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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주님께만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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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훈목사 설교
오직 주님께만 영광


사도행전3:1-10
오늘 본문의 내용에서 성령충만한 베드로와 요한이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치유하는 장면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왜냐하면 거기에 하나님께서 보여주시고자 하는 교회의 모습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교회 안에는 두 부류가 있습니다.
성령충만한 사람들, 그리고 앉은뱅이처럼 영적으로 무기력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영적으로 연약한 앉은뱅이들이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로 힘있게 변화되는 곳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왜 그러한 치유의 역사가 잘 일어나지 않을까요?
그것은 자신이 영적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각 증세가 없는 병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것입니다.

내가 잘 아는 친척 가운데 한 사람이 어느날 저녁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해서 병원에 갔는데 그는 며칠만에 세상을 떠난 사람이 있습니다.
평소에 늘 건강하다고 자부했던 그 사람의 배를 열어보니 온 내장에 암덩어리가 속속들이 퍼져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왜 이렇게 되도록 손을 쓰지 못했을까요?
그것은 본인이 자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평소에는 그는 그저 배 아프면 가스명수 한 병 마시고 나면 낫는 정도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나는 모태신앙이다" "나는 이 교회에 중요한 일을 맡은 사람이다"라고 하는 자긍하는 그것이 여러분의 진정한 자각 증세를 막고 있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저는 목사이기 때문에 거의 습관적으로 매일 성경을 끼고 다니며, 읽고, 묵상하고, 연구하며, 큐티를 합니다.
그런데 어느날 문득 저는 나 자신을 위해 성경을 읽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놀랐습니다.
언제나 "무언가 설교에 써먹을 게 없나?"하고 성경을 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내 타이틀이 목사라서 그런지 나의 유익을 위해 말씀을 읽고 연구하고 기도하기보다는 우리 교회에 "누가 영적 앉은뱅인가?"를 찾으려고 간접적인 경건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정작 바로 나 자신이 영적 앉은뱅이라는 사실을 놓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 "나는 성령충만한 사람이다"라고 자부하는 사람은 다시 한번 자기 자신을 심각하게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이 교회의 예배에는 분명히 성령충만한 그 무언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외부에서 온 사람들은 다 그걸 강력하게 느끼며 은혜체험을 경험하는데, 평소에 습관적으로 이곳에서 예배드리는 자신만 느끼지 못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그러면 자신이 영적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무슨 기준으로 진단할 수 있을까요?
영적 장애인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1)영적 장애인은 신앙생활에 수동적인 사람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앉은뱅이도 누군가가 데려다 주어서 성전 미문에 앉아 있었습니다.
오늘 예배에도 목장의 목자나 담당 교역자가 전화로 권면하니까 어쩔 수 없어서 나온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내가 정말 기쁨으로, 자발적으로 주님을 섬기고, 성도들을 섬기며,교회에서 봉사에 참여하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2)영적 장애인은 비본질적인데 관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본문의 앉은뱅이는 "무언가 얻을까 하여" 베드로와 요한을 바라보았는데, 아마도 그들의 지갑을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우선 하나님보다 한 끼의 끼니를 해결하는데 더 관심이 많았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친교만 하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입니다.
오늘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왜 집사가 되고, 권사가 되고, 장로가 되면 사람들이 달라집니까?
그리고 전도사때 다르고, 강도사때 다르고, 목사가 되고 나서 달라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비본질적인 것에 관심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우리는 내가 과연 예수님께서 골고다 언덕에서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흘리신 보혈의 뿌리로부터 시작하여 은혜로 구원받은 존재인가를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3)영적 장애인은 성전 밖에 머물러 있는 사람입니다.
몸은 예배하는 자리에 와 앉아 있지만 마음은 딴 데 가 있고, 은혜의 자리에 들어가 있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기도하며 찬양하는 기쁨과 감격이 없습니다.
처음 은혜를 상실하고 언제인지 모르게 습관적인 신앙생활을 하며 은혜에 대해 무감각해지게 됩니다.

