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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도 뛰어도 피곤하지 않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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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훈목사 설교
걸어도 뛰어도 피곤하지 않는 삶

사40:27-31

어느 휴게소 남자 소변기 위엔 이런 글이 씌어져 있었습니다. "나를 소중히 대해 주면 내가 본 것을 비밀로 하겠어요" 유머스럽고 애교스런 문구가 변기조차도 친근함을 느끼게 하였습니다.

우리의 미성숙했던 지난날의 신앙생활이 지금까지는 종교적 규범들로 묶어서 이끌어 왔지만 이제는 성숙한 신앙을 가질 때가 되었습니다.
즉 신앙의 본질을 제대로 발견하고 믿어야 할 때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기독교는 종교가 아닌 생명입니다.
풍성한 생명을 누리는 은혜의 삶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의무가 아닌 기쁨과 특권으로, 율법이 아닌 풍성한 은혜의 삶으로 우리 신앙생활을 바꾸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걸어도 뛰어도 피곤하지 않은 삶"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앞에서 성도 여러분과 함께 은혜 받기를 축원합니다.

1.의무가 아닌 기쁨이 되어야 할 첫 번째 영역은
첫째, 성경공부입니다.
저도 성경공부 방법론을 많이 배우고, 연구하고, 글을 쓰고, 가르치기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성경의 문자에 능력이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성경의 지식을 얻고, 그 해석법을 익히고, 때로 성경을 분석하는 통쾌함에 감동을 받으면 우리의 삶이 풍성해 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말씀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친밀한 관계에 들어가지 않고서는 은혜의 삶이 불가능합니다.
신약 성경을 펼쳐보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성경을 줄줄이 외우고, 통달하여 예수님 탄생의 장소를 알았고, 메시야에 대한 모든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은 만나지도 못했고, 경배하지도 않았으며, 메시야를 만나지도 못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을 읽고 배우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를 체험하지 못하고, 성령론의 박사처럼 말하면서도 성령의 임재와 능력에 무지하고,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서는 잘 알면서도 창조의 능력은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둘째, 기도생활입니다.
은혜의 기도는 놀라운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의무가 아니라 크리스챤의 최대의 특권입니다.
그런데 율법적으로 기도하는 사람은 "쉬지말고 기도하라"는 말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처음 데이트를 시작할 때는 많은 말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친밀해 지면서 많은 말이 필요없습니다.
가족은 아침, 저녁, 식사를 하며 함께 즐기며 교제를 나눕니다.
부부는 함께 밤새도록 잠을 자며 대화를 하는 것입니다.

셋째, 복음전도입니다.
신약 성경의 교회는 전도하라고 자극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교회가 전도하는 것을 그 무엇도 그 누구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행4:19-20절을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전도했다가 체포되어 공회석상에서 예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는 엄한 경고와 위협을 받았을 때 "하나님 앞에 너희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해 보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고 대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이 복음과 은혜가 불타고 있을 때 은혜는 전도하고픈 열망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무서운 핍박이 가해져서 커다란 불이 흩어져 사방에 불똥이 되었지만 그 불똥이 또 다른 큰불을 일으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은혜는 잃어버린 사람을 향해 달려가 성령의 능력을 통해 증거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넷째, 헌신(헌금) 생활입니다.
헌신생활을 하나님의 은혜로 새롭게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일 예배시간에 우리는 헌금을 합니다.
그러나 흔히 사람들이 모이면 회비를 내듯이 헌금을 임무나 책임 정도로 생각하여 빼앗기는 마음으로 헌금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잘못되고 어리석은 것입니다.
영광을 부끄러움으로 바꾸는 사람입니다.
내 시간이든, 물질이든, 몸이든, 은사든 내가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다는 것은 성도의 최고의 영광이요 특권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 손과 발이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은 내 손과 발이 하나님의 한 부분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입이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것도 내 입이 하나님의 도구가 되는 것이요, 하나님의 입을 대신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내 물질이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다는 것도 내가 하늘의 양식으로 살아가는 하늘나라 백성이 되는 것이며, 내가 쓰는 모든 물질이 하늘나라의 물질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땅에서 많은 돈을 벌고 쓰지만 하나님께 드린 것만이 하나님 나라에 영원히 남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헌신은 하나님 나라 가치의 무게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감사요 감각이요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아내가 돈이 필요할 때, 내가 돈을 줄 수 있으면 나는 남편된 보람과 자신감으로 넘칩니다.
어머니에게 용돈이라도 드릴 수 있으면 자식된 도리를 다 한 것 같아서 내게 큰 기쁨이 됩니다.
자식들의 필요를 내가 채울 수 있다면 아버지된 본분을 다 한 것 같아서 내게는 큰 감사요 보람이 넘칩니다.
여러분! 교회는 빌딩이 아니라 가족입니다.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내가 예물을 드리고 헌금하고 헌신한다면 하나님 가족들의 영광이요, 내 가족을 살리는 보람과 기쁨입니다.
왜냐하면 그것들만이 천국에 쌓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2.이렇게 걸어도 뛰어도 피곤치 않은 삶은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으로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 "야곱아, 이스라엘아! 너 왜 피곤해 하며 살아가느냐? 네게는 피곤해 하지 않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느냐. 그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는 독수리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걸어가도 뛰어가도 피곤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 역사적인 배경이 있습니다.
창세기 32장을 보면 야곱은 눈먼 아버지를 속이고 형 에서로부터 장자의 명분을 빼앗아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의 세월 동안에 아내를 얻었고, 많은 재물과 가족을 거느리고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집에 가까이 왔을 때에 어떻게 하면 형 에서의 분노를 달래고 아버지와 가족들에게 자신의 잘못한 것을 보상할 수 있을 것인가? 를 생각하다가 예물을 보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성취, 업적, 공로로 자기 잘못을 갚아보려 했습니다.

