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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고잔제일교회 “전원교회의 비젼으로” 한기동 목사   교회는 무엇하는 곳일까요?  “학교는 지식을, 병원은 건강을, 산업시설은 우리를 잘 살게 하기에 필요합니다. 그러면 교회는 무엇을 하는 곳일까요?  교회는 학교가, 병원이, 산업시설이 주지 못하는 것을 주는 곳입니다. 즉, 교회는 양심의 가책에서 해방을 주는 곳입니다. 교회는 습관적인 실패에서 승리를 주는 곳입니다. 교회는 죽음의 공포에서 자유를 주는 곳입니다. 교회는 만물의 영장으로 살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주는 곳입니다. 교회는 참된 평안, 참된 희망, 참된 자유, 영원한 생명을 주는 곳입니다.”    위의 글은 고잔 제일교회가 만든 전도지에 실려 있는 내용입니다. 문명사회에서 현대인들에게 교회의 정체성을 분명히 밝히는 초대의 글이라고 할 수 있다.  경기도 평택통합시 청북면 고잔리의 외따로이 떨어진 야산 언덕배기에 세워진 마치 별장같은 고잔 제일교회는 말그대로 한폭의 아름다운 그림 같았다.   고잔 제일교회는 1975년 4월 17일에 설립되었는데 1989년 9월에 한기동 목사가 부임해 와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한기동 목사는 고신대를 졸업하고 친한 친구의 권유로 나사렛 신학대학원을 졸업, 대한기독교 나사렛 성결회에서 82년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는 스무 살 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다고 하는데, 당시 결핵 3기로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6개월만에 깨끗이 치료되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게 된다. 당시 부산 침례병원의 방사선과 과장은 한 목사의 X-ray 사진을 보고는 기적이라고 하며 대단히 놀랐다고 한다.   한 목사는 기도원 집회를 통해 하나님께 주의 종이 되겠다는 서원 기도를 하고 바로 고신대에 입학하게 된다.  그리고 목사 안수를 받고 대구와 포항에서 약 7년간 목회를 하다가 좀더 공부하고 싶은 욕심에 수도권 근처의 교회로 부임해 왔다.  그저 소개만 받고 한 번도 사전 답사도 않은채 이삿짐을 싸들고 찾아온 교회는 이미 14년이란 역사를 지녔음에도 버려진 교회와 다를바 없었다.  지난 89년만 해도 옛날 방식인 흙담과 흙바닥에 스레트를 얹어놓은 전형적인 그런 농촌교회였다.
초기의 좌절은 오직 주님만 바라보게 했다.
이사오던 첫날 30여명 되는 농촌의 순박한 교인들이 이삿짐을 날아다 주려고 모였다.  이미 포항에서 개척서부터 150여 평의 교회를 짓기까지 갖은 고생을 다했던 강미숙 사모였음에도 참담한 교회의 모습을 보고 도착하자 마자 교회당에 들어가 울어 버렸단다.  교인들이 보건 말건 상관 않고 울었던 기억이 지금도 아련하다고 한 목사는 회고한다.  그도 그럴 것이 어느 정도 고생을 했으니 이제는 하나님이 조금 나은 곳으로 인도해 주실 줄 알았는데 의외로 보내어진 곳은 사람이 살기에 너무나도 외질 뿐 아니라, 교회며 사택도 낡았으니 그 마음이 오죽했겠는가! 거기에다 교회주변은 아무리 둘러봐도 인가가 드물었다.   나즈막한 동산이나 양지바른 곳에 집이 몇 채 있긴 해도 사방 십리 집을 다 합쳐 봐야 200여 호 밖에는 되지 않았다. 그러니 사모는 사모대로 낙심했고 한 목사 자신은 자신대로 실망으로 그날 밤을 지샜다고 한다. 자신이 너무 경솔했다고 판단했지만 이미 때는 한참이나 늦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한목사는 자신이 고잔 제일교회로 온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된 것에 대해 개인적인 체험이기 때문에 조심스럽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절박한 심정으로 그 다음날 새벽 기도를 드리는데, 하나님의 음성을 똑똑히 들었다고 한다. "내가 너를 이곳으로 인도하였고 너를 통해 새 일을 행하리라"이러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어떤 뜻을 가지고 인도하셨음을 깨닫게 된다. 그저 밥술이나 먹으면 좋겠다는 그의 기도가 그때부터 힘을 얻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체험은 그로 하여금 지적이고 상식적인 목회의 차원에서 성령을 의지하고 바라는 신령한 목회로 바뀌게 되는 계기가 된 것이다. 그가 확신을 가지고 제일 먼저 한 일은 설교 메시지에 혼신의 힘을 쏟는 것이었다.  그는 지금까지 예수의 생명이 나타나지 않는 그저 관념적인 기독교의 사랑을 외치는 메시지만을 던져 왔음을 회개한 것이었다.
