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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디옥에 세워진 교회 Ⅰ/ 행 11: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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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디옥에 세워진 교회 Ⅰ/ 행 11:19-26
: 조석연 목사



안디옥에 세워진 교회 Ⅰ(사도행전 11:19-26)

안디옥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이스라엘 땅이 아닌 이방지역에 세워진 첫 번째 교회 입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세워진후에 두 번째로 세워진 교회가 안디옥교회 입니다. 안디옥은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480km나 떨어진 수리아 지방의 대도시입니다. 그 당시 인구가 50만명에 이르는 로마의 3번째 도시였습니다. 이런 이방의 대 도시에 주님의 교회가 세워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1월 둘째 주일을 맞이하여 "안디옥에 세워진 교회"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받으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은혜 내려 주실 줄 믿습니다.


<안디옥에 세워진 교회>


1.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입니다.

오늘 본문 19절에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을 인하여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도를 유대인에게만 전하는데...> 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이란 말은 예루살렘 교회에 임한 핍박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째서 하나님은 예루살렘 교회에 핍박이 일어나도록 하셨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오순절에 성령을 부어 주심으로 탄생된 예루살렘 교회에 핍박이 일어나도록 하신 이유가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루살렘 교회가 하나님이 원하시고 하나님이 명령하신 선교를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주신 명령이 행 1:8절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성령을 받고 탄생한 예루살렘 교회는 이스라엘 땅을 넘어가지 못했습니다. 복음은 단지 예루살렘과 유대땅에 머물 뿐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자기들끼리만 그 복음의 능력과 은혜를 가지고 즐겼습니다. 주님의 뜻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복음을 유대를 넘어 사마리아로 그리고 땅끝으로 전파하는 것이 주님의 뜻이었고 명령이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은 핍박이라는 특별한 수단을 사용하심으로 복음을 받은 성도를 사방으로 흩으셨습니다. 이를 가리켜 어떤 신학자는 설명하기를 "하나님은 당신의 망치를 가지고 한곳에 모여있는 콩 무더기를 내려치심으로 콩들이 사방으로 흩어져서 콩밭을 이루게 하셨다" 고 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기서 분명히 깨달아야 할 것은 교회가 선교를 하지 않을 때 하나님은 그 교회를 쪼개서라도 복음이 사방으로 전파되게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를 통해 복음을 받은 성도들이 핍박을 피해 안디옥에 왔고 유대인이 아닌 헬라인에게까지 복음을 전파함으로 이방 땅 안디옥에 교회가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본문 20절과 21절 말씀을 들어보세요 <그 중에 구브로의 구레네 몇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며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에 의하여 안디옥에 온 사람들이 복음을 전파 하였고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므로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러면 안디옥 교회를 세우신 분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안디옥에 세워진 교회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는 말하기를 "예루살렘의 핍박은 안디옥에 새 예루살렘 교회를 세우게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 교회입니다.


