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거듭나셨습니까(Ⅱ)
본문
당신은 거듭나셨습니까(Ⅱ)
요한복음3:1-15
우리가 믿지 않는 분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예수 믿으세요 그리고 구원받으세요"이런 말을 제일 많이 쓰실 것입니다.
그런데 청교도들은 전도할 때 "사람이 두 번 태어나면 한번만 죽고요, 한번만 태어나시면 두 번 죽어요"라고 그렇게 전도를 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두 번 죽는다는 것이 무슨 말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계21:8절을 보면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원색적으로 말하면 "지옥 간다"는 뜻인데 그것이 둘째 사망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죽습니다. 교인들도 다 죽습니다. 저도 틀림없이 죽습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한 이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죽는다는 것보다 우리가 더 두려워해야 할 것은 죽음 자체가 아니라 죽음 다음에 오는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둘째 사망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거듭나면 지옥 갈 필요가 없다는 것이고, 거듭나지 아니하면 멸망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거듭나셔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주일에 "왜 거듭나야 하느냐"라는 말씀으로 은혜를 받았습니다. 오늘도 계속하여 "당신은 거듭나셨습니까?"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받도록 하겠습니다.
1.무엇이 거듭나는 것일까요?
4-6절 사이를 보면 예수님께서는 거듭난다는 것을 자연적 출생과 영적 출생을 통해 비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육체적으로 태어나서 인간이 된 것처럼, 영적으로 태어나 영적인 출생에 의한 새로운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말씀이 어려우시죠?
본문에서 소개하는 니고데모라는 사람도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사회적으로는 유명한 인사요, 종교적으로 남을 가르치는 선생이면서도 예수님이 하시는 이 말씀을 잘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3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시자
4절에서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가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수 있삽나이까?"라고 반문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이렇게 어른이 되어 있는데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태어나란 말입니까?"라는 대답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영적으로 말씀하셨는데, 니고데모는 그것을 육체적인 차원에서 이해를 하였던 것입니다.
이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야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게 무슨 말씀입니까?
그 다음에 보면 예수님께서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날 때 물론 어머니의 모태에서 태어납니다.
그리고 내가 어머니를 통해서 태어났던 것처럼 이제는 성령에 의해서 태어나는데, 이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거듭난다는 것으로서 새로운 창조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오해하는 것을 설명해드리겠습니다.
"거듭난다"는 말을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은 이렇습니다.
형편없이 살던 사람이 교회 나오기 시작해서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는 그 정도의 수준에서 성경은 거듭난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람이 거듭난 것이 아니라 개선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개선되는 것보다 더 깊은 곳에 관심을 갖고, 나를 아예 새롭게 만들어 주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고후5:17절을 보면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옛날 것은 지나갔다, 이제는 너희가 새 피조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이 기독교의 본질이라고 설명하며 갈6:15절에서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씀이 잘 이해가 안되시지요?
옛날 그 유대인들에게는 종교적인 최대의 행사가 할례였습니다.
그래서 어린아이가 태어나면 8일만에 할례를 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표식으로 종교적인 의식을 행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할례받느냐 안받느냐? 그것이 본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요즘 말로 말해서 우리가 교회에 나와서 종교의식에 참여한다고 해서 새로워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할례를 받느냐 안받느냐 그것이 본질적인 것이 아니고, 오직 내가 하나님에 의해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 새로운 창조물이 되는 것, 이것이 제일 중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수선되고 개선되어 보다 나은 인간이 되는 수준이 아니라 새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드리는 순간 우리 안에는 새로운 생명이 주어집니다.
그리고 새로운 생명이 주어진 증거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영적으로 살아나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게 되고 사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인 새로운 창조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생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켜 "새롭게 창조되었다, 거듭났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2.그렇다면 어떻게 거듭날 수가 있는가?
15절을 보면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이 어떻게 거듭날 수 있습니까?라고 묻는 니고데모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인데 여러분 조금 어려우시죠?
그렇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쉽지만은 안습니다.
제가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애굽 땅에서 430년 동안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약속의 땅으로 주시면서 모세를 인도자로 세워 그곳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빨리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젖과 꿀을 먹고 정말 놀라운 삶을 살고 싶은데, 그곳으로 가는 광야길이 너무 힘들고 괴로운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광야 생활하는 동안에 무엇을 제일 많이 했습니까?
그들은 조금만 어려움이 생겨도 "애굽 땅을 차라리 떠나지 않았어야 했다"고 하면서 불평하고 원망을 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먹을 것도 제대로 없다고 불평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하늘 문을 여시고 만나를 내려주셨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직접 만들어서 주시는 이 만나를 한번만 맛보았으면 죽어도 한이 없을 것 같습니다.
