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오기 전에 준비
본문
본문: 디모데후서 4장 6∼22절
우리는 이 땅 위에서의 계절이나 모든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섭리와 뜻 그리고 하늘나라의 영적인 것들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을 잘 섬기는 믿음의 법칙을 알게 됩니다. 보이는 것을 통해 보이지 않는 주님의 섭리를 깨닫게 하시는 놀라우신 주님의 은혜가 모든 성도와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전도서 12장에는 인생의 겨울이 있음을 말하고 그 겨울이 누구에게나 빨리 오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해와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 그런 날에는 손과 발이 떨 것이며 뼈가 구부러질 것이며 이빨이 빠질 것이며 눈이 어두워질 것이며 입이 닫혀 질 것이며 이가 없어 음식을 씹기가 곤난해지고 잠이 없어지고 작은 소리에도 잠을 깨게 되고 음악하는 사람들은 목소리가 곱지 않게 되고 높은데 올라가지 못하고 길가다가 낙상하게 되고 흰머리가 나고 메뚜기도 짐이 되고 그러다가 세상을 떠나게 되고 조문객들이 오고 가고 몸은 땅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되는 것을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인생의 겨울이 온다는 것을 세밀하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인생을 4계절로 나눌 수 있습니다. 태어나서 20세까지를 봄, 20세에서 40세까지를 여름, 40세에서 60세까지를 가을, 60세 이후를 겨울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60세를 넘은 분들은 이미 인생의 겨울을 맞이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요. 그런데 인생의 겨울은 나이와 상관없이 갑자기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혜 있는 사람은 나이에 상관없이 항상 인생의 겨울을 준비하는 삶을 삽니다. 오늘 일은 내일로 미루지 않습니다. 오늘 최선을 다합니다. 내일은 어찌될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하나님 앞에 갈 준비를 하고 그 날 그 날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본문 말씀은 사도 바울이 자신의 최후를 예견하면서 순교의 순간이 가까워 온 것을 깨닫고 믿음의 동역자인 디모데에게 보낸 목회서신으로 주님의 종들과 우리 모두에게 소중한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인생의 겨울, 계절의 겨울을 맞이하면서 머잖아 닥칠 추운 겨울을 앞에 두고 보고 싶은 사람들을 그리워하며 몇 가지 당부와 함께 겉옷과 책을 갖고 오기를 부탁했습니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6절) “겨울 전에 너는 어서 오라”(21절) 이 말씀에는 인생의 겨울과 계절의 겨울을 생각하면서 디모데에게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간곡한 부탁을 하는 노사도의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인생의 긴 겨울을 맞이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인생의 봄이 유년기라면 여름은 청소년기, 가을은 중·장년기, 겨울은 노년기와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6절의 ‘관제와 같이’란 말씀은 희생제사의 제주를 붓는 마지막 의식으로 전제(레위기 23:13, 민수기 15:5∼10 28:7∼8)라고도 합니다. 이는 바울 자신의 희생적 순교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고 주님과 교회를 위해서 산 제물로 순교의 제단에 바치겠다는 말입니다. 인생의 겨울을 맞이하게 된 바울의 고백이요, 표현입니다. 또한 21절의 말씀은 계절적으로 추운 겨울이 닥쳐오면 여행하기가 어렵고 항해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어서 속히 오라고 재촉한 것입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 우리는 우선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겨울을 준비해야 합니다. 인생에는 봄, 여름, 가을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겨울이 찾아옵니다. 춥고 삭막한 찬서리, 눈보라치는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우리는 주님을 영접하고 믿으면서 순종하며 잘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는 가정과 교회에 겨울이 오기 전 준비를 잘 해야 됩니다. 지금 이 세상은 영적으로도 심판의 시기를 앞둔 겨울 직전의 시기라고 생각됩니다. 겨울이 오면 모든 식물은 성장이 멈추게 됩니다. 심판을 받는 것과 같습니다. 앞으로 주님의 재림과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인 심판 시기인 겨울과 같은 것입니다.
