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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이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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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은유 작성일19-07-24 19:49 조회1,44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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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이들인가?                                               

/ 출처 :  / 초교파 십자가 복음 전도 엽합회 - 김진호 목사

본문 : 마태복음 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은 크리스티니아노스 라고 하는 헬라어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이 뜻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말 그대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따라 다니는 사람입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가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야 하는 운명을 지닌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께서 불러낸 사람들입니다. 수많은 세상 사람들 가운데서 구별되이 불러진 사람들입니다. 왜 불러 낸 것입니까? 그리스도를 따르라고 블러 낸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의 관계는 마치 목자와 양의 관계입니다. 그런데 그 목자와 양의 관계는 그냥 아무런 의식없이 맺어진 그런 관계가 아닙니다. 양은 양의 특성상 분명히 목자의 음성만 구별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목자만을 따르도록 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 10: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우리의 목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십니까? 어떤 목자로서 우리에게 와서 우리를 불러내신 것입니까? 주님은 또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요10:10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 목자가 되시는 우리 주님은 참 좋으신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들의 각 개인의 이름을 불러내시는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고 오셨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찬양 합니다!

우리의 그리스도이신 주님은 허투로 말씀 하시는 분이 절대 아니십니다. 주님은 그 말씀하신 것을 다 이루시고, 또 말씀 하신 대로 성취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그 말씀하신 대로 양들을 위해 목숨까지 버리신 분이십니다. 주님은 이 사실을 이미 이렇게 말씀 하셨었습니다. "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이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목자와 양의 관계는 서로 잘 아는 관계입니다. 양은 자신을 이끄시는 목자가 선한 목자 이신 것을 알고 있고, 또 목자는 그 양을 위하여 목숨까지도 버리는 자신을 이미 알고 있는 그런 관계인 것입니다.

목자와 양의 관계는 이와같이 서로를 너무나 잘 알고 이해하는 그런 친밀한 관계인 것입니다. 이게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가를 잘 아는 것입니다. 그분은 나를 위해 목숨까지 내어주신 분이시다는 것을 잘 아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시대 그러한 목자의 부르심의 초청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목숨까지 내어주신 그 주님의 초청을 받고 그 주님의 양들이 다 된 것입니다. 그 양들은 이러한 주님께 찬양과 경배를 올려드립니다. 감사함의 노래를 불러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자 되시는 그리스도는 또 이러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요10:9) 예수 그리스도는 양들이 들어가야 할 구원의 문이 되십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의 양들은 오직 예수 안으로만 들어가며 나오는 그러한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그분이 아닌, 이상하게 다른대로 넘어가는 자를 따르거나 다른 길로 인도하는 자를 따르는 양들이 있다면 그 양은 우리주님의 양이 아닌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양들은 다른대로 넘어가는 자를 따르거나 다른 길로 인도 하는 그런 무지한 자를 함부러 따를 수 없습니다. 이는 다시 말해 오직 우리의 문이 되시는 그 예수로만 들어 가는 길 외에는 다른 길로 가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 문은 오직 예수의 십자가 공로만 믿는 자들이 은혜를 얻어서 들어가는 문입니다. 예수의 공로 외에 다른 것을 더하거나 빼면 결코 우리 주님의 문으로는 들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문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려 하는 자들은 다 절도며 강도일 뿐입니다. 소경이며, 소경들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그분으로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는 양들이 어떻게 그 문의 되시고 양의 목자 되시는 우리 예수님으로부터 어떤 인도를 받는 가 한번 보겠습니다. 우리 주님은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자기 양을 다 내어 놓은 후에 그 양을 앞서서 가신다고요. 요10:4절입니다. " 자기 양을 다 내어 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고로 따라 오되"

주님은 자기 양을 다 내어 놓고 앞서가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면 그 주님에게 속한 양들은 다 주님을 따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의 주님은 우리를 이미 앞서 가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어디까지 앞서 가신 분이십니까? 히브리서6:19-20절에서 이렇게 기록 합니다.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

