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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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감사합니다
누가복음 17:11-19
추수 감사절은 성경에 있는 절기는 아니지만 추수감사절과 비슷한 수장절이라는 추수 때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가 있습니다.
이 절기는 팔레스타인 지역의 기후조건 때문에 미국이나 우리나라에서 지내는 시기와는 전혀 다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의 전 정신을 요약하여 추수감사절을 지키고 있습니다만 성경 어디에도 우리에게 이 절기를 지키라고 명령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이 절기는 믿음의 사람들이 이 땅에 살면서 지키는 전통일 뿐입니다.
추수감사절의 유래를 보면 종교개혁이 일어났던 16세기에 하나님 한 분만 바로 믿고 이 땅에서 순례자로 살면서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며 승리의 삶을 살겠다고 작정했던 사람들이 네덜란드로 가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저들이 신앙생활을 하는데 카톨릭의 박해를 받으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곳에서 더 이상 살 수 없다고 판단하고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앙을 위해서 나아갔던 땅이 아메리카(미국)입니다.
원래는 저들이 허드슨 강 유역에 있는 뉴저지 지역에 가기 위하여 선장에게 지명을 정확하게 이야기해 주었는데, 거기의 항구사정이 여의치 않으니까 선장은 이 사람들을 속이고 더 북쪽으로 올라가서 "플리머스"라는 장소에 배를 정박하고 사람들을 내려주었습니다.
청교도들은 아메리카의 지형을 모르기 때문에 "여기가 허드슨 강이 있는 뉴저지 지역이겠거니" 생각하고 102명이 내렸습니다.
그러나 1년이 지나면서 반수 이상이 풍토병과 영양결핍으로 죽었습니다.
살아남은 그들이 인디언들에게 옥수수 씨를 얻어다 심고 경작해서 석 달동안 먹을 양식을 수확해놓고 하나님 앞에 감사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가장 처음에 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 한번 잘 믿어보려고 여기까지 왔다. 하나님 중심으로 살자"고 예배당을 지었습니다.
두 번째로는 "우리 자녀들을 신앙으로 잘 키우자"고 학교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가서야 자기 집을 지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이 추수감사절에 청교도들에게 있었던 몇 가지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 역사 속에서 하나님은 저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셨습니다.
그때 저들이 허드슨 강가로 가려고 했었던 그곳은 당시에 유럽 사람들이 신대륙을 찾는다고 탐험대를 조직해 그곳에 와서 온갖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그래서 화가 난 원주민 인디언들이 백인이면 무조건 잡아죽였는데 가장 극심하게 전쟁을 치뤘던 장소가 바로 뉴저지 지역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만약 그들이 원래 가려고 의도했던 그곳에 그들이 배를 정박했다면 전혀 무장하지 않은 이 청교도들은 십중팔구 인디언들에 의해 다 죽었을 것이라고 역사학자들은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사악한 사람의 거짓말까지도 사용하셔서 그들을 살 수 있는 땅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북쪽의 플리머스 지방은 전염병 페스트가 지나가 95%의 사람이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그래서 인디언들이 백인들을 공격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사람의 인디언이 이 백인 청교도들의 마을에 찾아와서 "여러분을 환영합니다"라고 영어로 말했습니다.
그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이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이 스칸토라는 사람인데 이 사람은 전에 영국 탐험가들에게 붙잡혀 스페인에서 노예생활을 하다가 간신히 탈출해서 영국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거기서 마음 따뜻한 몇몇 사람들이 돈을 모아 주어서 6개월 전에 이곳에 도착했던 것입니다.
스칸토는 이 청교도들이 선량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뉴잉글랜드 지방을 총괄하는 가장 큰 추장을 데리고 와서 함께 평화조약을 맺게 하여 청교도들은 거기서 마음껏 신앙생활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손길은 이렇게 그 역사 배후에서 계속 준비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청교도들이 인디언 원주민들과 대화할 수 있었고, 그들과 화친하면서 함께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추수감사절을 오늘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 추수감사절 예배로 드립니다.
