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인간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본문
하나님, 인간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마가복음12:1-12
우리가 성경을 깊이 있게 읽어보면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지적하는데 그것은 바로 죄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인간관계를 단절시킨 이 죄 문제를 해결하고 화목시키기 위해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로 찾아오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은 이 악한 포도원 농부의 비유를 통해 성경의 위대한 세 가지 주제인 하나님, 인간,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조명하여 은혜 받기를 바랍니다.
1.이 비유에서 나타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1절을 보면 "예수께서 비유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고 즙 짜는 구유 자리를 파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라고 했습니다.
이 한 사람의 행동 속에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발견하게 되는데
1)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2절에 보면 "때가 이르매 농부들에게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받으려고 한 종을 보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얼마"라는 단어는 헬라어에 보면 지극히 적은 돈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돈이 필요해서 받은 것이라고 하기보다는 이 포도원의 주인이 누구냐 하는 것을 확인하기 위한 의례적인 것이고, 사실적으로는 이 포도원은 거의 선물로 주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포도원은 우리의 삶의 마당, 삶의 조건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약1:17절에 보면 "각양 좋은 은사와 그리고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우리에게 내려왔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생명, 또 아름다운 공기, 하늘, 우리가 숨쉴 수 있는 것, 사랑하는 사람들, 다 선물로 주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신 것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온 우주만물을 창조할 때 인간은 몇째 날에 지어졌습니까?
제 6일, 여섯째 날에 지어졌습니다.
만약 사람이 둘째 날이나, 셋째 날이나, 넷째 날쯤 지어졌다면 생존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다른 만물들을 지어 놓으시고 마지막에 인간을 지어 주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아담과 하와가 눈을 뜨고 기지개를 펴며 에덴의 동산에서 일어났을 때에는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오늘 이 비유를 통해 하나님은 이렇게 아름다운 포도원을 우리를 신뢰하시고 선물로 주셨는데, 내 목숨도 맡겨 주시고, 내 재능도 맡겨 주시고, 내 달란트도 맡겨 주시고, 내 삶의 조건도 맡겨 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God is so good!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인 것을 찬양하시길 바랍니다.
2)하나님은 인내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타국으로 떠난 이 주인은 때가 이르렀을 때 농부들에게 소출의 적은 량을 받으려고 종을 보냈습니다.
이것은 어떤 이익을 위해서라기 보다도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이것은 주인이 누구인가를 확인하는 일종의 행위였습니다.
그런데 이 포도원을 관리하고 있던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3절을 보면 "저희가 종을 잡아 심히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이라고 했고
4절을 보면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의 머리에 상처를 내고 능욕하였다"고 했고, 5절을 보면 "또 다른 종을 보내니 저희가 그를 죽이고 또 그 외 많은 종들도 혹은 때리고 죽인지라고"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주인의 오래 참으시는 인내심을 통해 하나님의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너무나 아름다운 것들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선물들을 사용해서 주의 뜻을 이뤄가며 살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을 무시하고, 혹은 하나님을 불신하고, 또 하나님을 불순종하고, 또 하나님이 나의 삶 속에 이런 하나님의 뜻을 촉구하기 위해서 보내신 종들의 메시지 앞에 귀를 막고 때로는 그 종들을 핍박한 자들이 우리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인내하시고 또 다른 종을 보내어 계속적으로 우리로 하여금 그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역사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오래 참기만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9절을 보면 "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뇨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마지막에 자기의 아들 마저 보내었지만 그 아들까지 죽여 버린 이 사람들에게 "너희들이 포도원 주인이라면 이럴 땐 어떻게 하겠느냐?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지 않겠느냐?"라고 묻습니다.
그렇습니다.
진멸의 순간, 진노의 순간, 마침내 심판을 준비하시는 하나님이 본문의 비유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모습이십니다.
2.이 비유에서 나타난 사람은 어떤 존재입니까?
인간은 너무나 이기적인 존재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이 포도원을 선물로 맡은 청지기요, 현대적으로 말하면 매니저, 관리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인은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인은 누구실까요?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이 나에게 생명도 맡겨 주셨고, 남편도 아내도 자식도 맡겨 주시고, 내 재능도 맡겨 주시고 돈도 맡겨 주시고 시간도 맡겨 주셨습니다.
그러나 청지기의 탈선, 관리자의 탈선은 언제부터 시작이 되었습니까?
7절을 보면 "저 농부들이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자 그러면 그 유업이 우리 것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포도원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당연한 진리를 알면서도 그것을 내 것으로 선포하고 싶어하는 것 그것이 인간입니다.
