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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과 연어 (빌 3: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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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과 연어 (빌 3:7-4:1)

예전에 외국 생활할 때 즐겨보던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National Geographic이라는 자연에 관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자녀들의 교육에도 좋고, 어른들의 삶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기도 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인상 깊었던 다큐멘터리중의 하나가 연어(年魚/連魚, Salmon)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연어의 회귀'라는 말을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연어의 머리 속에 입력되어 있는 명령 코드가 있습니다. 자신이 태어난 강 상류의 산란(産卵) 지점으로 다시 돌아가는 본능적 회귀 말입니다. "연어가 다시 돌아올 때…"

연어는 몸길이가 약 70cm입니다. 빛깔은 등 쪽이 남회색이고 배 쪽은 은백색입니다. 번식기가 되어 강 상류로 올라오는 연어는 붉은 색의 구름 모양의 반점이 생깁니다. 한국에서는 가을이 되면 경북 이북의 동해로 흐르는 하천수계에 산란을 목적으로 올라온다고 합니다. 강원도 양양 남대천의 연어가 유명할 것입니다. 1마리의 산란숫자는 700~7,000개이며 2~3회에 걸쳐 산란한다고 합니다. 봄에 부화한 치어(稚魚)는 바다로 내려가서 3~4년만에 성숙하여 모천(母川)으로 돌아와서 산란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귀소본능'(歸巢本能, homing instinct)이란 말을 사용합니다.

내가 본 다큐멘터리에 의하면, 매 4년마다 수백만 마리의 연어들이 대양(大洋)에서 강어귀로 몰려듭니다. 그리고 신비롭게도 그 생김새가 바뀌기 시작합니다. 은색이 붉은 색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필사적으로 강 상류를 향해 헤엄쳐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급류를 거슬러 펄쩍 펄쩍 뛰면서 힘차게 올라갑니다. 도저히 올라갈 수 없는 형편에 이르러서도 연어는 죽을힘을 다하여 다시금 도전합니다. 다시금 급 물살을 치고 올라갑니다. 그러다가 불쌍하게도 어떤 연어들은 탈진하여 죽어갑니다.

유속(流速)이 빠른 물살에도 불구하고 생존한 연어들은 더 어려운 장애물에 직면하게 됩니다.
·천둥소리 나는 폭포들,
·울창한 나무들을 자르는 전기톱소리들,
·올라오는 연어를 기다리고 있는 낚시꾼들.

다큐멘터리를 보신 분들은 급 물살 위로 펄쩍뛰어 오르기도 하고, 거친 물결과 싸우고 부딪히고… 생물적 본능에 의해 움직이는 이 연어들을 상상할 것입니다. 그들은 강 상류를 향하여 길을 헤쳐 갑니다. 그들의 어머니들이 그들을 산란하였던 바로 그 강 상류의 조용한 물에서 그들도 산란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태어난 바로 그곳에서 죽습니다.

다음에 여러분이 식사시간에 연어를 드실 기회가 있으면, 연어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잠시 멈추시고 묵념하시기 바랍니다!

연어를 먹을 때 우리는,
·결심(決心)을 먹는 것이며,
·전념(專念)을 먹는 것입니다.

연어는 우리 크리스천들을 부끄럽게 만듭니다. 연어의 일생을 보면서 크리스천들은 부끄럼을 느껴야할 것입니다. 크리스천은 이 세상을 살 때 '한 마음'으로 이 세상을 살도록 되어있습니다. 한가지 목적과 한가지 목표를 향해 살도록 되어 있습니다.

예수는 한가지 마음으로 이 세상을 사셨던 분입니다. 그는 일편단심(一片丹心)의 마음으로 이 세상을 살았습니다. 생애 마지막에 그가 빌라도 앞에서 심문을 받을 때를 기억해 보십시오. 빌라도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네가 왕이란 말이로구나!" 그 때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다.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다.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 누구든지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들을 것이다"(요한 18:37).

