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지 부족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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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지 부족한 것
마가복음 10:17-22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계기는 만남에 의해서 결정이 됩니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부모님과 만남으로 오늘의 내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주어진 만남입니다.
그리고 우리 생애에 두 번째 중요한 만남은 부부의 만남입니다.
우리 속담에 "남자에게 많은 복이 있지만 처복보다 더 좋은 복이 없다"라고 말이 있고 "여자 팔자 두레박 팔자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부부의 만남이 얼마나 풍요롭고 소중한 만남인가를 강조한 말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또 하나의 만남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생과 내생의 가장 확실한 만남, 영원한 만남, 그 만남은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1.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 보면 하나님을 갈망했던 한 청년이 있습니다.
그는 관원이었다고 합니다.
대개 중동 지방에서는 고급 관리가 되는 것이 나이가 30이 넘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니고데모나 아리마대 요셉과 같은 사람들은 나이가 많았던 사람들이었지만 여기에는 "청년, 젊은 사람" 이라는 단어가 붙어 있는 것으로 봐서 30대 초반 정도가 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우리 예수님과 동등한 나이입니다.
오늘날 같으면 고시에 패스해서 서기관 이상의 고위직을 가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그는 똑똑하고 젊고 성공하고 돈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17절을 보면 "예수 앞에 나올 때에 꿇어앉아"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 예수는 야인으로서 사회적인 타이틀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고위직에 있는 사람이 오히려 별 볼일 없는 사람에게 무릎을 꿇은 것입니다.
세상에 참 어려운 것 중이 하나가 겸손해지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든지 겸손한 것은 좋아하고 교만한 것은 싫어합니다.
그러면서도 자신만은 교만하고 싶은 것이 인생입니다.
그래서 정말 겸손하기가 힘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젊은 청년은 겸손한 태도를 가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자기가 가진 현실적인 성공과 부요를 넘어서 영원한 것을 사모할 줄 아는 갈망이 있었습니다.
그는 참으로 모든 것을 많이 갖춘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으로 만족치 않고 영원한 가치에 목말라 "선한 선생님이여,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예수님께 질문을 던지는 만남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조그마한 자기 것에 열중해서 쉽게 쉽게 예수를 지나갔지만 이 젊은 청년은 예수라는 분의 인격을 지켜보다가 예수 앞에 나와서 가장 멋진 만남의 대화를 통해 "선한 선생님이시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말합니다.
당시에 예수는 성공한 사람들의 증오의 대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는 부자들을 꾸중했고, 예수는 지위가 높은 사람들을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저주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멸시했을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는데 모든 마음이 합해져 있을 당시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만나고 싶지만 차마 만나는 것이 껄끄러워서 니고데모는 예수 안에 영생이 있는 것을 알고도 밤중에 가서 몰래 만났습니다.
그리고 아리마대 요셉은 그가 예수님과 어떤 교류를 했는지 전혀 모르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니까 자기의 새로 판 무덤을 내놓고 장례 때나 그의 얼굴이 잠깐 나옵니다.
그러나 이 젊은 청년은 대낮에 길가에서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서 예수를 "선한 선생이여"라고 부르면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고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네가 지금 나를 사람으로 보고 선하다고 하느냐? 그러나 사람 자체에는 선이 있지 않다. 하나님 한 분만 온전한 선이시다. 네가 그것을 알아야 된다"고 가르쳐주시면서
두 번째로 "네가 계명을 지켰느냐?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증거하지 말라. 속여 취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 이 청년은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말합니다.
놀라운 인격을 가진 청년과의 만남이었습니다.
2.여러분, 얼마나 귀한 광경입니까?
예수께서 이 젊은 청년이 하나님 말씀에 전심으로 순종하려고 노력할 뿐 아니라 영원을 사모하는 그 마음을 보고 저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이 사랑하는 젊은 청년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그것은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나를 좇기 위해서는 네가 가서 해야될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있는 모든 재산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어라. 그것이 하늘에 보화를 쌓는 것이다. 네가 정말로 영생을 사모하며 하나님과 함께 축복된 삶을 누리길 원하느냐? 그렇다면 너희 보화는 하늘로 옮겨져야 된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젊은이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그의 마음속에 있는 재물 사랑하는 깊은 욕심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은 부자였으나 모든 재산을 내놓으라고 말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은 역사상 최대의 부자였습니다.
