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을 넘어서는 삶을 살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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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을 넘어서는 삶을 살려면
마가복음 9:17-24
자신의 힘이나 지혜나 능력으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그런 상황, 환경, 사건을 만났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까요?
우리가 두 가지 극단적인 반응을 생각해 볼 수가 있는데, 하나는, 불가능은 없다는 신념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있고, 다른 하나는, 정반대의 자세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불가능성을 받아들이고 인정하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뢰했을 때 우리는 그 하나님과 더불어 이 불가능을 극복할 수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삶의 현장에서 부딪쳐 오는 이러한 불가능의 사건들 앞에 서서 불가능을 넘어서는 삶을 살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이것이 오늘 본문 앞에서 우리가 던지고 있는 중요한 질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시면 간질병에 들린 어린아이를 어떤 아버지가 데리고 예수님의 제자들을 찾아와 치유를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이 아이의 병을 고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으나, 고쳐지지 않아 그들은 절망에 빠졌습니다.
바로 그때 예수님이 산 위에 세 제자와 함께 올라가셨다가 내려오셨습니다.
이 아이의 아버지는 예수님을 발견한 순간 예수님 앞에 엎드려서 도와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이 불가능의 간질병은 지금도 치유하기 힘든 병입니다.
그런데 이 병을 예수께서 고치시는 과정에 있어서 우리는 인간의 불가능의 한계들을 돌파할 수 있는 그 삶의 비밀을 배울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불가능을 넘어서려면 배워야할 삶의 비밀은 무엇일까요?
1.예수님 앞에 문제를 가지고 나와야 합니다.
19절을 보면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강조된 단어는 "그를 내게로 데려 오라"는 단어입니다.
한번 따라서 하십시다.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여러분, 이 아버지는 먼저 난치의 질병을 앓고 있는 아이를 데리고 누구를 찾아 왔습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을 찾아왔습니다.
아마 예수님을 찾다가 예수님이 없으니까 제자들에게 왔을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변화산상에 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부탁했지만 제자들은 고치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종종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 전도할 때, 어떤 어려움 속에 빠진 사람들이나, 고통 당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 교회에 한번 나와 보세요. 하나님 의지하시면 해결할 수가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저는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기 문제에 대한 해결의 희망을 안고 전도 받은 대로 교회에 나옵니다.
여러분, 그들이 교회에 나왔다는 사실만으로 문제가 해결이 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경험을 통해서 잘 압니다.
그러나 저는 그들이 교회에 나와서 참 하나님을 만날 수만 있다면, 그들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다만 제가 강조하는 것은 교회 나왔다는 사실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떤 부모님 한 분이 자기 어린아이를 데리고 교회에 나올 때 교회가자 이렇게 말씀을 안하고 항상 "야, 우리 하나님 집에 가자"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그날도 주일이 되어서 부모가 우리 하나님 집에 가자. 그랬더니 그날 따라 꼬마가 "나 안가요" 라고 대답을 하더랍니다.
그래서 왜 안가니? 그랬더니 "밤나 가봐야 하나님은 집에 안계시던데요."
그렇습니다. 이 꼬마는 당연히 하나님을 찾을 것을 기대하고 둘러보았지만 하나님이 안보였던 것입니다. 아주 솔직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교회의 책임이 하나님을 보여주는 책임이라고 믿습니다.
여러분, 예배는 왜 드리며, 제자훈련과 성경공부의 목적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경험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제자훈련이나 성경공부의 촛점을 단순한 지식의 획득에 두는 것은 가장 나쁜 방법으로 하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이고, 주님 만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의 주인이 누구입니까?
성경은 교회의 주인을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교회의 본질은 단순한 건물이나 어떤 마력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건물 안에 들어 왔다고 해서 특별한 일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구성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참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예배드리는 그 곳에 두 세 사람 이상이 내 이름으로 모여 주의 이름을 높이는 그곳에 하나님이 임재하실 줄 믿습니다.
그러면 거기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예수님을 만나게 되고, 예수님을 만나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이며,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교회로 인도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물론 믿지 않는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셨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실 교회 문턱 하나 넘어 들어오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 이것이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 어떤 문제의 해결을 기도할 때,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갖는 기대가운데 하나는 영적 지도자들의 도움을 기대합니다.
저는 그것도 나쁜 것이 아니고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영적 지도자인 내 역할은 우리 성도들이 정말 진정한 목자되신 주님 앞으로 달려가도록, 그 주님을 만나 볼 수 있도록, 주님을 의존할 수 있도록 설교로, 교육으로, 훈련으로 강조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예수는 하나님이십니다. 그가 길이요, 그가 진리요, 그가 생명이십니다. 그분이 홀로 선한 목자되십니다.
그러므로 그 분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문제를 가지고 주님 앞에 나오시기 바랍니다.
그때에만 우리는 불가능을 넘어서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놀라움의 삶을 경험할 줄로 믿습니다.
2.예수님을 전적으로 신뢰해야 합니다.
28절을 보면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종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 내지 못하였나이까"라고 질문합니다.
지금 제자들은 실패한 후였기 때문에 주님께 조용히 물었습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까?
