에 계신 분들이 있다면 용기를 잃지 마십시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을 것을 기대하십시오. 그리고 주님의 이름으로 다시 일어나시기를 바랍니다.

2. 작은 헌신이 큰 복이 됩니다.

우리가 작은 헌신을 하면 주님은 그 헌신을 통해서 큰 기적을 행하십니다. 오병이어의 기적도 그런 측면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한번은 여자와 아이들을 제외한 숫자가 약 5천명이나 되는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양식이 필요했으나 양식을 구할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 때 한 어린아이가 자기의 도시락을 내놓았습니다. 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였습니다. 그것은 도시락을 내놓은 어린아이에게는 전부였지만 수 만 명의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는 작은 헌신이었습니다. 그런데 적은 양의 오병이어가 주님의 손에 들려지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모인 사람들이 다 먹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았습니다.
주님은 본문에서도 베드로의 작은 헌신을 통해서 큰 기적이 일어나게 하셨습니다.지치고 피곤한 몸으로 그물을 씻고 있는 베드로의 배에 주님께서 올라타셨습니다. 베드로는 밤새워 일을 했으니 몸은 피곤에 지쳤습니다. 거기다가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으니 낙심이 컸을 것입니다. 아마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중에도 그는 성실하게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그런 중에도 주님께 배를 제공하고 주님은 베드로의 배를 강단 삼아서 설교하셨습니다. 또 갈릴리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베드로의 상식으로는 말도 안돼는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는 말씀에도 순종했습니다. 우리가 볼 때는 큰 헌신이 아닌 것 같아도 베드로의 몸 상태나 심리상태로 볼 때는 큰 헌신이었습니다. 주님은 베드로의 헌신을 받으시고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베드로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그물을 내리자 심히 많은 고기가 잡혔습니다. 그물이 찢어질 만큼 두 배가 잠길 만큼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의 작은 헌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큰 기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교회에서는 해외결연아동들에게 한 달에 2만원씩을 보내줍니다. 우리들에게 그 2만원은 결코 큰 돈이 아닙니다. 한 끼 식사비도 안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작은 헌신이 후진국에 살고 있는 결연 아동들에게는 큰 기적의 돈입니다. 그 아이들은 그 2만원으로 한 달을 먹고 쓰며 공부할 수 있는 기적의 돈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다른 사람에게 드린 작은 헌신이 우리 자신에게도 큰 기적으로 돌아옵니다. 아브라함은 지나가는 나그네를 대접하다가 하나님을 대접했으며 그 결과 자식을 낳을 수 없었던 아내 사라가 이삭을 낳게 되는 엄청난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마25장에 보면 갇힌 자, 배고픈 자, 병든 자들에게 베푼 작은 헌신이 주님을 대접한 것이 되어 천국에서 인정받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3. 예수님은 실패자도 성공하게 하십니다.

밤새워 그물을 던졌으나 단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했던 베드로가 주님의 말씀대로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던졌더니 엄청난 양의 고기를 잡았습니다. 주님은 실패자 베드로를 성공자로 만드신 것입니다.

실패자 베드로가 성공자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봅시다.

첫째, 주님을 만났습니다. 세상에 많은 만남이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만남은 주님과의 만남입니다. 그 날 새벽에 베드로가 주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는 실패자로서 집으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님과의 만남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주님과의 만남보다 다른 만남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교회 나가는 것을 우습게 보는 것은 주님과의 만남이 얼마나 중요한 만남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다녀도 예배보다 더 바쁜 일이 많은 이유도 주님과의 만남이 얼마나 중요한 만남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의 성공 비결 첫 번째가 주님과의 만남이었습니다. 성공적인 인생을 원한다면 주님을 만나십시오.

둘째, 주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주님은 두 종류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먼저 무리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베드로에게 개인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에게 하시는 말씀을 분명하게 들었습니다. 무리들에게 하신 말씀은 가르침이었습니다.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은 특정한 일에 대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말씀이 베드로에게 기적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고 듣습니다. 그 가운데 나의 어떤 특정한 부분에 대해서 특별히 말씀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흔히들 이것을 레마라고 말합니다. 이 레마가 베드로에게 기적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 레마가 베드로를 성공자로 만들었습니다.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다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우리에게 기적을 만들어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영적인 귀가 있어야 합니다.

