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설교] (조수현목사) 변화산 사건의 참의미
본문
주제 : 구원 십자가 율법
본문 : 마가복음 9:1-13
말씀의 깊이 : ★★★★★★
예수님께서 제자 셋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셨는데 그곳에서 주님의 모습이 갑자기 변형이 되셔서 광채 나는 모습으로 변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갑자기 그곳에 오래 전 구약 시대의 모세와 엘리야도 함께 나타나서 주님과 함께 이야기하시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러다가 하늘에서 구름이 내려와 세분을 덮으시더니 소리가 났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그러자 문득 둘러보니 모세와 엘리야는 간데 없고 예수님만 계셨습니다. 자 성경에서 이런 특이한 사건이 보여주는 그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이 본문은 마태, 마가, 누가복음등 공관 복음서에 전부 기록되어 있는 말씀입니다. 그 만큼 중요하고 독특한 소위 변화산 사건이라는 이름의 기사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다 보면 이해하기 힘든 본문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 셋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셨는데 그곳에서 주님의 모습이 갑자기 변형이 되셔서 광채 나는 모습으로 변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갑자기 그곳에 오래 전 구약 시대의 모세와 엘리야도 함께 나타나서 주님과 함께 이야기하시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러다가 하늘에서 구름이 내려와 세분을 덮으시더니 소리가 났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그러자 문득 둘러보니 모세와 엘리야는 간데 없고 예수님만 계셨습니다. 자 성경에서 이런 특이한 사건이 보여주는 그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1. 모세, 엘리야보다도 예수님이 더욱 위대
먼저 모세와 엘리야와 예수 세분이 함께 계시다가 하늘에서 소리가 나더니 모세와 엘리야는 간데 없고 예수님만 계셨다고 하는 이 부분부터 실마리를 풀어 나가십시다.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는 예수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초막 셋을 지읍시다."
똑같은 초막 셋을 이렇게 짓자고 하는 것을 보니 적어도 베드로를 위시한 제자들은 이 모세와 엘리야와 예수 세분을 똑같은 동급의 성인들인 것으로 생각을 했는가 봅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모세와 엘리야는 위대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이들과 같은 등급으로 제자들은 생각했던 것입니다.
만약에 예수님을 위해서는 궁전을 짓고 그리고 모세와 엘리야를 위해서는 초막을 짓자 이렇게 했으면 좋으련만 초막 셋을 다 똑같게 짓자고 제안을 한 것을 보면 예수님과 모세, 엘리야를 같은 등급으로 본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모세와 엘리야는 간데 없고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라고 보증을 하는 것을 보니까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엘리야보다도 예수님이 더욱 위대하신 분이라는 것을 오늘 이 사건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2. 그 위대성은 "죽음"에 있는 것은 아닐까?
그 다음을 또 보십시다. 산에서 내려올 때에 주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셨습니다.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이 변화산에서 내려오실 때 갑자기 주님이 자기가 죽으셨다가 살아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의아해 하면서 "이 말씀을 마음에 두며 서로 문의하며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했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필경 무슨 뜻이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모세보다도 엘리야보다도 더 위대하신 점은 그분이 죽었다가 살아나시기 때문에 더욱 위대한 것이 아닌가 이렇게 연결할 수가 있습니다.
사실 모세는 구약의 율법의 전수자입니다. 율법의 대표자로 성경에서 말하여 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엘리야는 구약 예언자의 대표입니다. 구약의 예언자들은 모세의 율법을 자꾸 백성들에게 상기시키면서 이 율법을 지키면 살고 못 지키면 죽는다고 이렇게 권고의 말을 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오늘 변화산상에서 그 모세와 엘리야는, 율법과 예언의 말씀은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예수님만이 남아 있게 되는데 주님이 자기는 죽었다가 살아나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4. 모세, 엘리야도 못한 인간 구원의 일을 예수님이
자 그럼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모세도 못했고 엘리야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더욱 위대하신 예수님은 해 내셨습니다. 모세의 율법으로도 안되고 엘리야의 말로도 안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죽었다가 사심으로 이루어 냈습니다. 무엇을 말입니까? 인간의 구원 말입니다.
인간이 의롭게 되는 것이 모세의 율법으로 될 것 같았으나 결국 안되었고 그 다음에 예언자들을 보내셔서 부지런히 말로 일렀으나 그래도 안되었습니다.
결국은 예수께서 오셔서 자신이 직접 죽으셨다가 살아나심으로 인간의 구원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뜻입니다. 법으로도 안되고 말로 타일러도 안되고 그러자 이제는 주님께서 자기가 십자가를 지시고 희생의 피를 흘려서 되었다는 것입니다.
5. 엘리야의 경우 - 실패했다.
조금 더 계속해서 본문을 보겠습니다. 제자들이 또 갑자기 묻습니다. "서기관들이 자꾸 엘리야가 먼저 와서 회복을 해야 된다고 하는데 왜 그렇습니까?" 이것이 동문서답인 것 같습니다만 다 연결이 되는 말들입니다.