2. 위대한 성도들을 통하여 세워진 교회

본문 19절에 <환난을 인하여 흩어진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말을 한번 묵상해야 합니다. 핍박이 오면 예수 안 믿으면 됩니다. 환난이 오면 예수 떠나면 됩니다. 문제는 간단합니다. 그런데 예수 믿음으로 핍박이 왔을 때 복음을 가슴에 품고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납니다. 그것은 복음이 저들에게 있어 생명보다 귀하게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진이 기록되던 때 고향을 등지는 것은,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는 것은 죽기를 각오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는 복음 말고는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들은 예루살렘을 떠났습니다. 유대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천리밖 안디옥으로 갔습니다. 이는 순교와 같은 결단이요 행보입니다. 실로 저들은 복음에 생명을 건 위대한 성도들입니다. 자신을 포기하고 복음에 모든 것을 바친 영웅들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들의 삶을 보십시오. 저들은 가는곳 마다에서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예수 증인이 되었습니다. 입만 열면 복음을 말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안디옥에 세워진 교회는 위대한 성도들을 통하여 세워진 교회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옛말에 이런 말 있지요. "나라가 어려워 봐야 충신을 알 수 있고 가정이 어려워 봐야 현모를 알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환난이 와 봐야 참 성도를 알 수 있습니다. 교회가 어려울 때 자기일 제쳐놓고 주님 일에 몸을 던지는 성도 있습니다. 교회는 그런 성도들 때문에 주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며 계속하여 생명의 역사를 이어 가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훌륭한 성도는 훌륭한 말을 하고 훌륭한 일을 합니다. 좋은 성도는 좋은 말을 하고 좋은 일을 합니다. 그런 교회는 훌륭한 교회가 되고 좋은 교회가 됩니다. 오늘 본문 21절을 보세요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며...>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였습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예수 위하여, 복음 위하여 목숨을 건 사람들입니다. 주의 손이 함께 하는데 더 바랄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안디옥 교회는 위대한 성도들에 의하여 위대한 교회가 세워진 것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3. 위대한 지도자가 있는 교회입니다.

오늘 본문 22절에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23절에 어떻게 말씀합니까? <저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 권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바나바는 이방 땅에 교회가 서고 또 은혜가 충만한 것을 보고 기쁨이 넘쳤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는 기쁨을 가지고 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바나바는 안디옥의 모든 성도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있어라>여기 "굳은 마음"은 흔들림이 없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고 하였는데 이 말은 모든 삶의 기준과 원리를 예수께 두라는 뜻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말을 잘 들으셔야 합니다. 바나바의 위대한 면이 여기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바나바는 안디옥 교회에 부임하자 즉시 모든 성도들로 하여금 흔들림이 없이 예수님 안에 머물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바나바의 뜻을 따르라든지 바나바의 계획을 실천하라고 하지 않고 오직 예수안에 머물기를 소원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나바의 위대한 면이요 성경이 그를 높이는 이유중의 하나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고 높아지는 비결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교회를 자랑하면 됩니다. 목사를 자랑하면 됩니다. 여기 부목사님들이나 장로님들께 제가 권면하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이 교회에 대한 긍지를 가지고 교회를 자랑하며 침이 마르도록 목사를 칭찬해 보십시오. 그는 세상 말로 뜹니다. 모든 사람이 그를 주목합니다. 누구나 그를 높이고 사랑합니다. 바나바가 왜 갑자기 떴습니까? 자기는 숨기고 교회자랑 예수님 자랑 때문이었습니다. 그 다음 바나바의 위대함이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본문 24절에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착한 사람"이란 또는 "훌륭한 사람"을 뜻하는 말입니다. 이는 영적인면이 아닌 인격적인 면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말을 귀담아 들으셔야 합니다. 지도자는 인격을 갖추어야 합니다.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목사가 있는 교회가 부흥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바나바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영적인 면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요소를 갖춘 사람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 믿음 충만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일을 하실 때 쓰셨던 모든 주의 종들의 모습입니다. 한번 따라 합시다<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 위대한 지도자가 있는 교회는 부흥합니다. 위대한 교회가 됩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도행전에 바나바에 관한 기사가 몇 군데 기록되어 있는데 모두다 그의 착함과 성령 충만 믿음 충만을 뒷받침하고 있는 내용들입니다.

①행 9:36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헌신과 희생과 봉사의 사람
②행 9:27 <바나바가 사울을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사울을 변호함::모든 사도가 바울을 외면하였으나 바나바는 그를 옹호하고 변호함(실로 그는 착한 사람, 아량이 넘치는 인격자)
③행 11:25,26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사울을 바울되게 한 사람이 바나바이다. 바나바는 안디옥 교회의 위대한 지도자입니다.


4. 잘 가르치고 잘 배우는 교회입니다.

