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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법을 이루신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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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은유 작성일19-04-21 21:15 조회1,06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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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법을 이루신 그리스도!

본문 : 로마서 8장3절~4절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이 천국 복음을 전하시던 당시, 율법의 진정한 해석자로 자청했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권세 있고 위엄 있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는 한 가지 오해를 하게 되었습니다. 즉, 조상 대대로 지켜왔던 모세의 율법을 예수님께서 파괴하고 폐지하려는 줄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생각한 이유 중 하나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 중 다음과 같은 표현들 때문이었습니다.

마태복음 5장 21절22절입니다.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어서 같은 장 안에 있는 몇 군데를 더 살펴봅니다. 27절28절입니다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33절34절입니다. “또 옛 사람에게 말한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38절39절입니다.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43절44절입니다.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렇습니다. 문제는 모세에 속한 그 율법을 예수님은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시며 자꾸만 달리 말씀하셨던 이유에서였습니다.

율법의 완성은 모세의 율법을 듣는다고 해서 그 율법대로 성취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더더욱 우리 주님이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였다고 해서 그 율법을 우리가 완성 시켜야 하는 것 역시 아닙니다. 인간은 그 누구도 자신의 노력으로 하나님의 거룩하고 준엄한 율법을 완성 시킬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성경은 이 사실에 대해 이렇게 증거 합니다. 오늘 본문인 로마서 8장3절입니다. “율법이 육신(모든 인간의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혹자들은 율법을 논하며 그 율법을 우리 믿는 사람들이 폐(廢)해야 한다거나 혹은 폐해서는 안 된다 는 식의 얘기들로 의견이 분분 합니다. 그러나 율법을 그런 방식, 즉, 인간의 책임여하나 도리로 접근하는 것은 성경적이지 못한 접근입니다.

율법은 그야말로 지키기 위해 세워진 법이기에 그 법이 법대로의 효력을 발생하고 또 준수되어져야 함에는 분명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그 율법의 완성은 절대로 ‘인간의 몫이 아니다’는 것을 우리는 유념해야 하고 또 명심해야만 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역시 성경에서 살펴봄으로 그 답을 쉽게 발견 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17절과18절입니다. “내(예수)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지금 이 위의 구절에서 보면 예수님은 당신이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하시면서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고 합니다. 그리고 진실로 너희(율법사들)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말씀 가장 앞과 맨 나중을 보면 이러한 단어가 들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내가” 와 “이루리라” 로 표현 하시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율법은 “내가” 했던 예수님이 “이루리라” 한 대로 역시 그분께서 이루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율법의 완성자이였던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지금 갈라디아서 3장 13절은 그리스도께서 저주를 받으신 것을 명백히 말씀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저주는 다른 저주가 아니라, 우리 인간들이 당할 율법의 저주였었는데 이 역시 그 기록이 된 마지막 부분을 잘 살펴보면 “나무에 달린 자 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하며 나무, 즉 십자가에 달렸던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율법의 진노를 당 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한 그 위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율법의 진노를 당한 것’입니다. ‘나무(십자가)에 달려서 우리를 대신하여 저주를 받은 그 그리스도로 인해 우리는 율법이 진노하는 그 저주를 당한 것’으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했던 로마서4장15절의 그 진노의 저주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대신해서 치러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일컬어서 표현하기를 “생명의 성령의 법”(로마서8장2절)이라고 표현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생명의 성령의 법에 대해 잠시 은혜를 나누어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원합니다.

 
첫째, 그리스도는 사랑의 법을 이루셨습니다.

아담이 범죄한 이후 사람들에게는 사랑보다는 양육강식의 논리가 더욱 설득력 있는 행동 지침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하여 내가 살기 위해서는 남을 희생시키는 것쯤은 당연한 듯이 여기는 것이 현재의 죄인 된 인간의 현주소입니다.

사회, 직장, 학교는 물론, 심지어는 가족 간에도 그렇습니다. 그야말로 어느 소설가가 표현한 대로 ‘시시한 것을 쫓아서 목숨을 거는 서픈짜리 인생들’ 이 라는 표현은 참으로 적절한 표현이 아니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우리 그리스도는 바로 이러한 인생을 불쌍히 보셔서 친히 그 하나님의 진노를 이루는 율법의 저주 아래로 내려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율법 중에서도 최고한 법이었던 요한복음 13장34절의 말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는 이 놀라운 법을 몸소 보여 내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담 갖진 않아도 됩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새로운 법(새 계명)은 진노를 이루시게 하는 그런 옛 법이 아닌, “내가 너희를 사랑 한 것 같이” 한 그런 ‘사랑의 법’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했음을 깊이 깨달아 아는 그런 사랑법이라는 것입니다. 요한1서4장10절11절입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그렇습니다! 실로 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빼고는 우리는 율법의 완성의 여부를 논 할 다른 변리(辨理)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율법 자들에게 잡혀 온 한 가련한 여인을 구하신 그리스도를 깨달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그 유대 종교인들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혀온 여인을 레위기 20장10절의 율법 조항을 들이 되며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한복음8장7절)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럴 때 그들은 모두 어떻게 했습니까? 그녀를 돌려 쳤습니까? 아닙니다! 도리어 모두 그 자리를 떠나고 말았습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율법으로 볼 때에 자신들도 결코 그 여인을 돌로 칠 만큼 의로운 자가 아님을 깨달았기에 그들은 다 도망치듯 물러갔던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23절을 봅시다.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지금 이 말씀에 준하여 우리가 그때의 그 살벌했던 현장의 상항을 조명해 봐도 우리는 율법의 역할이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 잘 알 수 있습니다. 곧 간음한 여인을 그리스도께 잡아 온 율법주의자들은 그만 그 율법이 정하는 죄 아래 자신들이 먼저 모두 가쳐버립니다. 그래서 그 누구도 그 여인에게 돌을 던지지 못 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반면에 그 여인은 그런 율법의 몽학선생들로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 인도 되어 옴으로 인해 도리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유함을 얻게 되는 놀라운 반전의 장면을 우리는 영적시안(靈的視眼)으로 잘 볼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율법은 율법 자체로서 우리들에게 절대로 자유를 주지 못합니다. 인간의 힘으로 그 거룩한 하나님의 법을 준수 할 육신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신성(神聖)이 인성(人性)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 오직 그분이 하나님의 율법을 준수하셨음은 물론 이고, 또 인간 편에서 그 율법으로 말미암아 받아야 할 진노의 저주를 친히 당해 주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갈라디아 3장 13절을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그렇습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이 하나님이 우리들을 그토록 사랑하신 그 크신 사랑을 이루신 증표입니다!