예수의 삶을 구성하고 통제하였던 이러한 일편단심의 마음을 우리의 것으로 삼아야할 것입니다. 예수는 마태복음 6장에서, "너희 눈이 성하면[한가지 것에만 초점을 맞추면] 네 온 몸은 밝을 것이요. 그러나 네 눈이 나쁘면, 성치 못하면[한가지 것에 초점을 맞추지 못하면] 네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다" 라고 말씀하신 일이 있습니다.

우리들중 대부분의 사람들은 '갈려진 마음들'을 갖고 있습니다.
·한꺼번에 이것과 저것을 모두 잡으려 합니다.
·여러 가지 삶들을 동시에 살고 있습니다.
·산이란 산들은 모두 오르려고 합니다.
·우리들은 '집중력 결핍증'(ADD) 환자들입니다(Attention Deficit Disorder).

우리의 눈을 한가지 일에만 집중하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한가지 일만을 여러분의 삶의 목표로 삼으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추구하십시오. 한가지 일에만 헌신하여 그것을 끝까지 추구하십시오.

스페인의 위대한 철학자인 미구엘 데 우나무노(Miguel de Unamuno)가 수많은 진리들 위로 나비처럼 날아다니면서도 그중 한가지 진리에도 자신을 바치지 않는 스페인의 지성인들을 향해 이런 말을 했다 합니다: "위대한 생각이 떠오르면 그것을 붙잡아라. 그리고 그것과 결혼하여 자녀를 낳아 가정을 이루라."

그렇습니다. 분명한 목적과 이유 한가지에 여러분의 눈을 집중하십시오. 그리고 그것에 전념하십시오. 물론 그것에 따르는 모든 어려움과 위험부담을 짊어지면서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연어처럼 되십시오.

여러분 중 골프를 배우기 원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골프를 시작하면서 반드시 명심해야할 몇 가지 중요한 법칙들이 있습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법칙이 하나있습니다.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매우 단순한 법칙입니다: "공을 내려칠 때 끝까지 공에서 눈을 떼지 마십시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공이 날아가는 것을 보려고, 공을 내려치는 순간 공을 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꼭 기억하십시오. 공에서 끝까지 눈을 떼지 마십시오!

듣고 보니 너무 뻔한 것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너무도 당연한 법칙입니다. 코치에게 너무 자주 듣는 말일 것입니다. 너무 자주 들어서 식상할지도 모릅니다. "끝까지 공을 보라!"는 말이 얼마나 잔소리처럼 들리는지요.

그러나 종종 공은 전혀 다른 곳으로 날아갑니다. 아니면 골프채로 공을 치는 대신 땅을 치게 됩니다. 왜 그럴까? 대답은 분명합니다. 단순한 원칙 ― "끝까지 공에서 눈을 떼지 마십시오!" ― 을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이론적으로는 너무 쉽습니다. 공을 똑바로 끝까지 보지 않고 친다는 것은 멍청한 짓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막상 골프 클럽을 쥐고 공 앞에 서면 우리가 그런 멍청한 짓을 한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믿기 어려울 만큼 난해한 일입니다. 골프 치는 사람들은 이러한 '단순한 법칙'으로 부단히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삶도 그렇습니다. 인생도 이와 같습니다. 온전한 삶, 풍요로운 삶을 위한 단순한 법칙이 있습니다.
·한가지 목표에만 전념하는 것입니다.
·두 마음을 품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직업이나 일이나 가정이나 어느 것이거나,
·여러분이 그것들에 대해 두 가지 마음이 있을 때,
·여러분의 마음 한 구석에서, "다른 직업이면 좋겠는데!", 혹은 "다른 여자라면 좋겠는데!"
혹은 "다른 남자라면 좋겠는데!" 라고 생각한다면, ­결코 좋은 것은 오지 않을 것입니다.

자, 여러분의 눈을,
·한가지에만 고정시키십시오.
·한 분에게만 고정하십니다.