본문 25절과 26절에 보면 바나바가 다소에서 사울을 찾아 데려다가 안디옥 교회 성도들을 잘 가르친 내용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좋은 교회요 훌륭한 교회요 위대한 교회입니다. 그 교회에는 좋은 성도 훌륭한 성도, 위대한 성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교회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위대한 지도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안디옥 교회는 행복한 교회입니다. 즐거운 목장입니다. (시 23편) 그 교회는 잘 가르치고 잘 배우는 교회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잘 아셔야 합니다. 모르고 믿으면 맹목적 신앙입니다. 그런 신앙은 바람이 불고 홍수가 나면 그냥 무너집니다. 그래서 바울은 딤후 3:14절에서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이레 거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단에 쉽게 넘어가는 사람을 보면 잘못 배웠거나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내게 배우라>고 말씀하시면서 가르치는 일에 힘을 쏟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안디옥에 세워진 교회를 잘 가르치고 잘 배우는 교회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최초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습니다. 본문 26절 끝에 보면<큰 무리를 가르쳤고...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의 것"이란 의미입니다. "예수의 사람"이란 말입니다.(예수쟁이) 그 삶이 그 몸짓이 그 언어가 예수 냄새가 나는 그런 사람들이란 의미입니다.

성도 여러분, 성도에게 붙여진 이름 "크리스챤" 역사적이며 세계적인 그 이름이 안디옥 교회로부터 나왔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입니다. 안디옥 교회를 통해서 우리가 얻는 교훈은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이 선교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선교하지 않는 교회를 하나님은 가만 두시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매를 때려서라도 복음을 전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문제가 있는 교회의 특징중의 하나는 선교나 전도를 소홀히 한다는 사실입니다. 안디옥 교회가 우리에게 주는 또 하나의 교훈은 훌륭한 성도와 훌륭한 목사가 있을 때 교회는 부흥하며 하나님은 그 교회에 은혜와 축복을 부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안디옥에 세워진 교회의 또 하나의 특징이 있으니 잘 가르치고 잘 배워서 확신한 일에 거한다는 사실입니다. 기초, 기본이 튼튼한 교회가 되어야 큰일도 하고,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선두교회 / 조석연 목사
안디옥에 세워진 교회 Ⅱ (사도행전 13:1-5 )


오늘은 지난 주일에 이어 “안디옥에 세워진 교회”라는 제목으로 두 번째 말씀을 받는 시간이 되겠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이방 전도를 위해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입니다. 실로 안디옥 교회는 이방전도의 중심지였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유대 전도의 중심지였다면 안디옥 교회는 이방 전도의 중심지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방 전도의 중심지였던 안디옥 교회에 대하여 생각하며 은혜 받으려고 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오늘도 은혜 내려 주실 줄 믿습니다.


1. 선교를 위하여 세워진 교회입니다.

안디옥 교회에 여러 일꾼이 있었습니다. 그중 바나바와 바울(사울)은 안디옥 교회의 두 기둥이라 할 수 잇습니다. 그런데 본문 2절에 보니<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은 띠로 세우라 하시니... >라고 하였습니다. 그 선교를 위하여 바나바와 바울은 띠로 세우라고 하였습니다. 안디옥 교회의 두 기둥이라 할 수 있는 바나바와 바울을 선교사로 파송하라는 명령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한가지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교회는 선교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란 사실입니다. 교회 존재 목적이 선교란 의미입니다. 교회가 해야할 가장 중요한 일이 복음 전파 즉 선교란 말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안디옥 교회를 세우신 목적과 이유가 바로 선교를 위함이었음을 선언하는 내용이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 명령을 성령께서 직접 하시고 계십니다. 본문 2절에 <성령이 가라사대... >라고 하였고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선교는 하나님의 일 , 하나님 자신의 일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마 28: 18절 이하에서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남기신 명령이 무엇입니까?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계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이 명령을 가리켜 주님의 “지상 명령”이라고 합니다. 주님의 가장 큰 명령, 주님의 가장 귀한 명령이란 의미입니다. 그것이 바로 선교 명령입니다. 사도행전 1:8절에서도 주님이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하신 명령이 선교 명령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성도 여러분, 복음서의 끝과 사도행전의 시작이 선교 명령이라는 사실을 주목 하셔야 합니다. 선교는 복음서의 총 결론이며 사도행전의 주제라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교회의 존재 이유, 교회의 존재 목적은 선교 즉 복음전파라는 사실을... 믿습니까?

