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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종류의 사람 (고전 2: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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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종류의 사람 (고전 2:14-3:2)


현재 이 세상에는 60억이 넘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을 우리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인종적으로는 백인종, 황인종, 흑인종으로 구분합니다. 이런 구분은 노아 시대 이후에 기후와 문화와 환경의 여건에 따라 달라지게 되었다고 봅니다. 이런 구분으로 각 인종은 나름대로의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며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학생 때의 교과서에 의하면 사람들을 3가지로 분류합니다. 난사람, 든 사람, 된 사람입니다. 된 사람은 그 사람의 인격과 성품이 인정받을만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난사람은 보통 평범한 사람보다 뛰어나 유명하여 이름을 널리 알린 사람을 말합니다. 그리고 든 사람은 교양을 갖춘 사람으로 풍부한 지식과 경험을 갖춘 사람을 가리킵니다. 이 세 사람가운데 인간으로서 필요한 모습은 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유명해지는 것보다, 머리에 많은 지식을 쌓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사람됨이라는 것입니다.

밥콘이란 사람은 사람을 이렇게 구분했습니다. 거미와 같은 사람, 개미와 같은 사람, 그리고 꿀벌과 같은 사람입니다. 세상에는 거미와 같이 남을 이용해서 사는 사람이 있고, 개미와 같이 일은 열심히 하지만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꿀벌과 같이 끊임없이 날라서 자기도 살고 남도 살게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관점에서는 사람을 어떻게 구분할까요? 그들의 기준은 두 가지입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입니다. 할례를 받은 사람과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이것은 유대인의 우월 의식과 특권의식이 강하게 내포된 구분입니다. 지금도 물론 그렇지만, 옛날에는 더욱 그것이 심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이 아니면 모두 이방인이었고, 이방인은 사람이 아닌 동물처럼 취급했습니다. 그래서 바울 시대에는 유대인들이 주님을 믿기가 매우 어려웠고, 그들의 우월의식과 고정관념이 복음을 전하는데 방해가 되었습니다. 베드로와 같은 사람도 이것을 깨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주님을 믿지 않고, 예수님을 메시야로 받아드리지 않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여러 관점에서 사람을 구분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성경은 사람을 어떻게 분류할까요? 본문은 바로 그것을 알려줍니다. 오늘 우리가 이것을 유의하여 보려고 합니다. 그것을 통해 나의 모습을 조명해 보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사람의 구분은 크게 3가지로 나타납니다.

우선, 육에 속한 사람입니다. 14절에서 이것을 잘 알려줍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한마디로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아직까지 거듭나지 않은 사람이요, 중생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자연인을 말하고, 주님을 알지 못하다가 인생을 마치는 사람입니다. 세상에 이런 사람이 얼마나 많은 지 모릅니다. 지금 세계 60억 인구 가운데 기독교인의 숫자가 약 20억 정도 됩니다. 전체 인구의 30%가 넘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카톨릭과 다른 종파를 모두 포함한 숫자입니다. 이것을 보면 기독교가 어떤 종교보다도 차지하는 비중이 높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3분의 2에 해당되는 사람들은 믿는 않습니다. 여기에는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도 있고 종교가 없는 사람도 많습니다. 성경은 이런 사람을 육에 속한 사람, 믿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이들은 우리가 관심을 갖고 보아야 하고, 전도할 대상들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늘 관심을 갖고 돌아보아야 할 사람들입니다.

육에 속한 사람의 특징이 무엇일까요? 본문은 그것을 한마디로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이 살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바로 깨달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깨닫는 존재입니다. 결국 인간은 깨달음을 통해 자기 성장과 발전을 이루는 것입니다. 아이가 점점 깨달아야 어른이 되는 것입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점점 깨달아야 철이 드는 것입니다. 인간 됨의 회복은 깨달음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성경의 위대한 사람은 모두 깨달음의 사람입니다. 깨달음이 신앙과 삶에 너무도 중요함을 가르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처럼 중요한 깨달음은 하나님이 역사 해야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도 성령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깨닫지 못합니다. 아무리 풍성한 지식을 가진 사람도 안됩니다. 아무리 무식한 사람도 성령이 도우시면 깨닫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 깨닫지 못하면 어리석은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무분별하고, 맹목적이고,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될 모습이 나오고, 인간임을 포기하는 행동들이 나옵니다. 이런 모습을 우리는 주변에서 관찰할 수 있고,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많이 발견합니다.

지난 7월 7일에 런던에서 폭발사고 있었습니다. 이 테러로 무수한 생명을 앗아갔습니다. 공식적으로 700명이 넘는 사상자를 내었습니다. 죽은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제가 런던에서 살다와서 그런지 더욱 안타까운 마음을 갖습니다. 혹 아는 사람이 다치지는 않았을까 걱정이 되어 영국으로 전화를 하는데 잘 연결이 되지 않습니다. 이번에 폭발사고가 난 곳 중에 하나가 킹스크로스역입니다. 바로 그 근처에 제가 섬기던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 역은 런던의 여러 개의 노선이 교차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더 많은 피해가 났을 것입니다. 영국은 공식적으로 이번 사건의 배후를 알 카에다로 지목했습니다. 그들은 미국을 공격했던 사람들입니다. 물불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이요, 맹목적인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이런 행동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왜 그들은 죄 없고, 힘없는 서민들을 이렇게 죽이는 것일까요? 너무 잔인하고 야비하지 않습니까? 어쩌면 이것이 육에 속한 사람의 가장 나쁜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성령이 없습니다. 그들은 다른 영의 인도를 받습니다. 살리는 영이 아니라 죽이는 영입니다. 그들에게는 깨달음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행동이 나옵니다. 그것으로 자기를 죽이고 많은 사람을 죽이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육신에 속한 사람입니다. 3장 1절과 2절에서 이것을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육신에 속한 사람은 육에 속한 사람과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이 사람은 이미 주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주님을 영접하여 주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은혜를 아는 사람이요, 이미 거듭난 사람입니다.

