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개척의 실패와 그 원인 분석
본문
나는 교회를 여러 번 개척하면서 실패하게 된 이유들을 내 나름대로 분석을 해 보았습니다. 나는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개척하면서 실패했던 경험들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옛 말대로 부족하고 못난 저의 실패 경험들이 새롭게 교회를 시작하시는 여러 목회자들에게 [성공의 어머니]가 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를 생각하며 이 글을 기록해 나갑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교회를 세우신 것은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서다. 그리고 모든 교회는 어떤 형태로든지 개척된 교회다. 새로운 교회가 개척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교회 개척은 하나님의 명령이시고, 새로운 지도력을 개발하여 하나님의 사역을 극대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역사적 흐름의 변천 과정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징후들이 교회 개척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그 중에 가장 두드러진 현상이 인구의 도시화 현상이다. 1920년까지만 해도 세계 인구 가운데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은 14%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1950년대에 이르러서는 그 수치가 29%에 이르고, 1990년에 가서는 45%에 도달한다. 그리고 2000년대에 가서는 세계 인구의 50%(약 32억)이 도시에 살게 될 것이다. 그리고 2025년에는 그 수치가 65%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세계를 도시화하는 하나님의 경륜에 따라 신학적 관심과 도시에 몰려드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한 선교적 열기가 날로 더해지고 있다. 이와 같은 도시화 현상은 서울도 예외가 아니다. 또 한 가지 도시화에서 생기는 또 하나의 문제는 도시의 중심지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좋은 환경을 따라 도시의 변두리 지역에 새로 형성되는 주거지로 삶의 터전을 옮기는 것이다. 따라서 대 도시의 변두리 지역에 형성되는 새로운 주거 지역에는 그들의 하나님에게 인도할 많은 교회가 필요하게 되고 그에 따라 새로운 개척 교회가 생기게 되었다. 1. 내가 경험한 기존 교회와 개척 교회들 (실패한 교회 개척들)
나는 신학교를 졸업한 후 군목으로 입대하여 3년을 복무하고 만기 제대를 했다(1975년). 민간 목사가 되어 처음 교회를 개척한 곳은 대방동의 주택지였다. 이미 학교 다닐 때부터 교회 개척을 하기로 작정을 했기 때문에 그 동안 교회 개척을 위해 마련해 둔 자금을 가지고 그곳 사거리의 조그마한 이층을 임대했다. 사택을 따로 마련할 수가 없어서 홀의 한족을 막아 방 한 칸을 만들어 사택으로 쓰기로 하고 교회에 필요한 비품을 마련하려 다닐 즈음, 대방동의 어떤 교회에서 청빙이 왔다.
1) 이층을 임대해서 예배드리는 아주 작은 기존 교회에서 당한 괴로움. 청빙을 받은 그 교회는 지금은 꾀 큰 교회가 되었지만 당시는 아주 작은 교회였다. 15평이 될까 말까 한 예배 실에 20여명의 성도들이 모여 예배를 들이고 있었는데 전임 목사가 무슨 일로 사임을 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한 사람의 성도도 없이 교회를 개척하는 것보다 이렇게 많은 성도들이 있고 작지만 아담한 예배당도 있는 그곳이 교회를 개척하려는 목사에게 아주 유익한 프리미엄이 된다고 생각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했다. 우리가 준비했던 교회 개척 자금으로 살 만한 사택을 얻고 커다란 희망과 소망 속에서 교회 사역을 시작했다. 그러나 1년이 못되어 나는 그곳에서 엄청난 저항을 받았고 쫓겨나듯이 그 교회를 사임하고 말았다. 첫 목회지에서 당한 일종의 실패였던 것이다.
