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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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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훈목사 설교
하나님이 쓰는 사람

행13:20-23
부흥강사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시골교회에 목사님이 새로 부임하여 이삿짐을 내리는데 놋으로 만든 오강단지 하나가 나오더랍니다.
여러분 오강 단지 아십니까?
옛날 방마다 놓여있던 소위 이동용 화장실입니다.
요즘에는 교회사택이 아파트처럼 집안에 수세식 화장실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무거운 놋으로 만든 오강단지가 필요할 일이 없지요.
마침 주물공장을 운영하시던 장로님이 교회에 계셨습니다.
그 장로님이 놋 오강단지를 들고가 풀무에 녹여 예쁜 밥그릇과 국그릇을 만들어 가지고 왔습니다.
그래서 목사님과 사모님은 그 교회에 계시는 동안 그 놋그릇에 밥과 국을 담아 잡수셨답니다.
부흥강사의 얘기는 오강단지 같은 우리가 성령안에서, 예수의 보혈안에서 녹아 밥그릇되고 국그릇 되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여러분 바뀔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오강단지로 남아 있어 가지고는 아파트 문화에 쓰임받지 못하는 천덕꾸러기가 됩니다.
시대에 따라 바뀔 줄 알아야 하고, 비전에 따라 바뀔 줄 알아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 성도들은 교회의 본질, 신앙인의 본질에 맞게끔 바뀔 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교회는 주님의 심장속에 있던 바로 그 교회를 찾아가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비전과 사명이 초대교회 회복에 있다면 내 성향도, 사명도, 비전도, 꿈도 거기에 맞게끔 바뀌어야 하나님이 쓰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하나님이 쓰는 사람"이란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쓰임 받는 행복입니다.
다윗을 연구하려면 구약성경의 사무엘 상하, 열왕기 상하, 역대기 상하 등 무려 6권의 책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 외에도 시편의 많은 부분이 다윗의 삶과 그 신앙을 조명해 줍니다.
그리고 신약성경을 시작하며 마태복음 1:1을 보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쓰임 받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할 일이 있다고 하는 것, 쓰임 받고 산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입니다.
루소는 말하기를 "이 세상에 사람은 두 번 태어난다. 한 번은 존재하기 위해 태어나고, 또 한 번은 일하기 위해 태어난다. 때문에 사람은 자기 사명을 발견하기까지는 사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릇이라고 다 그릇이 아닙니다.
쓰임 받고 사는 그릇이 있고, 쓰임 받지 못하는 그릇이 있습니다.
우리 가정에도 보면 큰그릇이라고 해서 쓰임받는 것이 아니고, 아침 저녁으로 들랑날랑 거리며 국 담고, 밥 담고, 반찬 담는 쓰임받는 그릇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의 문제점은 쓰임받는 그릇을 만들지 아니하고, 너도 나도 큰 그릇 만들려고 하기 때문에 사회가 이렇게 어지러운 것이고, 교회가 신령함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큰항아리 같은 것은 별로 쓸모가 없습니다.
일년에 한번씩 김치나 담글 때 옆집에서 빌려다 써도 그만입니다.
그러나 아침 저녁으로 들랑거리는 간장 종기는 쓰임을 받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유능한 사람인데도 버림당한 사람이 있고, 무능한 사람인데도 크게 쓰임 받은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버림받은 사람의 대표로 사울을 들고 있고, 쓰임 받은 사람의 대표로 다윗을 들고 있습니다.
22절을 보면
"사울을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윗을 쓰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2.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버리시고, 어떤 사람을 들어 쓰십니까?
하나님께서 다윗을 쓰신 첫 번째 이유는 대단히 역설적인 이야기가 되겠습니다만 다윗이 약자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삼상 16장에 보면
사무엘이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이새라는 사람의 집으로 갑니다.
이새는 일곱 아들과 함께 몸을 성결하게 하고 사무엘 앞에 섰습니다.
그러나 그 일곱 아들이 다 지나가도록 하나님의 응답은 "내가 택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새의 아들 8형제 중 막내였기에 아버지도 그에게 별 기대를 하고 있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왕이 될 면접시험에 다윗은 빠져 있습니다.

그때 사무엘이 "네 아들이 다 여기 있느냐?"라고 물었을 때 이새가 대답하기를 삼상16:11에 보면 "아직 말째가 남았는데 그가 양을 지키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여기 말째라는 말은, 단순히 형제 서열상 말째라는 말만은 아닙니다.
사람들 앞에 약자였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약자를 택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관점과 사람의 관점은 동일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기준과 사람의 기준은 같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사람의 뜻은 달랐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 앞에 쓰임 받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고 약한 자, 겸손한 자를 쓰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울 임금이 버림 받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사울은 자기 자신의 한계를 몰랐습니다.
왕이라고 제사장이 하는 제사까지 다 집례 할 수 있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리고 갈멜산에는 자신을 위하여 승전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그래서 교만한 사울 임금을 하나님은 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사울이 큰 자로 남아 있을 때 친히 나타나 대적하셨고, 작아 질 때 크게 들어 쓰셨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쓰십니다.
작은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스스로 말째라고 여기는 사람을 첫째로 들어 쓰십니다.

"말째가 남았는데 그가 양을 지키나이다"이 말씀은 "말째가 하나 있기는 한데 만나 보나마나입니다. 신통한 구석이 없습니다. 그 아이는 아닙니다"이런 뜻입니다.

