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정복하는 목회
본문
김재헌 목사 (서광교회)
건국 이래 최대의 경제위기가 몰려오고 있다고 난리들이다.
한국의 경우 지난 30년간 100대 기업을 지켜가는 기업이 16개밖에 없다고 한다. 많은 기업들이 도산한 것이다. 이러한 부도의 위기는 지금까지 대기업에게는 예외인 것으로 보여졌으나 한달에 한 개 꼴로 부도로 도산하거나 주인이 바뀌고 있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그 중의 하나는 너무 자만에 빠져 변화를 외면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경영자 총연합회의 분석에 따르면 최근에 조기퇴직을 당하거나 명예퇴직을 당하는 사람에게도 문제가 있다고 한다. 그들은 자기개발에 소홀했고, 문제의식이 희박했으며, 경쟁력이 자라오는 세대들에 비하여 떨어졌다는 것이다.
자! 이제 눈을 우리 교회로 옮겨보자.
소위 이전에 잘 나가던 교회들은 어떤가? 건물은 크게 짓고 외양은 조금 커졌는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교회들이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또 개척교회의 경우는 10개 교회가 생기면 3개 교회가 문을 닫고 1년만에 떠난다는 통계가 있다.
이러한 상황과 현실을 모른다면 한국교회는 21세기에 성장을 멈추고 다시 선교를 받아야 하는 국가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이제는 교회의 100년을 생각하며 목회자들이 대오각성해야 한다.
1. 상황을 판단하는 눈
1) 경쟁시대
한국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가장 큰 상황은 매년 신학교 졸업생이 10,000명에 육박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큰 교단 4개에서 1년에 약 3,000명의 목사후보생이 졸업한다. 기타 군소교단까지 합치면 10,000명의 목사후보생이 배가 된다고 보여지는데, 현재 40,000교회에 불과한 이들이 어떻게 교회에서 일할 자리를 얻을 수 있겠는가?
결국 대부분의 졸업생들이 교회를 개척하게 되는데 교회개척의 60%정도가 자비를 들여서 개척하게 된다. 이렇게 매년 개척되어지는 교회가 600∼1,000교회 정도 된다고 보여지는데 이것이 교회들로 하여금 교회 본연의 임무보다는 과열 경쟁에 휩싸이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회가 가지고 있어야 하는 기본적인 품위도 갖추기 못한채 교회의 對사회적인 이미지만 떨어뜨리는 결과를 자꾸 낳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지름길은 우선 인원 수급을 조정하는 것이다. 각 교단이나 신학교가 학생들의 정원을 감축해야 하는데 이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신학교 운영 자체가 교단의 수익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인원을 줄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이권을 포기하라는 얘기인데 종교개혁과 같은 극단적인 처방이 나오기 전에는 불가능하다고 보여진다.
문제해결의 두 번째 방안은 목사님들의 정년을 낮추어 조기퇴직을 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새로이 배축되는 새로운 세대들에게 소신껏 일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는 용단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것도 힘들다. 아직까지 70정년을 지키지 않는 교단이 많고, 호적을 속여서라도 정년을 연장하려는 상황이 속출하고 있는 상황에서 주님이 오셔서 명령내리지 않는 이상은 힘든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전혀 가능성이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선 우리는 현재의 상황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교회가 무한경쟁 체재에 돌입했다는 것이다. 경쟁체제란 시장원리를 말한다. 즉 목회자와 교회가 공급자의 위치에 서 있다면 교인들은 소비자의 입장에 서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소비자인 교인들이 자신들의 구매욕구를 충족시키는 제품(교회)를 찾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교회가 변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2) 변화해야만 성장한다.
이제 사회는 창조사회로 진행한다. 창조사회의 관건은 아이디어와 네트워킹이 중시되는 사회이다. 이것이 다른 교회와의 차별화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한번 생각해 보자. 어떤 신학생이 신학대학원을 졸업해서 개척을 한다고 하면 기껏해야 마련할 수 있는 돈이 3,000만원 내외이다. 도시에서 이 정도의 돈으로는 자신이 살 수 있는 집 한칸도 세를 얻기가 힘들다. 거기에다 이전과 같은 독지가를 기대할 수도 없다. 그러다보니 교인도 없는 상태에서 월세를 두고 교회를 시작한다.
그렇지만 대개의 경우 월세도 내지 못하고 문을 닫고 만다. 그리고는 또 후임자가 온다. 새로운 각오로 이름을 바꾸고 야단법석을 떨어보지만 교회가 여기만 있는 것도 아니고 바로 옆에, 또 그 옆에 교회가 있는 상태에서 교인 한명 얻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다. 이때부터 소위 교인 쟁탈전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개척단계를 벗어나고 성장하는 목회를 한다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왜 다들 천편일
률적인 목회를 하는 것일까?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 것이다. 아이디어를 발휘할 필요가 있다. 창조적인 생각으로 목회에 접근해야만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자본이 부족하다면 아이디어를 써야한다.
즉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해보라.
① 꼭 건물을 빌려야 교회가 되는가?
- 기존의 학원이나 학교강당, 기타 공공장소를 주일만 빌려서 사용할 수 없는가? 적어도 50명이 모일때까지는 돈이 들어가면 안된다.
② 나에게 남다른 매력이 있는가?
- 꼭 나의 설교와 나의 가르침을 받아야할만한 메시지가 있는가? 나의 설교와 성경공부를 듣는 사람들은 실제로 감동할만한가를 생각해보고 자기개발에 시간을 투자해야한다.
