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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이기는 사람들(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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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이기는 사람들(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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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박봉수 목사



세상을 이기는 사람들

본문/ 요일 5: 3-5

오래 됐습니다만 어느 교회에서 특강을 청해서 강의 차 그 교회를 다녀 온 일이 있습니다.
처음 가는 길이라서 약도를 받아 들고 그 교회를 찾아 나섰습니다. 지하철에서 내려서 약도를 따라 한 골목길로 접어들었습니다. 갑자기 짙게 화장을 하고 아슬아슬하게 옷을 입은 아가씨들이 달려들었습니다. "오빠 놀다가!" 서로 경쟁하듯이 제 팔을 양쪽에서 잡아 다니는 것입니다.
알고 보니 그 골목이 그렇고 그런 골목이었습니다. 시간이 없다고도 해 보고, 난 이런데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고도 해도 막무가네입니다. 최후의 수단으로 가방을 열고 성경책을 꺼낸 뒤에 내가 목사라고 내 정체를 밝히고 난 후에야 그 골목을 무사히 빠져 나올 수가 있었습니다.
강의를 하면서 그 교회 교인들에게 농담을 던졌습니다. '내가 이렇게 믿음 좋은 교인들은 처음 보았다'고... '교회 올 때마다 집사님 놀다가! 장로님 놀다가! 목사님 놀다가! 시험을 무사히 이기고 교회에 나오니 얼마나 믿음이 좋은가?'고...
강의를 마치고 다른 길로 돌아서 나오는데 그쪽 골목도 아까 들어섰던 골목만큼은 아니어도 술집이 즐비하고 러브호텔도 여기 저기 늘어서 있었습니다.
정말 그 교회는 세상 한 복판, 그것도 타락과 죄악이 관영한 세상 한 복판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 교인들은 정말 세상 한 복판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문득 요 17:11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세상이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저희들을 보전하사..." 주님의 제자인 우리 믿는 사람들이 지금 세상에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 한 복판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모든 교회가 예외 없이 다 세상 한 복판에 서 있습니다. 오늘 모든 교인들이 예외 없이 세상 한 복판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은 도대체 어떤 곳입니까?
세상은 말은 성경 원어 헬라어로는 코스모스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신약성경에 무려 180회나 나옵니다. 다양한 문맥 속에서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내 대표적으로 두 가지 뜻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나는 우주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 세계라는 뜻입니다. 다른 하나는 가장 많이 가장 중요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라는 의미입니다.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역사의 무대라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은 바로 사람들이 삶을 펼쳐 가는 삶의 현장을 말합니다.

본래 이 세상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웠던 곳입니다. 그러나 롬 5:12를 보면 이 세상에 죄가 들어왔고 이 죄 때문에 이 세상에 죽음이 생겨났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롬 3:19를 보면 이 세상이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죄로 가득 차 있고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여있다는 것입니다.
본래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친히 다스리시던 곳입니다. 그러나 엡 2:2를 보면 지금은 공중 권세 잡은 자 사탄 마귀가 다스리고 지배하는 곳이 되어버렸다고 말씀합니다. 다시 말해서 이 세상은 더 이상 하나님께서 다스리지 못하시고 사탄이 지배하고 다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셨지만 요 1:10을 보면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요 7:7을 보면 세상이 그분을 미워했다고 했습니다.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분을 세상이 몰라봤고 미워했고 배척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런 세상에서 예수의 제자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처럼 이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박해와 핍박을 받고 있습니다. 환난을 당하고 우리 몫에 태인 십자가를 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이런 우리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세상을 이기라고... 세상과 싸워 이기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 한 복판에서 신앙 생활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살펴보면 크게 세 종류로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려는 사람입니다.
기독교 역사를 살펴보면 일부의 사람들이 수도원을 만들고 탁발을 하고 재산을 다 버리고 가족들도 뒤로하고 세상과 담을 쌓고 살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자기들끼리만의 거룩한 공동체를 만들고 순수한 신앙을 지키고자 세상을 등지고 사는 사람들이 있어왔고 지금도 그 후예들이 있습니다.
오늘도 세상에 물들까봐 세상과 담을 쌓고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기도원으로 도망치고 교회로 피해 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에서의 책임도 사명도 뒤로하고 교회를 도피성 삼아 영적인 삶에만 몰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바람직한 경향은 아닙니다. 박해가 극심하던 시절에 그 박해를 피하려는 일시적 태도라면 몰라도 펑상 시에 이런 경향을 보인다면 그것은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경향은 결코 세상을 이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세상을 피하는 것이지 세상을 이기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둘째, 세상에 져버리고 마는 사람입니다.
마치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사람이 점점 힘이 빠져 물살에 빠져 죽어가고 가는 것처럼 이 세상의 거센 파고를 이기지 못하고 패하고 마는 사람을 말합니다.
사탄이 쳐 놓은 유혹의 덫에 걸려서 죄의 늪에 빠져 신음합니다. 박해와 시련의 위협에 눌려서 믿음을 잃어버리고 믿음에 길에서 떨어져 나갑니다. 그야말로 세상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에 져버린 사람입니다.

