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거듭나셨습니까(Ⅰ)
본문
당신은 거듭나셨습니까(Ⅰ)
요한복음3:1-15
사람이 가지고있는 가장 뜨거운 열망이 있다면 "그것은 변화되고 싶다. 그리고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라는 열망일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새로운 미래를 향해서 나아가기 위해서는 제일 중요한 것이 과거로부터 해방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과거로부터의 탈출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이 사건을 성경에서는 아주 독특한 용어로 "거듭난다"라고 말씀합니다.
요즘에는 거듭난다는 단어가 사회 속에서도 많이 쓰여지고 있습니다.
우선 정치가 어려우니까 정치가 거듭나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교육계가 부패했다는 뉴스가 나오면 교육가들이 거듭나야 한다고 말합니다.
뿐만 아니라 자동차 광고할 때도 "거듭난 자동차"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그래서 이런 단어가 하도 보편화되다 보니까 "거듭난다"는 진짜 그 의미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요즘 사회에서 흔히 통용되는 "거듭나다"는 말과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거듭나다"라는 말과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주로 "새로워져야 한다" "개혁되어야 한다" 혹은 "뜯어 고쳐야 한다"는 뜻으로 이 말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이 단어를 처음 사용하신 예수님은 새로운 창조, 새로운 생명, 새로운 탄생의 의미로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을 읽을 때 "거듭나야 한다"는 말을 세상에서 통용되는 의미로 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누가 거듭나야 하는가? 그리고 왜 거듭나야 하는가? 를 조명하여 하나님 앞에서 은혜 받기를 축복합니다.
1.누가 거듭나야 할까요?
1절을 보면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태인의 관원이라"고 했습니다.
우선 이 사람은 바리새인이었다고 말합니다.
지금은 바리새인, 그러면 거의 위선자를 연상하지만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은 어깨에 힘을 주고 다녔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가장 그 사회의 도덕적인 계층에 속해 있었던 사람들로서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고 수호하는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누구였습니까?
니고데모, 아주 좋은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니코"라는 말은 "뛰어나다, 탁월하다"라는 뜻이고 "데모"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뛰어난 사람, 탁월한 사람이며, 이름만 좋은 것이 아니라 삶의 조건이 아주 좋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1절에서 이 남자는 유태인이었다고 했습니다.
자랑 같지만 유태인들은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강한 긍지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은 무신론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렇게 하나님 믿는데도 불구하고 거듭나지 않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또 이 사람은 관원이었습니다.
이 관원이란 것은 지금의 국회의원과 비슷한 것입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에는 70명으로 구성된 "산헤드린"이란 공의회가 있었는데 그 의회 멤버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10절에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랍비"라는 말입니다.
우리 기독교에 목사가 있는 것처럼, 유태교에도 랍비가 있는데, 그는 종교적인 랍비, 도덕적인 랍비로서 남을 가르치는 교사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에게 예수님이 거듭나야 한다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구도적 자세를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인 지위와 제도에도 불구하고 젊은 예수를 찾아와 그에게 인생의 문제를 질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니고데모는 겸손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절을 보면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라고 질문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 질문은 종교적인 것으로서 디고데모가 "예수님,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 오신 선생인줄 압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고는 당신을 통해서 나타난 이 놀라운 기적과 당신이 베푸시는 놀라운 교훈, 이런 것은 불가능한 것이죠?"라고 질문했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기 니고데모가 얼마나 종교적으로 아주 우아하게 예수님을 칭찬하고 높이면서 접근하여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이런 놀라운 기적은 일어나지 않겠죠?"라고 질문했습니까?
요즘에 우아하다는 말은 "우라지게 아부한다"는 말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기를 칭찬한다고 좋아한 것이 아니라, 이 사람의 마음속에 아직도 해결되지 못하고 있었던 어떤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를 꿰뚫어보시면서 말씀하시기를 "당신은 거듭나야 된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지위, 종교적인 경험, 자기의 지식, 그리고 존경받는 자기의 위치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이 말씀은 누구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말씀은 여러분과 나에게도 적용이 되는 말씀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누가 거듭나야 할까요?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이 말씀으로 질문하시는 것입니다.
