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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 예수님이 들어오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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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훈목사 설교
우리 집에 예수님이 들어오시면

마가복음 1:29-31

오늘 본문에 예수님께서 시몬과 안드레의 집, 즉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시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배경을 좀 더 이해하기 위해서 21절을 보면 "저희가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라고 했습니다.
때는 안식일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이면 회당으로 모여 랍비를 통해 말씀을 강론 받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회당예배에서 강론을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가르치는 중간에 갑자기 귀신들린 사람이 소리를 지름으로써 이 귀신들린 사람을 고치시는 일에 예수님이 관여하여 귀신들린 사람에게 자유를 주시고, 해방을 주시고, 기도하고, 회당의 예배는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때 본문이 이렇게 시작됩니다.
"회당에서 나와 곧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들어가시 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성지순례를 하시면, 갈릴리에 꼭 가시게 되고, 갈릴리에 가시게 되면 가버나움이라는 마을을 방문하시게 됩니다.
그 가버나움 앞에 가면 "예수가 살던 마을"이라는 간판이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지금도 예수님께서 이 복음서에서 강론하셨다고 생각되는 그 회당의 흔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멀지 않은 곳에 시몬의 집이라는 집터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서기 좋아하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초청했을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학자들의 견해입니다.

30절을 보면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는지라 사람들이 곧 그의 일로 예수께 여짜온대"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들어가는 모든 집에선 항상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그 역사는 항상 좋은 것입니다.
제가 이 사실을 서두에서 강조하는 이유는 베드로의 집에서 일어났던 사건이 우리 집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의 집에 들어갔을 때 일어났던 이 놀라운 사건들, 축복의 사건들이 우리 집에 예수님이 들어오시면 일어날 수가 있다는 이 사실을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1.예수께서 우리 집에 오시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산다는 것은 문제와 더불어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문제가 하나도 없는 직장이 있을까요?
문제가 없는 가정이 있을까요?
어떤 사람도 문제로부터 자유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것이 인생의 경험이고, 성경에 나타난 모든 사람들의 경험입니다.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피해 보려고 하지만 그러나 더 커다란 문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문제를 피하는 것이 해결이 아니라 부딪혀 극복하는데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믿어 구원받았고, 하나님의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성도들의 삶에는 아직도 문제가 존재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도와 불신자를 비교할 때 다른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문제의 해결 자를 모시고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여러분은 그 분이 전능하신 하나님,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는 하나님이라고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그 예수가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한번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님을 모시고 갈릴리 가나 혼인잔치에 참석하셨습니다.
그런데 혼인잔치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것은 잔치 음식의 가장 중요한 메뉴인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이건 잔치에서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당황해하며 걱정합니다.
그런데 걱정하지 않는 분이 딱 한사람이 있었습니다.
누구입니까?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이유는 예수님이 문제의 해결자인 줄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하인들에게 "예수님한테 가서 얘기 해 봐라" 그리고 "그가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분이 해결자입니다.
그래서 그 분의 말씀대로 하여 문제는 해결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에는 언제나 문제는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의 해결자가 우리와 더불어 함께 있는 한 우리는 문제를 극복해 나갈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예수님을 문제 속에 모시면 즉각적으로 해결됩니다.
본문의 케이스가 그런 케이스입니다.
그런데 또 어떤 경우에는 예수님을 모시고 기도해도 당장은 해결되지 않는 일도 있습니다.
그러나 감추어진 어떤 이유 때문에 오래 지속되기도 하지만, 마침내 하나님의 때가 되면 풀리지 않을 것 같은 그 삶의 무거운 장벽이 한 순간에 무너지고 길이 보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해결됩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해결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풀렸습니다.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월이 지나간 후 돌이켜 보았더니 주님의 방법이 더 좋았던 방법인 것을 깨닫고 감사하게 됩니다.
분명한 사실은 이것입니다.
모든 문제는 궁극적으로 해결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집에 들어오시면 문제는 해결된다는 것을 믿으시고 문제의 해결자 주님을 가정에 모시고 사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것은 문제의 해결보다도 더 좋은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우리가 체험한다는 것은 문제가 해결된다는 사실보다도 훨씬 더 좋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주님 앞에 오라고 초청하실 때 우리의 문제해결만을 약속하는 분이 아니라 그 분은 그보다 더 중요한 영원한 관계 속으로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은 우리와 관계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하는 과정에 있어서, 문제의 응답을 구하는 과정에 있어서, 혹은 복음을 수용하는 과정에 있어서, 문제도 해결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시는 그리스도를 경험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시몬의 장모를 치유하시는 장면을 보면, 대단히 암시적입니다.
31절을 보면 "나아가사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여자가 저희에게 수종드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한 구절만 읽으면 예수님이 어떤 방법으로 고치셨을까?
우리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아파서 누워 있는 이 시몬의 장모에게 일어날찌어다! 이렇게 잡아 일으키셨을까요?
그렇게 생각되십니까?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사건을 취급하고 있는
마8:15절을 보면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그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더라"고 했습니다.
똑같은 사건인데 마태는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렇게 기록한 것이 아니라 "그의 손을 만지시더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만진다"는 말은 희랍어의 "매우 부드럽고 섬세한 만짐을 표현"해 주고 있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예수님께서 시몬의 장모의 손을 잡고 많이 아프신 모양이죠? 그러나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고쳐드리겠습니다. 저를 믿으세요. 한번 일어나 보실까요? 그해서 열병은 떠나갔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복음서를 관찰하면서 주님이 병자들을 고칠 때, 매우 다양한 방법으로 고치신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한가지 방법이 아닙니다.
어떤 때는 "고침받을지어다" "가서 봐라" "나았다" 또 어떤 때는 진흙을 가지고 눈에 바르시기도 하고, 여러가지 방법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이렇게 조용히 만지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소개하는 시몬의 장모는 예수님에게서 무엇을 느꼈을까요?
"아! 이 분이 나를 사랑하는구나"하는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이것은 더 좋은 체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의 응답을 주님께 구하는 과정에 있어서,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안 다는 것, 그리고 그 분이 구세주라는 것을 안다는 것. 그것은 더 좋은 체험인 것입니다.