우리는 어찌하여 실패했습니까?
여러분, 이 아이가 고쳐지지 않은 이유, 기적이 일어나지 않은 이유, 제자들의 기도가 실패한 이유, 도대체 그 원인이 어디에 있었을까요?
19절을 같이 읽어봅시다.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는 세대여..."
여기서 우리는 분명한 원인을 볼 수가 있습니다.
지금 예수님은 간접적으로 이 아이의 병이 고쳐지지 않은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말씀하십니까?
한마디로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이 세대가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곳에서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시고, 당신의 임재를 계시하시고, 당신의 손길을 나타내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에게는 믿음이 없다고 말씀하시지 않고 "믿음이 적은 자여!"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이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 나섰을 때,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로 결단했을 때, 예수님을 향한 어느 정도의 믿음이 없었겠습니까?
저는 어느 정도의 믿음은 있었다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에게도 차이는 있지만 어느 정도의 믿음은 다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배드리고, 찬양하고, 기도하고 그리고 주님 앞에 가까이 나와서 봉사도 하고, 섬기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들에게 당신은 왜 그렇게 믿음이 없으십니까?라고 하면 과히 좋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그렇게 말씀하지 않고 "믿음이 적은 자여! 그대들이 실패한 이유, 기적이 일어나지 않은 이유, 그것은 믿음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라 당신들에게 믿음이 적었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현장에서만은 주님을 향한 그들이 믿음을 충분히 나타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여러분, 우리가 믿는다고 말할 때 중요한 것은 "믿음"이란 그 단어 자체가 아니라 믿음의 대상이 중요합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을 믿는 믿음,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실패의 원인이 예수를 믿지 않고, 자기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면서도 순간적으로 그 주님을 신뢰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신뢰하고 싶은 유혹에 빠진 그 순간 제자들은 실패를 경험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문제를 주님 앞에 가지고 나오시길 바랍니다.
나는 여러분을 도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나의 주님은 여러분을 도와주실 줄을 믿습니다. 주님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우리의 도움이 되실 줄 믿습니다.
3.기도로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제자들이 왜 우리는 쫓아 낼 수가 없었습니까?
29절을 보면 "이르시되 기도 외에는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기도가 이런 문제를 돌파 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똑같은 기사가 마태복음에도 취급되어 있습니다.
마17:21절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한번 찾아보세요.
웃는 사람은 빨리 찾은 사람입니다. "없음"이렇게 되어 있지요.
왜 그렇게 되어있습니까?
우리가 쓰고 있는 성경은 다 사본인데, 어떤 사본에 보면 마17:21절 "없음" 그리고는 바깥에다가 "기도와 금식이 아니고서는 이런 유가 나갈 수가 없느니라"고 쓰여있습니다.
여러분, 기도와 함께 뭘 강조했습니까?
기도만 강조하신 것이 아니라 금식까지 강조하신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금식은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집착하는 것, 하루를 살면서 절대로 빼놓지 않는 것, 그것은 먹 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 식사시간까지 단절하고 간절히 매달리는 기도를 금식기도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가장 간절한 형태가 있다면 그것은 금식기도라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교회 성도 여러분들이 금식의 경험 속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힘, 우리의 지혜, 우리의 생각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이런 난제들을 뚫고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놀라우심을 경험하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사도행전의 초대교회는 굉장히 이상적이 교회라 지금 현대교회 보다 굉장히 우수한 교회라는 상상을 하지 마십시오.
우리와 똑같은 문제들이 있었고, 우리 교회보다 건물이나 교인 숫자도 적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대교회는 당대의 그 세계를 흔들 수 있는 영향력과 충격을 가하고 있었습니다.
그 원인 어디에 있었습니까? 바로 금식에 있었습니다.
엎드려 간절히 기도하던 그 기도가 세계를 움직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몇 년 전 아프리카 선교지를 돌아보고 제가 영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 어떤 선교사님이 Pick up하러 나왔는데 "최목사님 런던에서 제일 보고 싶은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제가 설교자라 그런지, 설교의 왕자라고 일컬어지는 이 스펄젼 목사님이 사역하던 교회는 어떤 형태일까 궁금해서 그리로 가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주일날 가봤습니다.
한 200명 정도 모였는데, 찬양도 힘이 없었고 무력해진 회중과 설교도 큰 감동이 되지 못해 저는 슬펐습니다.
한때 6,000명 이상의 회중들이 꽉꽉 자리를 채우던 이 교회. 그리고 많이 모일 때는 10,000명 이상씩, 어떤 때는 20,000명까지 모여서 성령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과 영광으로 불타오르던 이 교회였습니다.
스펄젼의 전기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람들이 스펼전 교회와 목사님을 방문하면 목사님은 항상 이 방문객을 데리고 교회 아래층으로 데리고 가서 기도하는 성도들의 모습을 자랑스럽게 보여주면서 스펄젼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제 목회의 비밀은 바로 여기 기도하는 이 성도들입니다. 그들이 나의 힘입니다. 그들이 바로 우리 교회의 발전소입니다. 저들의 기도 때문에 오늘 우리의 교회는 존재할 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