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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에 이르도록 하는 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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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은유 작성일19-07-29 21:46 조회1,85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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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에 이르도록 하는 회개



회개는 우리 신앙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주제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면서 외친 첫소리가 바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3;2).”였습니다. 예수님도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 올라오신 후 처음으로 하신 말씀이 바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4:17).”였습니다. 사도 베드로도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첫 오순절에 복음을 전할 때 사람들이 마음의 찔림을 받아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물었을 때, 이렇게 대답합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2:38).” 사도 요한도 요한계시록 3장 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悔改)하라 만일(萬一)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盜賊)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臨)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회개는 사람들이 주님을 만나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첫 번째 반응입니다. 회개는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서게 합니다. 회개는 하나님 나라를 향해 가는 성도의 신앙 여정에 건너뛸 수 없는 과정입니다. 회개는 우리는 모두가 다 죄인임을 고백하고 가던 길에서 돌아서는 것입니다. 삶의 대전환을 말하는 것이 아닌, 생각의 대전환입니다. 우리가 가던 길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 모든 사람들은 다 이제까지 가던 죄의 길에서 돌아서서 새로운 길, 새롭고 산길이신 예수에게로 가서 예수와 함께 동행하는 길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가르치는 회개는 과연 어떤 회개인가 한번 알아보도록하겠습니다.  ㅡ> 첫번째, 회개하기 전에 인간의 마음 속에서는 근심이 나오도록 되어 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 승천 후 첫 오순절날 많은 무리들이 모인 앞에 복음을 전 할 때에 그 복음을 들었던 사람들에게서 이러한 반응이 나왔습니다. 행전 2:36-27 베드로는 이렇게 말을 합니다.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찌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했습니다. 그러자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말하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했다고 했습니다.  ㅡ> 먼저 그 사람들은 반응하기를 마음에 찔림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그들은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는 근심을 했었습니다. ㅡ> 이러한 근심, 매우 좋은 근심입니다. 인생이 살면서 근심 없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 근심 중에는 사람을 살리게 하는 근심이 있고, 반면에 사람을 죽이게 하는 근심이 있습니다.  ㅡ> 그래서 고린도후서 7:10절에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後悔)할 것이 없는 구원(救援)에 이르게 하는 회개(悔改)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世上) 근심은 사망(死亡)을 이룬다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회개를 매우 싫어하거나 부담 스러워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왜 그럴까요? 먼저 회개하라는 그 말 속에는 더 이상 죄를 지어서는 안된다는 경고가 들어 있다고 생각하기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회개하면 그동안 세상에서 누려왔던 모든 세속적인 것을 다 끊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들이 있어서 회개하라는 구령이나 가르침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런 분위기를 만든 원인들은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요? 그 원인은 몇몇 무지한 교인들에게 먼저 있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회개가 무엇인가를 재대로 파악하지 못한 무지한 교인들이 전도한다는 명분을 앞세우며 너무나 무책임하게 난발했던 회개의 촉구가 그동안 옳지 못했던 회개를 전파한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정한 회개를 하나님의 마음에서 보면 과연 어떤 회개일까요? 로마서2장4절을 보면 이러한 말씀이 나옵니다. "혹(或) 네가 하나님의 인자(仁慈)하심이 너를 인도(引導)하여 회개(悔改)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仁慈)하심과 용납(容納)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豊盛)함을 멸시(蔑視)하느뇨



성경이 가리키는 회개란 항상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수반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의 인도 방식으로 전도자는 회개를 권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회개를  권면하면 그 회개를 권면받은 사람은 백인백중 모두가 다 근심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때에 회개를 선언하는 전도자가 그들을 사망에 이르게 하는 근심을 하도록 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그렇게 하려면 차라리 회개하라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좋습니다.



좀더 쉽게 말씀 드리면 무슨 말입니까? 회개 할 것을 말 할때에는 그 회개해야 할 사람의 연약한 육신의 잘못이나 약점을 잡아서 회개 할 것을 촉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차피 인간은 다 죄인입니다. 그러한 죄인에게 '당신! 더 이상의 죄를 짓지말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자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보다는 차라리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의 약하심을 아십니다. 그래서 당신의 죄를 다 덮어주시려고 하십니다. 그러니 우리 참 좋으신 하나님을 만나봅시다 하며 부드러운 접근으로 다가가는 것이 지극히 성경적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인간은 누구나 어두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가뜩이나 그 어두움에 사로잡혀 갈바를 알지 못하고, 살았다 하나 실상은 죽은 자들의 삶을 사는 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 하나님의 사람사랑하심을 전하기 보다는 그 사람의 죄성을 들추어내며 그것들을 고치라고 하거나 정리해야 한다는 식의 회개의 촉구는 분명 성경이 가르치는 그런 회개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입니다.