나는 이 교회에서 많은 괴로움과 고통을 당했다. 군대를 재대하고 목회에 아무런 경험이 없는 나는 신학생으로 큰 교회의 고등부 전도사로 교회를 섬긴 경험밖에 없었으며 그런 경험으로도 능히 교회를 잘 할 수 있으리라는 터무니없는 착각 속에 산전 수전을 모두 겪고 바르지 못한 신앙적 사상을 가진 사람들을 만났으니 목회가 잘 될 리가 없었다. 내가 그곳에서 당한 괴로움은 어떤 잘못 때문에 일어 난 일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몇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① 그곳의 성도들은 천박한 신비주의자들이였다. 그들은 꿈을 믿고, 자기 망상과 희망 사항이 환상으로 변질된 신비주의자들이였다. 나는 그것을 전혀 알지 못하고 그 교회에 부임을 했다.
② 그들의 신비주의를 비판하면서 바르게 가르치려 시도를 했다. 나도 상당한 신비 체험을 했기 때문에 성경 말씀과 내 체험을 중심으로 하여 그들의 잘못된 신비주의를 바로 잡으려고 급하게 서둘렀다.
③ 그들의 두목 격인 고집사와 마음이 하나가 될 수 없었다. 그 고집사의 남편은 사상적 사건으로 감옥에 가 징역 살고 있었고 교회를 다니지 아니하는 딸이 둘이 있었다. 그녀는 유방암으로 큰 고통을 당하다가 수술을 받는 과정에서 주님을 영접했다. 그녀는 대단한 신비주의자로 마치 예수 점쟁이와 같은 짓을 했다.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예배를 보아주고 예언을 했다, 그리고 예언을 받은 사람들이 주는 돈과 그들의 11조를 갈취하여 생활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를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러자니 자연히 설교 가운데 그녀가 듣기 싫어하는 말을 하게 되고 결국 그녀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
④ 그들이 기대한 만큼 교회가 성장하지 않았다. 그것이 나를 엄청나게 괴롭혔다. 여러 가지 입지적인 조건도 좋지 않고, 그렇게 한 사람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있는 이상한 교회가 성장할 까닭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교회 성장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고 성도들에게 은근히 압력을 받았고 그것은 견디지 못했다. 그래서 늘 초조하고 괴로웠다. 그러니 설교가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⑤ 행정에 착오를 일으켰다. 학생 전도사로 섬기던 교회는 아주 큰 교회였다. 그래서 그 교회에서 배운 교회의 행정을 시행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마치 큰 어른의 옷을 어린이에게 입히는 꼴이어서 잘 맞아떨어질 리가 없었다.
⑥ 성전 대지를 마련하려 했다. 나는 나의 첫 목회지에서 당한 딜레마를 성전 건축을 하기 위한 대지를 마련하는 것으로 해결하려는 참으로 어리석은 우를 범했다. 전혀 할 수 없는 것은 아니였다. 그러나 그들은 나의 복안에 대하여 정말 터부니 없는 누명을 씌워 나를 배척하기 시작을 했는데 [목사가 우리가 낸 건물 임대료를 통 체로 먹어 버리려고 교회 부지를 사자는 말을 한다]고 모략을 했다. 그 중심에는 언제나 고 집사와 그를 추종하는 이 집사가 있었다. 나를 지지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들은 급료를 봉쇄하고 나중에는 내가 교회를 출입할 수 없도록 교회 문을 봉쇄했다. 나는 마지막 주일 설교를 하기 전에 [하나님 저는 도저히 이 이상 이 교회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용서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고 힘겹게 설교를 하고 강단을 떠났다. 나는 이 교회에서 당한 고통과 괴로움을 견딜 수 없어 수없이 금식 기도를 하고 시내버스를 타고 종점과 종점을 오고 가며 멈추어 버린 것같이 답답한 심장에 공기를 빨아들이기 위해 추운 겨울에도 차의 창문을 열어야 했다. 물론 아내도 너무 힘들어 온몸이 바짝 바짝 말라 가며 병들어 신음을 했다. 영문을 모르는 아이들은 그런 제 부모의 눈치를 보며 숨을 죽이고 벌벌 기어 다녔다.
