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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개혁 (시 119:113-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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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개혁 (시 119:113-120)
: 박봉수목사




제 목 진정한 개혁 (10/26) - 종교개혁주일 -
본 문 시편 119:113-120

구한말 서양의 신문명이 들어올 때 일입니다. 어느 대감이 서양 선교사로부터 비누 한 상자를 선물을 받았습니다. 때가 잘 씻긴다고 신기해하며 자기 문객들에게 비누를 자랑하고는 하나씩 나누어주었습니다. 바로 그 때 문객 가운데 월남 이상재 선생께서 있었습니다. 아시는 대로 이상재 선생은 그리스도인으로 독립협회를 통해 독립운동에 앞장 서셨던 분이시고 YMCA가 기틀을 잡는데 산파역할을 하셨던 분입니다.

이분이 비누를 받아들고서는 갑자기 칼로 비누를 깎아서 먹는 것입니다. 대감이 놀라서 말했습니다. “여보게 이 사람아 그건 때를 씻는 물건이지 먹는 물건이 아닐세” 이상재 선생은 이렇게 답했답니다. “알다 마다요 여러분은 이것으로 얼굴의 때만 씻지만 저는 뱃속의 때를 씻어 볼까 해서 먹었습니다.” 그 때 대감과 문객들이 부끄러워 모두 낯을 붉혔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는 심각하게 개혁피로증후군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너도나도 개혁을 외치지만 정작 개혁되는 것은 없고 개혁과 관련된 스트레스만 쌓여갑니다. 정치 개혁을 부르짖은지 오래지만 정치권의 구태와 부패는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를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겉만 씻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개혁하겠다고 제도를 바꾸고 법을 새롭게 하고 관행을 고칩니다. 그러나 얼마 안가서 바뀐 제도, 법, 관행에 또 다른 문제가 생깁니다. 사람이 그대로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새로운 제도, 법, 관행을 또 다시 더럽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개혁은 속사람을 바꾸는 작업이어야 합니다.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고, 삶의 태도가 바뀌고, 그 마음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러면 제도, 법, 관행을 조금만 손질해도 놀라운 효과를 볼 수 있고, 우리가 정말 좋은 세상을 열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세상을 향해 개혁을 외치거나, 개혁이 지지부진한 것에 대해 비판할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 개혁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도 제대로 개혁하지 못하면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개혁하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영국교회의 부흥과 개혁을 주도하고 있는 이안 머레이(Ian Murray) 목사는 [부흥과 부흥주의](Revival & Revivalism)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오늘의 교회의 문제는 교회 안에 성도들과 세속적인 사람들이 섞여있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교회 안에 진정한 성도들 보다 세속적인 사람들이 더 많아지다 보니 교회는 이 세속적인 사람들이 좋아하는 설교, 이들을 참여시킬 프로그램들로 넘쳐나게 되었답니다. 그 결과 교회는 거룩성이 약화되고, 세상을 변화시킬 능력을 잃어버리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교회와 세상 사이의 차이가 점점 사라져버리게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머레이 목사의 지적이 정확합니다. 사실 교회 안에 겉 사람만 변화된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주일을 지키고, 예배드리고, 교회 봉사에 참여하고 나름대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그 속사람이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철저하게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하게 순복하지 않았습니다. 성령 충만함을 누리지 못합니다.

교회의 개혁도 여기서 시작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제도를 바꾸고, 교회의 예전을 새롭게 하고, 교회 시설을 리모델링하는 것으로 개혁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날 때 교회의 개혁은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진정한 개혁이 속사람의 변화라고 한다면 어떻게 개혁을 이룰 수 있을까요? 그 답 역시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히 4:12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수술을 할 때 의사가 집도하여 개복하고, 칼로 암 덩어리나 문제가 있는 장기 부분을 잘라내어 병을 고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심령 속에 들어오면 칼처럼 우리 심령 속에 있어서는 안 될 것들을 잘라내고, 문제가 있는 부분을 처리하여 우리 속사람을 새롭게 변화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속사람을 새롭게 할 수 있는 능력은 하나님의 말씀 밖에는 없습니다. 세상의 지식이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사람의 주의 주장이 속사람을 새롭게 할 수 없습니다. 인터넷에 떠도는 그 많은 정보들이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심령 속에 들어오면 우리 속사람을 새롭게 합니다. 우리 속사람을 변화시킵니다. 그래서 진정한 개혁을 이룰 수 있게 합니다.

마 4:4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면 떡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특별한 존재로 지음 받았습니다. 창 2:7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말씀했습니다. 사람은 흙에서 온 육이 있고 또한 생기에서 온 영이 있어서 이 육과 영이 조화롭게 생령 곧 사람을 구성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육을 위해서 떡이 필요합니다. 뿐만 아니라 영을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다시 말하면 겉 사람을 위해서는 떡이 필요하지만 속사람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겉 사람 중심으로 살아가는 이유는 우리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먹지 않기 때문에 우리 속사람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개혁해야 합니다. 새로워져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여기에 진정한 개혁의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함으로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다시 말하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개혁의 방향이 무엇이냐는 말씀입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하면서 외친 말씀은 다름 아닌 “오직 믿음으로!”라는 것입니다. 그가 잘못된 로마 천주교의 교리, 제도, 관행을 고치자고 외친 것이 아닙니다. 물론 결과적으로 그것들이 바로 잡혀서 개신교가 태동이 되긴 했습니다. 그가 외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 그대로 믿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개혁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롬 1:5을 보면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라고 말씀했습니다. 또한 롬 16:26을 보면 “이제는 나타내신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좇아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시려고 알게 하신바...”라고 말씀했습니다. 간단히 요약하면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됐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믿고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어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암송하면서 살았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양피지에 적고 이것을 작은 가죽상자에 담아 신체 일부분에 붙여두었습니다. 이것을 테필린이라고 부르는데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왼쪽 손목에 달았고, 다른 하나는 이마 미간에 부착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문설주에 달아놓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적은 양피지를 작은 통에 넣어 이것을 집을 드나들 때 쉽게 볼 수 있도록 문설주에 사람의 키 높이 정도에 매달아 놓았습니다. 이것을 메주자라고 합니다.