육신에 속한 사람도 특징이 있습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그 특징을 어린아이와 같다고 말합니다. 주님을 영접하여 성령이 내 안에 들어오시긴 했지만 아직까지 어린아이와 같이 성숙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들은 이제 막 태어난 생명체와 같은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보다 조금 성장해서 이제 돌을 지나고, 걸음마를 하는 단계의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보다 조금 더 자라서 이제 말도 하고, 재롱도 피우고, 자기의사를 표현할 줄 아는 단계도 있습니다. 이 모두를 어린아이라 하고, 또한 이것이 육신에 속한 자의 특징입니다. 지금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초점을 맞추는 사람들이 바로 여기에 해당되는 사람들입니다. 2절에서 바울은 이들을 젖을 먹는 자라고 강조합니다. 이제 밥을 먹어야 하는데 어린아이기에 젖을 먹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만큼 아직까지 그리스도안에서 어린아이라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물론 아이가 순수하고 깨끗하지만, 가만히 보면 어린아이의 약점이 있습니다.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자기밖에 모른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깊이 생각하거나 올바르게 판단할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가만히 보십시오. 아이는 시도 때도 없이 웁니다. 그런데 그 우는 것을 가만히 보면 모두 자기 좀 봐달라는 것입니다. 지금 배고프다는 것이고, 불편하다는 것이고, 놀아달라는 것이고, 딴 생각하지 말고 나만 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되지 않을 때, 여지없이 웁니다. 물론 이렇게 자기의사를 표시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자기밖에 모르는 행동에서 오는 모습입니다. 아이가 엄마 생각하고 우는 것 보았습니까? 지금 엄마가 몹시 피곤해서 잠을 자야 하는데 아이가 그런 엄마를 생각하고 울지 않는 것을 보았습니까? 아이가 밤에 울면 대책이 없습니다. 다 일어나야 합니다. 한 두 번은 봐주는데 자꾸 그러면 나중에는 때려주고 싶을 때가 생길 정도입니다. 이게 어린아이입니다. 갓난아이는 자기밖에 모릅니다.

그리고 또 보십시오. 아이는 사색이나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삶의 의미나 목표를 가질 수가 없습니다. 그런 것은 커서 가능한 것입니다. 여러분 아이가 인생에 대해 고민하는 것 보았습니까? “아! 나는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인생이 왜 이렇게 고달픈가, 어떻게 해야 돈을 벌어 성공할 것인가” 그런 고민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이상한 아이일 것입니다. 아이는 그저 아이입니다. 아이처럼 살면 됩니다. 요즘 아이들의 정신연령이 높아서 유치원에 들어가면서 자기가 결혼할 친구를 결정한다고 합니다. 그 나이에 질투도 하고 좋아하는 친구의 이야기만 나오면 어른처럼 얼굴이 빨게 집니다. 그러나 그것은 감정입니다. 생각은 아닙니다. 생각과 의미는 어른이 되어야 합니다. 어른이 되어야 인생을 생각하고, 삶의 의미를 찾고, 방향을 정하고, 고민하고,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입니다.

신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육신에 속한 자가 바로 이런 사람입니다. 주님을 영접하여 성령이 계시지만, 아직까지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그래서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이 나타납니다. 고린도 교회에도 그런 현상이 있었습니다. 그들 사이에 분쟁과 시기가 있었습니다. 남을 배려하지 않고 자기밖에 모르는 편협한 삶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깊은 생각을 하지 않았고, 폭넓게 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교회를 세운 이유가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서 바울이 지금 편지를 쓰는 것입니다.

셋째, 영에 속한 사람입니다. 15절과 16절에서 이것을 알려줍니다. 신령한 자가 바로 영에 속한 사람입니다. 영에 속한 사람은 그야말로 성숙한 사람입니다. 신앙의 사람이요, 하나님의 사람이요, 깊은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여기에서 세 가지를 말씀합니다. 우선, 15절을 보십시오.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이 말이 무슨 뜻입니까?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깊이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잘 분별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특징은 16절에서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 주를 가르치겠느냐” 라고 반문하는데, 이 말은 무슨 뜻입니까? 여기에서 ‘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신령한 자는 뭔가를 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깨달음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주의 마음을, 그의 사랑을,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잘 깨달아 인생을 후회 없이 살도록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특징은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고 말합니다. 영에 속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자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이 어떤 마음입니까? 주님은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매고 내게 배우라” 주님의 마음은 온유와 겸손입니다. 이 마음은 한마디로 남을 배려하는 마음입니다. 왜냐하면 온유와 겸손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분명히 밝혀지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에 속한 사람의 특징입니다. 깨달음이 있고, 남을 배려하고, 깊이 있게 사는 사람입니다. 육에 속한 사람과 육신에 속한 사람의 약점을 모두 보안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우리가운데 육에 속한 사람은 없으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육신에 속한 자라면 이제 영에 속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것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찌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엡4:13-15)

이제 우리 모두 영에 속한 사람, 성숙한 사람으로서 커다란 깨달음을 갖고, 이기심을 버리고, 깊은 사람으로 사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서 해 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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