1.감사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혼자 상상할 수 있고, 내가 하나님을 좋아한다고 고백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할 때까지는 믿음이 아닙니다.
원래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신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내게 구원이라는 선물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주신 선물을 받는 손이 바로 믿음인데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선물로 받으면서 입으로 나오는 말은 "감사합니다"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믿는 자에게 자연스럽게 솟아나는 대답입니다.
여러분, 주님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감사하십시오.
왜냐하면 감사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것은 위선이요 거짓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2.감사는 기억하는 것입니다.
히브리말에 감사라는 단어에는 "remember"(기억한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입니다.
시103:2절에는 "너희는 여호와의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감사는 그 분이 내게 행하신 일을 기억함으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감사해야될 민족입니다.
저는 우리 나라가 이만큼 사는 것이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제 건설에 있어서 "라인강의 기적", 일본의 기적, 싱가폴, 홍콩, 대만의 경제 기적을 말하지만 이 나라들은 기적이 아니라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들입니다.
이미 일본과 독일은 세계 1차 대전과 2차 대전을 일으킬 만큼 강한 국가가 되어 있었습니다.
세계를 향해서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국가로 자란 국가들이 패전해서 조금 고통받았다가 다시 회복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기적이 아니라 회복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대만이나 홍콩이나 싱가폴의 경제부흥은 기적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미 세계 도처에 흩어져 나가서 살고있는 화교들의 자본력과 그들의 시장 구조가 저들을 승승장구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있는 것을 활용한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조선 왕조, 그 다음이 식민지, 그 다음은 해방하자마자 민족상잔의 비극으로 온 국토가 초토화되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여러분,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이 굶어죽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한겨울에 얼어죽었고, 연탄가스에 질식하여 죽었습니까?
그것은 오래 전 일이 아닙니다. 우리 어렸을 때의 일입니다.
우리가 자본력이 있습니까? 자원이 있습니까? 기술력이 있습니까? 마케팅이 있습니까? 아무 것도 없던 나라입니다. 이런 나라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가 잘 되어야될 이유는 우리나라만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세계역사에 지금까지 자생력으로 저개발국가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한 역사가 없습니다.
이 시장경제가 계속 가동되면 이 세계 질서도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 부자 나라는 계속 잘 살 것이고, 가난한 나라는 계속 무너질 것입니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만약 그 격랑을 뚫고 선진국에 진입한다면 세계 역사상 가장 가난한 국가에서 잘 사는 국가가 되는 첫 사례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잘 되어야될 이유는 우리나라를 위해서 뿐 아니라 가난한 나라들의 소망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우리나라가 이만큼 잘 살게된 여러 요인이 있습니다만 그 중에서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잊지 말아야 될 것은 한국의 교회 부흥과 경제 부흥이 함께 갔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교회 부흥이 끝나니까 경제 발전이 멈추고 계속 내려가고 있습니다.
이것을 그냥 보면 안됩니다.
우리들은 역사 밑에서 움직이고 있는 하나님의 손길을 봐야 하는 것입니다.
제가 1996년 크리스마스 때 일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당시의 대통령 김영삼 대통령께서 충현교회 성탄예배에 참석하셨습니다.
예배 중에 "대통령께서 오셨으니 한마디 해주십시오" 하니까 김영삼 대통령이 앞에 나가 "우리나라가 경제만 잘 되면 일등국가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때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아니 오늘이 어떤 날인데, 지금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인데, 이런 소리를 하는가? 큰 일 났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해 1997년에 IMF의 구제금융을 받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그 어려움에서 오늘까지 이 나라를 인도하신 우리 주님의 은혜를 기억합시다.
그리고 내 개인의 삶 속에 함께 하신 그 축복들을 헤아려가면서 기뻐하고, 감사합시다.