하나님은 안디옥에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목적이 무엇입니까? 선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성령)이 친히 나오셔서 선교사를 선정하시고 안디옥 교회의 두 기둥이라 할 수 있는 바나바와 바울을 선교사로 보내시고 계신 것입니다.


2. 첫 선교사를 파송한 교회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후에 세워진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선교사를 파송한 첫 번째 교회가 안디옥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선교 역사는 안디옥 교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첫 선교사는 바나바와 바울이요, 첫 선교사를 파송한 교회는 안디옥 교회입니다. 주님의 지고하신 선교 명령을 제일먼저 실천한 교회가 안디옥 교회였습니다. 안디옥은 로마제국의 세 번째 가는 대도시로 이름을 날렸지만 그 도시에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시고 그 교회로 하여금 영원히 빛나는 이름을 가진 도시가 되었습니다. 결국 안디옥 교회는 이방선교의 전진 기지가 되었고 세계 선교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안디옥 교회 하면 선교하는 교회라고 하는 별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안디옥 교회는 교회사에서 첫 번째 선교사를 파송한 명예를 얻었으며 예수님이 오시기까지 지상에서 가장 유명한 교회가 되었습니다. 선교는 이토록 귀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어떻게 하든지 선교를 해야 합니다. 내가 가든지 아니면 다른 사람을 보내야 합니다.


3. 보내는 교회, 주는 교회였습니다.

본문 3절에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보내니라>라고 하는 말은 “내어놓았다.”, “풀어 주었다.”라는 의미입니다. 영어로는 (released)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말을 잘 들으십시오. 안디옥교회에 있어 바나바와 바울은 교회 부흥의 요인이요, 교회를 받치고 있는 기둥입니다. 그런데 그들을 선교사로 내어놓았습니다. 큰 희생입니다. 큰 결단입니다. 안디옥 교회가 바나바와 바울을 내어놓은 일도 엄청난 희생이요 결단이지만, 이들 두사람을 파송하는데 드는 돈은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본문 5절에 보니“요한 을 수종자로 두었더라”라고 하였으니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까지 최소한 4명이나 되는 사람을 뒷바라지한다는 것은 대단한 수고요 헌신임을 알아야 합니다. 안디옥 교회는 보내는 교회요 주는 교회이었습니다. 베푸는 교회였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선교는 희생 사역입니다. 붓는 사역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의 선교 사역 끝자락에 와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라고 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선교는 주의 사역입니다. 베푸는 사역이교, 뿌리는 사역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교는 아무나 못합니다. 쉽게 할 수 있는 사역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피와 눈물과 땀이 요구되는 사역입니다.

