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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응답이 지연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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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훈목사 설교
기도응답이 지연되고 있습니까?

요한복음11:1-11
우리가 종종 기도응답에 대한 간증을 듣게 되면 대부분의 기도는 기적적인 방법으로 즉각적인 응답을 받는 것으로 인상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기적적이고 즉각적인 응답의 경험은 오히려 예외일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우리의 기도는 기도의 간절함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응답을 경험하지 못한 채, 아직도 응답의 어떤 징후나 문제 해결의 희망 없이 오기 하나로 버티고 있어야 할 때가 훨씬 더 많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그런 경우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의 상황이 바로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의 생애 동안 친근하게 지냈던 나사로가 병들어 눕게 되자 마르다 마리아 자매는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에게 빨리 오셔서 오라비를 고쳐달라고 요청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나사로는 숨을 거두고 만 것입니다.
우리가 만일 마르다 마리아 자매가 되어 이런 상황에 던져졌다면 이 상황에서 우리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다시 말해서 기도의 응답이 지연될 때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이겠느냐는 것입니다.

1.하나님의 사랑을 믿어야 합니다.
3절을 보면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가로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라고 했고
5절을 보면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사랑이라는 단어는 아가페라는 단어로 쓰여진 것으로써, 이것은 인생을 향하신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을 표현하는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사로에게 질병과 죽음이 그를 찾아 왔습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의 절대적인 사랑에도 불구하고 나사로에게 질병과 죽음이 찾아 온 것입니다.
우리는 고통이나 불행을 만나게 되면 제일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면 왜 어찌하여 우리가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는가를 질문하게 됩니다.
그러나 본문은 명백하게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예외 없이 질병과 죽음이 온다라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인생의 도상에서 질병과 죽음을 만나거든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사랑만은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질병이 우리의 건강을 빼앗아 갈 수 있고, 죽음이 우리의 목숨을 빼앗아 갈 수 있지만, 어떤 경우에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만은 빼앗아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주님의 사랑받는 복음의 사도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배의 파선, 강의 위험, 강도의 위험, 사십에 하나를 감한 매를 다섯번이나 맞아야 했던 생명의 위험, 동족인 유대인들의 참소와 살해 위협, 수차례 감옥에서 겪은 시련, 등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롬8:35절 이하를 보면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일이나 장래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수 없으리라"고 바울은 고백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롬8:37절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는 바울의 고백은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기도의 응답의 싸인이 없고, 고통의 현실이 조금도 나아짐이 없어도 하나님의 사랑만은 붙잡으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랑은 여전히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 이것만 확신하신다면 우리는 마침내 승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2.하나님의 섭리를 믿어야 합니다.
4절을 보면 "예수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들 중에 어떤 분은 "나사로는 결국 죽지 않았습니까?" 라고 물으실 분이 계실 수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물론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음에서 일어나 부활한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것은 치유보다 더 좋은 죽음을 이긴 놀라운 승리였습니다.
바로 이렇게 죽음이 인생의 마지막이 아니라는 놀라운 사실을 선포하기 위해 예수님은 이 가정의 기도에 대하여 즉각적인 응답을 지체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께서 6절에서 나사로의 질병의 소식을 듣고도 그가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며 늑장을 부리시던 이유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기도의 응답이 지연될 때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를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기도 응답의 지연에는 더 좋은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이 감취어져 있음을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하나님께 "복음을 온 세계에 전하기 위하여 당시 세계의 중심인 로마로 가게 하옵소서"라고 간절히 기도했지만 그의 기도는 응답되지 못한 채로 로마행은 지연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실망하는 대신에 롬8:28절에서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고백하며 기도의 응답이 지연되고 있음에도 여전히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갑자기 예측할 수 없었던 죄수로 체포되어 로마로 압송되게 되었습니다.
사실 바울은 선교사 파송예배를 드리고 로마시민의 환영을 받으며 로마에 입성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더 좋은 섭리의 계획을 갖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죄수로 압송되었기 때문에 그는 교통비를 절감할 수 있었고, 그의 생명을 노리는 자들에게서 당당한 보호를 받을 수 있었으며, VIP죄수로 로마에 입성했기 때문에 그는 로마의 영향력 있는 사람들에게 전도하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여러분,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입니까?
그러므로 기도의 응답이 지연되어도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의 섭리를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3.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믿을 수 있다면, 그리고 하나님의 준비된 궁극적인 선하신 섭리를 믿을 수 있다면, 이제 남은 것은 감사할 것 밖에 없습니다.
