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설교] (조수현목사) 열두지파에 야곱의 손자가?
본문
주제 : 거둠 장자 축복
본문 : 창세기 48:1~6
말씀의 깊이 : ★★★★★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의 열두지파에 대해서 많이 언급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이 열두 지파가 야곱의 열두 아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열두지파는 야곱의 열두아들로 이루어져있는 것이 아니라 요셉의 두아들(야곱의 손자)이 들어가있고 단이 빠져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열두지파를 형성하고 있었다.
분명히 야곱의 아들들로 이루어져 있어야 할 이스라엘의 지파에 왜 요셉의 아들들이 들어 있는 것일까?
『이 일 후에 혹이 요셉에게 고하기를 네 부친이 병들었다 하므로 그가 곧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함께 이르니 혹이 야곱에게 고하되 네 아들 요셉이 네게 왔다 하매 이스라엘이 힘을 내어 침상에 앉아 요셉에게 이르되 이전에 가나안 땅 루스에서 전능한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 복을 허락하여 내게 이르시되 내가 너로 생육하게 하며 번성하게 하여 네게서 많은 백성이 나게 하고 내가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내가 애굽으로 와서 네게 이르기 전에 애굽에서 네게 낳은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내 것이라 르우벤과 시므온처럼 내 것이 될 것이요 이들 후의 네 소생이 네 것이 될 것이며 그 산업은 그 형의 명의하에서 함께 하리라』 (창48:1-6)
요셉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곧, 므낫세와 에브라임입니다. 요셉이 이 두 아들을 데리고 그의 아버지 야곱에게로 갔습니다. 요셉의 아버지 야곱은 이 두 손주들을 「내것」이라고 합니다. 『…네게 낳은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내것이라 르우벤과 시므온처럼 내것이 될 것이요』(창 48:5)
이들은 분명 야곱의 손주들인데 야곱의 아들로 대우를 받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두 손주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은 당당히 야곱의 다른 아들들처럼 여겨져서 손주이면서도 아들로 취급받아서 각기 야곱의 상속의 유업을 받게 됩니다.
그 결과 르우벤 지파, 시므온 지파, 레위 지파, 유다 지파등 야곱의 아들들이 열 두 지파를 형성하는데에 에브라임 지파, 므낫세 지파가 그 속에 들어갑니다. 당당하게 두 손주가 아들처럼 여겨져서 이스라엘의 한 지파씩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러면 총 열 세 지파인데, 나중에 단 지파가 빠집니다. 이렇게 해서 결국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가 확정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요셉의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으로 인해서 요셉은 다른 형제들보다도 두배의 축복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상황을 이렇게 설명해 보겠습니다. 어떤 아버지에게 세 아들이 있었습니다. 장남에게 100만원을 주고 차남에게 100만원씩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막내아들에게는 직접 주지 않고 그 막내의 두 아들에게 다시 말하면 손주들에게 100만원씩을 주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장남 가정에 100만원, 차남 가정에 100만원 그리고 셋째 아들 가정에는 200만원이 돌아간 것입니다. 바로 이런 경우가 성경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야곱의 손자들이 이스라엘 민족의 열 두 지파에 당당히 한 지파씩 들어가서 요셉이 결과적으로 두 지파가 되는 장자의 축복을 받아 버린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여기에도 필경은 무슨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원래 야곱의 열 두 아들 중 장남은 르우벤입니다. 그런데 이 르우벤이 그만 못된 짓을 저질렀습니다. 자기 아버지 야곱의 첩과 간통죄를 범했던 것입니다.
창세기 49장에 보면 야곱이 자기 아들들을 축복 기도해 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3절에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나의 능력이요 나의 기력의 시작이라 위광이 초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도다마는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치 못하리니 네가 아비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장자 르우벤이 야곱의 아내(첩)과 동침을 한 이러한 음행의 죄를 범함으로 인하여 자기의 장자권을 빼앗겨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역대상 5장 1절에는 『이스라엘의 장자 르우벤의 아들들은 이러하니라 (르우벤은 장자라도 그 아비의 침상을 더럽게 하였으므로 장자의 명분이 이스라엘의 아들 요셉의 자손에게로 돌아갔으나… 유다는 형제보다 뛰어나고 주권자가 유다로 말미암아 났을지라도 장자의 명분은 요셉에게 있으니라)』고 기록하면서 장자의 명분이 르우벤에게서 요셉에게로 돌아간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장자의 축복이 바뀌어 버렸습니다. 가만히 있었으면 르우벤은 두배의 축복을 받을 뻔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미래의 장자의 축복보다는 오늘 현재의 육체적 쾌락을 택해 버림으로 말미암아 그 복이 요셉에게로 넘어가 버린 것입니다. 에서와 똑같습니다. 내일의 장자의 축복보다는 오늘의 팥죽 한 그릇을 택해 버리고 말아서 장자권을 상실하는 안타까운 모습! 이것을 성경이 보여주는 것입니다.