제가 언젠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린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은혜가 되고 감동적 이야기는 몇 번을 들어도 괜찮습니다. <1960년대는 미국의 젊은이들이 안일과 나태에 빠져 히피족으로 대변되던 때입니다. 그대 미국의 유명한 기독교 대학인 wheston 대학에서 “짐 엘리엇”이라는 학생이 그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였습니다. 그 대학에서 그에게 교수직을 주었는데 “짐 엘리엇”이 어떤 책을 읽다가 남미의 “에콰도르”의 “아우카족”은 식인종인데 너무나 잔인해서 아무도 그들에게 접근해서 복음을 전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몇 달간 소식이 끊어졌습니다. 미국이 어떤 나라입니까? 10년이 지나고 100년이 지나도 자국국민의 뼈라도 찾아서 본국으로 송환하는 나라 아닙니까? 미국 정부는 짐 엘리엇을 찾기 위하여 수색대를 조직해서 아우카족 있는 곳으로 파송하였습니다. 여러날 수색 끝에 수색대들은 참혹하게 찢겨져 죽은 짐 엘리엇의 시체와 유품들을 발견하였습니다. 그 참혹한 사진이 세계적인 사진 잡지였던 “ LOOK" 지와 "Life"지에 그대로 실렸습니다. 미국 국민뿐 아니라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경악을 했습니다. 지금도 이처럼 잔인하게 사람을 잡아먹는 종족이 있단 말인가? 유품 중에 있던 ”짐 엘리엇“의 마지막 일기장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아무리 붙잡아도 붙잡을 수 없는 것을 위하여 투자하는 것보다 영원히 빼앗기지 않는 영광을 위하여 투자하는 삶을 미련하다고 하지 말라.>

그의 죽음은 개죽음 같았습니다. 그런데 나태와 안일에 빠져있던 미국의 수많은 젊은이들의 가슴에 불을 붙였습니다. 세계의 수많은 학생들이 가슴을 깨웠습니다. “짐 엘리엇”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계속 됩니다. 하나님은 결코 자기를 사랑하는 자의 믿음의 행위를 그냥 두시지 않습니다.

“짐 엘리엇”이 죽은지 1년 후에 그의 부인이 간호원 훈련을 받고 남편을 잡아먹은 아우카족에게로 갔습니다. 남편이 못 다한 일을 계속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아우카족은 남자는 잡아먹지만 여자는 결코 죽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짐 엘리엇”의 부인은 물론 이 사실을 모르고 들어갔습니다. 5년 동안 아우카족을 위하여 온갖 사랑을 다 쏟았습니다. 그래서 아우카족 사이에서 그녀를 부를 때는 <하얀 천사>라고 하였습니다. 피곤에 지친 “짐 엘리엇”의 부인이 안식년을 보내기 위하여 본국으로 돌아가려고 하였습니다. 아우카족의 추장이 온 부족식구를 다 모아놓고 송별 파티를 베풀어주었습니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도대체 당신이 누구이기에 이 정글에 들어와서 그 모진 고난을 겪으면서 우리를 위하여 생명을 거십니까?> <당신은 누구입니까?> 하얀 천사가 입을 열었습니다. < 나는 당신들이 지금으로부터 6년전에 처참하게 죽여 잡아먹은 사람의 아내입니다. 그 사람이 제 남편입니다. 그 분이 당신들을 사랑했습니다. 이유는 그 분과 제가 섬기는 예수님이 계시는데 그 예수님이 당신들을 제 남편보다 더 사랑하십니다. 그 분의 그 사랑 때문에 제가 여기 와서 여러분을 사랑한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모든 아우카족이 방송대곡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추장이 말합니다. <우리모두 예수님을 믿자.>고 했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은 이 마을에서 모두 떠나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에콰도르의 아우카족은 모두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선교에는 땀이 요구되고, 눈물이 요구되고 때로는 피가 요구되기도 합니다. 많은 물질이 보내져야 선교가 이루어집니다. 안디옥 교회는 이일을 해냈습니다. 우리 선두 교회도 보내는 교회 주는 교회 베푸는 교회로 우리 주님이 명령과 뜻을 펼쳐 나가야 할 것입니다. 선두 가족 여러분, 온 성도가 선교회원이 되어 가든지 보내든지 하여 주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시기 바랍니다.


