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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열매가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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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훈목사 설교
당신에게 열매가 있습니까?


누가복음 13:6-9
눅13장을 흔히 우리는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라고 말합니다.
6절에 보면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고 했습니다.
이 비유를 통해서 우리가 역설적으로 물어야 할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 가을에 "어떻게 하면 열매를 맺을 수가 있습니까?"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대답을 찾기 위해서 "이 열매 없었던 무화과나무는 왜 그렇게 되었을까?"하는 비유를 통해 은혜 받기를 원합니다.

1.자신의 책임을 망각했기 때문이다.
여러분, 무화과나무의 책임이 무엇입니까?
무화과나무의 책임은 오직 열매를 맺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인생은 왜 존재할까요?
저는 무화과나무의 존재이유와 인생의 존재이유가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제자들을 선택하신 이유,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자신을 따라오게 하신 이유, 그들을 품으시고 가르치시고 3년 동안 삶을 같이하신 이유, 그것은 오직 열매를 위해서인 것입니다.

요13장부터 18장까지를 예수님이 십자가로 가시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교훈을 가르치신 소위 다락방 강화라고 불리워지는 한 토막입니다.
그 중에 요한복음15장이 끼여있는데 우리가 흔히 포도나무 비유의 장이라고 부릅니다.
거기에 보면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이 가지가 포도나무에서 떨어지면 열매맺을 수 없다. 내가 너희를 택한 것은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려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이 예수그리스도의 제자로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십자가의 복음을 깨닫고 이 땅에서 살고있는 생존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무슨 열매일까요?
성경에 열매라는 이 단어를 가르칠 때는 항상 두 가지 측면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하나는, 재생산의 열매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영원한 생명을 가졌다면 나를 통해서 또 다른 열매 즉 전도의 열매를 맺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 가운데 보시면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내 제자를 삼으라"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예수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다면, 사람들에게 전도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 열매를 맺는 가을이 되었는데 당신을 통해서 예수 믿게 된 사람들이 몇 사람이나 될까요?
이름을 댈 수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누구입니까?
정말 예수가 구원이시고, 생명이시고, 소망이시고, 내 삶을 바꾸었고, 나에게 천국의 영원한 삶을 보증하신 주님이라고 믿는다면 우리가 어떻게 그 주님을 침묵할 수가 있을까요?
우리교회가 제자훈련을 통해 성경공부를 강조합니다마는 성경공부 자체가 목적은 아닙니다.
그 말씀을 받아 가지고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이며, "나를 통해서 예수 믿고 구원받아 새로워진 인생이 어디에 있느냐" 하는 전도의 열매입니다.