그리고 셋째, 세상을 이기는 사람입니다.
주님의 명령대로 세상과 당당히 싸워 이기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면 세상을 이긴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세상을 이긴다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측면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소극적인 측면으로 세상으로부터 자기를 지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적극적인 측면으로 세상을 변화시켜 가는 것입니다.

세상으로부터 자기를 지키는 사람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 안에서 신앙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 물들지 않고 세상에 속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세상이 우리를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끝없이 우리를 유혹하기 때문입니다. 태초에 아담과 하와가 이 유혹을 받았습니다. 뱀이 찾아와 유혹을 했는데 안타깝게도 그 유혹에 넘어졌습니다. 우리 주님도 이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사탄이 찾아와 유혹했지만 우리 주님은 당당히 물리치셨습니다.

요일 2:16은 그 유혹의 내용을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첫째, 육신의 정욕이 무엇입니까? 육체적인 욕망을 말합니다. 하와가 선악과를 보면서 먹고 싶은 강렬한 욕망을 느꼈습니다. 우리 주님도 돌을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는 사탄의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지금 40일 동안 금식하신 뒤입니다. 너무 시장하셨습니다. 그래서 무엇이라도 잡수셔야 했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무엇인가 강렬한 욕망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갖고 싶은 욕망, 먹고 싶은 욕망, 해보고 싶은 욕망, 가보고 싶은 욕망... 이 욕망들을 이겨야 합니다. 절제하며 극복해야 합니다. 이 욕망을 따르게 되면 세상에 속하게 되고 세상에 빠져버리게 됩니다.

둘째, 안목의 정욕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의 눈에 화려하고 멋있게 보이고자 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하와가 보암직하고 먹음직해 보이는 것에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모든 사람들 앞에 화려하고 멋있게 보이려는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겉으로 화려하고 남들에게 멋있게 보이고자 하는 유혹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의 눈, 사람들의 칭찬을 의식해서 행동하고자 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충동을 이겨야 합니다. 이런 충동을 이기지 못하면 하나님의 눈을 저버리게 되고 결국 세상의 늪에 빠지게 됩니다.

셋째, 이생의 자랑이 무엇입니까? 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출세하고자 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남이 부러워할 만한 높은 지위에 오르고 싶고,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넓고 좋은 집에 살고 싶고,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크게 성공해 보고 싶은 간절한 열망이 있습니다. 이런 열망을 이겨야 합니다. 이런 열망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면 결국 세상의 늪에 빠져버리고 맙니다.

우리는 이런 세상의 모든 유혹에서 나를 지켜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갈 6:14에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세상이 그리스도인을 대하여 못박혔고 또한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대하여 못박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에 대해 못박힌 사람들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바울은 롬 12:2에서 이런 사실을 보다 구체적으로 피부에 와 닿도록 말씀했습니다. "너희는 이 세대 곧 이 세상을 본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길을 따라 가지 말고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길을 찾아 그 길로 가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갈 길이 다른 사람들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것을 요일 2:15에서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에 집착하거나 애착을 가져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세상을 변화시켜 가는 사람
우리가 세상을 이긴다는 것은 또 하나 최선을 다해서 세상을 변화시켜가는 것입니다.