4)영적 장애인은 본질적으로 구제불능에 빠져 있는 사람입니다.
본문의 앉은뱅이는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은 모두가 다 선천적으로 결함을 가지고 난 자들입니다.
그래서 나아지려는 의지는 있지만 능력이 없습니다.
이 무기력함을 해결하지 못해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실체를 자각하고, 내 힘과 능력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이룰 수 없는 죄인임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무릎꿇기만 하면 하나님이 치유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그렇다면 이러한 영적 장애인들을 치유하기 위해 교회는 어떤 곳이 되어야 할까요?
1)예수 이름의 능력, 성령의 능력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늘상 말이 많아 시끄럽고 쉽게 패가 갈리곤 하는 곳입니다.
이유는 어느 교회에서나 군데군데 영적 장애인들이 섞여 있기 때문입니다.
보통 일반적인 병원에는 1-2년 넘게 장기 입원하면서 치료해야 할 병자가 흔치 않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교회에서는 5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도 치료가 잘 되지 않는 병자들이 많습니다.
치료는커녕 오히려 더욱더 교묘해 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남을 비방할 때도 얼마나 포장을 잘하는지 모릅니다.
정말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처럼 하나님의 공의를 이야기하지만 거기에는 본질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못한 사람이 풍기는 교만이 느껴질 뿐입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더욱더 이상한 일은 치료가 일어나지 않는 이런 현상을 당연시하는 분위기입니다.
그러므로 영적 장애인들이 많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예수 이름의 능력으로 고침 받지 못하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앉은뱅이에게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했을 때 그 장애인은 발과 발목이 힘을 얻고 일어나 걷고 뛰었습니다.

지금도 이런 기적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각종 질병으로부터 고침을 받고, 뿐만 아니라 항상 부정적이고, 남을 불신하는 말만 하는 사람들의 입술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에 사람이 많이 모이는 것을 자랑하기보다는 교회에만 찾아오면, 어두운 내면이 치유받고, 자기 인격을 통제 못하던 이가 힘을 얻고, 가정의 문제가 해결되며, 각 종 질병의 상처가 치유되는 그런 곳이 되어야 진정한 교회가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은과 금이 아니라 예수 이름의 능력을 찬양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기적적으로 치유받은 이 앉은뱅이는 걷고 뛰며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날 교회들이 왜 힘이 없습니까?
그것은 돈이 많고, 사람의 힘이 커서 예수 이름의 능력이 별로 필요 없는 곳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힘이 있는데도 불안한 곳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믿음의 선배들을 보면 장래가 불투명하고 가난했지만 열심히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기도하고 찬양하며 기쁨으로 주님을 위해 헌신하였습니다.
저에게는 어린 시절이었지만 그 시절이 그리워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생활하지만 우리 자신도 모르게 점점 예수 이름이 약해져갈 위험이 있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은과 금이 풍부해지고, 몸은 건강하고, 기도없이도 모든 여건이 잘 풀릴 때가 가장 위험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습니다만 옛날에 한 선배 목사님께서 내게 해주었던 말을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최목사 나는 최목사가 하나님 없이도 성공할까봐 그게 가장 두렵다"
그러나 반대로 어렵고 힘든 그때야말로 예수 이름의 능력이 가장 크게 나타날 환경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3)영적으로 갱신되려면 교회는 예수 이름만이 영광 받는 곳이어야 합니다.
오늘날 조금 부흥되고 있다는 교회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떤 교회는 거기에 하나님이 아니라 능력 있는 목사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교회를 가리켜 "역시 그 목사님은 신령해"라는 말을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교회는 예수 이름만이 영광을 받아야 할 곳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나면서부터 전적인 부패자로서 결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날마다 순간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지 않으면 자꾸만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려고 하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날 하나님만이 받으셔야 할 영광을 사람이 가로채는 것이 우리 교회들의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의 베드로와 요한은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는 말로 사람들의 관심을 하나님께만 돌렸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교회는 저마다 "왜 우리를 주목하지 않느냐?"는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교회 안의 성도들 가운데서도 "내가 교회에서 누군데 왜 나를 주목하지 않느냐?" "내가 이 교회를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 있는데 왜 나를 주목하지 않느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교회를 칭찬하고 나를 칭찬할 때마다 "왜 나를 주목하느냐"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와야 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여러분! 바울 바울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바울을 건져주지 않았다면 그는 맨날 교회를 핍박하고 온갖 못된 짓을 다 했을 사람입니다.
그리고 다윗 다윗 하지 마십시오. 다윗 역시 하나님이 고치시고 치유하여 쓰지 않았다면 살인이나 일삼았을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사람이 영광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만 영광을 받으셔야 할 곳입니다.
이제 우리는 창립 100주년을 눈앞에 둔 이 시점에서 최창훈목사와 함께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사역을 동역하며 나눔으로서 예수 이름의 능력으로 은혜를 경험하고, 온전히 치유받고, 성령충만하여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올려드리며 오고오는 후손들에게 믿음의 사람으로 멘토가 되어 기억되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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