이 교회의 주체는 목사가 아니라 임대료를 가장 많이 지불한 고집사였다. 다시 말하면 고집사가 세운 교회에 내가 부임을 해서 그런 꼴을 당한 경우다. 교회를 개척하고자 하는 목사들이 명심할 말이 있다. 아무리 작은 교회라 해도 그 교회를 세울 때 누가 임대료를 가장 많이 냈느냐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변수가 된다. 그래서 나는 교회를 개척하려는 목사들에게 성도들이 헌금을 해서 개척한 교회는 가급적 부임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십중팔구는 교회의 주인인 척하는 무리들에게 고용인과 같은 취급을 당하다가 쓴잔을 마실 수가 있다. 3-4년의 세월만 잃어버린다.
이렇게 고통을 당하고 마지막 설교를 마친 며칠 후에 동대문의 교회에서 연락이 왔다.
2) 조그마한 성전이 있는 상처받은 교회에서의 실수. 신도림동 교회에서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당하고 쫓겨 난 후 망연자실하여 낙담하고 있을 때 친구 목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목사의 아들인 그 친구는 동대문에 있는 어떤 교회에서 사역을 하고 있었는데, 아버지의 교회를 맡게 되었으므로 나에게 와 일을 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었다. 나는 그의 전화를 받고 눈물겹게 감사를 했다. 인간들은 나의 모든 것을 막고 앗아 갔지만 우리 하나님께서는 나를 불쌍히 여기셔서 갈 길을 인도하신다고 확신을 했다. 그 교회에 부임하고 안하고 할 처지가 아니었다. 즉시 확답을 하고 다음 주일부터 부임해 예배를 인도하게 되었다. 그 교회는 당시에 상당히 이름 있는 부흥사가 시무했던 교회로 300여명이나 모이는 큰 교회였는데(70년대 중반기에는 700여명 모이는 교회가 서울에서 아주 큰 교회로 대접을 받았다.) 목사에게 심각한 문제가 발생해서 몇 년 동안 목사와 성도 사이에 불미한 다툼이 있었고 그로 인해 성도들이 흩어져 겨우 30여명밖에 남아 있지 않는 교회였다. 친구는 그런 악조건을 가진 교회에 부임을 해서 1년여 동안 섬기다가 나에게 교회를 맡기고 아버지 교회로 부임을 했다. 나는 전에 있던 교회에서 워낙 큰 괴로움을 당했기 때문에 이런 형편의 교회라 할지라도 감지덕지했으며 목사로서의 새로운 이상과 꿈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곳은 아주 가난하고 낙후된 동네로 주민들이 삶의 의욕을 가지지 못한데다가 교회가 수년씩 아주 불미스럽기 짝이 없는 사건으로 나쁜 소문이 퍼져 전혀 전도를 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3년 동안 그 교회를 시무하면서 장로를 세우고, 권사와 안수 집사를 세우면서 열심히 기도하고 전도하며 수고한 결과 열매가 있어 100여명의 성도들이 모이게 되었고 교회도 안정되어 갔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그 문제는 성도들에게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목사인 나 자신에게서 생겨진 것이었다. 날마다 같은 일의 반복은 나를 식상하게 만들었으며 욕망과 야망에 불타는 30대 중반의 젊은 목사를 견딜 수 없게 했다. 아무리 기도를 해도 교회는 변화되는 것이 없었다. 그러자 교회 가까이 있는 들판(지금의 장안평을 말함)에 새로운 도시가 형성된다는 소문이 들렀다. 나는 아내와 함께 그곳을 자주 가 보곤 했는데 틀림없이 개발이 될 수 있는 장소로써 개발되기 전에 그곳에 교회 자리를 미리 마련해 두면 교회가 크게 성장할 가능성을 200% 이상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 교회가 가진 재산을 정리하면 그곳에 아름답고 큰 성전을 건축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생겨났고 그 확신이 차고 넘쳤다. 그래서 기도를 하고 재직들에게 교회 이전 문제를 제시했다. 장시간을 걸쳐 설명하고 또 설명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재직들의 반응은 이외로 싸늘했다. 이미 한 번 목사에게 호되게 혼이 난 성도들이여서 그런지 알 수 없었으나 목사의 교회 앞날에 대한 청사진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응하지 않으려고 했다. 다만 한 사람, 동대문 시장에서 리어카로 행상을 하는 여집사가 내 말에 찬동을 했을 뿐이다. 나는 여기서 큰 실망을 했다. 목사의 말을 믿지 아니하는 성도들, 미래의 이상과 꿈이 없는 사람들, 그곳의 상황을 보여 주었지만 도무지 무감각한 사람들------- 이 일이 있고 난 후 나는 내가 시무하는 하나님의 교회에 대해 심한 괴리감과 거리감을 느끼게 되었고 내 목회의 이상과 꿈을 이곳에서 펼칠 수 없으리라는 공포심을 가지게 되었다. 결국 나와 아내는 하나님의 종으로 큰 목회를 할 수 있는 새로운 곳을 찾아 온 서울을 뒤지며 헤매기 시작을 했다. 이것이 내가 두 번째 목회지에서 당한 두 번째 실수요 실패가 되었다. 그곳 교회를 떠난 것은 20년여 전이였다. 그러나 그곳에서 내가 잘못한 일에 대하여 지금까지도 생각을 많이 한다. 그 생각들을 간단히 여기 기록한다.