성경에 보면 이 만나가 하얀 색깔이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광야에서 마치 눈송이처럼 만나가 쏟아졌을 때 그 감격이 어떠했을까요?
그들은 처음에는 이 만나가 꿀 송이처럼 달고 맛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참 이상합니다.
그들이 만나를 먹고 또 먹는 것을 반복하다가 나중에 가서 뭐라고 불평을 합니까?
왜 만나 밖에 없느냐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합시다.
"사람은 받고 누리는 축복에 익숙해지면 그 축복을 더 이상 축복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그 축복에 익숙해지면 그 축복을 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중에는 만나 밖에 없다고 불평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만나를 가지고 이 박힌 식물을 싫어한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성경을 읽어보니까 이때 하나님이 제일 많이 화를 내셨습니다.
그래서 불뱀을 보내서 불평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막 물게 했습니다.
그런데 한번 불뱀에 물리면 아무리 치료를 해도 낫지 않고 막 죽어갑니다.
그러니까 다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에게 와서 살려달라고 애원하며, 하나님 앞에 당신이 좀 기도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하나님! 이 백성을 그대로 죽이시겠습니까?"라고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모세에게 "장대 끝에 놋뱀을 높이 매달아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참으로 굉장히 재미있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불뱀에 물린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장대 끝에 놋뱀을 매달아라, 그리고 "그 장대 끝에 놋뱀을 쳐다보는 사람마다 살리라!"이렇게 말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장대 끝에다가 뱀을 매달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진중사이를 다니면서 "이 장대 끝에 놋뱀을 쳐다보면 여러분은 살 것"이라고 외쳤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때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아마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뱀소리만 들어도 지긋지긋 한데 또 뱀을 쳐다봐?
또 어떤 고상한 사람들은 야, 그건 미신이야, 그건 샤마니즘이야, 우리가 첨예한 의학으로 치료를 했어도 치료가 안 되었는데, 장대 끝에 놋뱀을 보면 산다고? 라고 비아냥거리고 의심하면서 사람들이 계속 죽어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누군가 아주 단순한 마음을 가진 사람 하나가 우리가 별별 노력을 해도 안낫고 죽지 않느냐? 하나님이 마련하신 구원의 방법이라면 하나님을 한번 신뢰해봐야지 하고, 단순한 마음으로 단순한 믿음으로 모세가 높이 쳐든 그 뱀을 쳐다봤을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뱀을 쳐다보자 금방 몸에서 뭐가 기운이 일어났는지, 기가 돌았는지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다만 더 나빠지지 않고 나았습니다.
여러분, 이 사람이 얼마나 놀랬을까요?
한마디로 미치는거죠.
이 사람이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에게 뭐라고 말했을 것 같아요?
야, 나봐. 나, 살았어, 나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고, 새로운 삶을 얻었다고, 아마 이렇게 소리쳤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진리를 찾는 사람들이 가져야할 가장 소중한 마음자리가 단순한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비웃으면서 계속 죽어가는 사람도 있었고, 또 어떤 사람은 이 사람을 따라서 이 사람이 전해준 복음의 소식을 듣고 쳐다보고 살아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생겼습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읽어 봅시다.
요3:14절에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그 다음에?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여기서 말하는 인자는 누구입니까?
인자는? 숙자, 순자, 명자가, 아니고, 인자는 예수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본래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사람의 아들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가리키는 독특한 칭호가 인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처럼 인자되신 예수님도 들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어디에 매달리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죄로 말미암아 죽어 가는 인생들을 위해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고, 우리 죄를 뒤집어씌워 대신 담당하게 하시고, 예수님을 죄인으로 만들어 십자가에 매달리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이해가 되십니까?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힘으로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셨다. 예수가 내 죄를 짊어지고 내가 죽어야할 자리에서 죽음을 대신 죽으셨다. 이 사실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사람마다,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자신에게 희망을 거는 사람이나, 자신의 노력과 자신의 방법에 희망을 걸고 있는 사람들은 십자가가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언제까지 희망없는 내 자신의 방법과 자신의 철학을 의지하시겠습니까?
이제 내 방법과 내 철학의 절망을 느꼈다면 이제 십자가 앞에 오십시오.
그리고 십자가에서 내 죄를 짊어지시고, 그리고 나 대신 보배로운 피를 흘리면서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장사한지 사흘만에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 누구든지 나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신 그 예수님을 믿는 순간, 하나님은 예수 안에 있던 새로운 생명을 여러분에게 선물로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생명을 선물로 받아 거듭은 사람은 세계관이 변하고, 가치관이 변하고, 세상의 모든 만물이 새롭게 보이고, 하늘의 기쁨이 여러분을 통치하며 자랑스럽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