4.하나님의 자랑거리가 된 축복의 교회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사도행전 후반부를 장식한 교회입니다. 선교의 모델이 된 교회요, 바울 같은 위대한 선교사요 신학자이며 목회자를 배출한 교회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하나님의 자랑거리요 세상의 모든 교회가 본 받기를 원하는 교회의 표상입니다. (온 세상에 복음 전파한) 실로 안디옥 교회는 하나님의 축복을 넘치게 받은 교회입니다. 성도 여러분, 선교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임하는 축복사역 입니다. 교회가 선교 중심일 때 능력이 나타나고 온 성도가 선교에 불탈 때 놀라운 축복을 받습니다. 롬 10:15절에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 단 12 :13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라고 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선교가 얼마나 중요한가? 선교가 얼마나 위대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선교를 총체적 사역이라고 말합니다. 모든 지역 모든 족속을 포함하는 사역입니다. 즉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사역입니다. 모든 시간의 사역입니다. 즉 <이 복음 증거 하려 함에는 내 목숨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는>사역입니다. 성도 여러분들이여, 심은 것은 거둡니다. 반드시 거둡니다. 복음을 위하여 축복의 씨를 심읍시다. 많이 심읍시다. 정성껏 심읍시다. 그리고 30배 60배 100배 1000배 거둡시다.




안디옥에 세워진 교회 Ⅲ / 행 13:4 - 14 print


: 조석연 목사



선두교회 / 조석연 목사
안디옥에 세워진 교회 Ⅲ(사도행전 13:4 - 14)

하나님께서 안디옥에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 교회는 이방 세계에 복음을 증거 하는 복음의 전진 기지요 중심지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안디옥 교회는 선교하는 교회로서 이방 선교의 중심 역할을 감당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깊이 생각 할 것이 있습니다. 안디옥 교회를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그 교회에 부흥을 주셨습니다. 11:21절에 보면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엄청난 부흥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행 11:24절에도 보면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큰 부흥뿐만 아니라 13:1절에 보면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사울이라.>라고 하였습니다. 안디옥 교회가 훌륭한 일꾼들이 많이 있었음을 알게 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안디옥 교회를 세우시고 큰 부흥을 주시고 또 많은 일꾼을 세우신 이유는 결국 복음 전파를 이방 땅에 선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말씀을 주목하여 들으십시오.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목적이 교회를 부흥케 하신 이유가 좋은 일꾼을 많이 세우신 뜻이 바로 선교였다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왜 교회가 존재하는가? 즉 왜 하나님께서 선두 교회를 세우셨습니까? 그 이유가 무엇인가? 한 마디로 말해서 복음 전파입니다. 선교입니다.그러면 안디옥 교회의 선교는 어떻게 진행되었는가?


1. 성령께서 주관 하셨습니다.

13:2절에 보면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라고 하였습니다. 선교 명령과 선교사를 세우는 일을 성령께서 친히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4절에 보니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타고 구브로에 가서... > 라고 하였습니다. 성령께서 선교사들의 걸음을 친히 주관 하셨음을 말씀하고 잇습니다. 또 본문 9절에 보니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 라고 하였습니다. 선교사들의 사역을 성령께서 친히 감독하시고 이끌어 가셨음을 말씀합니다. 성도 여러분, 이 사실을 분명히 아셔야 합니다. 선교는 성령께서 주관하시는 일 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그래서 선교를 <하나님 사역>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 자신의 사역>이라고 말합니다. 믿으시기 바라랍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는 아들이 한 분 있었는데 그 아들은 선교사 였다> 예수님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사실 엄밀히 따지면 예수님은 선교사였습니다. 하늘에서 오신 선교사였습니다. 그래서 그 분은 복음 전파에 전념하시다가 마침내 순교하셨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신 성도 여러분, 교회는 선교 할 때 교회이며, 교회가 선교중심 일 때 하나님이 역사 하시며, 교회가 선교에 전념 할 때 하나님께서 축복 사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아시기 바랍니다. 안디옥 교회는 선교하는 교회였으며, 하나님은 그교회의 선교 사역을 친히 주관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선교는 성령사역 즉 하나님 자신의 사역입니다. 그렇다면 선교는 반드시 되고야 마는 일 입니다. 안될 수가 없는 일 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퍼져 나가는 교회)


2. 긴급성을 띠고 진행되었습니다.