둘째로 겨울이 오기 전에 우리는 부지런히 선한 일과 주의 일에 힘써야 되겠습니다.
바울 곁에는 많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유익한 사람들과 무익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데마는 바울을 배반하고 떠났으며 알렉산더는 많은 해를 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디모데 누가 마가 그리고 본문에 나오는 14명의 사람들은 바울에게 유익을 준 사람입니다. 본문을 보면 모두 다 떠나고 누가만 함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늙으면 몸도 춥지만 마음도 쓸쓸하고 외로워지며 그리움이 많아지게 됩니다. 바울 역시 동역자들이 그리워지고 보고 싶었습니다. 너는 속히 오라 그리고 겉옷과 책을 갖다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겨울이 올 때에 우리는 옷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책이 필요합니다. 영육간에 양식이 필요한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인 영혼의 양식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대기업의 회장이 있었습니다. 그는 세상에서 부러울 것이 없을 정도의 부와 명예와 권력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노환으로 임종을 앞두었을 때 그의 앞에 놓인 것은 건강을 위한 보잘 것 없는 보리죽 한 그릇이었습니다. 또한 독일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게르하르트 하프트만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그는 임종 직전에 미소를 띄우며 "아, 나는 집에 있는가!" 라며 만족한 얼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육신의 집은 떠나지만 그는 하나님의 집으로 옮겨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젊음이 영원한 것 같아도 인생의 황혼을 넘어갈 때쯤 되면 그것이 얼마나 빠르게 지나갔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즉 세상의 것에 미련을 두고 살면 하루살이처럼 단 하루의 꿈을 위해 살다가 가는 어리석은 사람이 됩니다. 그러므로 하루 동안 누릴 권세와 부를 얻으려 하기보다는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는 마음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이솝우화가운데 개미와 매미의 이야기입니다. 뜨거운 여름! 개미는 열심히 열심히 땀흘려 일했습니다. 매미는 나뭇가지에 앉아서 노래만 부르고 놀았습니다. 가을이 지나, 겨울이 왔습니다. 열심히 일한 개미에게 겨울은 조금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따뜻한 방에서 마련해 놓은 양식을 먹으며, 겨울을 무사히 보냈지만, 여름동안 일하지 않고, 노래만 부르고 놀았던 매미는 배고픔과 추위에 떨다가 죽었다는 이야기지요. 여러분 중에 이 이야기 모르는 사람 있습니까?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이야기는 아는데 이 이야기의 교훈을 마음에 담고 사는 사람은 적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생활의 허점입니다. 여러분이 성경에 지식이 없어서 신앙생활을 잘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지식이 너무 많아서 문제입니다. 문제는 그 성경의 교훈이 내 삶 속에 역사하느냐는 것입니다. 안하고 있습니다. 인생에게도 겨울이 옵니다. 일할 수 없는 날이 옵니다. 그 날이 오기 전에 개미처럼 열심히 일하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느 교회에 매미 같은 집사님이 한 분 계셨습니다. 그는 돈도 많고 아무개 하면 알아주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그런 큰복을 받았으면서도 믿음생활은 엉망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병이 들었습니다. 가보니까 병원에 입원해있는데 고칠 수가 없는 병입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후회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건강 주셨을 때 하나님이 내게 기회를 주셨을 때 내가 잘할 껄.... 그분은 그냥 울다가 갔습니다. 글쎄.. 죽기 전에 깨달았으니까 다행이긴 다행이지만, 그것이 무슨 상 받을 일입니까? 주님께서 '너 세상에서 뭐하다가 왔느냐?'고 물으시면 무어라고 답할 것입니까? 아무 상급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할 기회를 얼마나 많이 주셨는데 아무것도 안 하다가 마지막 죽기 전에 울다가 죽었습니다.