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을 가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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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을 가능으로
요6:1-13
중세사람들은 포르투칼이 지구의 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포르투칼의 수도가 되어 있습니다마는 한때 스페인령에 속해 있던 리스본이라는 항구도시가 있었습니다.
그 항구도시의 해안이 끝나는 곳에 큰 바위가 하나 있었는데 이 바위에는 "여기가 끝이다. 이 너머엔 아무 것도 없다"라는 말이 씌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1492년 이 항구에서 작은 배에 오르면서 함께 배에 오른 사람들에게 "이 글은 사실이 아니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저 너머엔 위대한 희망의 세계가 있다"라고 외친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탐험가 <콜롬부스>였습니다.
그는 마침내 위대한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합니다.
우리 신앙생활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여정에서 절망적인 상황을 만나면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그러나 절망과 좌절을 거부하고 희망을 붙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더 위대하고 아름다운 희망의 세계를 보고 가능의 세계를 봅니다.
이런 사람이 신앙의 사람이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바로 이런 사람이 빈들에서 기적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 곁에 많은 사람들이 한편 걱정하고 한편 절망하고 있습니다.
정치도 사회도 불안하고 경제도 어렵고 미래도 불투명하다고 합니다.
모두 빈들에 서 있는 사람들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이때에 희망을 선포하고, 모든 사람들이 죽게 생겼다고 말할 때 오히려 기적을 꿈꿉니다.
오늘 본문으로 설교하기 위해 몇 권의 주석서와 강해서를 펼치는데 그 첫 구절에 "이 본문은 주일학교부터 교회에 다닌 사람은 수없이 들어왔던 내용이다. 그러므로 오병이어의 본문은 설교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라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설교학자들이 설교하지 말라고 하는 본문을 택해서 「불가능을 가능으로」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고자 합니다.
학자들의 주장대로라면 오늘 설교에서 은혜를 받는 사람들이 있으면 그 사람은 오늘 아침 기적을 맛보는 사람이 될 줄로 믿습니다.
1.빈들의 기적을 방해하는 요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 아는 내용을 가지고 설교해 봤자 뻔하지 않느냐 하는 이 부정적인 안목도 "빈들의 기적"을 방해하는 요소가 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배고파 허기진 수천 수만의 군중을 보시고 주님께서 빌립에게 "이 사람들을 먹일 수 있는 떡을 어디서 구할 수 없겠느냐?"하고 말씀하셨을 때 빌립은 "이 사람들의 시장기만 면하게 하려해도 이백 데나리온 즉 기백만원은 더 들 겁니다"라고 재빠르게 계산을 해서 대답을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그의 계산의 문제점이 무엇입니까?
그는 군중을 보았고, 어려움만 바라보았고, 문제만 보았지, 주님은 보지 못했습니다.
이때 빌립은 "주여, 주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주님은 모든 것을 다 하실 수 있습니다. 주님은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분이십니다. 주님께서는 죽은 자를 살리셨나이다. 주님만이 능히 이 군중들을 먹일 수 있음을 믿나이다."라고 말할 수 있었어야 했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문제에 부딪칠 때마다 우리의 부족한 자원만 바라보고, 어려운 처지만 보고, 우리가 필요할 때마다 채워주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느 화가가 무서운 풍랑을 만난 배 한 척을 그렸습니다.
풍랑은 금방이라도 배와 선객들을 삼킬 듯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배에 탄 사람들이 모두 겁에 질려서 두려워 떨기는 커녕 모두 여유 있고, 즐거운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키를 잡고 항해하는 선장이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
고통 중에 계신 여러분! 왜 지금 곧 예수를 바라보지 않습니까?
그분은 지금 당신을 도와주시기를 열망하십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인생의 핸들을 붙들고 계신 예수님을 보십시오.
지금까지 문제를 바라보던 그 눈으로 주님을 바라보십시요.
기독교 신앙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무한한 능력과 소망을 바라보는 삶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을 가졌다 하면서도 부정적인 눈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아무런 신앙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철저하게 예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그 믿음 때문에 빈들에서도 기적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2.빈들에서 기적을 낳는 요소들입니다.