아직까지 다윗을 능가하는 부자는 어떤 왕궁에서도, 어떤 사업가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다윗아, 네 모든 재물을 내게 가져오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욥도 부자였고, 이삭도 부자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재물 자체에 대해서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재물을 내놓으라고 하셨다면 당장 내놓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내놓을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외아들 이삭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겉모습 밖에 볼 수 없지만 하나님은 그 깊은 마음을 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100살에 낳은 아들이 좋아서 아브라함의 모든 시선이 이삭을 향해 머물러있는 것을 보시고 "아브라함아, 내가 지시한 땅으로 데리고 가서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내게 바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지금은 이 부자 청년에게 "네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 주라. 이것이 하늘의 보화를 쌓는 길이다. 네가 영생을 참으로 추구한다면 네가 그것을 갖기를 원한다면 너는 네 마음속에 있는 그 집착을 먼저 내려놓고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젊은 청년을 진실하게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젊은 청년의 마음속에 있는 그 선한 의지도 잘 아셨습니다.
그렇지만 그 마음속에 하나님을 대신해서 웅크리고 있는 욕심, "다른 것은 다 내놓아도 하나님, 이것은 안됩니다."라고 하는 그것을 우리 주님께서 바로 지적하셨습니다.
여러분, 주님과 나 사이에 장애 될 것이 여러분에게는 무엇이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여기 말한 대로 재물일 수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귀하고 좋은 것이 많은데 하나님 앞에 얼굴만 들면 부끄러운 습관이 있습니다.
그 한가지 때문에 하나님마저도 통제하고 싶은 이런 것들이 우리 속에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22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한 가지 부족한 것 있다"고 말했더니 "이 청년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갔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 청년은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을 직접 만날 수 있었고, 예수님 앞에 가장 소중한 것을 요구할 줄 아는 젊은 청년이었습니다.
그러나 결론은 재물이 많은 고로 그 말씀을 인하여 근심하며 슬픈 기색을 띠고 예수님을 떠나가는 비참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늘 자신에 대해 착각하는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내가 선한 생각을 많이 하니까 선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선을 생각하고, 좋은 것을 생각하지만 나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기 이 청년도 좋은 의지와 좋은 생각이 있었습니다.
기회도 붙잡을 줄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자기 손에 꽉 쥐고 있는 다른 것 때문에 가장 좋은 것을 누리지 못한 채 슬퍼하며 우리 주님을 떠났습니다.
여러분, 오늘 여러분은 예배를 통해 누구를 만나기 위해 교회에 왔습니까?
예수님 만나러 오셨다면 여러분에게는 선을 갈망함이 있고, 하나님나라 사모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예배를 마치고 나면
어떤 사람은 "이 문제는 주님과 나 사이에 해결해야되는데..."라고 근심하면서 이 자리를 떠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최 목사는 성경을 어떻게 그렇게도 볼 수 있지? 나는 단순하게 생각없이 읽었는데, 그 젊은 청년의 속마음을 그렇게 대신 말하니까 그럴싸하네. 그리고 하나님과 나 사이에 중요한 것을 버리라는 것도 참 좋은 말이야"라고 말하며 아무 생각 없이 집으로 가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주께서 지금 내 마음속에 명령하신 명령 앞에 순종하겠습니다. 내가 이것을 끊겠습니다. 이 습관 버리겠습니다. 주님과 나 사이에 늘 문제가 되어서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주님 앞에 설 때마다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이것을 내가 끊고 가겠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이런 결의를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여러분, 어떤 모습으로 이 예배 장소를 떠나시기 원하십니까?
우리가 신앙 생활하면서 참 좋은 것들을 많이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 그 한가지 부족한 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 영광의 축복을 놓쳐버리는 수도 있습니다.
만약 본문의 이 젊은 청년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 주라"고 요구하신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했다면 그는 얼마 후에 자기를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에 자기 몸을 찢으시고 죽으시는 그 놀라운 광경을 봤을 것입니다.
그것을 알았던 아브라함은 사랑하는 자기 자식을 붙잡고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모리아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그것을 알았던 믿음의 사람 욥도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라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여러분, 주님과 나 사이에 가로막힌 그 한가지 부족한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께서는 참으로 내게 주실 놀라운 축복을 예비하시고, 나를 사랑하시면서 내게 진정으로 그 축복 주시기를 기뻐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