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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령한 집을 건축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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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령한 집을 건축합시다.
본문 : 베드로전서 2장 4-5절 마경훈 목사

본문 : 베드로전서 2장 4-5절
4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5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자신이 신령한 집으로 건축되어야 한다는 것을 잘 모릅니다. 신앙생활은 단지 예수 믿고 죽어서 천국 가는 수준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 수준만 돼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부족한 것이 많은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의 신앙생활을 예수 믿고 천국 가는 정도의 수준을 원하신다면 무엇 때문에 이 땅에서 오래오래 살게 하시겠습니까? 믿는 순간 천국으로 데리고 가시면 우리도 좋고 하나님도 좋으실 데 말입니다. 배속에 있는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 중요한 일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세상에 태어나는 것으로 끝난다면 문제가 심각한 것입니다. 그 아이는 자라야 합니다. 열심히 성장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자기의 몫을 감당해야 합니다. 신앙생활도 예수를 그리스도로 받아드려 영적으로 출생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거하실 거룩한 성전으로 더 지어져 가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신령한 집으로 건축해야 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물질적이고 육신적인 축복을 다룬다면 신약에서는 영적인 신령한 복을 다룬다. 성전 개념을 봐도 구약에서는 보이는 성전을 건축하고 그 성전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지만 신약은 보이지 않는 심령성전을 말하고 성령으로 예배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고전 3:16에서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신자의 영, 혼, 몸이 하나님의 성전인데 완성된 성전이 아니라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성전입니다. 집을 짓다보면 급한 대로 일단 입주를 하고 나머지를 완성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 몸 안에 성령이 오셔서 하나님의 성전을 삼으셨지만 아직은 완성된 성전이 아니라 완성을 향해 지어져가는 성전인 것입니다. 본문은 거듭난 그리스도인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그런데 베드로 사도는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인 신자들에게 “너희도 산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엡 2:21-22에 보면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고 말합니다.

신앙생활은 얽매임이 아니라 누림이 돼야합니다. 누리려면 먼저 세워져야 합니다. 가나안에 들어가야 가나안을 누리듯이 말입니다. 집을 짓기 전에 가구와 가전제품을 먼저 설치하지 않습니다. 먼저 집을 세우고 그 후에 가구와 가전제품이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신령한 집으로 세워져야 합니다. 신령한 집으로 세워진 후에 나서 더 높은 차원의 신앙생활 즉 신령한 복을 누리는 생활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1. 터를 잘 잡아야 합니다.

아무데나 터를 잡으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모래위에 집을 지으면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반석 위에 세워야 합니다. 터를 잘못 잡으면 나중에 헐어버리는 일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 터를 잘 잡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삼아야 합니다. 마 16장에서 주님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던 베드로에게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전 10:4에서도 “이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에서도 보배로운 산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신령한 집을 건축하라고 말합니다. 신령한 집으로 건축되려면 보배롭고 산돌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와야 합니다. 고전 3:11에도 보면 신앙의 집을 짓는 것을 말하면서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

예수를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반석을 선택한 것입니다. 좋은 터를 선택한 것입니다. 축하할 일입니다. 그러나 믿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터를 견고하게 하려면 더 보충돼야 할 것이 있습니다.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마 7:24-27에 보면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은 반석위에 집을 지은 사람과 같고,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사람은 모래위에 집을 지은 사람과 같습니다.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면 모래위에 지은 집은 무너지게 되지만 반석위에 세운 집은 견고하게 서 있듯이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데 늘 변함없이 신앙이 성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반석위에 집을 지은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은 신앙의 집이 견고한 것 같아 보였는데 어느 순간에 보면 바람처럼 사라져버립니다. 모래 위에 지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목사는 여러분의 신앙의 터가 아닙니다. 단지 씨를 뿌리고 물을 주는 사역자 일뿐입니다. 여러분의 신앙의 터는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목사는 강단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말씀의 터 위에서 신령한 집으로 건축돼야 합니다.

2. 재료를 잘 사용해야 합니다.

집을 보는데 건축 전문가와 비전문가는 보는 눈이 다릅니다. 비전문가는 색상과 디자인을주로 보는데 전문가들은 색상과 디자인뿐만 아니라 실용성과 재료까지 봅니다. 재료의 수준은 전문가들이나 알 수 있습니다.

고전 3:12에 보면 신령한 집을 짓는데 여러 가지 재료가 사용됩니다.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여러 가지 재료를 사용하는데 이 땅에서는 그 재료가 정말 좋은 것인지 아닌지 잘 모릅니다. 그런데 마지막 심판대 앞에서 각각의 공력을 시험하게 되는데 이 때 불로서 시험을 합니다. 어떤 재료는 불로 태워져 없어져 버리고 어떤 재료는 그대로 남게 됩니다. 만약 없어져 버린다면 잘못된 재료를 사용한 것이고 이런 사람은 부끄러운 구원을 받게 됩니다.
어떤 재료를 쓰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재료를 사용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재료를 세 가지 소개 시켜드립니다.

1)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재료는 믿음입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데 중심의 무엇을 주로 보실까요? 바로 믿음입니다. 아무리 좋은 일을 해도 믿음으로 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히 11:6에 보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환자를 치료하실 때 항상 환자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그래서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심지어 롬 14:23에서는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2)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재료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이 말씀을 좇아갔던 것처럼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을 말씀을 좇아갑니다. 성경에서는 극단적인 예를 통해 말씀대로 살지 않는 사람들에게 경고하고 있다 레 10:1에 보면 나답과 아비후가 하나님의 명하지 않은 다른 불을 드리다가 현장에서 즉사한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암소가 법궤를 옮길 때 소가 뛰므로 웃사가 법궤를 잡았는데 현장에서 즉사했습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요? 그 두 사람은 좋은 마음을 가지고 일했습니다. 나답과 아비후는 제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웃사는 법궤를 보호한 것입니다.