① 한 영혼의 소중함을 망각한 체 하나님의 사업을 하려 했다. 목사가 교회를 섬긴다는 것은 교회에 모이는 인간의 한 집단을 섬기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주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에게 교회를 맡기실 때 "(요21:15)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 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양을 먹이라 하시고" "(요21:16)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 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요21:17)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하셨다. 여기서 주님께서는 "내 양들을 치라"하시지 않고 "내 양을 치라"고 하셔서 교회의 집단이 아닌 한 영혼을 사랑하며 목회를 해야 함을 가르치셨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결여된 체 하나님을 위해 큰일을 하겠다는 맹렬한 열정은 만류하는 성도들의 소원을 냉엄하게 뿌리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 때 나에게는 오로지 하나님의 복음 사업에만 관심이 있었지 자기들을 인도해 달라는 한 성도 한 성도의 소리는 듣지 못했다. 참으로 개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목사는 목회 사업을 하는 종교적 사업가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리를 추구해서는 안 되며, 또한 하나님의 사역을 통한 영광을 바라서도 안 된다. 그리고 타산적일 수도 없다. 오직 하나님의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해 온 산과 들을 헤매는 심정을 가져야 한다. 오로지 하나님의 종이라는 자각과 각성 속에서 이 일은 가능할 것이다. 내 양을 찾는 실리도 배제해야 하고,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탐색이나, 뒤돌아봄이 있어서도 안 된다. 아무 생각도 없이 오로지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시키시는 일이기 때문에 해야 하는 것이다. 그 이상의 것을 바라지도 말며, 그 이하의 것에 대해서도 실망하지 말자.
② 하나님의 뜻을 거슬렀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방법에 대해서 완전한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해서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사람도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전혀 분별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이 문제는 여기 기록하지 않고 [30년 목회의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법〕에 기록을 따로 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들의 신앙생활이나 목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다. 기도, 믿음, 사랑, 헌신 등 무슨 신앙의 요소이던 모두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 생각이요 행위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은 성경 말씀에 가장 잘 나타나 있기 때문에 성경을 많이 배우고 말씀에서 은혜를 받아야 할 것이다. 나는 비록 목사일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일에 많은 방황을 했고 착각을 했다. 어떤 때는 내가 간절히 기도하는 중에 소원했던 일들이 하나님의 뜻으로 착각되기도 했고, 어떤 사람의 그럴듯한 충고가 하나님의 뜻으로 착각되기도 했다. 심지어 내 야망과 욕심이 하나님의 뜻으로 착각되는 경우도 있었다. 동대문 교회의 경우에 나는 나의 야망으로 인해 성도들을 통해 주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고 교회를 떠나게 되었다. 이 일은 평생 동안 나를 후회스럽게 했다. 여기서의 하나님의 뜻은 우림과 둠밈으로 구별되는 것이 아니고, 꿈이나 징조로 분별되는 것이 아니었으며, 어떤 신령한 사람의 예언으로 분별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교회를 떠나지 못하도록 울면서 간곡히 만류하는 성도들을 통해서 나타난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들을 버렸고 하나님의 뜻도 거스렸다. 어리석고 미련하게도 하나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한다는 생각으로 그런 짓을 했다.
