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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게 살고 싶어 바르게 안다 (막 10:3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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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게 살고 싶어 바르게 안다 (막 10:35~45)
: 강문호 목사




바르게 살고 싶어 바르게 안다(막 10:35~45)


설교 준비를 하려고 하는 데 신문이 떨어졌습니다. 신문을 보는 데 독일에서 성자 거지 페터 노이야르가 한국에 세 번째 왔다는 뉴스가 실려 있었습니다.
63년간 세 가지 없이 거지로서 살아 왔습니다. 집없이, 돈없이, 아내없이 살았습니다. 옷은 주워서 입었습니다. 식사는 유통기간이 지난 음식을 얻어 먹고 살았습니다. 잠은 오늘은 이 곳 내일은 저 곳에서 잤습니다. 이를 닦은 지가 20년이 넘었습니다. 목욕도 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기독교인입니다. 그런데 불교의 고행에 매력을 느겨 중처럼 머리를 깍았습니다. 살생을 금하느라고 몸에 이 벼룩을 그대로 두었습니다.
<내 몸이 네 식량이니 싫컷 뜯어 먹어라>
그리고 죽이지 않았습니다. 보통 퀼론 대도서관에 책이 500만권인 데 그 곳에 묻혀 책을 읽고 명상하는 것이 가장 많이 하는 일입니다.
<바람은 그물에 걸리지 않는다>
<실수하면 처음부터 다시 출발한다>
<내가 싫은 것은 남에게 바라지도 말라>
이런 철학을 가지고 살아 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과연 바르게 사는 것일까요?
부자는 바르게 살지 못 하는 것이고 가난하게 사는 것은 청렴하게 사는 것일까요? 중처럼 산속에 들어가서 속세를 떠나 살아가면 과연 바르게 살 수 있을 가요?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바르게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것일까요?


1. 자리보다 일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12명의 제자들과 함께 걷고 있었습니다. 이 때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에게 이런 부탁을 하였습니다.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보니까 왕이 될 것같이 생각이 되었기에 미리 감투를 부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
예수님은 우편 좌편 자리보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마시는 잔을 같이 마실 수 있는 지 없는 지를 물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마시는 잔은 무엇일까요?
인간의 죄를 짊어지고 죽으시는 것입니다.
남을 위하여 내가 죽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중요한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목사, 장로, 권사, 집사 자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하신 일을 할 수 있는 지 없는 지가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눈과 예수님의 눈은 다릅니다. 이 다음에 하나님앞에 가서 심판 받을 때 집사님으로서 면류관 받을 사람이 있고 목사로서 책망받을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자리보다 일이 중요합니다>

자리를 보지 말고 일을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미국의 유명한 목사님이 목사님들에게 강의하면서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네 인격이 너무 크게 말하기 때문에 네 입으로 하는 말은 귀에 들리지 않는다>
남에게 감동을 주는 일을 하는 사람은 감동이 너무 진하여 말하지 않아도 감동이 진하게 온다는 의미입니다.
하는 일이 아름다워야 합니다.

나는 극동방송국 김 장환 목사님이 시무하시는 수원 중앙 교회 두 번 간 적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 이 재두 장로님이 그 교회를 빌려서 농협 행사를 할 때에 갔었고 부흥회를 인도하러 갔었습니다. 첫 번 갔을 때에는 교회 앞에 빌딩이 있는 데 술집이 지하에 있었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나오면 번덕번덕한 술집 네온 싸인이 요란하게 돌아 가고 있었습니다. 기껏 하나님께 경건하게 예배드리고 나오면 첫 번 눈에 띠는 것이 요염한 여자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갔더니 그 빌딩이 교회 건물이 되어 있었습니다. 나는 놀라서 목사님에게 물었습니다.
<목사님! 어떻게 저 건물을 사셨습니까?>
김 장환 목사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할머니 때문에 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할머니 한 분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께로 가시면서 목사님 손에 500만원을 쥐어 주면서 말했습니다.
<목사님! 500만원입니다. 작은 돈입니다. 나는 평생 소원이 하나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다 좋은 데 교회 앞에 술집이 있습니다. 예배 드리고 나올 때마다 마음이 안 좋았습니다. 그래서 자식들이 주는 돈을 한 푼 두 푼 모으며 쓰지 않았습니다. 먹지도 않고 입지도 않았습니다. 저 건물을 사서 하나님께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저 건물을 사지 못 하고 하나님 앞에 갑니다.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이 돈으로 저 건물을 사는 데 보태 쓰십시오>
그리고 눈을 감았습니다.
목사님은 건물을 사는 데는 겨우 코끼리 코에 비스켙같은 돈이지만 감격으로 기도하였습니다. 그 돈이 그 건물을 사는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온 성도들의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그래서 그 건물을 사자고 결의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건물을 사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큰 일을 시작하였습니까?