지금 하나님의 말씀이 어디까지 가셨다고 하시는 것입니까? 천국 까지 들어 가셨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당신의 양 앞에서 앞서가시더니 저 천국으로까지 들어가신 것입니다. 양을 위협하는 모든 사나운 짐승들을 물리치시고, 그 험하고 거친 길도 마다하지 않으시더니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으로 우리를 인도하신 것입니다. 그곳이 어디입니까? 그곳은 바로 우리 주님이 통치하시고 주관하시는 천국입니다. 그 안전지대 안으로 그 풍족한 곳 안으로 우리를 인도 해 들이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그 분을 따라 그 지성소 안, 즉 천국 안까지 따라 들어 와 있는 줄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우리의 목자 되시는 그리스도를 재대로 따라 나서지 않는 양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 것입니까? 가장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원인은 그들은 사실상 그리스도의 양들이 아니이기에 그러한 것입니다. 양은 양의 특성상 자기 목자의 음성이 아니면 따라가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 주님이 먼저 인정 했습니다.  "요10:26"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그렇다면 주님의 양은 어떤 양들이라는 것입니까? 주님의 음성을 따라 가는 양들입니다. 그 양들은 주님이 가시밭길로 인도해도 무조건 따라 갑니다 돌짝 밭으로 인도해도 무조건 따라갑니다. 혹 가다가 가시에 찔려도 울면서라도 따라갑니다. 돌짝 밭에 돋아난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도 역시 울면서라도 따라갑니다. 왜 그렇게 하는 지 아십니까? 먼저는 그분만이 그 양들의 목자이기에 그런 것입니다. 그분의 음성만이 자신들의 목자의 음성임을 그들은 알기에 그렇게 따라 가는 것입니다. 이미 익숙해져 있는 그 목자의 향취가 앞서 가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그 양들을 선별해 주었던 것입니다. 그 말씀이 증거하는 곳이 바로 에베소서 1:4절입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이러한 양의 따름의 법칙을 가장 잘 이해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다윗'입니다. 그가 노래하며 지은 시중에 우리가 너무나 익히 잘 알고 있는 시, 유명한 시편 23절을 인용해서 잠시 은혜의 말씀을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가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다 했습니다. 비록 그 여호와가 가시 밭길로 가고 있고, 돌짝밭으로 인도 하신다 해도 그분이 내 목자이시니 나는 아무 불평이나 염려 가 없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러한 영성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누구보다도 주위의 압제와 위협을 가장 많이 당했던 선지자였습니다. 그런 그가 이런 놀라운 시를 쓴 것입니다. 다윗은 그 고난 가운데서도 알고 있었습니다. 무엇을 알고 있었던 것인가요? 그것은 목자를 안 것입니다. 요한복은 10:27절의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른다는 그 주님을 재대로 안것입니다. 다윗은 자기가 신뢰하는 그 목자는 선한 목자인 것을 알았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하신 그 목자를 재대로 알고 믿고 따랐기에 이런 멋진 시를 쓸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믿음으로 그 주님의 선하시고, 그러나 확신에 찬 음성을 들은 것입니다. 오늘 은헤의 동산에 함께 하신 여러분 모두도 그 다윗이 들었던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으시기를 소원합니다.

보세요! 다윗은 확신에 찬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다윗, 그는 조금만 이 고난의 여정을 참아내면 분명히 선하신 목자께서 자신을 쉴만한 물가와 푸른 초장으로 인도해 주실 것을 믿은 것입니다. 자신이 자신을 일컬어서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한 그 목자 되시는 여호와의 말씀을 믿은 것입니다 그 대목이 어디입니까?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23장3절) 했던 그의 멋진 신앙 고백이였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받는 고난이 문제 되지 않음을 알았습니다. 자기의 목자 되시는, 그 여호와는, 분명히 자신의 그 패리한 영혼을 소생 시킬 것이고, 또 그 여호와 자신의 이름에 걸린 그 명예로 인하여 자기를 의로운 길로 인도 할 것이란 사실을 믿은 것입니다. 믿음은 양이 양 자신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양이 목자를 믿는 것입니다.

비록 지금의 이 길이, 지금은 비록 거칠고 험난한 고난의 길이기에 조금은 힘들다 하여도 자신의 선한 목자 되시는 여호와는 이 지친 영혼을 소생시키실 것이고, 또 당신의 명예를 위해 그분이 스스로 마련하고 제공해 주시는 그 '의의 길'로 인도 받게 될 것이라는 그런 믿음을 다윗은 가짐으로 인해 시편 23편 과 같은 멋진 신앙의 시가 탄생이 된 것입니다. .

다윗은 자신이 혼자서 그길을 가는 것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자신이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간다고 하여도 해를 받는 것을 두려 워 할 이유가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 이유는 오직 하나입니다. 주께서 그 다윗과 함께 해 주신다는 것을 믿은 그 믿음 때문이였습니다. 다윗은 주님이 자신을 위해 지팡이를 사용 하실 것이고, 주님의 막대기로 교훈 하실 것을 믿은 것입니다. 그 믿음의 고백이 4절,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다윗을 집어 삼키려 햇던 그 모든 사단의 세력들 사울왕, 그리고 그의 아들 압살롬에게 나타난 마귀의 농간에도 굴하지 않는 다윗은 승리의 노래를 부릅니다. 어떤 노래였습니까?  5절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입니다.