3)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재료는 성령의 지도와 인도입니다.
갈 5:16에 보면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고 말합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이 둘은 서로 대적하기 때문입니다. 육체를 따라 선을 행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성령을 대적하는 일이라면 어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겠습니까?

3. 건축도구를 잘 사용해야 합니다.
신령한 집을 짓는데 사용하는 건축도구는 성령의 은사입니다. 고전 14:4에 보면 은사는 덕을 세운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 말은 집을 짓는다는 의미입니다. 즉 성령의 은사를 가지고 신령한 집을 짓는다는 의미입니다.

집을 지을 때 기계를 사용하듯이 신령한 집을 짓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은사를 사용해야 합니다. 기왕이면 큰 은사를 받고 강하게 받는 것이 좋습니다. 땅을 파는데 삽으로 파는 것과 포클레인으로 파는 것이 다르듯이 은사도 크고 강한 은사를 받으면 신앙생활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은사를 잘 사용하려면 성령님을 사모하십시오. 왜냐하면 은사를 주시는 분이 성령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이들을 위하여 선물을 샀다면 선물이 집에 들어가려면 제가 집에 들어가야 합니다. 저는 길에 있는데 선물만 집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성령이 오셔야 은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도구가 있어도 사용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듯이 은사도 사용해야 합니다. 은사를 잘 사용하려면 방언 기도를 많이 하세요. 방언 기도는 은사의 출입문과 같습니다. 출입문을 통과해야 거실과 안방에 들어갈 수 있는 것처럼 방언의 은사를 잘 사용하면 더 풍성한 은사체험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방언기도를 했던 것입니다.

4. 좋은 건축업자를 만나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건축업자 두 분을 소개해 줍니다. 히 3:5-6에 보면 하나님의 집이 나오는데 그 집이 예수를 믿는 우리들입니다. 그 집을 위하여 충성한 두 분이 나오는데 모세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저와 여러분을 신령한 집으로 세우기 위하여 모세도 수고했고, 예수 그리스도도 충성하셨습니다.

건물의 가치는 어떤 사람이 설계하고 어떤 업체에서 지었는지에 따라서 다릅니다. 아파트를 놓고 봐도 메이커가 있는 아파트와 그렇지 않은 아파트는 가격이 상당히 차이가 납니다. 모세와 예수님이 내가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도록 수고하신다는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그만큼 하나님께서 내가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는 것에 관심이 많으시다는 말이며 또 그만큼 내가 값진 존재라는 말입니다. 신자들 가운데는 자신을 너무 평가절하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작품을 평가절하 하는 일에 대해서 진노하십니다. 사43:4에서는 우리들은 보배롭고 존귀하고 사랑스러운 존재라고 하는데 민 13:33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을 메뚜기에 비교했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샀던 일이 있습니다.

5. 연합해서 건축해야 합니다.
엡 2:21에 보면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라고 말합니다. 나만 세워져서는 안 되고 함께 세워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신앙생활은 단독주택이 아니라 아파트를 짓는다고 생각해야합니다. 내가 분양 받은 집이 완성됐다고 준공이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100세대라면 100세대가 다 완성돼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이런 자세로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간다. 우리가 함께 지어진다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 교회 안에는 교회의 비전과 목사에게 주신 비전을 공유하여 함께 달려가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는 참으로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머리의 비전이 몸의 비전이고 몸의 비전이 지체의 비전이 돼야합니다. 머리의 비전과 몸의 비전이 다르고 몸의 비전과 지체의 비전이 다르다면 정말 심각한 일입니다.

6. 좋은 주인이 입주해야 합니다.
집을 임대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세를 주고나면 어떤 사람은 기가 막히게 잘 관리를 해서 집의 가치를 잘 유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건물을 함부로 사용해서 건물을 망가트리고 가치를 떨어뜨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실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정말 가치 있는 인생을 살고 어떤 사람은 너무나 가치 없이 인생을 허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 속에 누가 입주해 있느냐 때문입니다. 마 12:43 귀신이 입주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마귀가 원하는 대로 살게 될 것입니다. 고전 3:16 성령이 입주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살게 될 것입니다.

이상한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그리스도가 피값주고 샀는데 귀신이 불법으로 살고 있는 사람도 있다. 말이 안 되는 것 같은데 실제로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집에 누군가가 불법으로 들어와서 살고 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런 경우 나가라고 하면 그는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법으로 있는데 악한 귀신이 불법으로 있는 것을 모르고 그를 인정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불법으로 있는 악한 자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악한 자가 입주해서 집을 다 망가트리는 것입니다.

좋은 주인을 모셔 드려야 합니다. 영적으로 좋은 주인을 모셔 드리는 것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요 1:12 말씀대로 그리스도를 믿으면 그분을 내 안에 모셔드리는 것입니다. 그분을 모셔드리면 예수님께서 피 값 주고 나를 사시고 나의 주인이 되시는 것입니다.

7. 사용을 잘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으로 건축되었는데 잘못사용하면 안됩니다. 고전 3:16, 17에서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 말씀합니다.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주인의 물건하나만 잘못 관리해도 주인에게 매를 맞을 수 있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몸을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함부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의해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잘 사용하는 것입니까? 고전 6:19, 20에서는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사랑의 빛 교회] 경기도 감이동 361-4
(02) 4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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