다른 하나는, 인격의 열매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잘 아는 갈5:22절의 성령의 열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성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입니다.
그런데 이 성령의 열매는 복수가 아니고 단수입니다.
그러므로 그 한 열매는 한 인격을 지향하는 것으로서, 그 한 인격 속에 9가지의 특성이 다 들어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한 인격은 누구의 인격일까요?
사랑으로 가득 찼던 분,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던 분, 진정한 평안으로 그의 내면의 인격이 견고했던 분,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그리고 정말 오래참을 줄 알았든 그분, 이러한 것들을 완벽하게 갖춘 대표적인 모델이 될 수 있는 인격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러므로 금년한해를 결산해 가야할 이 시점에서 우리는 "내가 작년하고 비교하여 금년한해 동안 예수님을 얼마나 더 닮았을까?"라는 질문을 반드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본문에 나타난 이 무화과나무는 어디에 심겨졌습니까?
6절을 보면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었더니"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사막지대의 한 부분으로서 이스라엘 땅 안에서 가장 비옥한 땅을 선택하여 포도원을 일구어 거기에 포도나무도 심고 또 무화과나무를 심습니다.
그러므로 이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는 좋은 땅에 심겨진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느냐 하면 그것은 특권입니다.
다시 말해서 좋은 땅을 선택하여 거기에 심겨졌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좋은 땅에 심어졌으면 좋은 열매를 맺어야하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 제가 왜 이 얘기를 하시는지 아십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누리고 있었던 가장 놀라운 특권 중의 하나가 선민이라는 특권으로서 "나는 선택을 받았다, 우리는 선민이다, 나는 선택받은 백성이다"라는 것입니다.
신약적으로 말하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향해서 베드로전서에 보면, "너희는 왕 같은 제사장이다! 그가 택하신 족속이다. 그의 소유된 백성이다"라는 놀라운 특권을 입고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함을 입고 살아간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선택은 분명히 놀라운 특권이지만 이 특권에는 항상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서 좋은 땅을 선택하여 거기에 포도나무를 심고 또 거기에 무화과나무를 심었다면 이것은 어마 어마한 특권인데, 그렇다면 이 특권에 합당하는 책임을 다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때로 우리는 바쁘다는 핑계로 하루 하루를 때우면서 존재만 하고 있는 인생들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왜 이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까?
자신의 존재 이유를, 자신의 책임을 잃어버리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2.자신의 상태를 망각하며 살고있기 때문입니다.
7절을 보면 "과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 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고 했습니다.
저는 항상 교회 내에서 느끼는 고민이 있는데 그것은 교회의 연륜은 굉장히 길다고 말씀하는데, 자신의 삶 속에 뚜렷한 변화의 열매가 없는 분들입니다.
왜냐하면 전혀 책임없는 신앙생활을 하는 어떤 제직의 모습을 보았을 때 그 주변의 사람들이 "예수는 저렇게 믿는 모양이다"라는 생각을 갖도록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나"라는 사람의 존재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우리는 끊임없이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며 살고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좋은 영향력을 끼치면서 살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의 숫자는 현대보다는 훨씬 적은 숫자였지만 그러나 그 영향력은 무서웠습니다.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을 가리켜서 부쳐진 여러 가지 별명이 있었는데 그 별명 중에 하나가 염병이라는 이름이었습니다.
염병, 생각나십니까?
우리 어렸을 때는 옘병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전염병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왜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 전염병이라는 별명이 붙었을까요?
그것은 한 사람이 예수 믿으면 그 사람에게서 끝나지 않고, 그 사람을 통해서 또 다른 사람이 예수 믿고, 또 다른 사람이 변하는 이 무서운 영향력의 확산 때문에 "저들은 염병이다! 저들은 염병이다!"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에 보면,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 부쳐진 또 하나의 별명가운데 이런 별명이 있습니다.
그것은 데살로니가에 바울사도 일행이 들어갔을 때 "천하를 어지럽히는 사람들이 여기에도 왔다!"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여기 "천하를 어지럽힌다"는 이 말을 원문의 뜻을 보면 "세상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끼쳤던 놀라운 영향력을 상징하는 그런 표현입니다.

여러분은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력을 끼치고 있습니까?
혹시 나는 땅만 버리는 사람들이 아닐까요?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하고 다른 나무에게 필요한 수분을 빼앗고 있으니까, 이런 종류의 종교인들을 향해서 예수님이 정확하게 표현하신 경고의 메세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도 천국에 못 들어가면서 다른 사람도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서 의도적으로는 하는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런 영향을 끼친다는 것입니다.

경제학적인 원리로 보면, 한 공동체 안에 20%의 사람만 건강하면은 80%는 그 혜택을 나누어 가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윈리를 우리교회에 접목한다면 출석하는 성도들의 20%만 복음을 위해 헌신한다면 우리교회는 굉장한 사건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한 크리스챤 사회학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오늘날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의 95프로는 벤치워머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벤치워머가 무엇입니까?
벤치워머란 "의자를 따뜻하게 한다"는 뜻으로서 "교회에 와서 한시간 예배 드리면서 자기가 앉아있던 의자만 따뜻하게 만들었다가 나가는 것이 교회에 유일한 기여를 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우리 교회 안에 성도 중에 역사에 관심을 갖고, 기도하며 복음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관심을 갖고, 말씀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만약 20%만 될 수가 있다면 이 교회는 바뀌리라 믿습니다.