전도로 불을 붙였다
비록 농촌 교인들이었지만 생명력있는 복음의 말씀앞에서 성도들이 삶에 힘을 얻고 하나님께 헌신하게 된다.  30명이던 성도들이 40명으로 늘어나고 어느새 교인들에게 신앙의 불, 기도의 불이 붙기 시작한 것이다. 한 목사는 그 불을 전도에 쏟았다. 우선 200여 호 되는 가구의 전 마을을 찾아다니며 전도하기 시작했다. 누가 뭐래도 정해진 시간이면 나가서 전도했고 또 멀리 시내에까지 나가자고 교인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목사와 교우들의 정성어린 수고에 힘입어 성령이 역사하셔서 1년만에 30명에서 70명의 성도들이 출석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부터 마을 전도가 어느정도 성취되었다 싶어서 평택, 송탄, 안중에까지 연고자를 통한 네트워킹 전도에 주력하였다.
초기엔 축호전도 다음에는 네트웤 전도(Net Working)
대개의 교회가 그렇겠지만 개척 초기엔 목사 중심으로 개인전도 혹은 축호전도가 일반적인 전도방법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느 정도 구성원이 생기면 목사 혼자서 계속 전도 할 것이 아니고 기존 교인들의 연고자들을 대상으로 전도 접촉점을 넓혀 가는 것이 더 중요하게 된다. 이러한 전도를 선교학적인 용어로는 네트워킹 전도라고 하는데 이것은 교회 성장학에서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고잔 제일교회의 한 기동 목사는 이러한 네트워킹 전도와 함께 도시인들을 이곳 한적한 농촌교회로 까지 데려오기 위해서는 자신들만이 가지고 있는 어떤 색다른 매력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생각하게 된 것이 전원교회에 대한 이상이었다고 한다. 말이 쉬워 비젼이고 이상이지 이제 겨우 70여명 나오는 농촌교회에서 보면 꿈만같은 이야기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미 한 목사의 설교와 삶 그리고 비젼에서 예수의 생명력을 느끼기 시작한 성도들은 그러한 비젼에 따라오기 시작했고 드디어 교회설립 15주년 기념일인 90년 4월 17일에 전원교회 건축을 위한 첫삽을 떴다. 그때부터 5년여에 걸친 길고도 긴 전원교회 건축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안으로는 교회 건축, 또 밖으로는 송탄읍과 인근의 도시를 19개 지역으로 나누어 네트워킹 전도를 펼쳐 도시인들에게 신선한 감흥을 일으키게 된다. 그래서 한 명 씩 두 명 씩 교회로 등록하기 시작 한 것이 이제는 450여명의 재적이 모이게 된 것이다. 대지 1300여평, 건축면적 250여평, 사택 35평 주차장 500여평 그리고 공사비 5억에 달하는 대규모의 역사가 빚한푼 없이 완공 되기에 이른 것이다.   주일이면 원근각지의 교우들이 승용차를 몰고와서 가족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또 교회 앞 농장에서 주말 농장을 가꾸다가 저녁이면 돌아간다고 한다.  고향집을 찾는 즐거움과 기쁨을 말씀의 은혜와 함께 누리고 가는 그들을 볼 때, 고잔 제일교회 교인들이야말로 작은 천국을 미리 맛보는 복된 사람들이라고 본다.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을 보고 놀라는 사람은 누구보다도 고잔 제일교회 성도들 자신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기도를 하고 모이기는 하지만 정말 그것이 이루어질까 꿈같이만 느꼈던 그들에게 고잔 제일전원교회는 현실로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하고 성장하길 원하는 목사와 교인들 앞에 기적도 보여 주셨고 치유의 역사도 강하게 하셨다.  특히나 잊혀지지 않는 것은 관절염으로 고생하던 환갑이 넘은 여집사님이 수술을 열흘남겨 놓았는데, 한목사의 기도로 거짓말 같이 나아 지금까지 전혀 재발이 없는 일이며, 교회를 다니지 않는 이웃 사람들까지 교회에 와서 건축을 도와준 일이며 말로 다 형용할 수 없는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난 것이다.   