이렇게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두고 살려고 몸부림을 쳤습니다. 그러나 주님 보실 때 저들이 그 말씀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점을 개혁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건축헌금 작정이 마무리가 됐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액수가 13억 정도가 됐습니다. 그런데 처음에 아무리 생각해도 이 금액이 작정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습니다. 현재 경제 상황도 좋지 않고 우리 교회가 이렇게 작정 헌금해 본 일이 근래에 없기 때문에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중에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있었습니다. 학 2:4 말씀이 마음에 와 비수처럼 꽂혔습니다. “여호와가 이르노라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찌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찌어다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찌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 성전재건 명령을 하시면서 스룹바벨과 학개 선지자에게 주셨던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에 제 심령을 강하게 흔들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이 말씀이 믿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성전건축에 함께 하시고 헌금 작정도 직접 역사해 주시리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건축위원들을 소집하고 당회를 열어 헌금 작정을 의논하기 시작했습니다.

결론을 말씀드리면 현재 작정 금액이 13억 3천만원입니다. 13억 목표를 정확하게 아니 적당히 넘치게 채워주신 것입니다. 아마 모두 모여 얼마씩 하자고 할당하고 확인해도 이렇게 목표 달성은 어려웠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법대로 성도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그 목표 액수가 채워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할 때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 진정한 개혁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충만함으로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더욱 풍성한 삶을 살려면 우리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충만해야 합니다. 이 또한 우리가 추구해 가야할 개혁의 목표입니다.

요 1:1-3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천지를 창조했다는 것입니다. 만물이 말씀으로 창조됐고, 말씀 때문에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도 여러분과 저도 말씀 때문에 여기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말씀 때문에 존재하게 된 우리들이 본연의 모습으로 살려면 또한 말씀과 함께 있어야 함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말씀이 사라지게 됐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풍성한 삶을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암 8:1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모스 선지자를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하나님께서 보실 때 아모스 시대의 문제는 전쟁 때문도 아니요, 경제적인 문제 때문도 아니요, 각종 사회적인 문제 때문도 아닙니다. 문제의 본질은 하나님의 말씀의 기갈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된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도 부족하다는 것 이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다시 요 1:14에 와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충만해 지니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고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풍성해 지니 우리가 정말 풍성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요사이 저는 무척이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지난번 이란에서 전도한 샤힌이라는 청년과 e-mail로 지속적인 만남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청년이 점점 말씀을 접하게 되고, 그 심령 속에 말씀이 채워져 가면서 여러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란이라는 복음의 불모지 속에서 혼자 믿음을 지켜가야 하는 너무도 힘든 상황 속이지만 저가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 심령 속에 말씀을 채워가기 시작했습니다. 말씀이 채워지면서 점점 믿음이 자라고 새생명의 풍성함을 맛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 형제를 보면서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또 한번 깨닫게 됩니다. 그 심령에 말씀이 채워지니까 그 삶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말씀이 충만해 지면 질수록 우리 삶의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요사이 해양 심층수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심층수란 북극이나 남극 지방에서 만들어져 해저 200미터 이하로 바다 심층에 흐르는 물을 말합니다. 여기에는 인체 생장에 필수적이고 유익한 미네랄이 풍부하며 유기물이나 병원균이 거의 없어 인체에 가장 완전한 물이라고 알려져 왔습니다. 이 물을 먹으면 각종 성인병 치료에 탁월한 효과를 볼 수 있다고 광고가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물로 효과를 보려면 장복을 해야 한답니다. 우리 인체의 몸이 약 70%가 물로 되어있는데 이 인체의 물 성분이 심층수로 완전히 바뀔 때까지 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적어도 6개월에서 1년 이상 지속적으로 먹어야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 몸의 수분을 이 심층수 성분으로 다 바꿔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충만하다는 것은 우리 마음과 우리 생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 차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세속적인 마음, 물질주의적인 생각, 쾌락주의의 욕망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뀌게 될 때 우리 안에 하나님의 말씀의 위대한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심령에 말씀이 충만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종교개혁 개념주일에 진정한 개혁을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어느덧 이 세상 한 복판에서 세속주의, 물질주의, 쾌락주의의 물결에 휩쓸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풍성한 삶을 잃어버리지는 않았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진정한 개혁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오늘 시인의 고백을 우리 고백으로 삼아야 합니다. “내가 주의 법을 사랑하나이다”, “내가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 “내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리로다” 우리는 이 고백을 함께 드리며, 하나님의 말씀 앞으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심령을 충만히 채워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오늘의 한국교회의 영적 정체와 침체를 극복하고, 이 사회의 참된 개혁의 길을 열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2004/02/28 Sat 07:2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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