자리보다 일이 중요합니다.
음악가 곽상수 선생님은 평생 교회 피아노 반주를 하며 봉사하였습니다. 이제는 늙어 피아노를 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기력이 다 쇠하였습니다. 그 때서야 비로서 딸에게 반주 자리를 물려 주었습니다.
일본의 재무부 장관은 교회에 나오기 시작하면서부터 봉사 한 가지르 맡겨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신발 정리를 맡겼습니다. 그는 재무부 장관이 되어서도 신발 정리 때문에 공무를 한 적이 없었습니다. 자리보다 일이 중요합니다.
은광 교회 처녀가 교회에 출석하여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를 시작하였습니다. 그 처녀가 후에 장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도 주일학교 교사를 중단한 적도 없고 빠진 적도 없었습니다.
카터 대통령도 대통령 되기 전부터 주일하교 교사를 하던 것을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자리보다 일이 중요합니다. 미국의 백화점 왕 워너 메이커도 체신부 장관으로 4년 있는 동안에 주일학교 교사직을 한번도 결석한 적이 없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모두 아름다운 분들입니다.
자리보다 일이 중요합니다. 어떤 자리에 있어도 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2. 얼마나 소유했느냐 보다 어떻게 썼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43-44)

이는 소유하는 물질이 되지 말고 사용하는 물질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계신 것입니다.
미국 텍사스의 어떤 부자는 너무 돈이 많았습니다. 움켜 쥐고만 살았습니다. 그 부자가 죽을 때 식구들이 물었습니다.
<마지막 소원이 무엇입니까?>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내가 죽거든 황금관 속에 넣어서 묻어 달라>
그래서 소원대로 금으로 관을 만들어 시체를 그 속에 넣어 파묻어 주었습니다. 황금 관에 시체가 들어 갔다고 그를 훌륭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가요? 차라리 그 돈을 마지막으로 나마 양노원이나 고아원에 기증하고 죽었라면 그 양노원이나 고아원에서는 동상을 만들어 놓고 그의 이름을 기억하였을 것입니다.

얼마 전에 뉴욕에서 정 명훈과 한 동일이 같이 자선 음악회를 열었습니다. 10반불 약 1억 2천만원이 모금되었습니다. 그런데 한 노인이 3만불 그러니까 3천 6 백만원을 헌금하였습니다. 알고보니 평생 조금 조금 용돈을 모아 둔 것이었습니다. 할아버지에게는 전 재산이었습니다.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가지고 있는 것을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합니다.

미국에 젠킨스 박사님께 어느날 죠지아 주에 있는 큰 술집 주인이며 도박장 주인이 상담을 하러 왔습니다.
그는 돈이 억수로 많은 부자인 데 생활은 불행하였습니다. 박사님은 불행한 삶을 청산하기 위하여는 예수님을 믿으라고 권하여 주었습니다. 성경도 읽으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 후 몇 달이 지났습니다. 전화가 왔습니다.
<오늘 아침 박사님이 지시하신 대로 성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의 빛이 제 영혼에 가득 비쳐왔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에게 제 마음을 바치고 그분을 위해 살기로 했습니다>
며칠 후에 그 집 앞을 지나면서 보니까 비싼 고급 가구를 모두 실어 내가는 것이었습니다. <왜 고급 가구를 실어 내가십니까?>
물었더니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술을 팔아서 돈을 모았습니다. 그렇게 번 돈이 생각날 때마다 추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술을 팔아서 산 물건을 모두 처분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 물건을 사용하면 집안에서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집안 식구들이나 자녀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칠 것만 같았습니다. 이제부터는 깨끗하게 번 돈만 사용하겠습니다>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보다 어디에 사용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바클레이가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버는 돈을 계산하시지 않고 쓰는 돈을 계산하신다>
예수님이 사람들이 헌금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부자들이 수표를 바치고 많은 돈을 바치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을 바치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저 가난한 과부가 가장 많이 헌금했다>
얼마나 소유하였느냐보다 얼마나 어디에 사용하였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3. 섬김을 받는 것보다 섬기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이 왕이 되시면 하나는 좌편에 하나는 우편에 앉혀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벳세다 들녁에서는 5000명이 모여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3일이 지났습니다. 모두가 배가 고팠습니다. 그 때 어린 아이 하나가 예수님에게 오병이어를 가지고 왔습니다. 예수님은 어린아이가 가지고 온 오병이어를 들고 축사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누어 주었습니다. 5000명이 배불리 먹고 12 광주리가 남았습니다. 성경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그 자리에서 그 어린아이는 주인공이 되었을 것입니다. 5000명이 그 어린아이를 볼 때마다 말했을 것입니다.
<꼬마야! 너 때문에 배불리 먹었다. 고맙다. 다 네 덕분이다>
무엇을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미국의 정치가 에드먼드 버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평생에 많은 사람을 보아 왔는 데 맡은 일에 헌신하는 사람치고 악인은 없었다>
영국의 왕 죠지 6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사람을 쓸 때 그 사람의 사람됨을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사람의 현재와 지난 생애에서 얼마나 남에게 봉사하였느냐 얼마나 헌신하였느냐를 보면 된다>