2.왜 거듭나야 할까요?
3절을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했고
5절을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했고
7절을 보면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 짤막한 대화 속에서 세 번씩이나 예수님이 거듭나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왜 이렇게 예수님은 세 번씩이나 반복하셨을까요?
우리는 통상적으로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은 강조하려고 할 때 사용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도 니고데모에게 "당신은 반드시 거듭나셔야 합니다. 꼭 거듭나셔야 합니다" 이렇게 강조하셨던 것입니다.
지난 시대에 영국과 미국에서 영향력 있게 활동하셨던 유명한 목사님 가운데 두 분이 계셨는데 감리교 운동를 창설한 요한 웨슬리와 함께 죠지 위필더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목사님들마다 설교하실 때 자기가 좋아하는 18번 설교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죠지 위필더 목사님의 18번 설교가 거듭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날 이 설교를 듣고 한 청년이 은혜를 받았습니다.
은혜를 받은 그 청년은 목사님께 찾아와서 목사님의 자원비서를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의 허락을 받고 그 청년은 목사님의 가방을 들고 부흥회를 하는 곳마다 같이 따라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목사님께서 가는 곳마다 "계속 거듭나야 한다!"는 설교를 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거듭나야 한다"는 설교를 한 70번 정도 듣고 난 어느 날, 이 청년이 설교를 마치고 강단에서 내려오시는 목사님을 붙들고 "목사님 그 설교 몇 번이나 한 줄 아십니까? 70번이나 하셨습니다" 언제 새로운 설교를 하시겠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이때 죠지 위필더 목사님이 청년에게 이렇게 말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남아있습니다.
"왠 줄 아느냐? 네가 거듭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그렇게 강조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거듭나야할 이유는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와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5절에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누구든지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했고
3절에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고 또한 "하나님나라를 볼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천국은 미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나라"라는 것은 통치권자의 통치가 미치는 영역이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내가 마음속에 영접하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면 하나님 나라의 현상들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나라일까요?
사람마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그리는 모습이 다 다를 것입니다.
그런데 롬14:17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하나님 나라의 본질에 대해서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끊임없이 불의를 경험하고 불공평함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의에 목말라 합니다.
그런데 이 땅에서도 우리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의를 경험하면서 살게 되고, 하나님의 평화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평화의 왕"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천사들은 예수님의 탄생을 예언하면서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 땅에서는 평화"라고 노래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오신 후, 이 세상과 이스라엘은 지금 이 순간까지도 싸우고있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우리가 자세히 읽어보면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재림해 오실 때까지 이 땅에는 계속 불안한 세상이 계속될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불안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모신 사람들은 누구나 다 누릴 수 있는 견고한 평화, 환경과 상관없이 내 마음속에서 잃어버려지지 않는 평화를 경험하며 살게 된다는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기쁨의 하나님이시고, 기독교는 기쁨의 종교인 것입니다.
그런데 거듭나지 못하면 나중에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 땅에서도 주님이 주시는 의도 평안도 기쁨도 경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성도 여러분, 15절 다음에는 몇 절이 있을까요?
16절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16절은 아마 기독교를 안 믿는 사람들도 들어본 구절일 것입니다.
같이 한번 읽어보시겠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하심이니라"
저는 요3:16절이 예수님과 니고데모와 대화의 결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대화의 결론은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고, 거듭난 사람은 반드시 예수님을 진짜로 믿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듭난 결과가 참된 믿음이기 때문에, 거듭나지 못하면 믿지 못하게 되고, 믿지 못하면 결국 그 사람은 멸망 당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고현의 성도님들은 한 사람도 예외없이 모두가 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로 영접하시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들이 되어 이 땅의 사시는 동안 의와 평화와 기쁨을 누리시며 신앙생활을 하시고 주님이 부르시는 날 천국에서 자랑스럽게 만날 수 있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