세상 살아가는데 있어서 이것이 사실이라면, 크리스천들의 삶에 있어서도 이것은 사실입니다. 예수는 분명한 어조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과 재물(맘몬)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
·여러분의 헌신과 애정을 하나님과 재물에 동시에 바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도록 허락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그런 꼴을 견디지 못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전심(專心)의 헌신을, 전념(專念)의 애정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면서 동시에 음식과 음료를 추구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하면서도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할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이중적인 마음에는 희망과 미래는 없습니다.

·희망은 주님 한 분만을 섬기는 곳에 있습니다.
·희망은 유일한 권위에게 순종하는데 있습니다.
·희망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추구하는데 있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 바울은 예수와 같습니다. 그는 항상 그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가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부터, 그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었을 때부터 자기가 어디로 가고 있었는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그의 삶의 방향은 180도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이전보다 더 힘차게 달려나갔습니다. 그리스도를 알기 위해서, 그리고 그리스도에 의해 그가 알려진 바 되기 위해 그는 더욱 열정적으로 달려가기 시작했습니다.

"내게는 오직 한가지 일만이 있다"고 바울은 빌 3:13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7-11절에서 바울은 그가 말하고 있는 '한 가지'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쳐다보고 있는 유일한 한 가지란,
·그리스도 예수 그의 주님을 아는 것,
·그리스도를 얻는 것,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
·그리스도의 부활에 동참하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비천한 몸이 변화되어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몸처럼 되는 것이었습니다.

"내게는 오직 한가지 일만이 있다"
·한가지 목표물에 내 목적을 고정하는 것이다.
·한가지 일을 전공하는 것이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달려나간다.
·목표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간다.
고대 올림픽 경기에서 달리는 주자처럼, 결승선을 통과해 승리의 야생 올리브 관을 그리스도로부터 얻기 위해 달려나간다.

이것이 내가 하는 '한가지 유일한 일'입니다. 그밖에 나머지 것들은 모두 이차적이고 부차적인 것들입니다. 즉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연어처럼 헤엄쳐 나가라는 것입니다.
·힘쓰고 애쓰고, 다시 시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상처를 입었을 때, 실패했을 때
눈에서 눈물을 닦아내고 다시 그리스도의 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누군가 여러분을 향해 나쁜 말을 하고 좋지 못한 일을 꾸밀 때, 혹은 내가 좋게 해주었는데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것처럼 느낄 때에도,
멈추지 않는 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넘어졌을 때에도 다시 일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잘못된 길로 들어섰을 때에, 좋지 못한 일을 저질렀을 때에, 삶이 뒤죽박죽 되었을 때,
그때에 다시 트랙 위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게는 오직 한가지 일만이 있다"
나는 연어처럼 계속해서 강 상류를 향해 헤엄쳐 올라갑니다.

누가복음 5장에 있는 예수와 시몬에 관한 이야기를 기억하십니까? 시몬이 가장 힘들어해 하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때 예수는 시몬을 찾아 오셨습니다. 시몬은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깊은 한숨을 지으며 시몬은 해변가로 돌아왔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셨습니까?
·시몬아, 돌아가 다시 시도해봐라.
·깊은 곳으로 다시 가라!
·그물을 다시 내려라!

­애쓰고 노력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실패하셨습니까?
돌아가서 다시 시도해 보십시오.
­기도하였는데도 하나님의 침묵만을 경험하셨습니까?
돌아가서 다시 시도해 보십시오.

"내게는 오직 한가지 일만이 있습니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 이 말씀들은 강 상류를 향해 헤엄쳐 올라가는 연어의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 이 말씀들은 끈덕짐과 단호한 결심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 이 말씀들은 제자도의 삶은 전투의 삶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 이 말씀들은 우리가 전투에 참여하지 않으면, 우리가 조류(潮流)에 대항하여 헤엄치지 않으면,
우리는 조류에 휩쓸려 떠내려갈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유일한 목표로 삼지 않고 다른 목표들을 추구한다면 여러분들은 바울이 18-19절에서 말하고 있는 사람들과 같은 대열에 끼어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최종은 멸망입니다.
·그들의 하나님은 배(腹)입니다.
·그들의 영광은 부끄러움에 있습니다.
·그들의 생각은 땅의 일들에 있습니다.