셋째,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깊은 곳으로 갔고, 그물을 던졌습니다. 그랬더니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 날 그 시간 베드로에게는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게 할만한 분명한 이유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방해 요소들을 물리치고 순종했습니다. 그는 낙심중입니다. 피곤합니다. 그물을 이미 씻었습니다. 그리고 이미 날이 밝았습니다. 또 주님이 그물을 던지라는 곳은 깊은 곳이었습니다. 몸의 상태로 볼 때도, 상식적으로 봐도 그리고 환경적으로 봐도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순종한 것입니다. 그 순종의 결과가 기적으로 다가온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만납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런데 말씀에는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 기적이 없는 것입니다. 아람의 군대장관 나아만이 문둥병에 결려서 주님을 예표 하는 인물인 엘리사를 찾아왔습니다. 그는 엘리사를 만났고 요단강에서 일곱 번 씻으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엘리사가 보인 태도가 못마땅한 나아만이 말씀에 불순종하고 자기 나라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 때 나아만을 섬기는 종이 나아만을 설득을 했으며 결국 요단강에서 일곱 번 씻었습니다. 일곱 번 씻고 났더니 문둥병에 걸린 살이 어린 아이 살처럼 깨끗하게 치료되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나아만의 순종이 주님의 기적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4. 예수님을 아는 것이 기적보다 더 중요하고 축복보다 더 중요합니다.

기적은 기적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기적은 주님을 가르쳐주기 위한 방편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만났으나 주님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엄청난 양의 물고기를 잡게 하셔서 베드로에게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주셨습니다. 베드로는 그 기적을 보고서 주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향해서 자신이 죄임임을 고백합니다. 그는 주님이 얼마나 가치 있는 분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기적을 통해서 주님을 만날 수 있다면 그것은 참으로 큰 복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기적을 봤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님을 주님으로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말았던 것입니다.
지난주에 부흥회를 했던 시화문화교회 성도 중 한 사람의 간증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능력을 시집식구들과 함께 보게 되었습니다. 공장을 하는 시아버지가 고사를 지내려고 하는데 며느리는 고사를 지내는 것이 신앙 양심상 허락지 않아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성도의 기도를 들으시고 역사하셨습니다. 고사를 지내는 날 고사를 지내려고 상을 펼쳐놓고 떡을 올려놨는데 바람이 어찌나 강하게 불었던지 제사상이 날아가 버렸습니다. 그래서 고사 지내려고 했던 떡을 교회에 가져와서 성도들과 나눠먹었습니다. 시아버지는 고사상이 날아가는 장면을 보고도 포기하지 못했습니다. 다시 고사를 지내려고 돼지머리를 삶았는데 이번에는 돼지의 귀를 태워먹었습니다. 결국 시아버지는 재수 없다고 제사를 드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같은 사건을 보고도 하나님의 능력을 보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같은 사건을 보고서도 재수 없는 정도로만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기적만으로 만족하는 사람은 기적은 볼 수 있을 수 있어도 영생은 없습니다. 기적 속에서 예수님이 누구이신 줄 알게 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까지 얻게 됩니다. 우리나라에서 자생한 많은 이단들의 교주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에 몸담고 있을 때 엄청난 기적을 일으켰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그 기적을 통해서 주님을 보고 주님을 바로 알았어야 하는데 교만에 빠져서 이단이 된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기적이 저주였습니다.
엄청난 물고기가 잡히는 기적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주님을 아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현실적인 문제로 주님을 떠납니다. 삶이 고달프면 더 주님을 찾아야 하는데 주님으로부터 멀어집니다. 반대로 많은 축복을 받았으면 그 축복으로 인하여 감사하고 주님 앞에 더 가까이 가야 하는데 그 축복 때문에 주님을 떠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땅에서 축복을 받고 누려도 주님을 알지 못하면 영생이 없습니다. 이 땅에서 비록 축복을 못 받는 것처럼 보이고 극한 고난을 받아도 주님을 아는 사람에게는 영생이 있습니다. 축복보다 주님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5. 예수님을 알면 자신을 알게 됩니다.

빛 앞에서 어둠이 드러나듯이 주님을 만나면 자신이 죄인인 것을 알게 됩니다. 베드로 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기적을 행하시는 주님의 능력을 보고 주님을 알아봤습니다. 그리고 주님 앞에 엎드려서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외쳤습니다. 자신을 모르던 베드로가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동일한 일이 이사야 선지자에게도 있었습니다.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나라가 걱정돼서 성전에서 기도하던 이사야가 하나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사람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라고 외쳤습니다.
진정으로 주님을 만난 사람은 자신의 두 가지 모습을 보게 됩니다. 첫째는 주님 앞에서 철저히 죄인인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없이는 주님의 공로가 필요치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죄인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주님의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은 자신을 보여주시고 우리가 죄인인 것을 인정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죄인인 것을 인정하면 주님의 공로로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것입니다. 둘째는 주님 안에서 의인된 내 모습을 보게 하십니다. 내 공로가 아니라 주님의 공로로 의인인 것을 보게 하십니다. 그래야 교만하지 않습니다. 내 공로로 의롭게 되었다면 교만할 것이며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데 정신없을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의인된 내 모습을 보면 주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보좌 앞에 당당히 나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자신을 점검해 봅시다. 나는 하나님 앞에서 내가 죄인인 것을 철저하게 인정합니까? 또 내 공로가 아니라 주님의 공로로 하나님 앞에서 의인인 것을 믿습니까? 당신이 이 두 가지 질문에 모두 “예”라고 답할 수 있다면 당신은 진정으로 예수님을 아는 사람입니다.