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성경에도 보면, 개미 같은 인생, 매미 같은 인생이 계속 나옵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열 처녀 비유가 나옵니다. 지혜로운 다섯 처녀는 등과 함께 기름을 준비해 신랑을 맞이하고, 기다립니다. 미련한 다섯 처녀는 등만 있지, 기름이 없습니다. 맞이할 준비를 안 했습니다. 그들에게 신랑이 왔습니다. 준비한 다섯 처녀는 신랑과 함께 혼인잔치에 들어가 즐거움을 나누는데 준비하지 못한 매미 같은 미련한 다섯 처녀는 바깥 어두운데서 슬피우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달란트 비유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를 맡은 종은 개미 같은 인생입니다. 열심히 일했습니다. 한 달란트 맡은 종은 매미 같은 인생입니다. 미련한 것들.. 뭐 하러 저렇게 일하는지 모르겠어 그리고 날마다 먹고 놀았습니다. 그들에게 심판의 날, 겨울이 왔습니다. 주인이 계산하자고 할 때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맡은 종은 열매를 갖다드리니 주인이 기뻐하며 착하고, 충성된 종아!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하라.. 그리고 기쁨을 얻었습니다 매미처럼 먹고 놀았던 한 달란트 맡았던 종은.. “이 악하고 게으른 종을 바깥 어두운 곳에 내어 쫓으라 거기에서 슬피 우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실패자가 되었습니다. 또 마태복음 22장 1- 14절에 보면 혼인잔치에 예복을 준비하지 않아 입지 못한 사람이 수족을 결박당하고 바깥 어두움에 던지워진 비유의 말씀이 나옵니다.
겨울을 준비하는 그리스도인이 기억해야 할 것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깨어 기도해야합니다.
예수님께서 여러 번 여러 번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4장 42절에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44절에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예수가 오리라. 마태복음 25장 13절에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4장 7절에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노아 홍수 때에 노아는 깨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방주를 만들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갔으며 홍수가 내릴 것을 깨닫지 못하고 준비하지 못하고 있다가 홍수에 의해 다 죽었습니다. 깨닫지 못하는 것, 깨어있지 못하는 것, 준비하지 못하는 것은 비극과 불행의 원인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갑자기 재림하십니다. 마치 도적이 오는 것과 같다고 말씀했습니다. 도적은 언제 온다고 절대로 미리 알려주지 않습니다. 사람이 깊이 잠들어 있을 때옵니다. 깨어있는 사람에게는 도적이 와도 문제가 없습니다. 깨어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예수님이 언제 오시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언제 오시든지 예수님을 영접하고 환영하고 맞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즉 겨울을 준비하기 위해 깨어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다 졸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을 보시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너희가 한시간 동안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다고 하셨습니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결코 겨울이 무섭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놓치지 않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지 아니합니다. 세상에 마음을 두지 아니하고 하나님나라에 마음을 두고 사는 그리스도인에게는 인생의 겨울이나 우주의 겨울이 두렵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쁘게 여깁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만나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 하나님나라에 가서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무궁토록 겨울이 없는 삶을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깨어 기도하다가 예수님이 오실 때 들림을 받아야 합니다.
둘째, 겨울을 잘 보내기 위해서는 불을 준비해야합니다.
