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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 정신 (요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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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 정신 (요 12:24)


우리 교회의 3대 정신을 아십니까 ?
첫째는 위하여 정신입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그리고 둘째는 주라 정신입니다. 나의 물질을 ... 나의 사랑을 나보다 더 갖지 못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베품의 정신이 주라정신입니다.
셋째가 밀알정신입니다.
오늘은 밀알 정신에 관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본문을 한 번 더 읽어보겠습니다.
(요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이 말씀은 우리교회가 추구하는 신앙의 모델입니다. 우리가 모두 밀알 정신으로 무장할 때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이 나타나고 많은 열매가 맺히고 복을 누리고 사명을 감당하는 삶을 살게 될것입니다.

밀알 정신이란 무엇입니까?
첫째로 헌신의 정신 즉 희생의 정신입니다.
남을 위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희생을 하겠다는 정신이 바로 밀알 정신입니다. 희생을 각오하지 않고 되는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자기 것을 희생하지 않고 남의 것을 남의 것을 더 많이 얻으려는 것은 사기꾼 정신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밀알은 자신을 아낌없이 죽이는 헌신과 희생을 말하는 것입니다.

‘역사의 연구’라는 책으로 잘 알려진 영국의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는 런던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늘 이렇게 강조했다고 합니다.
“역사의 주인이 돼라. 역사를 창조하는 사람이 돼라”
그러면 어떻게 해야 역사를 창조하는 사람이 되겠는가? 토인비 박사의 대답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한알의 밀알”이 되라는 것이었습니다.

인류 역사를 연구해보면 시대마다 역사를 빛낸 인물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의 삶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자기가 살고 있는 시대를 위해서 자기 자신을 제물로 드려서 희생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그 시대의 역사를 빛내고 역사를 창조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그 자신을 희생해서 제물로 드려야 한다는 것이 바로 토인비 박사의 지론이었습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만 많은 열매가 맺힌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토인비는 역사적으로 적용한 셈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 시대의 주인공이 되어 역사를 창조해나가기 원한다면 우리에게도 우리 자신을 순교의 제물로 드리겠다는 희생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밀알은 꽃과 잎사귀처럼 미와 향기가 없습니다.
땅속에 묻혀 썩어야 할 존재입니다. 다르게는 살길이 없는 존재입니다. 오직 한 길 밖에 살길이 없습니다. 죽어서 사는 길입니다.
밀알 정신은 보다 높은 자아, 영원한 삶을 위하여 보다 낮은 자아를 버리는 것이다.

크리스챤은 예수와 함께 죽은 사람들입니다.
바울 사도가 갈 5:24절에서 기록한 대로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이미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아 버린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우리는 예수님의 정신이 밀알 정신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의 교훈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눅 14:11)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마 19:21)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마 5:41-45)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이 말씀들은 희생하여야 살고 복을 받는 다는 밀알 정신을 잘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둘째로 손해보고 양보하고 베푸는 정신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영특하여 절대로 손해 보려고 하지않습니다. 그러니 손해 보라고 하면 모두 기분 나빠할것이 뻔합니다. 그러나 정말 지금의 것 보다 더 영원하고 가치 있는 것을 얻기 원한다면 예수이름으로 손해 보는 일은 영광으로 생각하십시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습니다. 그러나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했습니다.
좀 밑지고 사십시오. 영광은 남에게 주고 욕은 내가 먹어보십시오.
조금은 바보가 되는 것입니다.
현대인의 삶은 너무 조건적이고 계산적입니다. 자신의 이해 득실을 따지는데 잘 길들여져 있습니다. 우리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교육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아마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모세의 율법에 일찍부터 길들여져 왔습니다.
마5:38절에서 예수님은 당시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생각을 인용하여 말씀하십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여기서 너희가 들었으나 이 말은 당시 사람들이 조상들로 받은 유전적이 교훈을 말합니다.
이 교훈은 신 19:21절의 “라고 하신 말씀에 근거를 두고 있는 이 네 눈이 긍휼히 보지 말라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니라” 말씀으로 사람이 악한 자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하는 율법적인 지침입니다.
사람들은 원수는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고 미워할 대상이라고 가르침을 받아온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외면적으로 율법에 충실했습니다. 그래서 형제에게는 문안하고 원수는 미워하였으며 자기를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고 자신을 미워하는 자는 미워하였습니다.
(마 5: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마 5:47)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나 예수님은 마5:39-44절에서 당시 사람들이 상상할 수도 없는 파격적인 선언을 하셨습니다.
(마 5:40)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마 5:41)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마 5:42)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마 5: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마 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1) 악한 자를 대적치 말며 그들이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 뺨도 돌려대라”
2) 악한 자가 너에게 재판을 걸어 속옷을 빼앗고자 하면 겉옷까지 주어라
3) 그가 억지로 오리를 동행하자고 하면 십리를 동행해주어라
4)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고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5)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

이러한 예수님의 주장은 당시 사람들에게 도무지 이해될 리가 없었습니다. 그들의 오래된 전통과 관습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들이 신성시하는 율법적 사고방식으로 보면 그것은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지 정상적인 생각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은 밀알 정신이 실천할 수 없는 일들입니다.