6. 축복을 누리는 것보다 더 값진 삶이 있습니다.

축복을 누리는 것보다 더 나은 삶이 있습니다. 주님을 좇아가는 삶입니다. 사명을 위하여 사는 삶입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놀라운 축복을 받았습니다. 한 번의 그물질로 두 배가 잠길 만큼의 고기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주님께서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고 말씀하시자 기적과 축복의 배와 고기를 버려두고 주님을 따르게 됩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따르는 것은 잃어버린 영혼을 찾기 위한 사명의 길을 떠나는 것입니다.
여기서 오해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제대로 주님을 만난 사람은 직업을 버리고 목회자의 길을 가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목회자의 길이 아니라 하더라도 주의 복음을 전하는 길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축복이 목적이 된다면 저급한 수준의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늘 거기에 머물러 있다면 자신의 신앙을 한번 점검해봐야 합니다.
우리가 받은 축복은 선교를 위한 수단인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우리가 가진 돈도, 우리가 가진 시간도, 우리가 가진 재능도 선교를 위한 수단인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축복이 선교를 위한 수단이기 때문에 우리가 선교에 헌신하면 하나님은 그 외의 것을 책임져주십니다. 이 진리는 개인이나 교회 그리고 국가에도 적용됩니다.
일찍이 선교에 힘쓰는 나라는 하나님이 선교를 위해서 부강국으로 만드셨던 것을 역사적으로 배울 수 있다. 독일이 그랬습니다. 영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영국이 한참 선교의 열을 올리던 19세기에서 20세기 초반까지 영국교회가 미치지 않은 선교 지역이 거의 없을 만큼 광범위했습니다.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선교사만도 대단히 많았는데 그 대표적인 사람들을 봅시다. 인도 선교의 아버지인 윌리암 케리, 아프라카 선교의 리빙스톤, 중국 선교의 허드슨 테일러, 로버트 모리슨 등 헤아릴 수 없습니다. 영국교회가 이처럼 선교 열정으로 불타 있는 동안, 하나님은 그 나라를 부강국으로 만드셨다. 폴 케네디의 저서「강대국의 흥망」에서 보면 1860년경 영국이 세계 철강생산의 53%, 석탄생산 50%를 차지하고 있었고, 세계원면생산량의 절반을 약간 못 미치는 양을 소비했습니다. 그리고 세계 무역의 5분지 1을 차지했는데 특히 제품무역의 5분지 2를 차지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또한 세계상선(商船)의 3분지 1이상이 영국 국적선일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영국이 후에 선교보다는 식민지 확장에 열중하기 시작할 때는 그 화려한 전성기에서 하향세를 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 다음 20세기 초반에 선교 촛대를 물려받은 나라가 미국입니다. 미국은 교회 부흥에 발맞추어 점점 선교 열정으로 세계를 향해 뻗어 갔습니다. 마침내 1973년경에는 전 세계적으로 59개국에 파송된 선교사 수의75%가 미국 선교사일 정도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미국을 하나님은 세계 최대 부강국으로 만들어 주신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지금은 세계 경제 10위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한 때 교만해서 IMF라는 매를 맞는 나라가 되었으나 하나님은 세계 선교를 위하여 한국을 다시 세우신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이만큼 된 것은 국민이 똑똑하고, 자원이 풍부하고, 지도자들이 정치를 잘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선교에 열심을 내는 한국에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한국이 사는 길, 한국이 강해지는 길은 경제가 아니라 세계 선교에 있는 줄 알고 세계 선교에 전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한국교회가 성장세가 둔화되고 마이너스 성장이 되고 있습니다. 교회마다 선교열정이 식어가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선교에 힘을 쓰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우리교회는 우리가 존재하는 이 지역에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이 일에 돈과 열정을 그리고 기도를 쏟아 부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세계와 열방을 향해서 선교사를 파송하고 선교의 열정을 불태워야 합니다. 특히 중국선교는 우리 교회에게 주시는 특별한 부담감입니다. 우리 교회는 세계와 열방을 향해서 선교의 깃발을 높이 들어야 합니다.
여러분들도 자신의 존재 이유를 선교에 두십시오. 기적을 체험하고 축복을 누리는 것도 필요하지만 거기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 기적을 베푸시고 축복하신 목적이 주님을 알고 잃어버린 영혼을 건지라는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선교를 위해 사는 것이 축복을 누리는 것보다 더 값진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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