③ 이 지역에 꼭 내가 있어야 하는가?
- 대도시 교회가 많은 곳에 함께 모여 경쟁할 필요가 있는가? 차라리 10년 후를 내다보고 개발예정지로 미리 가는 것은 어떨까?
④ 소그룹을 인도할 줄 알며 그것을 엮을 줄 아는가?
- 우리의 몸도 결국에 작은 세포의 결합체이다. 큰교회가 되려면 소그룹 세포를 잘 관리할 줄 알아야 한다.
⑤ 십자가를 지고 있는가?
- 자신의 목회철학이 십자가를 지는 것인가, 아니면 속히 영광을 구하려는 것인가 점검해 보아야 한다. 사람을 사랑하고 섬기지 않으면 어떤 경우에도 사람이 모이지 않는다.
3) 작은 것이 아름답다.
오늘 우리 주위 목회자의 가장 큰 문제는 스타병이다. 큰교회의 스타목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너무나 지배적이다.
이러한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매머드교회의 긍정적 사고방식을 퍼뜨린 목사들의 문제요, 그 배경에는 교회성장학파의 신학적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나온 세월속에서 도태되어진 생물종은 공룡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몸집이 비대해지면 변화에 능동적이지 못하고 자체 동맥경화에 걸려 자멸하고 만다. 그러므로 작은 교회운동을 벌여야 한다.
작아도 지역사회를 얼마든지 변화시키고 십자가의 복음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그리고 큰 교회는 작은교회로 세분화하여 나누어야 한다. 완전히 2, 3개의 교회로 분할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고 교회안에 지역별로 직능별로 작은 교회들을 기도처소, 전도처소, 선교관 등으로 나누어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모르긴 해도 이렇게 작은교회 전략으로 나가지 않는 교회는 앞으로 상당히 고전을 면지 못할 것이다.
또 작은교회는 작은교회만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야 한다. 작은교회의 장점은 친밀성과 기동성이다.
우선 목회자는 교회를 사랑과 섬김으로 가르치고, 하나되도록 모범을 보여야 한다. 비전이 너무 크고 스타병에 걸려 있으면 성도들이 부담을 느껴 떠나버린다. 그러므로 우리교회에 맞는 프로그램을 장점화시켜서 꾸준하게 밀고 나가야 한다.
수원에 있는 시온감리교회의 경우 새벽기도회를 효율적으로 운영해서 결국 중형교회로 성장했다. 설교페이퍼를 인쇄해서 나누어주고 20일, 15일 또는 40일 등으로 작정해서 꾸준하게 시행할 때 성도들은 작은 목표에 도전하고 성취하는 가운데 교회사랑이 생기고 믿음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작은교회는 그 특성을 살려 인내심을 갖고 프로그램을 실제화 해야 한다.
4) 사랑방 전략
이러한 일련의 교회성장 전략을 종합해서 나는 "사랑방 교회성장계획", 혹은 "사랑방 전략"이라고 한다. 이와 함께 시행되는 것이 "사랑방 성경공부", "골방 성경공부", "사랑방 전도훈련", "사랑방 제자훈련"이다.
사랑방이라는 말을 굳이 쓰는 것은 그것이 교회의 본질에 가깝기 때문이다. 교회가 아무리 커도 결국 친밀하게 관계를 맺는 것은 열 손가락안에 드는 사람들 즉 소그룹이다. 사람들에게 친밀한 것도 일대일 만남보다 여러 사람이 함께 모이는 소그룹이다. 물론 개중에는 더 친한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소그룹을 만들기를 좋아한다.
이러한 소그룹만들기는 어떤 누가 앞장만 서기만 하면 쉽게 만들어지는 특징이 있다. 현대에 와서 이러한 요구는 더욱 증대되고 있다. 왜냐하면 도시인들은 너무나 외롭기 때문이다.
헬스클럽, 수영장, 기타 동호인 모임에 나가 보지만 친하게 지내고 흉금을 터놓고 이야기할 만한 사람을 만나기는 힘든 것이 세상이다.
그러므로 사랑방 전략은 교회의 일꾼들을 훈련시켜서 세상에 나가 사람들을 모아 소그룹으로 인간관계를 엮어 나갈 수 있는 지도자를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평신도 지도자는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또 신앙만을 편협되게 고집하는 옹고집장이도 안된다. 넓은 시야와 가슴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자라가는 지도자만이 할 수 있다. 이러한 평신도 지도자를 길러내야야 다음 세대로 변화시키는 일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면 누가 이들을 길러낼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오직 한사람 담임목회자 자신인 것이다. 목회자 자신이 준비되어 있지 않고 성도들을 훈련시키고 변화시킬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결국 지도자를 길러내는 목회자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방 전략은 결국 목회자들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그리고 지도자를 만들 수 있는 지도자로 키우는 전략인 것이다.
소그룹을 만드는 그리스도인, 세상 사람들을 불러모아서 엮을 수 있는 평신도 지도자 이것이 사랑방 전략의 목표인 것이다.
이것이 되려면 먼저 목회자들이 변해야 한다. 그래서 사랑방 전략은 목회자 스스로를 향하여 도전하는 것이다. 소그룹, 훈련, 평신도 지도자 개발, 지역을 파고 드는 지혜, 이것이 우리의 전략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