③ 지극히 나를 사랑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몰랐다. 동대문의 교회는 너무 편했다. 그래서 다시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할 수 있었고 생활도 안정되었다. 그것은 극심한 고통을 겪었던 첫 목회지에서의 괴로움을 위로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였다. 그러나 3년이 지났을 때 나는 그런 안정된 목회지에 대하여 감사하지 못하고 비약적인 발전을 하지 못하고 있는 점에 한탄하고 답답해했다. 그 때 답답하게 느껴져 젊음을 허비한다고 생각하며, 한탄하고 자조하던 감정은 순전히 사단의 조급증이였던 것을 전혀 몰랐다. 나는 그 때 그것을 하나님을 위한 열정으로 착각을 했던 것이다.
④ 성도들의 생각을 파악하지 못했다. 성도들에게 무리한 요구를 했다. 3년 전에 교회가 분열된 사건은 교회가 비약적인 성장을 하면서 일어난 것이라고 성도들은 생각하고 있었다. 그로 인해 성도들은 교회의 비약적인 발전과 성장만이 좋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교회가 안정되고 평안한 신앙생활이 급진적인 변화 보다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매우 바른 생각이였다. 그러나 나는 달랐다. 그런 안주에 몸을 내 맡기기에는 내 목회자로서의 야망이 견뎌 내지를 못했다. 그래서 교회를 옮겨 장안평으로 교회를 이전하자는 안을 냈고 성도들은 반대를 했다. 성도들은 그런 획기적인 변화를 바라지 않았다. 그들은 엄청나게 큰 상처를 몇 년 전에 체험했다. 그 체험은 교회가 성장하면서, 사고방식이 화려해진 목사의 실수로 말미암아 생겨진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큰 교회 보다 작지만 지금처럼 안정되고 평안하고 즐거운 교회 생활을 바랐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런 성도들을 이해할 수 없었으며, 또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다만 이상과 꿈이 없는 속 좁은 인간들로만 생각이 되었다. 그래서 그들을 버리고 교회를 떠나 버린 것이다. 지금 그 교회는 다른 목사가 와서 장안평에 들어가는 입구에 새로운 성전을 아름답게 지어 많이 성장했다고 한다.