다윗은 이미 이긴 노래를 불렀습니다. 주께서 싸워 이겨 주시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미 기름으로 자신에 머리를 발라 주신 그 성령의 능력을 힘입고, 다 이긴 노래를 미리 불러냈던 것입니다. 원수가 보는 눈 앞에서 주로 말미암아 상을 받는 다윗, 승리를 축하 하는 그 잔이 넘치는 그 감격을 다윗은 이미 이겨버린 승리의 찬가로 불러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주님은 자기 양을 결코 버리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양이 패리하다고 버리시지 않습니다. 양이 병들었다고 버리시지 않습니다. 양이 곁길로 갔다고 그냥 버려 두시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양을 위하여 목숨까지 버리신 분이 우리 주님이십니다. 그분이 살아서 지금도 우리의 목자가 되셔서 양을 위하십니다. 양을 돌보시고 지금도 인도하시고, 지키시고, 쉴만한 물가와 푸른 초장을 얻을 수 있도록 해 주시는 것입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십시오!

요6:37-39에서 우리의 목자 되시는 예수님은 말씀 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者)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者)는 내가 결(決)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  6:38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뜻을 행(行)하려 함이 아니요  6: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行)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者) 중(中)에 내가 하나도 잃어 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그렇습니다. 주님은 자기 양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으십니다. 혹 잃어 버리셨다 하여도 다시 찾고야 마시는 분이십니다. 이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이사야53장6절에 "우리는 다 양(羊) 같아서 그릇 행(行)하며 각기(各其)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罪惡)을 그(예수 그리스도)에게 담당(擔當)시키셨도다" 할렐루야!

주님도 또 이러한 말씀 하셨습니다.  "너희 중(中)에 어느 사람이 양(羊) 일백(一百) 마리가 있는데 그 중(中)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 다니지 아니하느냐  15:5 또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15:6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羊)을 찾았노라 하리라"  바로 이 분이 우리의 목자 되시는 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옛날 다윗이 노래 불렀던 다윗의 목자이자, 지금 이 아름다운 은혜의 동산에서 동일한 은혜를 힘입는 우리들에게 나타나신 우리의 목자, 이분이 바로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전적으로 그리스도를 신뢰 하는 자들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을 신뢰하는 가운데 살며 기동하며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를 붙잡은 것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을 붙잡고 계시는 분은 그리스도인이 자신들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홀로 붙들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감히 어떻게 그리스도를 붙듭니까? 우리가 잠시 그분을 붙든다 하여도 우리의 힘은, 우리의 압력은 한계가 있을 뿐입니다. 그리스도가 전적으로 우리를 붙들어 주셔야만 우리가 온전히 붙잡힌 바 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시편 73:23 에서 시편기자가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내가 항상(恒常) 주(主)와 함께하니 주(主)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그 안전하고 크신 오른 손에 우리가 붙들린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붙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이 연약한 손을 친히 붙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 옛날 이사야 선지자를 찾아가서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하신 그 하나님이 오늘 이 시간 은혜의 동산에서 하나님의 은혜만을 바라는 우리들의 손도 붙들어 주시면서 동일한 말씀으로 우리를 위로 하시고 힘 주시고 계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그러한 주님을 믿고 신뢰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그 주님을 끝까지 믿는 가운데 실족하지 않고 따르는 방법은 과연 어떤 방법이겠습니까?

우리의 새로운 마음의 다짐입니까? 우리의 새롭게 고쳐 먹은 생각 입니까? 미안하지만 그것도 아닙니다. 오직 우리는 우리 영혼을 소생 시키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우리는 순종하고 또 새로워 져야 하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시편 139편7-12절 까지를 찾아 상고해 보고, 또 약간 그 뜻을 해석해 보고 오늘 예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구약성경 902페이지입니다.

내가 주(主)의 신(神)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主)의 앞에서 어디로 피(避)하리이까  139:8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139:9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居)할지라도 139:10 곧 거기서도 주(主)의 손이 나를 인도(引導)하시며 주(主)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139:11 내가 혹시(或時) 말하기를 흑암(黑暗)이 정녕(丁寧) 나를 덮고 나를 두른 빛은 밤이 되리라 할지라도 139:12 주(主)에게서는 흑암(黑暗)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취나니 주(主)에게는 흑암(黑暗)과 빛이 일반(一般)이니이다"