물론 나사로의 죽음은 슬픔을 가져 왔습니다.
그래서 나사로가 죽은지 나흘만에 이곳 베다니의 나사로 가정에 도착하신 예수님도 통분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시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11:33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그의(마리아)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의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통분히 여기시며 민망히 여기사"
그리고 35절에서는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도 슬퍼하시고 우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슬퍼하시거나, 우시기만 하시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궁극적인 섭리, 즉 부활의 섭리를 아셨기에 감사의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11:41절을 읽어봅시다.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보시고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아직 나사로는 무덤에 있었고, 사람들은 울고 있었지만 예수님은 감사를 드리고 계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도대체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이 감사하실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신실성에 대한 확신에 근거한 것이었습니다.
11:42절에서 우리는 이런 주님의 확신의 마음을 읽어 낼 수 있습니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을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감사의 기도는 어떤 경우에도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우리의 삶에 선을 이루실 하나님의 성실하심에 대한 확신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우리의 상황이 아무리 절망적이어도, 그리고 우리의 기도응답이 지연되고 있어도,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선한 섭리와 그의 사랑, 그리고 그의 신실하심을 믿을 수 있다면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감사의 영성으로만 우리는 이 시대의 고난을 이겨내는 승리를 누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저는 나사로의 부활의 기적은 감사가 낳은 기적이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시대야말로 이런 감사의 기적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최근 이런 감사의 기적을 경험하고 있는 한 자매를 보고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바로 이지선 자매입니다.
최근 출간된 "지선아 사랑해"는 베스트 셀러가 되었습니다.
이 책을 읽어보면 이 자매는 처참한 교통사고로 고운 미모와 희망의 미래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자매는 "정말 내게 기적이 없었는가?"고 자신에게 반문합니다.
그리고 이 책에서 이렇게 스스로 대답합니다.
"기적처럼 하나님은 제 눈을 지켜 주셨고 캄캄한 절망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은 내 얼굴에 새 피부를 덮어 주시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더 큰 기적은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저 조차도 이해되지 않을 정도의 평안함이 늘 있습니다. 소망가운데 감사하는 가운데 임했던 평안, 몸의 편안함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그것, 전쟁터 속에 있어도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과 거기서 오는 영혼의 평안함. 예전 얼굴을 다시는 찾을 수 없을 것이라 말과, 여덟 손가락을 절단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도 제가 요동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 평안 때문이었습니다. 왼손보다 오른손이 더 짧고 잘 움직여지지 않는데 왜 오른손을 더 지켜 주시지 않았냐고 울며불며 원망하는게 아니라, 왼손이라도 오른손처럼 잘 쓸 수 있으니 감사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손가락을 절단하러 들어가는 그 수술실 앞에서는 더 많이 자르지 않아서 감사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술을 마시고 운전해 우리 차를 들이박은 그분께 조금도 미운 마음이나 분노가 생기지 않도록 제 마음을 지켜 주셨습니다. 정말 힘든 가운데도 어제는 숟가락을 혼자 잡을 수 있어서, 오늘은 또 문고리 잡고 열 수 있어서 감사하며 기뻐할 수 있는 마음, 그래서 매일 매일이 너무 행복한 마음이 제게 일어난 가장 큰 기적입니다. 이 모든 것이 제 힘으로나 제 의지로는 결코 일어날수 없는 일이기에 저는 감히 그것을 기적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자매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고난은 축복입니다. 힘겹고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이기고 나면 주어지는 보물이 있습니다. 고난을 통하지 않고서는 배울 수 없는, 가질 수 없는 열매들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저는 이제 알 수 있습니다. 누군가 제게 물었습니다. 예전의 모습으로, 사고 나기 전 그 자리로 되돌려 준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바보 같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제 대답은 '되돌아가고 싶지 않다'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제 안에 담겨 있는 고난이 가져다 준 축복의 보물들은 정말 그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몰랐던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되었고 사랑을 맛보았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것 안에 있습니다. 저는 기대합니다. 지금은 상상치도 못할 일들이 앞으로도 펼쳐질 것입니다. 크고 작은 기적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지금의 이 모습이 아니고는 전할 수 없는 메시지들을 전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습이 아니고는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나게 하시며, 이런 모습의 저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을 분명 제게 맡겨주시리라 믿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여기 살아 계십니다. 지금 저는 행복합니다."
우리도 지선 자매처럼 주님의 사랑과 섭리를 믿고 감사함으로 고난을 이기는 기적의 축복이 우리 모두의 것이 되기를 기도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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