미국의 여자 배우중에 오드레 헵번(Audrey Hupburn)이 있습니다. 세기적인 연기자입니다. 그가 유명하게 된 데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습니다. 세계 제2차 대전때였습니다. 그 소녀는 굶주리고 가난한 고아 소녀였습니다. 길거리에서 굶어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길거리에 쓰러져 죽어 가고 있을 때 어떤 사람이 발견하여 겨우 살아 났습니다. 그 후 불쌍한 그 소녀는 국제연합아동보호 기금인 유니세프(UNICEF)가 제공하는 빵을 먹으며 살았습니다. 나중에 오드리 헵번은 유니세프를 자기 생명처럼 여겼습니다. 자기를 살린 기관이기 때문입니다. 일생 유니세프와 함께 살면서 수많은 굶주린 아이들을 도우며 살았습니다. 오드리 헵번은 늘 말했습니다.
<절망의 늪에서 나를 구해준 분들을 위하여 이제 내가 봉사할 차례다>
그는 늘 굶주린 어린아이들을 섬기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배우로서 소문난 인격의 사람으로 존경받으며 살았습니다.
늘 섬기니까 어느 곳에 가나 꼭 필요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다윗에게서 그런 사실을 명확하게 볼 수 있습니다. 이새는 아들만 8명을 낳았습니다. 어느 날 사무엘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기름을 뿔에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 아들 중에서 한 왕을 예선하였음이니라>(삼상16;1)
그래서 사무엘은 기름을 가지고 이새의 집으로 갔습니다. 왕을 뽑기 위하여서였습니다. 이새는 막내 아들 다윗은 혼자 양을 치라고 들판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7명의 아들들을 사무엘 앞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그들중에 한 명이 왕이 될 것을 기대하였습니다.
큰 아들 엘리압, 둘째 아들 아비나답, 셋째 아들 삼마를 차례로 사무엘 앞에 세웠습니다. 하나님은 아니라고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7명이 다 그랬습니다. 사무엘은 아들이 다냐고 물었습니다. 이새가 말했습니다.
<아직 말째가 남았는데 그가 양을 지키나이다>(삼상16;11)

다윗은 종같이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형들의 종노릇을 하였습니다. 아버지의 종노릇을 하였습니다. 좋은 자리에는 다른 사람을 보내고 양을 치는 일에 혼자 종노릇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왕으로 임명하라고 사무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종노릇하는 다윗이 왕이 되었습니다. 크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종노릇하면 됩니다. 미드라쉬는 이런 말을 전하여 주고 있습니다. 다윗은 양을 칠 때 남다른 데가 있었습니다. 양을 세 종류로 분류하였습니다. 병든 양, 어린 양 그리고 건강한 양입니다. 풀을 보고 갓 피어난 연한 풀이면 병든 양을 끌어다 먹였습니다. 그리고 보통 풀은 연약한 양들에게 뜯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억센 풀은 건강한 양들이 먹게 하였습니다. 이런 모습을 하나님이 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아! 네가 네 아버지 양을 그렇게 잘 기르는 것을 보니 너에게 내 양 이스라엘 백서을 맡기면 잘 돌볼 것같구나! 네가 왕이 되거라>
섬김을 받는 것보다 섬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느 교회가 부흥된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동네 불량배들이 와서 교회 칼라 유리 작품 73장을 깨뜨리고 도망을 쳤습니다. 수백년된 골통품이었습니다. 국가적으로도 아주 값진 유리였습니다. 경찰이 수사에 들어 갔습니다. 동네 불량배 9명이 체포되었습니다.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회의가 열렸습니다. 동네 저들을 벌을 감옥에 가둔다고 유리가 다시 살아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용서하고 섬기기로 결의하였습니다. 온 교회가 용서를 구하는 탄원서를 체출하였습니다. 9명을 풀어주면서 판사가 말했습니다.
<교회 전체가 너희들을 사랑하여 풀어 주는 것이니 다음 주일에 교회에 가서 용서를 빌며 고맙다는 인사를 드려라>

다음 주일 큰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9명 아이들 부모는 모금운동을 벌려서 유리창 재건 자금보다 더 많은 돈을 모금하여 왔습니다. 그리고 9명은 와서 펑펑 울면서 잘못을 빌었습니다. 온통 울음바다가 되었습니다. 그 후 그 교회가 크게 부흥되었습니다.
미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두목으로 오신 분이 아닙니다. 지도자로 오신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섬기는 이로 오셨습니다.
어느 정도로 섬기러 오셨습니까?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시기까지 섬기러 오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분명히 하면서 구약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인 대속물로 주려고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1. 자리보다 일이 중요합니다.
2. 얼마나 소유했느냐 보다 어떻게 썼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3. 섬김을 받는 것보다 섬기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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