'회개 하라!'는 구령의 촉구는 받는 자의 입장에서는 분명 달갑기 보다는 불쾌할 수 있습니다. 그 불쾌 할 수 있는 회개의 촉구를 무분별하게 난발한다면 아마도 그 회개로 인해 얻어내는 효과는 매우 빈약하고 적을 것입니다.  ㅡ>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나가는 회개의 촉구는 많은 사람들에게 불퀘감을 주기 보다는 안심을 주고, 거부감 보다는 반가운 소식으로 들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회개는 결국에는 '모든 인생들아 구원을 받으라!' 하는 것입니다.



모든 인생은 누구나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필수적으로 해야 할 과제가 회개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래서 '어찌할꼬...' 하는 근심이 나오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러나 그 근심은 행복한 근심이 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교인 하나를 얻으려 하다가 그 회개의 촉구를 잘 못해서 그 사람을 더욱더 복음과 멀어지게 한다면 그 책임은 분명히 전도자에게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회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모든 인생을 인도하시는 것임을 알게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결코 회개는 더 이상 죄를 짖고 안 짖고의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그 인자하심에서 나오는 인도, 그리고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의 그 잔치집과 같은 곳으로 돌아오도록 하는 현명한 회개의 구령은 이 각박하고 살벌한 시대에 더욱더 필요하고 또 성경적으로 보아도 참 된 회개의 촉구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제 자리에 머물러서 자기 잘 못 때문에 벌벌 떨고 있거나, 자기 잘 못을 인정하며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자살할 궁리만을 모색 하는 것, 이것 회개 아닙니다. 지난날의 자기 잘 못을 누군가에게 낱낱히 토해내는 것도 역시 회개 아닙니다.(이런 억지는 이단 중에 이단이라고 하는 어떤교파의 방법입니다?) 두번 다시는 죄짖지 않겠다는 다짐에 다짐을 하는 것 역시 회개 아닙니다. 탕자가 더 이상 탕자 짓 하지 않는 것 이 역시도 회개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시라는 회개는 그런 회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인 진정한 회개 입니까? 그것은 한마디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지금의 그 모습 그대로를 갖고 하나님에게로 돌아가는 것이 회개입니다. 그 모습 그대로가 중요합니다. 탕자는 탕자의 모습 그대로 돌아가고, 창기는 창기모습 그대로 돌아가는 것이 회개입니다. 부산에 가면 여인들이 몸을 파는 촌락이 있는데 그곳을 완월동이라고 합니다. 그 한 복판에는 감사하게도 십자가를 높이 세운 교회가 있다고 합니다. 그럼 그곳에 누가 교회를 세운 것입니까? 하나님이 세운 것입니다!



그곳에서 궂이 몸을 팔아야만 목숨을 연명한다는그 여인들의 핑계 아닌 핑계를 선악으로 논박하는 것, 이것이 바른 회개의 시도입니까?  아니지요? 몸을 파는 그 여인들이 그 촌락 중심에 있는 교회 안으로 주일 날 지친 몸을 이끌고 라도 들어가는 것, 이게 바로 '회개'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회개는 그 어떤 사람에게도 무한가능성입니다? 제재 받아야 할 회개의 요소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냥 그들이 그 교회안으로 들어가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 이것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그런 그녀들이 그 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고 돌아와 더 이상 몸을 파는 일을 하지 않아야 하는 것, 이 역시 회개 아닙니다. 그녀들이 그 다음주에도 그 교회를 들어가고, 또 그 다음주에도 그 교회를 들어가고, 그렇게 계속해서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만 바라보는 것 이것이 진정한 회개라는 것입니다.



회개하여 우리보다 먼저 돌아간 사람들이 사는 곳은 하나님 아버지 집입니다. 그곳은 하늘나라입니다. 회개한 사람들, 그들 중에 그 누구도 이 땅에서 자신의 더러운 죄를 자기 스스로 씻고 하늘나라로 들어간 사람은 없습니다.  사실상 이 땅에서 죄를 씻을 만한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습니다. 아무 죄 없고, 아무 더러운 티끌하나 없는 그 아버지로만 씻을 수 있습니다? 그것도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만 씻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 모든 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회개하는 것'입니다. 회개의 원리나 방법은 '오직 예수뿐'입니다. 예수라는 물로만 씻을 수 있습니다. 그분으로 씻은 이들이 그 모습 그대로 지성소를 드나드는 것입니다. 그 예수로 말미암아 깨끗해진 사람들이 그 지성소를 드나들면서 꼴을 얻어먹는 것입니다.



끝으로 회개는 누가 합니까? 회개의 몫은 어떤 이의 것입니까? 회개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몫입니다. 눅15:21 " 21,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罪)를 얻었사오니 지금(只今)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堪當)치 못하겠나이다 하나 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第一)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아버지께로 돌아간 아들은 그 아버지께 자신을 아들로 봐주지 말아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말을 하나 아버지는 아니었습니다.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았다 하며, 잃었다가 다시 찾았다 합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으로 돌아간 (회개한) 이들이 받는 은혜입니다.


이토록 하나님 아버지의 인자하심이 누구든지 그 어떤 죄인이든지 회개 하기만(돌아오기만)을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초교파십자가복음전도연합회 - 김진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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