이 서기관들은 율법을 잘 아는, 구약 성경을 잘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의 대답이 또 특이합니다. 12절에 "가라사대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거니와 어찌 인자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하리라 하였느냐"
주님은 "정말로 엘리야가 먼저 와서 모든 것을 다 회복시킬 수 있는 줄 아느냐?"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어찌하여 엘리야보다 나중에 오시는 메시야가 고난을 당할 것이라고 예언되었겠는가?"
엘리야보다 나중에 오실 메시야가 고난을 당하게 될 것을 보면 분명히 먼저 온 엘리야가 사실은 모든 것을 회복시키는데 실패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1번 타자가 안되니까 2번 타자가 고난을 받은 것입니다. 1번 타자가 다 이룰 수 있다면 2번 타자가 왜 고난을 받을 것이라고 했겠습니까? 이것이 주님의 논리입니다. 엘리야가 와서 다 회복하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6. 오리라한 엘리야는 실상은 세례요한 - 실패했다.
또 오늘 본문 13절에 보면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가 왔으되 기록된 바와 같이 사람들이 임의로 대우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참 엘리야인 세례요한, 구약의 마지막 엘리야인 예언자 세례요한 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보다 먼저 왔으나 사람들이 그의 말을 듣고 다 회개하였습니까? 세례요한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하였는데 그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를 사람들이 듣고서 과연 다 돌아섰습니까? 오히려 사람들이 임의로 대우하고 헤롯의 부인 헤로디아가 죽여 버렸지 않습니까?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결국은 이렇게 끝나 버렸습니다. 구약의 마지막이요, 최고의 예언자, 말 그대로 다시 내려온 엘리야를 사람들은 이렇게 대우해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에 보면 먼저 율법을 제정해 주시고 그 율법을 백성들이 듣지 않자 부지런히 엘리야들,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말로 타일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말을 못 지켰습니다. 그 사실들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역대하36장 15절,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백성과 그 거하시는 곳을 아끼사 부지런히 그 사자들을 그 백성에게 보내어 이르셨으나" 그래도 듣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7장 25절 " 너희 열조가 애굽 땅에서 나온 날부터 오늘까지 내가 내 종 선지자들을 너희에게 보내었으되 부지런히 보내었으나" 역시 거부했다는 말입니다.
예레미야 25장 4절 "여호와께서 그 모든 종 선지자를 너희에게 보내시되 부지런히 보내셨으나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으며 귀를 기울여 들으려고도 아니하였도다 " 예레미야 29장 19절 "이는 내가 내 종 선지자들을 그들에게 보내되 부지런히 보내었으나 그들이 나 여호와의 말을 듣지 아니하며 듣지 아니함이니라" 마지막으로 예레미야 35장 14절 " 내가 너희에게 말하고 부지런히 말하여도 너희는 나를 듣지 아니하도다" 그러니 하나님으로서는 얼마나 답답한 노릇입니까?
법을 주시고 법을 안 지키자 부지런히 엘리야와 선지자들을 보내 주셨습니다만 역시 안되었습니다. 경고해도 안됩니다. 그러니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은 법대로 하셨습니다. 약속대로 이스라엘 땅에 멸망을 내리셨습니다. 이스라엘은 바벨론 제국에 망했습니다.
7. 최후의 방법 - 예수 그리스도
그러나 성경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사랑을 가지고 이제 법의 방법이 아닌 또 말의 방법이 아닌 색다른 새로운 방법을 작정하셨습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주님이 세상 모든 사람의 죄를 지고 대신 피흘려 십자가에 비참하게 죽으시는 것입니다. 날 대신하여 피를 흘려 죽으시는 모습을 보면, 그전에 법이 있어도 지키지 않고, 말로 해도 지키지 않던 자들이 마음이 감동되어서 이제는 하나님을 섬길 것으로 생각을 하신 것입니다.
8. 모세 -> 여호수야(예수)에게 바톤을 넘김
구약 율법의 대표자 모세는 자기 백성들을 천국으로 비유되는 가나안까지 인도하지 못하고 중도에 죽었습니다. 그 대신 모세의 바톤을 이어 여호수아가 백성을 가나안으로 인도했습니다. 여호수아는 헬라어로 바로 예수입니다. 모세의 바톤이 여호수아 (예수님) 에게 넘겨 가서 가나안 땅, 천국으로 백성들을 인도한 것입니다.
8. 엘리야 -> 엘리사(예수)에게 바톤을 넘김
또 구약 예언자의 대표인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아세라 선지자, 바알 선지자와 맞 대결까지 벌였던 능력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세벨이 죽인다는 협박 앞에서 엘리야는 힘없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로뎀 나무 아래 누워서 하나님께 말을 합니다. "나를 죽여주시옵소서" 완전히 기권을 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호렙산으로 엘리야를 부르신 후에 누구한테 바톤을 넘기라고 하셨습니까? 엘리사에게 기름 부어서 엘리사에게 하는 일의 바톤을 넘기라고 했습니다.