그날 밤 가족들과 종들 그리고 모든 우양떼는 강을 건너고, 자신은 두려움에 강을 건너지 못하고 얍복강 나루터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홀로 남아 있을 때에 하나님이 야곱의 삶에 개입하시기 시작합니다.
얍복강 나루터에서 천사와의 씨름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씨름의 결과는 천사가 야곱의 환도뼈를 부셔뜨려 이제 마지막 믿었던 두 다리 마져 못쓰게 되어 도망갈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께 매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하나님 나를 축복하지 아니하면 놓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천사가 묻습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야곱입니다.
그 동안 아버지도 속일 수 있었고, 차남으로 태어났지만 장남이 될 수 있었고, 내 힘으로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었고, 내 맘에 드는 아내를 얻을 수 있었고, 외삼촌도 속일 수 있었고, 많은 재물을 얻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것이 야곱이라는 이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내 힘으로 하던 모든 것이 끝장 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늘의 신령한 힘을 모릅니다.
복음의 비밀을 모릅니다.
은혜의 비밀을 모릅니다.
성령의 능력을 모릅니다.
그래서 예수 안에서 살아가는 삶의 평안과 안식을 모르는 사람들이 이 땅에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 삶을 우리는 육신적인 삶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즉, 내 힘으로 발버둥치는 모든 삶, 그것이 야곱의 삶이었습니다.

야곱은 이제 환도뼈가 깨지며 부셔졌습니다.
한계상황에 부딪히게 된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 떠나서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당신이 나를 도와주지 않으면, 당신의 힘이 아니면, 당신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나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이 은혜의 존재입니다.

야곱의 고백에 대하여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현대어 성경을 빌리면 "너는 지금부터 야곱이 아니다. 네 노력으로 발버둥칠 필요가 없다. 간사한 네 힘으로 살아가려 했던 모든 것을 포기해라. 신앙이 무엇이드냐? 발버둥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 앞에 자신을 내어 맡기는 것이야. 내 힘으로 몸부림하는 것이 신앙생활이 아니야. 하늘의 능력을 덧입는 것이야. 신령한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것이야" 라고 말씀하시고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고 바꾸어 주었습니다.
이스라엘이란 이름은 네가 이겼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무엇을 이겼다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쓰러뜨릴 수 있었습니까?
히프 조인트가 완전히 박살났는데 어떻게 이길 수 있습니까?
그것은 야곱이 하나님께 항복함으로 승리하는 비밀을 배웠고, 포기함으로 승리하는 비밀을 배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를 완전히 무너뜨리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살아가는 삶의 비밀을 배우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스려 주신다. 하나님이 간섭하신다. 네가 해결할 수 없는 모든 문제 해결해 주마. 이스라엘이라고 하리라. 할렐루야.

여러분 이 신령한 은혜의 세계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환도뼈가 깨어진 다음에, 내가 마지막 붙들고 있던 마지막 줄이 짤려진 다음에, 내가 의지하던 모든 것이 깨어진 다음에 하나님 앞에 돌아오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분복을 하나님 앞에 내어 맡기고 지금까지 내가 소중히 여기던 모든 것조차도 하나님 앞에 내어놓고 되돌려 받는 삶의 신비를 배워 가시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문제는 형 에서가 아니라 나 자신이 문제였습니다.
세상에서는 내가 깨어지면 모든 것이 다 끝장났습니다.
그러나 은혜의 세계에서는 내가 깨어질 때에 새로운 내가 세워지는 것을 알았습니다.
세상에서는 내가 죽으면 모든 것이 끝장납니다.
그러나 예수 안에서는 내가 죽어질 때에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을 덧입게 된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내가 포기하면 항복하면 모든 것이 끝장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안에서는 은혜에서는 내가 항복하고 포기할 때에 하늘의 능력이, 성령의 능력이, 예수의 권능이 나를 찾아와 나를 붙들어 주었습니다.
이것이 은혜의 세계였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은혜로 사는 삶을 오늘 본문 이사야 40장을 보면 "걸어가도 피곤치 않고 뛰어가도 곤비치 않는 삶"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평생을 걷고 또 걷고 뛰었는데 피곤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러나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내 능력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내 재주가 아니라 예수님의 지혜로 살아가는 사람은 가능한 것입니다.
기는 놈 위에 뛰는 놈이 있습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습니다.
나는 놈 위에 붙어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의 능력, 예수 그리스도의 힘 위에 붙어사는 신부가 바로 당신이요, 나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예수는 내 안에서, 나는 예수 안에서, 예수님은 나를 통하여 말씀하시고, 나를 통하여 일하시고, 나를 통하여 당신의 멋진 역사를 이 땅에 펼쳐가는 세계,
나는 예수 안에서 예수와 함께 성령이 주시는 능력으로, 성령의 지혜와 권능으로, 내게 준 사명과 비전을 멋지게 펼쳐가는 세계,
이 영광스러운 세계가 은혜의 세계요, 은혜의 삶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승리가 이 축복이 이 비밀이 우리 고현의 모든 가족들에게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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