1)빈들의 기적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그리고 그것을 바친 어린 소년의 믿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여기서 보리떡은 과거 우리들이 먹었던 개떡과 같은 것으로서 가난한 집에서 아이들에게 간식으로도 주고 나귀에게도 먹인 음식이었습니다.
그리고 여기 물고기라고 번역된 "옵사리온"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도 성경 법에 따라 작은 고기는 다시 물 속에 넣어 살려줍니다.
그런데 가져오기는 너무 작고, 그렇다고 다시 물 속에 넣을 필요는 없는 어중간한 크기의 고기를 어부들은 바닥에 던져둡니다.
그러면 고아나 과부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은 이것들을 바닷가에 나가 주워다가 소금에 절여 자기들의 양식으로 삼았는데 이처럼 소금에 절인 자반 고등어 같은 물고기가 옵사리온 입니다.
지금 예수님 앞에 개떡 다섯 개와 절인 물고기 두 마리가 바쳐진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한 끼 도시락 식사입니다.
그런데 이 보잘 것 없는 음식에서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사실은 5천배가 아니라 2만배쯤은 되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남자 장정만 5천명이었으니 여자들과 아이들을 합하면 2만명은 넉넉히 되었을 것이라고 짐작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기적은 어린 소년의 작은 헌신과 희생을 통하여 이루어졌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기적의 씨앗을 요구하십니다.
빈들의 기적은 하늘에서 그냥 떨어진 것이 아니라 어린 소년이 예수님께 드린 이 개떡과 초라한 물고기를 통하여 이루어졌습니다.
참으로 보잘 것 없는 것이 기적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이 작은 헌신이 5천배의 이적을 받을 수 있는 그릇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언제나 기적은 믿음이라고 하는 그릇 위에 담겨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빈들의 기적을 위한 필수적 요소입니다.
이 시간 우리에게도 빈들의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씨앗이 있습니다.
개떡이나 물고기와 같이 아주 쓸모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각자의 도시락이 있습니다.
사실 이 도시락 하나가 5천명의 군중을 위해 무슨 소용이 되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선 참으로 소중한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 무엇이든 주의 손에 바쳐질 때 거기서 5천배의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바치기를 꺼려함으로 말미암아 허실되고 마는 재능과 은사와 달란트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노래하는 재능, 가르치는 재능, 봉사하는 재능, 전도하는 은사가 있습니다. 섬기고 접대하는 은사, 긍휼이 여기는 은사, 치유의 은사, 지혜와 지식의 은사, 행정의 은사들이 있습니다.
이 은사들은 내가 숨겨두고 움켜쥐고 있으면 소멸되고 맙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 나라 위해 바치면 기적의 씨앗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건강, 물질, 지식, 시간, 등 무엇인가를 기쁜 마음으로 바치기만 하면 주의 손에서 엄청난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어린 소년은 어머니가 싸준 도시락을 초라하다고 주춤거리지 않았고, 아깝다고 인색하지도 않았고, 그가 가진 전부를 내어놓았습니다.
우리가 나 자신을 보기에는 너무 작아 보일 때가 있습니다.
사실 우리 자신이 너무 부족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손에 붙잡힐 때 결코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소년 다윗이 하나님의 오른 손에 붙들릴 때 골리앗 장수를 무찌를 수 있었습니다.
기드온의 군사는 삼백 명에 지나지 않았으나 수십만의 미디안 군사를 격퇴시킬 수가 있었습니다.
삼손의 손에 들려진 나귀턱뼈에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할 때 수 천명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 손에 있을 때는 비록 작은 것이나 예수님의 손에서는 큰 것입니다.
사람들이 생각할 때는 작은 것이지만 하나님의 손에 들려지면 큰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치는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에 들려진 것은 대단히 가치 있고 귀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소년의 도시락 하나 + 예수님 = 5천명의 식사, 나 + 하나님 = 문제해결의 기적입니다.
이 시간 당신의 필요는 굉장한데 당신의 자원은 보잘 것이 없습니까?