⑤ 내게는 기다리는 인내심이 없었다. 서둘러 실패하는 일은 많지만 기도하면서 기다리고 기다려서 실패하는 일은 거의 없다. 성도들이 교회 이전을 반대하면 응당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한 사람씩 만나 교회 이전의 당위성을 설명하면서 설득해야 옳았는데 나는 전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사실 장안평이 개발되고 있지 않았는데도 왜 그렇게 서둘렀는지 지금도 내 자신을 알 수 없다. 목회는 평생 하는 것이며, 내 자식들의 대를 이어 하는 하나님의 사역이다. 그리고 주님이 세상에 재림해 오실 때까지 계속이 되는 것인데, 내가 마치 하나님의 마지막 일까지 감당해야 하는 것처럼 서둘렀으니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순리를 좇아 하나님과 동행하는 목회가 필요한 것이다. 장안평이 개발되는 것도 아니고 목동이 개발되는 것도 아닌데 서둘러 교회를 떠나고 서둘러 교회를 개척한 나의 어리석음을 십 년이나 더 지나서야 알게 되었으니 그 사이에 하나님은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3) 목동의 개척 교회의 실패 11월부터 1월까지 3개월 동안 아내와 나는 강단에 엎드려 철야하며 기도를 했다. 그 때 성도들은 자기 교회의 목사가 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줄로 알았을 것이지만, 사실은 새로운 개척 교회를 위해 기도를 했던 것이다. 기도를 마치고 우리는 교회에 사임을 통보했다. 그곳의 성도들은 깜짝 놀라 우리를 극구 말렸다. 우리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자 나중에는 서운함이 지나쳐 분노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망망대해를 헤쳐 새로운 천지를 발견하려 가는 심정으로 큰 희망과 소망을 가지고 미래가 없는 그 교회를 떠나 목동에 새로운 교회를 개척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동대문의 교회를 그렇게 떠난 몇 년 후에 우리가 얼마나 어리석은 짓을 해서 하나님을 섭섭하게 해 들였는가를 뼈저리게 느꼈지만 이미 도리 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른 후였다.
우리가 교회를 억지로 사임하고 새로운 개발 지역인 목동으로 이사를 온 때는 눈발이 간간이 휘날리는 어느 겨울날이였다. 내가 그곳을 교회 개척 장소로 정한 것은 얼마 되지 않으면 그곳에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선다는 정보를 얻었기 때문이다. 우선 개발될 수 있는 지역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고 기다리다가 개발이 시작되면 새로운 아파트 지역으로 교회를 옮길 생각을 한 것이다. 그래서 새로이 개발 될 지역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17평 짜리 이층 홀을 얻어 교회를 시작했다. 군대를 제대하고 제대로 된 개척 교회를 시작한 우리들의 마음은 한없이 자유스럽고 희망이 불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거룩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나는 교회를 개척하기로 수개월 전에 마음을 굳혔기 때문에 나 나름대로 많은 준비를 했다. 그 준비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개척을 함께 할 성도들을 모으는 일이였다. 나는 그 동안 살아오면서 맺었던 인간관계를 찾아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고 다녔다. 그들에게 주로 한 말들은 함께 교회를 개척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멋있게 들어내고 큰 축복을 받자는 것이였는데 이상하게도 나의 이런 말에 반대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교회를 시작했을 때 이미 20여명이 넘는 성도들의 모이게 되었다. 그들은 나의 친척, 친구, 고향 후배, 과거에 함께 신앙생활 했던 성도들이였다. 우리 교회는 아주 단란하고 행복한 교회가 되었으며 그런 대로 재미가 있었다. 약간씩 저축도 할 수 있었다. 성도들은 하나님이 주실 축복에 대한 기대로 마음이 부풀어 있었고 주일에 모이면 지난주간에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축복을 서로 확인해 보는 시간을 암암리에 가지곤 했다. 그러나 사실 그렇게 눈에 뜨이게, 손에 잡히게 뚜렷한 축복은 없었다. 그래도 약간은 과장된 뜻한 어조로 하나님의 축복에 대해 말하고 함께 즐거운 듯 웃고 했다. 그렇게 1년이 거의 되어 갈 무렵 근처에서 이미 자리를 잡고 있던 친구 목사가 나를 찾아 왔다. 그의 말인즉 자기 교회가 성전을 신축하는데 지금 사용하고 있는 성전을 우리 교회가 매입해 주었으면 피차에 좋을 것이라는 제안이였다. 사실 우리 교회는 수천만 원이 있어야 하는 그 교회당을 인수할 경제적인 힘이 없었다. 당시 교회가 저축한 돈은 그 성전 매입가의 1/10도 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때 나는 크나 큰 착각을 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사랑하셔서 아주 좋은 기회를 주시므로 새로운 성전을 얻을 수 있게 해 주셨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친구 목사의 권유를 도저히 물리칠 수 없었다. 그래서 목사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저질러 교회를 파멸로 이끌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