겨울은 춥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 인생의 마지막 겨울에 로마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디모데에게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겨울 전에 너는 어서 오라고 하면서 올 때에 드로아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춥기 때문에 따듯한 옷을 겨울 전에 가지고 오라는 말입니다. 추운 겨울에 불이 없으면 얼어죽습니다. 장작불이든, 가스불이든, 전기불이든 우리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불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가끔 추운 겨울에 얼어죽은 사람에 관한 신문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인생의 겨울에 필요한 불은 사랑입니다. 사랑이 있으면 춥지 않습니다. 사랑은 따뜻한 불과 같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사람이 싸늘해집니다. 예수님은 말세에는 사랑이 식어지리라고 했고 베드로는 마지막 때는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하라고 했고 형제를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날 저녁에 말씀하시기를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나의 제자인줄 알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진실로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몸을 사랑하듯이 사랑하는 사람은 인생의 겨울이 와도 우주의 겨울이 와도 상관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기억하시고 그 사람을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사람, 헐벗은 사람, 굶주린 사람, 목마른 사람, 나그네 된 사람, 병이 든 사람, 옥에 갇힌 사람을 돌봐 주는 사람을 칭찬하시고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사람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 된 나라를 상속하라고 하시면서 소자 중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싸늘한 겨울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마음속에 더욱더 크고 뜨거운 사랑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에 성령의 불이 타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 성령을 불이라고 했습니다. 오순절 때 120명의 성도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다가 성령의 불을 받은 후에 그들은 불같이 뜨거워졌습니다.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리하여 뜨거운 사랑의 마음으로 가기의 것을 가기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아니하고 가난한 사람, 없는 사람에게 아낌없이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리하여 빈부의 차이, 나이의 차이, 유식한 사람과 무식한 사람의 차이, 신분의 차이 등이 전혀 없었습니다. 모두가 한 피 받아 한 몸을 이룬 형제요 자매들이었습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열이 납니다. 열이 나면 힘이 생깁니다. 권능이 임하게 됩니다. 성령은 기름과도 같습니다. 그래서 불이 붙고 열이 나고 힘을 내어 일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후에 예수님의 제자들의 마음은 꽁꽁 얼어붙은 겨울이었고 하나님의 독생자를 죽인 예루살렘 거리는 삭막한 겨울이었습니다. 그러나 덜덜 떨던 제자들에게 성령님이 오시므로 제자들의 심령에는 봄이 오고 예루살렘 죽음의 거리는 생명의 거리로 약동하게 되었습니다. 성령이 충만한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는 이전에 그렇게도 무서웠던 죽음이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죽음을 다 이기었습니다. 싸늘한 감옥도 제자들의 뜨거운 가슴을 식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불이 바울에게 붙게 되어 소아시아로 세계로 번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세에는 성령을 남녀 종들에게 물 붓듯이 부어주신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사람의 힘만으로는 인생의 겨울과 우주의 겨울을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 충만하면 우주의 겨울을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 충만하면 우주의 겨울에 대처 할 수가 있습니다. 성령을 충만히 받기 위해서는 회개하고 많이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한 마음으로 경청해야 합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120명은 모여서 성령을 기다리며 간절하게 기도하다가 성령을 충만히 받았습니다. 모여야 합니다. 잘 타는 장작불도 흩어져 있으면 꺼지고 맙니다. 모아 있을 때 불이 잘 탑니다. 히브리서 10장 25절에 예수님의 재림의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열심히 모이라고 했습니다.
셋째, 빛이 있어야 합니다.
겨울은 어두움의 계절입니다. 낮이 짧고 밤이 긴 때입니다. 어두운 밤에 필요한 것은 빛입니다. 우주의 겨울도 그러합니다. 해와 달과 별들이 빛을 잃고 다 떨어지고 하늘이 종이축이 말리는 것같이 떠나간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새 빛이 필요합니다. 인생의 겨울은 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겨울에도 빛이 있어야 합니다. 빛이 없으면 가는 길을 모릅니다. 방황하게 되고 구렁텅이에 빠지고 맙니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이단들이 날뛰고 있습니다. 거짓선지자와 적 그리스도가 도처에서 순박한 그리스도인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그리스도라고 외치고 자기에게 와야만 구원이 있다고 선전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때에 많은 사람들이 시험에 빠져 서로 잡아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불법이 성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복음과 진리와 비복음과 비진리를 분간하기가 어려운 때입니다. 빛이 없는 사람들은 앞이 캄캄합니다. 우왕좌왕하고 갈팡질팡합니다. 우리 인생의 빛은 오직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 안에 살아야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빛입니다. 시편 119편 105절에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계시의 말씀이 사람들의 길을 인도해 주는 빛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인생의 겨울 우주의 겨울을 이기게 해줍니다. 예수님께서도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을 때 예수님의 인품이나 성격이나 능력이나 감화력으로 이긴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이기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사람은 어둠에 사는 사람이고 어둡고 캄캄한 심령의 소유자입니다.