원래 요셉은 열 한 번째 아들입니다. 그런데 장자권이 왜 둘째 아들 시므온이나 셋째 아들 레위나 넷째 아들 유다한테로 넘어가지 않고 열 한 번째 요셉에게로 넘어갔습니까?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원래 르우벤과 요셉은 아버지는 같으나 어머니가 다릅니다. 야곱의 원 부인이 둘이었기 때문입니다. 르우벤은 야곱의 아내 레아의 장자이고 요셉은 야곱의 또 다른 아내 라헬의 장자입니다.
신명기 21장 15절에 하나님의 법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두 아내를 두었는데 하나는 사랑을 받고 하나는 미움을 받다가 그 사랑을 받는 자와 미움을 받는 자가 둘 다 아들을 낳았다 하자 그 미움을 받는 자의 소생이 장자여든 자기의 소유를 그 아들들에게 기업으로 나누는 날에 그 사랑을 받는 자의 아들로 장자를 삼아 참 장자 곧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보다 앞세우지 말고 반드시 그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을 장자로 인정하여 자기의 소유에서 그에게는 두 몫을 줄 것이니 그는 자기의 기력의 시작이라 장자의 권리가 그에게 있음이니라』
하나님의 약자 보호법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덜 사랑 받는 아내를 보호하셔서 그에게서 난 큰아들이 전체의 장자라면 장자의 축복인 상속의 두배를 주시도록 신명기에 법으로 정해 놓으셨습니다.
야곱이 바로 이런 경우였습니다. 원래 야곱은 레아보다는 라헬을 훨씬 더 많이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레아가 먼저 르우벤을 낳았습니다. 그러니 장자권은 라헬의 큰 아들 요셉이 아니라 레아의 큰 아들임과 동시에 전체의 큰아들이라 할 수 있는 르우벤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레아의 큰아들 르우벤은 가만히 있었으면 두배의 상속을 받을 권리가 있었는데 이 아들이 하나님 앞에, 아버지 앞에 죄를 범했기 때문에 이 장자권을 빼앗기게 된 것입니다.
이제 장자가 장자권을 상실하게 되면 더 사랑 받는 아내가 난 첫 아들에게로 장자권이 넘어가게 됩니다. 서열상 두 번째로 태어난 아들에게 장자권이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둘째 부인의 큰아들에게로 전체 장자권이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체로 보면 서열 11번째라 할 지라도 라헬의 큰아들인 요셉에게로 장자권이 넘어간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지파가 두 지파로 되는 바람에 총 13개 지파로 늘어나게 됩니다. 그러나 나중에 단지파가 이스라엘 지파에서 빠져버려서 결과적으로 12지파의 숫자가 유지되게 됩니다.
참 아이러니칼하게도 르우벤은 자기의 아버지의 첩과 통간을 하였으나 그러나 요셉은 그가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있을때에 자기 주인 보디발의 아내가 통간하자고 사정을 했어도 그것을 뿌리치고 뛰쳐 나갔던 사실을 우리가 생각하면 과연 르우벤의 장자권이 요셉에게로 넘어갈 만 하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묘한 대조를 성경이 보여줍니다.
마지막으로 단지파가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서 탈락해 버린 이유를 잠깐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레아는 아들을 계속해서 낳는데 라헬은 그때까지 자식이 없었습니다. 라헬은 레아를 투기하며 남편 야곱에게 불평을 합니다. 『나로 자식을 낳게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죽겠노라』 (창30:1)
야곱은 『그대로 성태치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고 하면서 화를 냈습니다. 그러자 라헬은 『나의 여종에게로 들어가라 그가 아들을 낳아 내 무릎에 두리니 그러면 나도 그를 인하여 자식을 얻겠노라』고 말을 했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위험한 인간적인 방법입니다. 전에 아브라함의 아내 사래가 기다려도 자식이 없자 자기의 몸종 하갈과 동침할 것을 요구해서 그로 인하여 인위적으로 자식을 얻어보려고 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해서 태어났던 이스마엘을 내어 좇으라고 했습니다.
여기 라헬도 똑같은 방법을 쓴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라헬의 몸종 빌하를 통해서 태어난 아들이 「단」입니다. 하나님은 이 인간적인 방법을 역시 배척하셨습니다. 창세기 49장의 야곱의 축복 기도에서 단에 대한 축복 기도의 내용이 별로 좋지 않은 것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단은 이스라엘의 한 지파같이 그 백성을 심판하리로다 단은 길의 뱀이요 첩경의 독사리로다 말굽을 물어서 그 탄 자로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창 49:16-18)
과연 단 지파는 요한계시록 7장에 나오는 인맞은 열 두 지파의 명단에서 깨끗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대신 요셉 지파가 두 지파로 되어서 당당히 들어가 있는 모습이 발견됩니다.
『내가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유다 지파 중에 인 맞은 자가 일만 이천이요 르우벤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갓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아셀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납달리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므낫세 지파(요셉 1) 중에 일만 이천이요 시므온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레위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잇사갈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스불론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요셉 지파(요셉 2,에브라임지파를 말함) 중에 일만 이천이요 베냐민 지파 중에 인 맞은 자가 일만 이천이라』(계 7:4-8)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 중에서도 가룟 유다가 빠지고 대신 맛디아가 가입되듯이 구약의 열두지파에서도 단지파가 빠지고 대신 요셉이 두 지파로 들어가 있습니다. 다 상응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심은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결코 우연이란 없었습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