엘리사는 곧 신약 시대 예수의 예표입니다. 왜 그런고 하니 구약에서 제일 많은 기적을 행한 선지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기적도 예수님만이 신약에서 하실 수 있는 그러한 기적을 행했습니다. 그래서 신학자들은 엘리사를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라고 합니다.
수넴 여인의 죽은 아들을 살려내었습니다. 예수님도 죽은 나사로 살려내셨습니다. 엘리사는 보리떡 20개와 채소 한 자루로 추종자 100명을 먹였습니다. 예수님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을 먹이셨습니다. 엘리사는 불치의 병 문둥병자를 치료해 내었습니다. 구약에서 최초입니다. 예수님도 문둥병자들을 치료해 내셨습니다. 이런 예수님만의 기적을 행하신 분이 바로 엘리사입니다. 엘리야로부터 바톤을 이어받은 자입니다.
9. 세례요한(엘리야) -> 예수에게 바톤을 넘김
신약에도 세례 요한이 바로 마지막 예언자 엘리야입니다. 그런데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바톤을 예수께 넘긴다는 말입니다. 그리고는 그는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졌습니다. 이 세례요한도 바톤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넘긴 것입니다.
자! 모세도 바톤을 여호수아 - 예수에게 넘겼고, 구약 엘리야도 바톤을 엘리사 - 예수에게 넘겼고, 신약의 마지막 엘리야인 세례요한도 바톤을 예수에게 넘겼습니다. 율법으로도 안되고 타이르는 예언의 말로도 안되고 이제 예수의 방법 십자가와 부활의 방법으로만 되었다는 것입니다. 법으로도 안되고 말로도 안되고 오직 피로 된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면서 주님은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어머니가 자녀에서 지켜야 할 여러 가지 규책을 만들어 아들 방에다 붙였습니다. 이 명령의 법을 지켜야 참 내 아들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은 못 지켰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부지런히 아들을 데려다 놓고서 타이릅니다. 말로 권면합니다. 그래도 아들은 못합니다. 이번에는 어머니가 매를 들고 들어오셨습니다. 아들이 보는 앞에서 아들 대신 자신의 손을 때립니다. 하도 때려서 손에서 붉은 피가 나옵니다. 그전에 법으로 해도 안되고 말로 해도 안된 이 아들이 눈이 휘동그레 졌습니다. 이제야 아들은 비로소 마음에 감동을 받으면서 울면서 어머니의 말씀에 순종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정말 인간은 법으로 안됩니다. 요즘 세대를 한 번 보십시다. 아무리 법을 만들어놓아도 인간은 지키지 못합니다. 부정 축재 법이 있어도, 선거법이 있어도 안되는 것이 비일비재합니다. 이것이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구약에서도 율법으로는 구원받을 육체가 없고 율법으로는 자신의 죄를 깨달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말로 권고하고 홍보한다고 해도 못하는 것은 못합니다. 말로도 안됩니다. 언론에서, T. V에서, 라디오에서, 신문에서, 사설로, 논설로 권면하며 얼마나 백성들을 가르치고 말로 권면합니까? 그래도 안됩니다. 매일 보도되는 것을 보면 법을 어긴 사람들의 이야기만 나올 뿐입니다.
그러나 세 번째로 이렇게 완고한 인간이라 할지라도 마음에, 심령에 감동을 받으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또한 인간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에 잡하시기 전날 밤 포도주와 떡을 떼어 주시면서 "이것은 내 살이요 피라. 이것을 마실 때마다 나의 죽음을 기억하고 기념하라"고 하셨습니다. 가장 고통스러운 형벌을 내 대신 주님이 당하셨습니다. 적어도 인간이라면 이것을 보는 순간 법으로도 안되고 말로도 안되었으나, 우리 주님이 대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는 순간, 마음에 감동이 안 일어나겠습니까?
어느 심리학자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어린아이는 손끝에 피가 나오는 것을 보면 반드시 운다고 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합니다. 인간이라면 붉은 피를 보면 반드시 마음에 감동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진정한 인간이라면 나 대신 십자가에서 흘리신 주님의 피를 보면 마음에 감동이 일어나 이제는 예수 앞에 나아와 주님은 믿을것입니다.
만약에 이런 주님의 피를 보고서도, 이런 주님의 피를 내가 마시고서도 마음에 아무런 감동이 없으면 그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 이미 사단의 종, 짐승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또는 완전히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는 것을 기억에서 까맣게 잊어버린 주를 떠난 성도일지도 모릅니다.
법과 말로 안되는 우리 인간을 살리시기 위해서 피흘리는 방법으로 우리를 감동시키며 하나님을 섬기도록, 주님을 섬기도록 하신 이 놀라우신 하나님의 뜻을 이 본문을 통해서 확인하셨습니까?
오늘 성찬식에 거룩한 살과 피를 받으시면서 우리 마음속에 감동이 되는지, 안되는지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감동이 안되면 벌써 주님을 떠난 것입니다. 어린 아기도 피를 보면 운다고 했습니다. 마음속에 주님의 보혈의 깊은 의미가 느껴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