본문 4절~ 6절 말씀을 보면 마치 위급 환자를 구원하러 달려가는 구급차를 연상케 하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번 주의 깊게 들어보십시오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타고 구브로에 가서 살라미에 이르러..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그리고 거기서 구브로 섬을 다스리는 총독 서기오 바울이라는 사람을 만나 그를무당의 손에서 구원해 냅니다.

성도 여러분, 구브로 섬의 총독 서기오 바울을 무당의 손에서 구원해 내기 위하여 달려가는 선교사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무엇을 연상 할 수 있습니까? 물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사람을 구원하려고 달려가는 모습과 같지 않습니까? 성도 여러분, 이것이 선교의 특성입니다. 안디옥 교회가 파송한 선교사들이 보여준 선교의 패턴입니다. 선교는 긴급성을 띠고 진행되는 사역이라는 것입니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구브로의 총독 서기오 바울은 거짓 선지자요 무당인 바 예수란 자에게 넘어갈 뻔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선교는 마치 죽어 가는 사람을 구원하러 달려가는 의사처럼 화급성을 띠고 진행되는 사역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선교는 다음으로 미루거나 훗날로 연기해서는 결코 안 되는 생명사역임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어찌 죽어 가는 환자를 두고 이런저런 이유로 그 환자 치료를 연기하거나 미룰 수 있겠습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바로 가야 합니다. 즉시 달려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그 의사는 의사가 아닙니다. 그런 의사는 돌팔이거나 악덕 의사임에 틀림없습니다. 선교도 이런 화급성을 띠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선교를 연기하거나 뒤로 미룬다면 그 교회는 참교회가 아닙니다. 엉터리 교회이거나 이름뿐인 교회입니다. 어떤 교회들은 교회 건축을 하면서 선교를 멈추거나 건축 후에 하기로 결정합니다.

성도 여러분, 잘 아셔야 합니다. 그렇게 건축된 교회를 하나님은 축복하시지 않습니다. 죽어 가는 환자가 있는데 병원 가는 것을 미루고 집수리를 한다면 그것이 맞는 일 입니까? 우선 순위가 바뀌면 모든 것이 잘못 됩니다.

258 < 너 빨리 생명을 던지어라 형제여 너 어찌 지체하나
보아라 저 형제 빠져간다 이 구조선 타고서 속히 가라
너 어서 생명 줄 던지어라 저 형제 지쳐서 허덕인다
시험과 근심의 거센 풍파 저 형제를 휩쓸어 몰아간다.
생명 줄 던져 생명을 던져 물 속에 빠져간다
생명 줄 던져 생명 줄 던져 지금 곧 건지어라.

사랑하는 선두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함께 지금 선교회원이 됩시다. 나의 기도 때문에 내가 드린 헌금 때문에 우리가 파송한 선교사들 때문에 오늘 구원받아야 할 사람이 주께 돌아온다면 이 보다 더 귀한 일이 있습니까? <너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그리스도를 모르고 죽어가고 있을진대 사망에서 생명으로 인도하는 복음 전도는 긴급성을 띠고 진행되어야 합니다. 누군가가 하루라도 더 빨리 복음을 전해 주지 않으면 그 만큼의 생명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교는 교회가 하고 있는 여러 가지 일들 가운데 선택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그 무엇보다도 우선 되어야 하는 하나님의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선교는 긴급성을 띠고 있는 것입니다.


3. 전투적 성격을 띠고 진행되었습니다.