특히 마 5:40절에서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라고 했습니다. 본문은 우리에게 어떤 의문을 제공합니다. 왜 사람이 속옷을 달라고 할까?
속옷은 재산 가치도 없습니다. 그리고 남의 속옷을 빼앗아 입을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어처구니 없는 일을 만나는 것” 입니다.
기가 막힐 일을 당하여 말문이 닫힐 때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나가는 젊은 여성에게 “아가씨 핀티나 브라자를 벗어주시오” 라고 요청했다고 봅시다. 아마 그 젊은 여성은 완전히 기가 막혀 말을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을 완전히 맛이 간 사람으로 보겠지요?
그러기에 속옷을 달라거든 겉옷을 주라는 이야기는 기막히고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해도 선행을 실천하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꾸어간 돈을 받으러 채무자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그 집이 얼마나 가난한지 당장 먹을 쌀도 없어서 굶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불쌍해서 돈 받으러 갔다가 오히려 쌀을 사주고 왔다는 이야기를 언젠가 어느 분에게서 들은 기억이 납니다.
그의 아내는 그를 정신 나간 사람이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정신 나간 사람이니까 돈 받으러가서 돈은 고사하고 그 집에 쌀을 사 주고 온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정신 나간 선행은 하나님께 기억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때로 우리 인생에 있어서 엉뚱한 친절과 정신나간 선행을 실천해 봅시다.

성경은 이렇게 밀알 정신으로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① 예수님께 옥합을 깨트렸던 여인(막14:3-9)
예수님께 향유가 가득 담긴 옥합을 가지고 와서 향유를 예수님이 발에 부었던 여인이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그 여인을 정신 나간 여인이라고 입방아를 찧어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여인의 마음을 헤아렸습니다.

② 마지막 양식으로 엘리사를 공궤한 사르밧 과부 (왕상17:10-16)
3년 6개월의 가뭄이 계속되었습니다. 한 웅큼의 식량이 남았습니다.
그런데 배고픈 사람이 와서 도와달라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빵을 만들어 자신에게 주고 나머지를 먹으라는 것입니다. 여인은 말없이 빵을 구웠습니다. 그리고 한 주먹도 안되는 빵 전부를 배고픈 그 사람에게 주었습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 었습니다. 이 여인의 정신나간 친절은 하나님께 기억함이 되었습니다. 가뭄이 끝날 때까지 가루 통에서 밀가루가 계속 나왔습니다.

③ 오병이어를 예수님께 제공한 한 아이 (요6:9)
5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주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벳세다 들녁에 모였습니다. 그들은 당시의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누군가 그들에게 양식을 주어야 했습니다. 제자들은 계산만 하고 있었습니다. 이 많은 사람들이 먹을려면 2백 데나리온의 돈은 있어야 하고 그랬다 하더라고 어디 가서 그 많은 빵을 사온단 말인가?
그런데 어떤 정신 나간 아이가 있었습니다.
자신이 먹으려고 준비해 온 구운 생선 두 마리 와 보리떡 다섯 개를 내 놓은 것입니다.
주님의 손에서 그것은 5천명을 먹이고도 12광주리 남게 거두는 기적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때로 우리 인생에서 밀알 정신을 실천해 봅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엉뚱한 친절과 선행이 무엇이 있을 까요?
1) 갑자기 양동이에 물을 퍼다가 아무도 청소하지 않는 아파트의 계단을 열심히 닦는다.
2) 차를 몰고 가다가 상대편이 잘못하여 충돌할 뻔했는데 이 때 웃으면서 괜찮다고 손을 흔들며 인사한다.
3) 갑자기 빗자루를 들고 아무도 쓸지 않는 동네의 거리를 쓸고 쓰레기를 치운다.
4) 가난한 사람의 집에 쌀가게를 시켜서 쌀을 배달하게 한다.
5) 시내 버스 타는 곳까지만 태워다 달라고 하는데 자신의 자가용으로 집까지 태워다 준다.
6) 아파트의 주차장에서 자기 차를 닦으면서 옆에 있는 차까지 깨끗이 세차해준다.
7) 목욕탕에서 옆 사람에게 등을 밀어주어도 괜찮겠느냐고 물어본다.
8) 길에서 만나는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웃으면서 먼저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건넨다.
9) 택시를 탔는데 몇 백 원의 거스름돈은 팁이라고 말하며 그냥 두라고 한다.

주님은 이 같은 정신 나간 것 같은 밀알 정신에 대해 마 5:48절에서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라고 말씀했습니다.
즉 이러한 “희생과 헌신, 양보와 베품의 밀알 정신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하게 되는 것이라는 것 ” 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타인을 위해 거룩한 손해를 감수하고 양보하고 베푸는 밀알정신은 우리를 온전케 하고 주님을 닮는 것입니다. 주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 합시다. 세상의 가치관을 뛰어넘는 생각으로 때로 조금은 엉뚱하고 조금은 지나치다는 소리를 들을지 몰라도 심지어 정신 나간 사람이라는 소리 들어도 이 말씀을 실천해봅시다.

한 알의 밀이 썩어지면 없어지지 않습니다.
반드시 싹이 나게 하십니다. 그래서 수백 배의 열매와 결실을 더 나은 것으로 더 좋은 것으로 거두게하실 것입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교회는 밀알 정신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져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실 뿐 아니라 많은 열매들을 맺게 될 것입니다.
(박재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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