 
두 번째, 그리스도는 공의의 법을 이루셨습니다.

이미 앞에서 언급했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논하기에 앞서 하나님의 공의는 먼저 처리 되어야 할 걸림돌이거나 혹은 과제임에 분명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공의와 사랑을 함께 겸하신 분이시기 때문이었습니다.

혹자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어찌하여 당신의 독생자(예수)를 죽일 수 있었을 까 하며 의아해하고 또 질문합니다! 왜 하필 하나님은 당신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 주셔야만 했을까 하는 의문을 갖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이유는 다름 아닌 “하나님의 영광”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영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 영광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으로 된 영광입니다. 그런데 그만 인간이 죄를 범함으로 인해 그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로마서3장23절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죄를 범한 인간은 하나님과의 사랑을 다시 회복해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도록 해야 했었지만 그만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하나님의 공의에 걸려 그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사야 59장1절과2절입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 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그렇습니다. 문제는 바로 이 죄 때문이었습니다. 오직 우리 인간의 죄가 하나님과의 모든 거리를 멀어지게 했던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죄를 범한 죄인이라는 이 이유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 했던 것입니다.(로마서3장23절)

이러한 죄인 된 인간은 자신의 죄 값을 다 치르지 않고서는 결코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랑의 하나님은 그 당신의 공의마저도 우리에게 요구하신 것이 아닌, 자기 아들 독생자(예수)를 대신해서 그 공의가 이루어지도록 하신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4절에서9절은 이렇게 놀라운 선언을 합니다.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세 번째, 그리스도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서신 갈라디아서3장10절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 뜻은 무엇입니까? 율법 아래에 속해서 율법으로 의로워 지려하고,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는 자들인데 그들이 만약 그런데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율법으로 의로워 지려 한다면 그들은 율법 책에 기록한 대로의 온갖 법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지켜 행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뜻으로 풀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성경은 분명히 이미 이런 선언을 했습니다. 전도서 7장20절입니다.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 그리고 이 사실을 확실히 결론 지어 주는 말씀은 갈라디아서 5장 4절에 있었습니다.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대로 외곡하거나 변역(變易)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성경대로 신앙하며 성경대로 믿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도 성경대로 오신 분이셨으며 성경대로 다음과 같은 일을 하신 분이십니다. 고린도전서 15장3절과4절입니다. “내(바울)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

보십시오! 지금 성경대로 그리스도는 우리 인간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셨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성경대로 죽어서 장사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고 분명히 성경이 성경대로 우리에게 증거 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이 성경대로 우리들에게 오셔서 그야말로 “죄와 사망의 법”아래에 메여 살고 있었던 우리를 “생명의 성령의 법”안으로 우리를 거듭 태어나게 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실을 깨달은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55절에서57절에 이렇게 당당하게 선언했던 것입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뿐만 아닙니다. 로마서 8장1절에서4절에 그(바울)는 더욱더 확신 있는 구원의 결론을 이렇게 내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할렐루야!

 

지금 이 글을 접하신 분이시여! 이제 저는 그리스도를 대언하여 당신에게 부탁드립니다. 우리 함께 사망의 법(율법)을 친히 이루시고, 영생의 법(생명의 성령의 법)을 역시 친히 새롭게 새우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며 감사합시다!

 

오직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온전한 영광을 돌려드립시다! 로마서6장23절에서 사도 바울은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고 했습니다.

 

이제 우리를 다스리는 것은 죽음과 저주의 법이던 저 ‘사망의 법’(율법)이 아닌, 그리스도께서 이루어 주신 ‘생명의 법’(생명의 성령의 법)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우리 안에 계시는 그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법이 흘러넘치도록 하여 은혜의 법으로 흐르게 해야 합니다.

 

우리의 손이 닳는 곳, 우리의 발걸음이 닿는 곳에 이 생명의 성령의 법이 꽃을 피울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정리 해 드리고 마치려 합니다.

 

그리스도는 율법 아래 나셔서 율법의 저주를 받으심으로서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저 이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 드리면 됩니다. 에베소서 4장13절의 말씀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자” 했던 것을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 로 이루었고, 또 이르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오직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브리서12장2절) 한 그 그리스도만 바라보면 됩니다. 그리고 그 모든 은혜에 감사하여 고린도전서 13장13절의 말씀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던 그 그리스도의 최고한 법을 우리 심령 가운데 모시면 됩니다!

 

이 은혜가, 이 진리의 영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저는 물론이고 이 글을 보신 님 에게 지금으로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게 되시기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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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임목사 김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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