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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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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훈목사 설교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수14:6-12

미국 디트로이트에 있는 포드 자동차 회사의 한 모퉁이에 헨리 포드 부부의 사진이 걸려 있고, 그 옆에 "남편 포드는 믿음으로 꿈꾸는 자이고, 아내는 믿음으로 기도하는 사람이었다"이런 글귀가 쓰여 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자기의 꿈을 현실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한평생 추구해야 될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살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기도하면서 믿음으로 도전한 사람들이었음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성공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우리도 그렇게 살 수 있으며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400년이 넘도록 종살이 하다가 하나님의 특별한 기적으로 해방되어 광야를 거쳐 가데스바네아라는 곳까지 왔습니다.
이제 산을 넘고 강을 건너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눈앞에 활짝 펼쳐질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먼저 겁부터 먹었습니다.
이미 가나안 땅에는 수백 년 동안 뿌리를 내리고 사는 거대한 족속이 있었기 때문에 섣불리 들어갔다가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생겨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각 지파마다 한 사람씩 유능한 젊은이들을 뽑아 가나안 땅을 정탐하기 위해 열두 명을 먼저 들여보냈습니다.
그들은 몰래 다니면서 40일 동안 온 땅을 정탐하여 성이 얼마나 높고 큰지, 백성들이 얼마나 무장을 하고 있는지, 지형이 어떻게 생겼는지 다 조사해 가지고 왔습니다.

그런데 열두 명 중 열 명은 다음과 같이 보고했습니다.
"틀렸어. 그곳에 사는 아낙 자손들은 굉장한 거인들이야. 그들 앞에서 우리는 마치 메뚜기 같았어. 성곽들은 하늘을 찌를 듯이 높게 쌓여 있고 말이야. 그러니 어떻게 우리가 그 땅을 정복할 수 있겠어? 우리 힘으로는 안 돼" 그러자 그 말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간담이 녹아 내린 것입니다.

그러나 나머지 두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은 믿음으로 보고했습니다.
"아니야. 그들의 성곽은 굉장히 높고, 백성들은 크고 장대하지만,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다고 약속하신 땅이다. 우리가 올라가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싸우시고, 우리는 반드시 그 땅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두 사람은 믿음을 가지고 보고하고, 열 사람은 불신앙을 가지고 보고했습니다.

사실 불신앙이라는 것이 얼마나 하나님을 얼마나 경멸하는 것이며, 분노케 하는 행동인지 잘 아실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 광야 길을 걸어올 때 모두 하나님의 능력으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것만은 마치 자기 힘으로 할 것 같이 불신앙으로 보고했기 때문에 얼마나 하나님에 대한 도전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열 명을 징계하셔서 전부 그 자리에서 즉사시켜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광야로 들여보내 열 명의 보고를 듣고 하나님을 원망했던 20세 이상의 사람들이 광야에서 죽을 때까지 40년을 유리 방황하게 만들었지만 여호수아와 갈렙만은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와 갈렙만은 가나안 땅을 밟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리고 성을 정복한 후 차근차근 주변 성을 정복하면서 진격하기 쉬운 지형, 정복하기 쉬운 성읍들은 이제 거의 확보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직 손에 쥘 땅이 많이 남아 있는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랜 전쟁에 지치고 말았습니다.
"이제 그만 싸웠으면 좋겠다. 이 정도 차지했으면 우리도 살만한데 전쟁을 그만 했으면 좋겠다" 이처럼 사람들의 마음이 많이 풀어져 버렸습니다.

1.이런 시점에 갈렙이 여호수아 앞에 나왔습니다.
"내 나이 85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45년 동안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나에게는 힘이 있습니다.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여기에서 산지란 유대 나라 가나안 땅의 남반부에 있는 산과 언덕으로 구성된 산악지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곳은 굉장한 요새일 뿐 아니라 땅도 비옥했습니다.
그래서 가장 신장이 크고, 힘있는 족속인 아낙 자손들이 그 지역에 포진하고 있었으며, 헤브론과 같은 큰 성을 만들어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수년 동안 전투를 해왔지만 그곳은 아직 감히 도전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저 산지를 내게 주소서. 내가 올라가서 저 산지를 취하겠나이다. 저 땅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땅이니 내가 소유하겠습니다"라고 요구한 것입니다.
그러자 여호수아는 갈렙에게 그 땅을 허락했습니다.

고현의 성도 여러분!
우리는 갈렙으로부터 하나님이 주시는 음성을 듣게 됩니다.
그 당시 갈렙의 나이가 85세였습니다.
아무리 체력이 좋고, 싸움도 할 수 있고, 칼을 쓸 수 있다고 하나 역시 노인은 노인인 것입니다.
오늘 특별히 이 자리에 50대, 60대 이상 되시는 분들은 이 말씀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교훈하시는지 귀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50대를 넘어서면 대부분 무기력해지고, 인생의 목표를 상실한 채 하루하루를 살기 쉽습니다.
사실 일에서 손을 떼고 무엇을 해야 할지 막연한 채로 앞으로 20-30년을 더 살아야 한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갈렙과 같은 사람을 통해서 무언가를 배우고 도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맥아더 장군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단순이 오래 산다고 해서 늙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늙어가는 이유는 목적과 이상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당신은 희망을 갖는 것만큼 젊고, 절망하는 것만큼 늙는다"

매우 뼈가 있는 말입니다.
갈렙은 나이가 들었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목표를 상실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사람은 세월이 피부는 주름지게 할지는 모르지만, 그 정신은 늙도록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갈렙은 그 자신의 믿음대로 아낙자손이 차지하고 있던 헤브론 땅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2.예수 안에서 구원을 받은 사람은 성령님께서 내가 도전해야 될 산지가 어디에 있는지 보게 합니다.
빌1:6절 말씀을 보면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고 했습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서 착한 일을 하도록 인도하십니다.