본문 7절부터 12절까지는 피나는 전투 장면을 연상케 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총독 성기오 바울이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 말씀을 들으려고 하니까 박수 엘루마는 바나바와 바울을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는 내용이 7절과 8절에 기록되었습니다. 구브로 섬의 총독 바울을 사이에 두고 치열한 전투가 지금 벌어지고 있습니다. 바나바와 사울은 서기오 바울을 멸망의 구렁텅이에서 빼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바 예수라는 무당은 서기오 바울을 놓지 않으려고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그런 일이 거의 없겠지만 옛날 장비가 발달하지 못할 때는 수중에서 작업하는 어부들이나 바다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수중에 들어갔다가 거대한 낙지에게 잡히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낙지는 사람을 끌고 바다 속으로 깊이 들어가려고 온 힘을 기울이고 그 사람과 연결된 줄을 잡은 배 위의 사람들은 힘을 다해 줄을 잡아당긴다는 것입니다. 낙지의 힘이 세면 그 사람은 낙지의 밥이 되는 것이고 밧줄을 댕기는 사람들의 힘이 세면 그는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정말 이럴 때의 싸움은 처절하다는 것입니까 살려 내느냐 죽이느냐를 결정짓는 이 투쟁은 정말 생명을 건 싸움이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선교는 전투적 성격을 띠고 진행되는 것입니다. 전투에서 지면 끝장입니다. 전투에서는 이겨야 합니다. 어떻게든 이겨야 합니다. 그러므로 선교는 힘이 듭니다. 희생이 따릅니다. 때로는 피를 흘려야 하는 아픔도 있습니다. 그래야 죽어 가는 자를 건질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얼마나 많은 선교사들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복음 증거 하는 선교에 희생 제물이 되었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 대문에 우리가 복음을 받아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믿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도 복음전파를 위하여, 선교를 위하여 전장으로 나아가는 병사들 같이 싸우러 가야 합니다. 내가 못 가면 보내기라도 해야 합니다. 유명한 "윌리망 보든"선교사. 그는 명문 예일대학을 나온 사람입니다. 그는 20대 초반에 수많은 재산과 명예를 뒤로하고 선교지로 떠나면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주님을 위해 나의 생애를 조금도 남김 없이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조금도 후회 없이 바치겠노라> 이런 사람들 때문에 복음은 온 세상 속으로 퍼져 나가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선교는 전투적 성격을 띠고 진행됩니다. 사느냔 죽느냐 살리느냐 죽이느냐를 결정짓는 한판 승부의 전투입니다. 복음을 전파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는 일에는 환난이 잇습니다. 고난이 있고 희생이 있습니다. 사탄의 무서운 공격이 있고 그 가는 길은 거친 가시밭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속에서도 복음 증거 자는 승리합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세상을 이기신 주께서 당신의 일을 수행하는 종을 결코 외면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참되 주의 종은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사방으로 우김을 당하여도 또는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절대로 패배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선교 즉 복음증거의 일이 곧 하나님의 일이며 하나님의 승리가 곧 나의 승리 우리의 승리이기 때문입니다.


4. 은혜와 기적의 사역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사역이란 의미입니다. 오늘 본문 10절 이하에 보니 성령 충만한 바울이 박수무당 즉 총도 서기오 바울을 놓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자를 향하여 <모든 궤계와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이의 원수이며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소경이 되어 얼마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두움이 그를 떨어 인도할사람을 두루 구하는 지라>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이 그에게 임한 것입니다. <이 광경을 본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침을 기이히 여기니라>라고 하였습니다. 결국 총독은 믿음을 얻었습니다. 바울이 이긴 것입니다. 어떤 성경학자는 말하기를 <무당의 눈이 갈림으로 총독의 눈이 열렸다.>고 하였습니다. 복음전파 즉 선교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그래서 기적을 보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전도하는 이를 축복합니다. 선교하는 사람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떤 목사님이 하루는 목회가 너무 힘들어서 하소연과 불평이 섞인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한참을 흐느끼며 기도를 하는데 문득 자기 앞에 누가 있는 것 같아 자세히 보니 예수님께서 종처럼 무릎을 꿇고 계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목사님은 밤새도록 회계의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에 참은 것을 생각하라 혹 비방과 환난으로서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 이런 형편에 잇는 자들로 사귀는 자 되었으니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는 줄 앎이라.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상을 얻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히 10:3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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