넷째, 겨울에는 양식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생명의 양식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하늘로부터 내려온 생명의 떡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생명의 만나이고 영생의 떡입니다. 겨울에 필요한 것은 양식입니다. 벳장이는 양식을 준비해 놓지 아니했기 때문에 겨울에 큰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부지런한 개미는 양식을 충분히 준비해 놓았기 때문에 긴 겨울에도 문제가 없었습니다. 겨울이 죽음의 계절이라고 할찌라도 영생을 소유한 그리스도인에게는 생명의 양식이 있는 그리스도인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이사야 1장 18절에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 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겨울에 눈이 내리는 것은 기온이 차기 때문입니다. 기온이 차면 물방울이 눈이 되는 것은 물의 성질 때문입니다. 물의 성질은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눈도 하나님이 만드신 것입니다. 과학자들은 말하기를 겨울에 눈이 땅에 덮이는 것은 마치 솜이불을 땅에 덮어놓은 것과 같다고 합니다. 이상하게도 눈 자체는 차지만 이찬 눈이 땅위에 덮힘으로 그 아래는 많은 식물의 생명이 추운 겨울에도 보존된다고 합니다.
알라스카에 사는 에스키모사람들이 눈으로 집을 짓고 사는 것을 생각해 보면 눈 속이 그렇게 춥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눈은 땅속을 비옥하게 만들어줍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겨울에 눈이 많이 오면 다음해에 풍년이 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흰눈은 이런 것보다 영적인 면에 깊은 뜻이 있습니다. 욥기 38장 2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폭풍우 가운데 나타나셔서 욥에게 말씀하실 때에 네가 눈 곡간에 들어갔었느냐 우박창고를 보았느냐고 했습니다. 네가 흰눈으로 된 창고에 들어가 보았느냐고 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눈 창고에 들어가 보았느냐는 말의 뜻은 네가 흰눈의 비밀을 깨달았느냐는 뜻입니다. 과학자들은 눈송이 하나 하나가 우주의 통일성과 예술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흰눈을 볼 때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과 신비를 깨달아야 합니다. 겨울이 되어서 풀은 마르고 나뭇잎은 다 떨어지고 대지는 황량하게 되고 만물이 매우 쓸쓸하게 보일 때 눈이 내려서 온 땅을 하얗게 덮고 있을 때의 경치는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흰눈은 순결의 상징입니다. 그러므로 천사는 언제나 흰옷을 입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요한계시록에 보면 사도요한에게 나타난 예수님은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양털 같고 눈과 같다고 했고 하나님나라 보좌에서 찬송을 부르는 24장로들과 성도들은 흰옷을 입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겨울에 흰눈을 볼 때 너희는 눈처럼 순결한 사람이 되라는 멧세지를 들어야합니다. 요한계시록 7장 9절 이하에 보면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나무가지를 들고 찬송을 부르는데 이 사람들은 예수님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한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흰눈을 볼 때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가 우리의 주홍같이 붉은 죄를 흰눈같이 희게 해 주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기억하실 것은 계절의 겨울은 지나간 후에 또 오고 또 오지만 인생의 겨울, 우주의 겨울은 한 번 오면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계절의 겨울이 오듯이 인생의 겨울, 이 우주의 겨울(종말)은 반드시 옵니다. 그러므로 준비해야합니다. 깨어서 기도하고 성령을 충만히 받아 뜨거워지고 빛을 준비하고 양식을 준비해야 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겨울을 맞이하도록 준비하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 우리가 잘 준비하여 바울과 같은 승리자가 되고 주님이 예비하신 그 약속의 축복을 누리며 면류관을 받아쓰는 모든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 기도 : 하나님 아버지,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용서하시고, 앞으로도 기회가 많을 것처럼만 생각하고 미루며 살아오는 것도 용서하옵소서. 사도 바울이 믿음의 아들 디모데를 생각하며 순교 직전에 사랑하는 편지를 쓴 것 같은 그 심정을 우리가 이 시간에 헤아리면서 우리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고 해야할 일을 하게 하시고 서둘러 마쳐야 할 일을 마칠 수 있는 저희들에 되게 하옵소서. 그리고 반갑게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주님의 사람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