무슨 해석입니까? 주님의 손에 붙들린 우리들은 어디를 가도 안전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갖는 자들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우리가 하늘에 올라가 있어도 주님은 거기서 우리를 붙들고 계시고, 음부에 내려가 자리를 펴고 앉아 있어도 우리 주님은 거기서도 우리를 붙들고 계신다는 믿음을 갖는 자들, 이들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고 11절에서 부터 다시 읽어 보십시다! "내가 혹시(或時) 말하기를 흑암(黑暗)이 정녕(丁寧) 나를 덮고 나를 두른 빛은 밤이 되리라 할지라도 139:12 주(主)에게서는 흑암(黑暗)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취나니 주(主)에게는 흑암(黑暗)과 빛이 일반(一般)이니이다"

무슨 뜻입니까? 우리가 혹시 믿음이 부족하여 말하기를 흑암(黑暗)이 정녕(丁寧) 나를 덮고 나를 두른 빛은 밤이 되리라말 한다고 하여도 염려치 말라는 위안과 격려의 말씀을 지금 하시는 것입니다.! 왜요? 주님에게는 흑암(黑暗)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취나니 주(主)에게는 흑암(黑暗)과 빛이 일반(一般)이기에 그런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주님의 손에 붙들린 그리스도인들은 흑암도 밤이 되지 못하도록 빛으로만 역사해 주시겠다는 주님의 선하신 의지를 표명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주님의 손에 붙들린 사람들! 이들은 하나도 잃어버림을 당하지 않는 자들이고, 어디서나 무슨 일을 만나도 주님이 함께 해 주시는 자들이고, 혹시 조금 믿음이 부족해서 흑암(黑暗)이 정녕(丁寧) 나를 덮고 나를 두른 빛은 밤이 되리라 한다 할지라도 주님은 결코 그 어둠아래 두시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오늘 은혜의 동산에 모이신 여러분! 여러분들은 정말 그리스도인입니까? 그렇다면 그 증거를 무엇으로 하나님 앞에 나타내 보여 드리시렵니까? 그것은 오직 주님을 신뢰하는 여러분들의 믿음 뿐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서 자기 목숨까지 아까워 하지 않고 내어 주신 분이심을 믿은 것, 이 믿음을 들고 주님 앞에 서있는 자들이 바로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입니다. 로마서8:32절의 사도 바울의 신앙 고백처럼 "자기(自己)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爲)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恩賜)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하는 그러한 은혜의 말씀을 추호의 의심없이 믿는 그런 분들이 바로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주님의 손에 붙들린 우리들에게 주님 자신을 주셨음을 물론, 앞으로 주님으로부터 얻게 될 각양 좋은 것들을 아낌없이 내어주실 분이십니다. 넉넉히 아낌없이 주시는 분이십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길 바랍니다. 아멘 하시는 분들이 받으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손에 붙들린 자신은 비록 이길이 험하고 먼 길 같아 보여도 그 주님의 음성만을 듣고 믿고 따라가기만 하면 머지 않아 쉴만한 물가 푸른 초장이 펼쳐진다는 사실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아멘?

주님의 손이 우리를 붙들고 계시는데 우리가 어디를 떠나서 그 어디에서 주님을 피하겠습니까? 그 어떤 음부와 같은 깊은 자리라 한들 그곳이 무섭거나 외롭거나 고독할리가 있겠냐는 것입니다! 그럴리가 없는 것입니다. 주님에 손에 붙들린 그리스도인들은 흙암의 권세가 이기지 못합니다.

이제 우리 다 같이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가 받았던 그 축복을 우리도 다 같이 받아 봅시다! 그 축복은 무슨 축복이었습니까?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의 축복이었습니다.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할렐루야!

오늘 우리 주님이 이 은혜의 동산으로 우리를 붙들어 오셔서 이 은혜의 말씀으로 우리를 위로하시고 힘주신 것에 대해 주님께 감사합시다! 여러분은 모두가 '베드로'고, 여러분은 모두가 '다윗'입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음부의 권세가 도저히 이길래야 이길 수없는 그런 주님의 강한 손에 붙들려서 주님이 계시는 저 영원한 나라까지 넉넉히 인도받으실 그리스도인들이십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이 그리스도인이란? 제목으로 함께 나눈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또 믿으신 분이시라면 이제 앞으로 여러분의 길은 대로가 열릴 것입니다. 승리의 나팔이 울려 퍼지게 될 것입니다. 

이 은혜가 지금으로부터 영원까지 여러분의 심령 가운데서 머물러 떠나지 않게 되시며, 아울러 꼭 마지막으로 당부 드리는 것은 오직 그러한 축복을 받을 때에 모든 영광을 여러분에게 가능토록 해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존하시는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시는 그런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시 한번 이 은혜가 이 축복이 오늘 이 귀중한 예배를 함께 드린 은혜의 동산 여러분과 또 같이 참석하신 하나님의 권속들과 저에게 영원토록 넘치는 복이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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