3.감사는 교만에서 구해줍니다.
잠16:18절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했습니다.
교만하면 반드시 망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절대법칙입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그 교만의 시작은 에덴 동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행복했던 에덴동산, 거기에서 거칠 것 없이 뛰노는 아담과 하와에게 사탄이 찾아와서 "네가 이것 먹기만 하면 네가 하나님처럼 되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덜컥 먹었습니다.
그 교만의 뿌리가 지금 우리에게 흐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성경에서 감사로 살았던 사람을 예로 든다면 대표적인 사람이 다윗입니다.
다윗은 도망자의 신세로 쫓길 때에도 겸손하게 "하나님, 내가 지금 쫓겨다닙니다만 그러나 주께서 나를 처음 붙잡아주셨던 그 은혜를 놓치지 않겠습니다"라고 하나님의 손을 기대합니다.
그리고 국가를 크게 통일해놓고도 "여호와여 내가 누구이길래 저 푸른 목장에서 나를 부르셔서 이곳에 인도하셨습니까?"라고 하나님 앞에 감사기도를 드립니다.
심지어는 임종의 기도에서도 "여호와여 내가 누구이고 무엇이길래 천한 목동 신분을 부르셔서 오늘 여기까지 인도하셨습니까?"라고 하나님께서 자기 생애를 축복하시고 인도하시는 것에 눈을 떼지 않고 기억하면서 평생 감사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기쁠 때 뿐 아니라 쓰라린 감정과 생애의 깊은 좌절과 고통을 맛볼 때에도 감사하게 합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감사 문을 이 시간에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그 분은 일제 때 신사참배 반대하다가 6년 동안 옥고를 치루다가 해방되어 감옥 문이 열려서 살아났습니다.
감옥에서 풀려 나온 후 그 분은 서울의 큰 교회나 부산의 여러 교회의 초청을 뿌리치고 "내 형제들에게 가야 됩니다"하고 다시 나환자촌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해방되어 얼마 안 있다가 여수, 순천 반란 사건 때 사랑하는 두 아들이 죽었습니다.
장례식 때 설교, 애도사, 찬양이 이어지고 드디어 아버지의 답사 차례가 되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내 어찌 긴말의 답사를 하겠습니까? 내가 아들들의 순교를 접하고 느낀 몇 가지 은혜로운 감사의 조건을 이야기함으로써 답사를 대신할까 합니다.
첫째,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들이 나오게 하셨으니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둘째, 허다한 많은 성도들 중에 어찌 이런 보배들을 주께서 하필 내게 맡겨 주셨는지 그 점 또한 주께 감사합니다.
셋째, 3남 3녀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두 아들 장자와 차자를 바치게 된 나의 축복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넷째, 한 아들의 순교도 귀하고 귀하거늘 하물며 두 아들에게 순교를 주시니 하나님 감사합니다.
다섯째, 예수 믿다가 누워 죽는 것도 큰복이라 하거늘 하물며 전도하다 총살 순교 당하게 하셨으니 하나님 감사합니다.
여섯째, 미국 유학 가려고 준비하던 내 아들,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에 갔으니 내 마음 안심되어 하나님 감사합니다.
일곱째, 나의 사랑하는 두 아들을 총살한 원수를 회개시켜 내 아들 삼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여덟째, 내 두 아들의 순교로 말미암아 무수한 천국의 아들들이 생길 것이 믿어지니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아홉째, 이 같은 역경 중에서 이상 여덟 가지 진리와 하나님의 사랑을 찾는 기쁜 마음, 여유있는 믿음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 감사합니다.
끝으로, 나에게 분수에 넘치는 과분한 큰복을 내려 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여러분, 믿음은 감사의 아름다운 꽃을 피웁니다.
그러나 불신앙은 아무리 좋은 조건에서도 교만하고 불평합니다.
오늘 추수감사절에 진정한 감사의 열매를 맺는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