제가 목회생활 하면서 느끼는 것 중의 하나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는 계 기가 병 때문에 믿는 분들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질병 때문에 교회에 나오고, 예수님을 영접하여 기도하자 마자 병 나음을 얻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저를 놀라게 하는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입니다.
병 때문에 교회에 나왔고, 병 때문에 기도를 시작했고, 병 때문에 예수 이름을 부르는데도 병이 났질 않습니다.
그러므로 믿지 않아야 할 텐데 그런데도 계속해서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래서 왜 그러느냐고 물어 보면, 그는 주님의 도우심을 기도하는 과정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가 얼마나 놀라운 분인가를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사도 바울이 자기를 사랑해서 독생자를 주신 주님의 은혜를 깨달은 후에 그의 한 평생을 지배하던 놀라운 감격을 여러분은 기억하십니까?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를 강권한다" "이 사랑이 나를 강권한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사랑을 체험하고, 이 사랑 안에서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는 것, 이것은 예수님을 만나는 과정에 있어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그 어떤 것보다도 더 큰 놀라운 체험인 것입니다.
우리 가정에, 사랑하는 식구들에게 이 예수님에 대한 사랑의 체험이 일어나기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3.섬기는 자가 됩니다.
31절을 보면 "나아가사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여자가 저희에게 수종드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시몬의 장모가 병이 낫고 나니까 얼마나 감사하였겠습니까?
그래서 베드로 장모는 정성을 다하여 식사도 준비하고 또 예수님과 함께한 사람들을 섬겼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만 했을까요?
제가 희랍어 원문을 보니까 여기서 "수종들더라"는 말이 미완료 과거형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계속해서 섬겼다는 말입니다.
저는 이 사건이후에도 이 여인은 주님을 계속하여 섬기는 여자가 되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주님의 사랑을 받은 자의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한 사람,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마음속에 감사가 있고, 감격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은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 그리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을 위하여 섬기는 자가 됩니다.
그래서 저는 한 평생 이 여인이 주님을 섬겼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저는 본문의 사건을 누가복음을 관찰하면서 이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눅8:1절 이하를 보면 "이 후에 예수께서 각 성과 촌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반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새 열 두 제자가 함께 하였고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또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또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저희를 섬기더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주님이 무엇으로 전도 역사를 계속 하실 수가 있었을까요?
주님 통해서 은혜 받은 사람, 특별히 여인들의 헌신이라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여기에 보면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저희를 섬기더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 여인들 속에는 틀림없이 시몬의 장모도 끼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목회하는 가운데 교회에서 봉사하는 분들을 보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은혜받지 못하고, 구원도 모르고, 하나님의 영광도 모르고, 복음의 은혜도 모르고, 십자가의 놀라운 사랑도 모르고, 그냥 교회생활에 익숙해져서 봉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분들의 봉사는 반드시 오래 가지 못합니다.
조금만 어려운 일이 생기면 낙심하며 그만둡니다.
그러나 다른 하나는, 교회에서 봉사하다 보면 어려운 일도 있지만 끝까지 봉사의 자리에서 사람을 생각하지 않고, 주님을 바라보고, 주께서 내게 주신 은혜와 사랑을 감사하며, 언제나 변함없이 주님을 섬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정말 주님을 만난 사람은 한 평생 주님을 기쁜 마음으로 섬깁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시몬의 장모가 인생의 황혼의 마무리가 가까왔을 때 그는 자기 사위에게 얼마나 감사했을까를 생각했습니다.
고현의 성도 여러분!
우리는 사랑하는 부모님에게 무엇인가를 해드리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들 얼마나 하겠습니까?
그리고 우리가 그 분들 곁에서 함께 동행해 드린들 어디까지 가겠습니까?
우리의 부모들이 죽음의 다리를 건너갈 때 아무도 같이 동행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의 사랑하는 부모님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한다면 그들은 예수님의 손을 잡고, 예수님의 인도를 받아 죽음의 다리를 건너 영광 속에 들어갈 줄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이보다 더 놀라운 효도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고 부모님 여러분!
우리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해서 어느 부모인들 최선을 다해서 자식에게 해 주고 싶지 않은 부모들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가 자식들을 붙잡아 놓고 아무리 사랑과 친절을 베풀어도 끝까지 자녀들을 붙들어 둘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결국 부모의 곁을 떠나갑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도록 해준다면 부모의 손길이 미치지 않을 때, 부모가 아무 것도 해줄 수 없을 때, 그들은 내가 소개해준 예수 그리스도,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붙잡고 그들은 승리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자녀에게 해줄 수 있는 최대의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예수님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우리의 집에 들어오시면 우리가 생각할 수 없었던 놀라운 구원의 기적들이 계속하여 일어날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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