염려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손에는 항상 풍부한 자원이 있습니다.
그분을 바라보십시오. 그분 편에 서십시오. 그분께 당신이 가진 기적의 씨앗을 바치십시오. 여러분의 눈을 하나님께로 돌리십시요.
미국의 남북전쟁 때의 일입니다.
곳곳에서 전투는 벌어지지요. 양식은 부족하지요. 전쟁은 길어지지요. 그때 부하 한 사람이 링컨에게 "각하,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편에 계시면 얼마나 좋을까요?"했습니다.
이때 링컨이 대답하기를 "나의 관심은 지금 하나님이 우리편인가, 아닌가에 있지 않다. 다만 지금 내가 하나님 편에 서 있는가를 묻고 있다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바라보면 언제나 하나님은 나를 보고 계십니다.
내가 그분께 손을 내밀면 언제나 그분은 내 손을 붙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개떡같고 물고기 같은 존재들이지만 교회의 비전에 자신의 비전을 담고 헌신하면 반드시 하나님이 우리를 받으셔서 한국교회를 살리고 이 민족과 세계 열방을 구원하는 바로 그런 교회를 이루실 줄로 믿습니다.
2)빈들의 기적은 감사로 이루어진 기적이었습니다.
11절에 보면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셨다"고 했는데 이 말은 자연스럽고도 태연한 식사 감사기도를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는 개떡 다섯 개를 놓고도 마치 5천명의 식사가 태산처럼 쌓여있는 것처럼 감사기도를 했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5천명을 앞에 놓고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어떻게 감사기도가 나오겠습니까?
그러나 주님께서는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지금 당장 전세금 수천만원이 필요한데 단돈 십만원을 손에 들고 감사하라고 한다면 여러분 감사가 나오겠습니까?
그러나 감사하십시오.
그럴 때 5천배의 기적은 일어날 것입니다.
이 감사는 선불감사입니다.
이는 베풀어 주셨던 축복만을 감사하거나 도움의 통장을 손에 쥐고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베풀어주실 축복을 마음속에 그리면서 믿음으로 드리는 감사입니다.
다시 말해서 믿음으로 미래의 것을 미리 잡아당겨 감사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지금 손에 들고 계신 것은 보리떡 다섯 개에 불과하지만 얼마 후에 5천명이 배부르게 먹고 열두 광주리가 남을 것을 벌써 바라보시고 계셨던 것입니다.
엘리야는 손바닥만한 구름에서 소낙비를 보았습니다.
저는 우리교회의 목장의 싹에서, 돋아나는 움에서 한국교회와 열방을 덮을 거대한 숲을 봅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 모든 사람이 리더로 자라가는 교회
․ 평범한 사람이 비범한 사역자로 쓰임받는 교회
․ 평신도가 목회의 중심에 서는 교회
․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이 언제나 충만한 교회
․ 거룩한 추수가 날마다 더 풍성해지는 교회
이런 자랑스런 고현교회를 만들어 가기 위하여 서둘지도 미루지도 않고 우리는 지금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고 있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참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교회가 부흥되고 개척이 활발하기는커녕 개척된 교회들이 문을 닫고 한국교회는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영적 분위기 속에서 지금 고현교회는 빈들에 세워져 있고, 여러분은 모두 기적의 현장에 서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겐 기적의 능력이 있습니다.
믿음의 은사가 주어졌습니다.
환경이 어렵다고 결코 포기하거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기적을 꿈꾸십시오.
요14:12절을 보면 주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영광스런 사역자로 쓰임 받는 꿈을 꾸십시오.
여러분의 기업과 가정이 복을 받고 세계 만방에 뛰어나가는 꿈을 꾸십시요. 내 자녀들이 세상을 정복하는 꿈을 꾸십시요.
지금 상황이 빈들이라고 모든 것이 끝장난 것처럼 문제를 보고 서 있지 마십시오.
빈들에서 기적을 일으키시는 주님을 보십시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십시오.
그리하여 지금까지 꿈도 꾸지 못했던 이 빈들의 기적의 주인공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