더욱이 고무적인 것은 믿음의 역사가 나타나자 겨우 젖소 한두마리나 키우며 만족해 하던 교우들이 믿고 기도하면 주신다는 믿음속에서 농장을 키워 이제는 십일조를 40만원, 50만원 하는 사람이 여럿 생겨났다고 한다.  교회 다니는 성도들이 농장을 크게 하는 것을 보고 이웃의 믿지 않는 사람들도 덩달아 사업이 번창했고 교회는 이래저래 좋은 소문을 내기에 이른 것이다.   평택군에 산재한 50여개의 나사렛 교회중에서 재정적으로나 교세로 가장 말석을 차지하던 교회가 이제는 2, 3 등을 다투는 교회로 성장한 이유는 한가지로 하나님의 능력일 뿐이었다고 한 목사는 겸손하게 말한다. 도시교회들도 어려워하는 이 마당에 어떻게 보면 전혀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는 외딴 시골교회에서 가까운 지역 주민뿐 아니라 멀리 있는 대도시 교인들까지 역류시키는 이 놀라운 역사는 분명코 쉽게 넘어갈 일이 아니라고 보여진다.   농촌교회가 자립의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낙담할 이유가 없다.  아직까지는 우리에게 생소한 교회모델이긴 하지만 자연으로 회귀하려는 인간의 본능을 최대한 파악해서 농촌 교회의 새로운 모델로 제시해 볼만도 하게 여겨진다. 적어도 몇가지만 갖춰 진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성장프로그램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서 네트워킹 전도 즉, T.L.C(Tender Loving Care)를 통한 전도 방법의 효율성을 다시한번 생각케 되는 것이다.   앞으로  고잔 제일교회는 보다 확대된 전원교회를 갖추기 위하여 도시인을 위한 각종 시설과 프로그램을 개발중에 있다고 한다. 즉,전원교회로서 필수적인 레저시설과 휴식시설을 갖추는데 역점을 두고 기도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 교회 뒷편을 매입해서 5층 정도의 문화센터를 건축하여 그곳에 소극장, 도서관, 스포츠센타 등을 만들고, 또 청소년들을 위해서는 수영장, 체육시설 등을 별도로 만들 계획으로 기도하고 있다.  전원교회를 꿈꾸고 기도한지 이제 5년만에 그 기쁨의 열매 가까이에 도달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목사는 농촌교회의 목회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부탁의 말을 하였다.  첫째는, 의존적인 사고를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좀 부족하고, 궁핍하더라도 인간적인 도움의 손길만 찾지말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며, 물질적인 면에서 당당하게 행동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두번째는, 비록 열악한 환경이지만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곳에 보내신데는 다 뜻이 있으니까, 믿고 기도하면, 또 인내하면 하나님이 인도해 주실 것이라고 한 목사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말을 한다.    자신의 뒤를 이어 목회자의 길을 걷겠다는 아들(중1)과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하는데 한 부분이 되기 위해 변호사가 꿈이라는 딸(중3)에 대한 한목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참으로 떠나기 싫은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며 고잔 제일교회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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