보십시오.
그의 부모는 그를 부정했습니다.
그의 형제들도 그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자신도 자신을 부정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인정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이 바로 그다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고 하셨습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가 하나님께 쓰임 받는 비결이 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No 하고, 당신 자신마저도 No 할찌라도, 하나님께서 Yes 하시면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사역자로, 쓰임 받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3.하나님은 자기를 지킬 줄 아는 사람을 쓰십니다.
두 번째, 우리를 주목시키는 단어는 "그가 양을 지키나이다"라는 말씀입니다.
이새의 아들 가운데 왕이 나온다면 다윗도 관심을 가지고 쫓아 왔을 법도 한데 다윗은 양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묵묵히 자기가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하고 있었단 말입니다.

하나님의 일이란 높은 것도 없고, 낮은 것도 없습니다.
귀한 것도 없고, 천한 것도 없습니다.
자신이 맡은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이 축복하십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쓰는 사람은 언제나 자기 일에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요셉은 옥중에서 모범적인 죄수로 일을 하고 있을 때 부름을 받고 쓰임을 받았습니다.
사무엘은 깊은 밤 성전에서 자신이 맡은 일을 감당하고 있을 때 하나님이 그를 불렀습니다.
엘리사는 밭을 갈고 있을 때, 베드로는 바다에서 그물을 던지고 있을 때 하나님이 그를 불러 쓰셨습니다.

특별히 "양을 치고 있었다"고 하는 말은 영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장인 이드로의 양을 치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베들레헴 목자들은 밖에서 자기 양떼를 치다가 천사의 음성을 듣고 아기 예수께 경배했습니다.
다윗이 양을 치다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것은 장차 하나님의 양떼인 이스라엘을 통치하게 될 것이라는 암시였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자신이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쓰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식한 사람도 쓰십니다.
무능한 사람도 쓰십니다.
죄가 많은 사람도 쓰십니다.
그러나 책임감이 없는 사람, 열정이 없는 세상, 성실하지 못한 사람을 쓰는 법이 없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심판의 기준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네게 맡겨진 작은 일에 충성했느냐"하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다윗이 하나님으로부터 쓰임 받은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가 양을 지키나이다" 다시 말해서 형님들이 다 떠나간 그 자리에서 다윗은 혼자 양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4.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삼상16:7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다윗을 선택하신 가장 분명하고 확실한 이유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새의 일곱 아들을 다 거절하신 하나님께서 다윗의 중심을 보셨습니다.
삼상17장에 보면
하나님을 모독하는 블레셋 장군 골리앗 앞에 모든 장수가 주눅이 들어 도망갈 궁리만 하고 있던 차에 소년 다윗이 나타나 사울 임금에게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 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나 정도의 용맹이면 해 볼만 합니다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실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사람의 눈에는 하나님이 보입니다.
일꾼들의 눈에는 일이 보입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교회가 보이게끔 되어 있는 것입니다.

적장 골리앗 앞에 선 다윗의 말을 들어보십시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성도 여러분!
다윗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있었습니다.
다윗은 철저한 하나님 중심주의자였습니다.
그는 하나님만 두려워했고, 그는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능력만 믿었습니다. 그가 무서워한 것은 블레셋의 거인이 아닙니다.
적군의 힘이 아닙니다.
사울 임금의 권력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전술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이름만 의지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높이는 다윗의 마음을 보셨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그 마음을 보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중심을 보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버리는 사람이 되느냐, 아니면 하나님이 크게 쓰는 사람이 되느냐를 결정하는 갈림길이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5.하나님은 성령의 사람을 쓰십니다.
삼상16:13에 보면 다윗이 사무엘 선지자로부터 기름부음을 받고 난 후 "이 날부터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성령이 다윗과 함께 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영적인 사람을 쓰십니다.
삼상18:10에 보면 하나님의 성령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악신이 사울에게 힘있게 내리매 그가 집 가운데서 야료하는 자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여기 "야료"란 이유 없이 생트집을 잡고 사람을 괴롭히는 것을 말합니다.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사람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것입니다.
이렇게 귀신에게 붙들리면 귀신의 종이 되고, 성령에 감동되면 성령의 사람이 됩니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던 다윗은 하나님께 눈물로 간구하는 기도 가운데, 시51:11절을 보면 "나를 주 앞에서 쫓아 내지 마시고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은 궁궐에서 쫓겨 나는 것보다 주 앞에서 쫓겨나는 것을 두려워고, 다윗은 왕관을 거두어 가는 것 보다 성령을 거두어 가는 것을 두려워했고, 재물과 권세를 빼앗기는 것보다 주의 은혜를 빼앗기는 것이 더 두려운 줄 알고 살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하나님으로 충만했던 다윗은 하나님을 몹시도 사랑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다윗은 하나님을 기뻐하고 찬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시편에 실린 다윗의 시들을 보십시오.
하나님을 열정을 다해 사랑하며, 그는 시로써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에 들여올 때에는 너무 좋아서 그 행렬을 따르며 부끄러움도 잊은 채 춤을 추었습니다.
이렇듯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뻐하는 신앙적 감동과 시적 감성이 풍부한 지극히 예술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일생을 살아가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섬김을 통해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무장하고, 맡겨진 일에 열정을 가지고 충성하고,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 그 분의 능력을 의지하고, 성령의 임재와 권능 그리고 감동에 깨어 있어 끝까지 인내하는 고현의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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