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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영혼의 소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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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훈목사 설교
한 영혼의 소중함

마태복음 18:10-14

일본 작가 중에 "길은 여기에", "빙점"이라는 유명한 소설을 쓴 미우라 아야꼬(三浦綾子)라고 하는 작가가 있습니다.
그녀의 작품은 대부분 자신이 어떻게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고,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되었는가를 밑바닥에 깔면서 작품을 그려나갑니다.
그래서 그분의 작품을 읽은 사람들 가운데 약 80%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자연히 인정하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고 싶다는 마음이 은연중에 생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쓴 책이 일본만해도 수백만 권이나 팔렸고, 우리나라에도 정확한 숫자는 모르지만 엄청나게 팔렸습니다.
따라서 그녀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엄청난 기여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미우라 아야꼬를 전도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아십니까?
그리고 그가 어떤 환경에서 예수님을 만났는지 아십니까?
당시 미우라 아야꼬는 폐병 환자였습니다.
생과 죽음의 갈림길에 서서 매일매일 각혈을 하며 투병해야만 하는 수용소 안에 있을 때, 어떤 청년이 찾아와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이야기했습니다. 각혈을 하며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이 초라한 여자가 겉으로 볼 때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를 찾아온 청년은 그 여인을 어떻게 보았는지, 각혈을 하면서 파리하게 말라있는 그녀를 붙들고 "예수믿으세요. 예수님이 당신의 구주입니다. 예수 믿으면 당신은 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서 영원한 하늘의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라며 전도했습니다.

아마 그 청년은 이 여인이 나중에 일본열도를 후끈하게 데울 수 있는 엄청난 작가가 되리라는 가능성을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 영혼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 때문에 피를 흘리고 죽어 가는 여인을 위해서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결국 그녀는 수백 명이 나가서 전도하는 것보다 더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이만큼 한 사람의 가치는 중요한 것입니다.

요3:16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통합적으로 묶어 "세상"이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이 세상은 전 인류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이 세상 안에 "나" 한 사람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우리 인류를 통합적인 용어 속에 전부 묶어 말씀하시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나"라는 존재는 그 전체 속에 묻혀버리고 드러나지 않는 것같이 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셨다고 했기 때문에 나 하나 정도는 눈에 띄지도 않겠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갈2:20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다시 말해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세상을 자기자신과 동일시하여 "세상을 사랑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하나님이 세상을 구원하시는 것처럼 나를 구원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눈에는 나 하나가 세상이요, 세상은 바로 나 하나다."라는 말로 세상이 하나님 앞에 중요한 것처럼 나 하나가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이 본문은 대부분 사람들이 일단 중요한 일에 있어서 "너는 저만큼 가 있어. 너는 여기에 끼여들지마."하고 옆으로 제쳐놓은 어린아이 하나를 예수님께서 가운데 세우시고 교훈하시는 말씀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여기에 아주 중요한 2가지 교훈이 들어있습니다.