미국의 존스 홉킨스 대학의 한 사회학과 교수가 학생들에게 재미있는 과제를 내 주었습니다. 볼티모어의 슬럼 가에 사는 2백 여명의 청소년들에게 앞으로 자신들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설문조사를 해 오라는 것입니다. 학생들이 확인한 결과 설문에 응답한 청소년 90%가 자신은 교도소를 다녀오게 될 것이고 사회에 쓸모 없는 사람이 될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25년이 지난 후에 후임 교수가 우연히 이 설문주사 자료를 발견하고는 다시 자기 학생들에게 그 예견이 맞았는지를 확인토록 했습니다. 수소문 끝에 당시 설문조사에 응했던 200여면 중에 180여명을 찾아냈고 확인 결과 불과 4명만이 교도소에 다녀왔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놀라운 결과가 나왔는지를 알아본 결과 그 응답자 대부분이 한 선생님을 지목했다는 것입니다. 학생들은 수소문 끝에 은퇴해서 양로원에서 살고 있는 오로크 선생님을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그 선생님을 찾아가서 물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학생들을 변화시킬 수 있었습니까? 그 선생님 대답이 난 한 일이 없습니다. 다만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전한 한 선생님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복된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사회가 변화하게 된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세상을 이기는 적극적인 방법입니다.
나로 인해 한 사람이 변화된다면... 나로 인해 내 가정이 변화하고, 내 직장이 변화된다면... 나로 인해 이 사회가 변화된다면... 이것이야말로 이 세상을 이기는 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요일 2:17을 보면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세상은 잠깐 지나갈 것입니다. 우리를 유혹했던 그 정욕도 다 지나가 버릴 것입니다. 마치 일장춘몽처럼 자나갈 것들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셨던 것처럼 우리도 이 세상을 떠나 저 하나님 나라로 가서 그곳에서 영원히 살 것입니다.
우리가 잠시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이 세상과 싸워 이겨야 합니다. 이 세상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야 하고 나아가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변화시키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세상을 어떻게 이길 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에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4절을 보면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한 마디로 믿음으로 이긴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5절에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즉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그 믿음이 우리로 하여금 세상을 이길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요일 4:4에 보면 이를 보다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
이 말씀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믿는 예수는 우선 세상보다 큰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세상이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그런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가 이런 분을 믿으면 그분이 우리를 지켜주시기 때문에 세상이 우리를 어찌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 11:38을 보면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한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그 믿음 때문에 세상이 우리를 감당치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유혹해도 소용없고 박해를 해도 소용이 없게 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예수께서 세상을 이기셨다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세상을 이기신 예수께서 우리로 하여금 세상을 이길 수 있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마치 다윗이 하나님을 믿고 나갔을 때 그 믿음이 골리앗을 이길 수 있게 해 주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스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수도사가 여왕의 통치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왕을 기뻐하지 않으실 것이라 말하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자리로 돌아오라고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여왕이 말했습니다. 그리고 수도사가 답했습니다. "나는 그대를 추방하겠다." "여왕 폐하 그렇지만 저를 그리스도로부터 쫓아내지는 못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너를 죽이겠다." "그렇지만 저를 영원히 죽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안에 영원히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너의 전 재산을 몰수 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리스도께서 저를 풍성하게 채우신 것은 빼앗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믿음 가운데 굳건히 서 있기만 하면 이 세상과 싸워 이길 수 있습니다. 주께서 우리를 지켜주실 것이고, 우리에게 이길 힘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도 우리는 이 세상 한 복판에 서 있습니다. 고달프고 힘겨운 인생 길을 세상 한 복판에서 걷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세상으로부터 도망쳐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세상에 져도 안됩니다. 세상과 싸워 이겨야 합니다. 세상과 싸워 이기려면 예수를 믿는 믿음 가운데 든든히 서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과 싸워 이길 수 없지만 우리의 믿음이 우리로 하여금 세상과 싸워 이길 수 있게 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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