바로 이러한 착각을 우리에게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내주는 비유가 바로 눅12장의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어떤 부자농부가 봄에 씨를 뿌리고 땀을 흘려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 해 가을이 가까웠을 때 소출이 풍성할 것이 예견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농부는 현재 가지고 있는 이 곡간으로는 이 곡식을 다 수용할 수 없겠다 생각하고 곡간을 넓히는 개조작업을 착수했습니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고, 드디어 그는 넓혀놓은 곡간마다 곡식을 가득가득 채워놓은 다음에 자기의 영혼을 향해서 "내가 내 물건을 어디다 쌓아 둘꼬. 내가 넓혀 놓은 곡간마다 내 물건을 가득가득 쌓아두리라. 그리고 나는 내 영혼에게 이르기를 내 영혼아 이제 여러 해 쓸 물건을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먹고 마시고 즐기자"라고 독백을 합니다.
여러분, 그때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이 부자의 독백을 가만히 살펴보면 이 부자의 그 독백가운데 가장 많이 강조된 단어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나라는 단어입니다. 즉 내 물건, 내 곡식, 내 곡간,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기를. 계속해서 내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이 부자에게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가 네 것이라고 주장하는 네 영혼을 내가 가져가리니 그러면 네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이 비유 속에 핵심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누구의 것이냐 하는 소유권의 문제입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누구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의 남편 아내 누구 것입니까?
여러분의 자녀 누구 것입니까?
여러분의 재산 누구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그만 이 세상을 떠나라 하시면 우리는 빈 손들고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종종 이 소유권을 확인하기 위해서 당신의 종을 보내서 "세를 내라"고 말씀하십니다.
세를 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그것이 바로 헌금입니다.
우리는 교회강단에서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믿으십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열망하십니다. 믿으십니까? 여러분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라는 축복의 설교가 선포되면 기대하며 흥분합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제가 만약 설교를 바꾸어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축복하셨으니 이제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헌금합시다"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할까요?
헌금에 대해서 별로 설교를 잘하지는 않지만 목사가 강단에서 헌금을 말하면 어떤 사람은 알레르기성 반응을 보이며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이 아마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생각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이것이 죄를 범한 우리 안에 숨어있는 죄성의 정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3.이 비유 속에서 예수님은 어떤 분으로 나타나고 있습니까?
6절을 보면 "오히려 한 사람이 있으니 곧 그의 사랑하는 아들이라 최후로 이를 보내며 가로되 내 아들은 공경하리라 하였더니"라고 했습니다.
이 비유 속에서 예수는 사랑하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30년 동안 개인적인 삶을 지내시다가 공적생애를 시작하실 때 그는 요한에게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나올 때 하늘의 문이 열리면서 하늘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로다"라는 메시지가 선포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분은 사랑 받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런데 오늘 비유 속에서 그 예수 그리스도는 고난을 받으시고 죽임을 당할 사실이 오늘 예언돼 있습니다.
7-8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저 농부들이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자 그러면 그 유업이 우리 것이 되리라 하고 이에 잡아 죽여 포도원 밖에 내어 던졌느니라"
여러분 지금 이 얘기를 누가하고 계십니까? 예수님이십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하신 시점은 십자가를 며칠 앞에 둔 때였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말씀하시던 주님의 심정을 헤아려 보십시오.
이 비유를 말하면서 예수님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을까요?
8절을 보면 "이에 잡아서 그 아들을 죽여 포도원 밖에 버렸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틀림없이 이 말씀을 하시면서 그는 며칠 후에 포도원 밖 저 골고다의 언덕에서 사람들이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일 그 광경을 보시고 있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고난을 모르고 당할 때는 어느 정도 경험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고통스러운 것은 내가 그 고통을 알고 경험할 때, 다시 말해서 사람들에게 침뱉음을 당하시고, 조롱을 당하시고, 고통의 길을 그가 쓰러지시고 일어서시고 다시 쓰러지면서 걸어가야 할 골고다 언덕길과, 십자가에서 양손에 못이 박히시고 옆구리에 창을 받으시고 신음하실 자신의 모습을 알면서 이 말씀을 하시던 주님의 심정을 여러분은 이해하십니까?
이것이 비유 속에 나타난 주님의 모습이십니다.
그러나 이 비유는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10절을 다같이 읽어봅시다.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여기에 주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실 놀라운 예언이 되어있습니다.
여러분, 건축자의 버린 돌이 이번에는 무슨 돌이 되었습니까?
11절은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보지도 못하였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무엇이 기이하겠습니까?
그것은 부활의 놀라움, 부활의 신비, 이것은 정말 기이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바로 우리를 위한 고난이었고.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를 위한 부활이었으며, 예수님이 사셨으므로 우리도 영원히 살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받은 이 구원의 은혜를 이제는 세상으로 흘려보내 세상 모든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는 자랑스런 고현교회가 되고 성도가 되어 주님의 기쁨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