음식과 섹스가 그들의 신(神)이며 영광입니다. 몸은 그들의 생활양식의 중심부입니다.

미국의 영향력있는 크리스천 잡지인 크리스천 센츄리(Christian Century)지에서, 미국의 명문 듀크 대학교의 경제학 교수인 토마스 네일로(Thomas H. Naylor)는 이러한 종류의 사람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고 있습니다:

"6년 동안 나는 듀크 대학교의 경영학부에서 회사생존 전략에 관한 모든 강의를 다 가르쳤습니다. 매 학기마다 나는 내 학생들에게 졸업 후 10년간을 위한 개인적인 전략적 계획에 관한 페이퍼를 써오라고 했습니다. 내가 제시한 질문은 "너희가 어른이 된 후 어떤 사람이 되어있기를 원하는가?"였습니다.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학생들이 적어낸 대답들은 대충 세 가지 범주로 분류될 수 있었습니다. '돈', '권력(힘)', '어떤 것들'(아주 큰 것들, 예를 들어, 멋진 별장들, 아주 비싼 외제차들, 요트들과 자가용 비행기를)."

학생들의 주요 관심사는 앞으로의 경력과 직장과 일, 그리고 재정적인 서류들(통장, 주식, 증권, 부동산 소유 등)에 관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들의 계획들 안에는 가족, 지적 계발, 영적 성장, 사회적 책임감 등과 같은 것들에게 대한 자리는 없었습니다. 그들이 교수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돈을 잘 만드는 기계가 되는 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내가 즉시 재정적으로 성공하는데 필요한 사실들, 도구들, 기술들을 가르쳐 주십시오" 등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것들 외에 모든 것들은 근본적으로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들, 무의미한 것들이었습니다. 이것이 경영대학원에서 훈련받고 배출되는 새로운 인간 종자들입니다.

그들은 한가지 일에만 전념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의 눈들은 오로지 한가지 일에만 고정되어 있습니다: 경제적인 성공!
·그들 눈에는 보이는 것이 없습니다. 오로지 경제적 성공뿐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들입니다. 아마 틀림없이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속해있고 교회의 멤버일 것입니다만…­

파멸이 그들의 운명입니다.
­돈이 그들의 신(神)입니다.
­그들은 지상적인 것들에 마음을 두고 있습니다.
­그들은 강 하류로 흘러 내려갑니다.
­그들은 물살이 흘러가는 대로 갑니다.

그러나 바울은 오늘 우리에게 주신 성경을 통해 말하기를,
·우리는 연어와 같다
·우리는 강 상류로 헤엄쳐 올라 가야한다.
·우리는 물살을 역류하여 올라 가야한다 고 외칩니다.

이 세상과 이 세상이 주는 모든 가치들은 결코 우리의 고향이 아닙니다. 우리의 고향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늘의 식민지입니다.
·우리는 '교회'라 불리는 반-문화적(counter-cultural) 세력들입니다.
·우리는 '교회임'으로서 이 세상에 영향력을 행사하려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이 세상이 아닌 '그 무엇임'으로서, 그리고 이 세상이 결코 될 수 없는 '그 무엇임'으로서, 이 세상에 영향력을 끼치려 합니다.
·신앙과 환상이라는 선물을 갖고 있는 우리는 그러한 선물을 갖지 못한 이
세상에 영향력을 끼치려 합니다.
·우리는 외지에서 사는 외인들처럼 삽니다.
·우리는 강 상류를 향해 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한가지 소망, 한가지 바람만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우리의 주님을 알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들에 참여하기를 갈망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처럼 살고 그리스도처럼 죽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함께 나누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비천한 몸들이 변화되어 그리스도의 부활의 몸처럼 되기를 갈망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주(主)안에서 굳게 서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류 호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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