3.자신의 위기를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본문을 가리켜서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라고 말씀하는데, 저는 이 본문이 눅13장에 그 앞서 기록하고있는 어떤 사건 때문에 예수님이 이 비유를 말씀하신 직접적 배경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생각을 합니다.
같이 읽어봅시다.
눅13:1절 "그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저희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고하니"
갈릴리 사람들이 죽는 사고가 일어난 것입니다.
2절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음으로써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4절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5절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그렇습니다.
갈릴리에서도 사고가 났고, 또 실로암에서도 망대가 무너져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그 당시 있었든 어떤 사고에 관한 얘기를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사고가 일어나면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주변에서 내 이웃사람이 교통사고가 나면 "안됐구나" 이렇게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글쎄 그 사람 죄 때문에 그런 사고를 만난 것이 아니냐?"고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사람들을 지적하면서, 그 사람들이 죄가 많아서 그렇게 죽은 줄 아느냐? 아니다, 너도 그렇게 될 수가 있다는 것을 이웃 사람들의 비극에서 경고를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사람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어쩌면 내 인생도 한순간 이렇게 정리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내 주변에 일어나고 있는 심상치 않는 사건들은 너희에게도 다가오고 있는 위험에 대한 싸인이고 징조일 수가 있으니 정신을 차리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은 우리가 신앙생활을 어느 정도 해야만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말씀할까요?
오늘 본문을 저는 문자적으로 좀 적용해서 이 교훈을 받고 싶습니다.
7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과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 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여기서 몇 년 얘기하셨어요? 3년.
저는 예수님이 당신의 제자들에게, "내가 3년 동안 가르쳤으면 너희도 열매 맺어야지 언제까지 이렇게 살꺼냐?" 하시는 이 3년을 저는 문자적으로 좀 받아드리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요15장에도 보면,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진데 너희가 나에게 정말 붙어있고, 그리고 나와 더불어 제대로 교통하고 옳바른 관계 속에서 산다면 이제는 반드시 열매를 맺어야 한다"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진지하게 신앙생활 3년 했으면 이제는 좀 바뀌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3년을 진지하게 신앙생활 했는데 바뀌지 않았다는 사람은 오늘 자기 자신에게 경각심을 갖는 이런 깨달음이 좀 필요하지 않는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어느날 갑자기 예고도없이 내 인생을 결산을 알리는 사건이 내게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 마지막 부분에 보시면 이 비유에서, 주인 앞에서 청지기의 책임을 지고 있었던 과원지기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인하여 찍어버리겠다고 주인이 선언하니까 8절에서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라고 호소했습니다.
물론 주인이 어떻게 대답했는지는 이 비유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주님은 기쁘게 기회를 허락하셨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아직도 삶의 기회가 계속되고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러분이 "주님 금년 한 번만 더 기회 주십시오"라는 마음이 있다면 지금부터 새로운 삶으로 바꾸시고, 구체적인 열매를 향한 내 인생의 노력을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한번만 더 챤스를 주십시요. 거름을 주겠습니다. 내 땅을 파겠습니다. 그리고 좀 진지하게 이제는 신앙생활을 해보겠습니다 라는 결단과 내 삶에 적용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어느 한순간 내 삶의 마지막이 오더라도 주님 앞에 풍성한 열매를 맺어 드릴 수 있는 고현의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
자비로우신 아버지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말씀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지나간 한해를 돌이켜 보게 하시고 우리의 삶이 주 앞에 아름답게 결산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옵소서. 정말 주님 앞에 드릴 수 있는 풍성한 열매를 위하여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며, 그리고 주의 인도하심과 붙잡아주심과 그리고 주께서 내게 말씀하신 바를 따라서 그 말씀 앞에 응답하는 우리의 삶이 되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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