여기 이 착한 일이란 산지요, 목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10분이든 30분이든 조용히 말씀을 묵상하면서 마음에 있는 생각을 간절히 아뢰면, 뭔가 내가 하고 싶은 착한 일이 눈앞에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이 주시는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막연히 내가 생각했다고 할지 모르지만, 우리는 나 혼자 존재하는 법이 없습니다.
우리는 성령과 함께 존재합니다.
내 안에 살아계신 주님께서 계십니다.
그 주님을 모시고 살면서 성령의 감동함을 받아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이것은 해보고 싶다"는 착한 일이 생각납니다.
이것이 우리의 산지요, 목표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꽉 붙들어야 합니다.

행13:22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신약 성경에서는 그 말을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자"라고 바꾸어 말씀하고 있는데 다시 말해서 예수님을 닮은 제자가 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은 창조 목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처음 창조하실 때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사람을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하자 그 목적에서 이탈해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셔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셨으며, 우리를 중생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본래적인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오늘도 성령과 말씀을 통해 우리를 계속 인도하고 계십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존재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는 성화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닮은 정말로 고귀하고 아름답고 거룩한 존재로 계속 다듬어 가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소원이요, 창조 목적입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3.우리는 하나님이 보시자마자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할 만한 다윗과 같은 사람에게서 질투를 느낄 줄 알아야 합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나도 좀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는데...." 하는 거룩한 질투, 이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언젠가 신문에서 본 내용입니다.
역사상 세계적으로 아주 위대한 일을 한 인물들을 전부 조사한 결과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고 합니다.
약 12만 명을 상대로 아주 광범위한 조사를 했는데, 역사적으로 어느 정도 공적을 남긴 위대한 인물들 대부분이 장자가 아닌 아우나 동생, 막내라는 것입니다.
참 희한한 결과입니다.
그런데 이 동생 되는 사람들이 특별히 성공하는 확률이 많은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부모들이 항상 형만 위해주므로 그 밑에서 치어 자기가 인정을 못 받는다는 자격지심을 갖고 자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지 남들이 알아주는 존재가 되겠다는 본질적인 질투 감정이 있는데 그 질투의 감정이 창조적인 자질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형보다 나아질 거야, 나는 형보다 성공할거야"라는 몸부림이 그로 하여금 더 많이 노력하고 도전하게 만들어서 결국 훌륭한 사람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동생 중에서도 형편없는 막내였습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뭔가 도전하는 바가 있습니다.
우리는 거룩한 질투를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목사를 보고 "하나님이 참 기뻐하시는 목사구나. 나는 왜 저렇게 못 되지?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어야 되는데..." 하고 질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좋은 장로님들, 좋은 권사님이나 집사님들을 보십시오.
그리고 사람들의 눈에 드러나진 않지만 은밀히 보시는 주님 앞에 신실하고, 주님이 항상 기뻐하겠다고 느껴질 만한 성도들이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을 볼 때 질투하십시오.
나도 저렇게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목표를 정하고 신앙생활을 하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십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나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어야지" 하는 이것처럼 거룩하고 아름다운 목표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것을 목표로 세웠으면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놓고 도전해야 합니다.

여러분! 각자가 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가장 불편하게 생각하실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나는 성경에 대해서 무식해서 탈이야. 1주일 동안 성경을 한 장도 제대로 안 읽어. 그저 설교 듣는 것이 전부야. 하나님께서 날 보실 때 이것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실 거야." 이처럼 마음에 어떠한 가책이 오면 이에 대해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찾으십시오.
이것이 도전입니다.
첫날부터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런 식으로 읽겠다고 각오하고 도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마음에 꼭 들고 싶은데, 자신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입니까?
기도입니까?
그렇다면 "내가 기도 좀 해야 되겠다. 결단하고 새벽 5시에 일어나서 교회로 달려오든지, 아니면 골방에 들어가 적어도 20분, 30분 엎드려 기도한다든지 뭔가 각오를 하고 도전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아직 물질에 애착이 있어 제대로 헌금하지 못합니까?
십일조도 안 합니까?
하나님께서 그것을 좋아하실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 그 동안 제게 많이 주셨는데, 금년의 목표는 제가 가진 것을 좀더 내 놓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에 쏙 드는 사람 좀 되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헌금을 어떻게 해야 되겠다. 자선사업을 어떻게 해야 되겠다. 선한 일에는 어떻게 써야 되겠다"는 나름대로 실천사항이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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