1.예수님은 한 명의 이 어린아이를 자기자신과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5절을 보면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 어린아이는 다른 존재가 아니라 바로 예수님 자신이며, 어린아이에게 제대로 인격적 대우를 하면 바로 그것이 예수님께 대우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사실을 확대해서 예수님께서 더 구체적으로 말씀하신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는 이 세상 인류는 두 부류로 갈리는데, 오른쪽에 있는 사람은 양, 왼쪽에 있는 사람은 염소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이상하게 양은 하나님 앞에 참 사랑 받는 짐승으로, 염소는 어디서 잘못 보였는지 항상 악역을 담당하는 짐승으로 등장합니다.
그런데 왼쪽에 있는 염소에 속한 사람들이 "예수님, 우리가 세상에 있을 때 예수님께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갖다 드렸고, 예수님이 옥에 갇혔을 때 우리가 찾아가서 뵙지 않았습니까?" 그러자 예수님께서 "나는 너희들이 언제 나에게 옷을 주었는지, 언제 나에게 먹을 것을 주었는지, 언제 찾아왔는지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묻습니다.
"아이고, 왜 기억하지 못하십니까?"
예수님께서는 "너희들이 바로 옆에 있는 어린 아이 하나가 굶주렸을 때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벗었을 때 입을 것을 주지 아니한 것이, 바로 나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고, 입을 것을 주지 아니한 것과 같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오른쪽에 있는 양에 해당하는 성도들이 찾아와서 "예수님, 우리는 세상에 있을 동안 주님께 옷 한 벌 갖다 드린 일도 없고, 먹을 것 하나 갖다 드린 적도 없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아니다. 너희들은 진짜 내가 배고플 때 먹을 것을 가져 왔고, 입지 못할 때 너희들이 입을 것을 가져다주었느니라. 내가 감옥에 있을 때 너희가 찾아 왔지 않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묻습니다.
"아이고, 언제 우리가 그랬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너희 곁에 있는 이웃, 어린 소자가 목말라 할 때 마실 것을 준 것이 나에게 준 것이니라. 또 그에게 먹을 것 준 것이 나에게 먹을 것을 준 것이니라. 내가 다 기억하고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40절과 45절에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멸시하고 천대하는 어린 소자 하나를 자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어린 소자 하나를 소중히 여기면 바로 예수님을 대접하게 되는 것이며, 어린 소자 하나를 영접하면 바로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고, 어린 소자 하나를 멸시하면 예수님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이처럼 세상에서 흔히 무시하고 지나갈 수 있는 생명 하나 하나가 예수님 자신과 동일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깊이 인식하고 사람을 대하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가 살고 있던 당시, 유대나라 사람들이 다니던 교회에는 좋지 못한 풍습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람을 너무 차별대우하는 것이었습니다.
주일날 예배드리기 위해 교인들이 교회에 나오면, 안내하는 분들이 뒤에 섰다가 화려한 옷에 값나가는 반지를 끼고 요란하게 치장한 사람들이 들어오면 허리가 90도 되도록 인사하면서 안내를 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옷을 남루하게 입고 냄새가 나고, 어느 모로 보나 배운데도 없는 무식한 사람처럼 보이는 사람이 예배드리려고 교회에 들어오면 인사도 하지 않고 불친절하게 대했습니다.
이런 풍토가 교회 안에 만연했던 것입니다.
이것을 놓고 야고보는 약2:9절을 보면 "만일 너희가 외모로 사람을 취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라고 하나님 앞에 죄를 짓는 것이라고 엄하게 꾸짖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사람들이 무시하는 하찮은 그 사람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만큼 예수님은 어린 소자 하나, 한 생명 하나 하나를 자기 자신처럼 소중히 여기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2.예수님은 한 명의 어린 소자를 교회와 동일시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기를 양 100마리를 가지고 목축업을 하는 주인이 있었습니다.
하루해가 져서 우리 안으로 돌아온 양들을 세어보니 99마리는 잘 돌아왔는데 한 마리가 안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할까?"하고 고심을 하다가 99마리를 우리 속에 안전하게 넣어놓고는 한 마리를 찾기 위해 저녁도 먹지 않고 지팡이를 들고는 험한 산을 향해 올라가서 한 마리를 찾아 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에서 99마리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아십니까?
교회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우리 모두가 99마리 양입니다.
그러므로 이미 예수를 믿고 교회에 와서 주일마다 예배를 드리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99마리의 양이며, 교회인 것입니다.

그러면 한 마리 양은 무엇입니까?
아직 교회 안에 들어오지 않고 교회 밖에서 방황하는 수많은 영혼들을 말합니다.
그 영혼들을 하나님께서 찾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99마리로 만족하실 수 있을 것 같은데, 만족하시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해 험한 산으로 발걸음을 옮기셨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수님의 눈에는 한 생명이 교회와 동일하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한 영혼이 교회이며, 교회가 한 영혼인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한 영혼을 귀하게 값진 존재로 생각하십니다.
여러분도 20세기에 성자라고 흔히 불리우는 테레사 수녀를 아실 것입니다.
그가 노벨 평화상을 받으면서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는 극빈자, 병자, 고아, 죽어 가는 사람, 노인들을 불러서 모아놓고 자선을 베풀었는데 그가 노벨 평화상을 받을 당시, 그의 사업은 전세계적으로 126개국에 600여 곳이 넘는 사랑의 집을 만들어 세상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분의 말을 읽으면서 오늘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나의 임무가 대중을 돌보는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전혀 없습니다. 나는 한 개인을 돌보고 있습니다. 나는 한번에 한사람 밖에 사랑할 줄 모릅니다. 나는 한번에 한사람 밖에 거둘 줄을 모릅니다. 단 한사람...당신도 내가 하듯 그렇게 한번 시작해보세요. 나는 단 한사람만 인도합니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42,000명이 넘는 사람을 인도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내가 한 모든 일은 바다의 물 한방울을 보탠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물 한방울을 보태지 않는다면 바다는 물 한방울이 모자랄 것입니다. 당신 자신, 당신의 가정, 당신이 다니는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단 하나, 하나에서부터 시작하십시오."

성도 여러분! 오늘부터 그 한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 썩는 밀알이 되도록 합시다.
그 한 생명을 얻으면 우리는 예수님을 얻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한 생명을 얻으면 우리는 교회를 얻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어린 소자를 자기와 동일시하시고, 교회를 자기와 동일시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한 영혼 한 영혼을 소중히 다루면서 전도하는 일에 전심을 다하면 성령이 우리 가운데에 임하셔서 우리가 축복의 통로가 되어 죽은 생명이 살아나는 잔치가 풍성한 고현교회가 될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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