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추감사절)하나님 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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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기 목사 [성경본문] 살전 05:16~18
일본에서 국제회의에 종교인들이 모여서 세계 평화를 논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기독교 지도자가 불교의 지도자에게 묻기를 불교의 생활철학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무엇이라 하시겠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스님이 대답하기를 “무시 무종(無始 無終)입니다.” 처음도 없고 나중도 없다는 말씀인데 인생은 인과응보의 순환에 의하여 계속되는 현상이므로 처음도 없고 나중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나 된 것은 전생에 혹은 옛날 어떤 때에 일어난 일이 원인이 되어 현재의 나라는 결과로 나타난 것이며 그리고 오늘 내 생애에 일어나는 일, 내가 일으키는 일은 미래의 일어날 일의 원인이 되어서 지금 내가 알지 못할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인생은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과 같이 바람 부는데 따라 뭉게뭉게 모이기도 하고 또한 흩어지기도 하는 존재로서 결국은 무시 무종의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인생의 원리를 아는 사람은 세상에서 기쁜 일을 당하여도 기뻐할 이유가 없고 슬픈 일을 당하여도 슬퍼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러한 설명을 한 후에 기독교 지도자에게 기독교인의 생활철학은 무엇입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어느 목사님이 대답하기를 “은총 무한입니다” 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가 한량이 없어서 감사로 충만하다는 뜻입니다.
나에게 목숨을 주어서 살게 하시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 03:17)는 말씀처럼 범사에 감사하는 자가 신실한 기독교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성도들의 생활도 감사의 생활이 풍성히 넘치도록 노력하면서 범사의 생활을 개척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1. 왜 감사의 생활을 못 합니까?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이 감사의 생활을 원하시는데 비해 우리는 우리의 생활에서 감사의 생활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이유를 한 번 생각해 보셨습니까?
사실 인생이 존귀하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고 또한 잘못 된 일에 대하여는 깨달음과 회개를 할 수 있는 이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감사의 생활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구원의 은혜를 등한히 여기기 때문입니다.
히 02:01 그러므로 모든 들은 것을 우리가 더욱 간절히 삼갈지니 혹 흘러 떠내려갈까 염려하노라.
03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
깨달음이 있는 인생,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인생이라면 이는 대단히 존귀합니다. 왜냐하면 나의 나 된 은혜 즉 자신의 실체를 제대로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보석도 그 진가를 모르면 의미가 없듯이 하나님께서 주신 그 큰 구원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등한히 여긴다면 이 또한 인생의 가치를 상실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난 이후부터 나타나는 감사야말로 성도의 참 믿음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아직도 내가 늘 불평하기를 좋아하며 내가 왜 이런 불행 속에서 살아야 하나, 감히 나같은 사람이 어찌하여 이런 억울한 형편에 있어야 하나, 세상이 왜 이렇게 불공평한가 하면서 그 불평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면 이는 나 자신이 아직도 은혜의 자리에 이르지 못하여서 나타나는 결과라고 생각을 하셔야 합니다.
우리가 인생의 삶을 살면서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은 내가 잘나고 위대해서 그 많은 질병과 사고와 어려움을 당치 않고 안전히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나와함께 하신 하나님께서 지켜주셨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러한 사실을 온전히 깨달을 때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로마서에서 우리게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롬 0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5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김해삼일교회 성도 여러분!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생활이 자신과 교회와 이웃에게 얼마나 유익이 되는지를 알고계십니까?
하나님께서는 계속 감사의 생활을 하는 사람에게는 은혜와 축복을 더 많이 주시고 그러한 사람을 통하여서 교회에는 감사가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감사는 축복으로 자신에게 되돌아옵니다. 벽에 공을 던지면 돌아오듯이, 산에서 소리를 외치면 그 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돌아오듯이 하나님께 진정으로 감사를 드리는 사람에게는 그 감사가 은혜와 축복으로 변하여 되돌아옵니다.
이웃에 대한 감사는 친절과 사랑으로 돌아오며 하나님께 대한 감사는 은혜와 축복으로 돌아오되 구원의 놀라운 은혜를 생생하게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감사하면 마음속에 있는 모든 짜증과 원망과 불평불만이 사라지고, 감사하면 환난 날에 건짐을 받고, 소산물에 복을 받고,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받고 자손들이 복을 받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여기까지 도와주신 에벤에셀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살아왔으며 지금도 나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의 은총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구원의 은혜를 등한히 여기지 말고 정성을 기울여 믿음의 생활을 하십시오. 그러면 앞으로의 우리의 생활에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께서 우리의 갈 길을 인도하시고 우리의 필요를 예비해 놓으셔서 은혜로 승리하며 살아가게 하실 것입니다.
2. 감사의 생활을 하려면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매사에 신앙의 눈으로 감사의 조건을 찾아야 합니다. 18절에 보면 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였으며 그 감사야말로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였습니다.
한 번 되돌아보십시오. 감사를 드리지 아니할 이유가 있습니까? 바울은 주님의 복음 때문에 그 많은 핍박과 고통을 당하는 일이 이루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고후 11:23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26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만한 환경이면 낙심을 해도 수없이 할 수 있었을 것이고 목숨을 끊어도 역시 수없이 끊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바울은 이러한 환경에서 그 많은 핍박과 고난으로 인한 불평이나 짜증스러움을 함부로 내 밭았습니까? 전혀 그렇지 않았지요. 어떠한 상황에 처할지라도 그는 감사의 생활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믿음으로 나갔던 것입니다.
고전 01:04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고후 09:15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엡 05: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어떤 분이 이러한 말을 하였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에 하나님이 거하시고 불평하는 마음에 마귀가 거하며 또 축복은 감사의 문으로 들어 왔다가 불평의 문으로 나가 버린다.
감사하면 감사할 조건이 오고 불평하면 불평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 또 오게 될 것이다 라고 말입니다.
우리 사람은 동일한 환경 조건에서도 생각에 따라 감사할 수도 있고 불평할 수도 있습니다. 지내놓고 보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그늘 밑에 살면서 감사치 않고 산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감사를 하면서 기쁨으로 산 사람도 있습니다.
혹 일년이 지나도록 감사의 생활을 한 번도 표현하지 못하는 분들이 계십니까? 그렇게도 감사할 일이 메말랐다는 말입니까?
감사의 일들을 찾아보면 매사의 일들이 감사할 수밖에 없는 기쁨의 터전이 될 것입니다. 김해삼일교회 성도 여러분! 얼마든지 감사할 조건들이 있지 않습니까? 은혜의 불감증에서 헤어 나오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감사의 마음들을 나타내고 살아갑시다.
감사의 생활을 잃어버리면 마음에는 항상 불평이 일어나고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감정만 생기고 하나님에 대하여는 원망만이 따릅니다.
물론 평소의 생활은 짜증으로 찌들뿐입니다. 행여나 이 시간 여러분의 마음속에 감사보다 불평이 더 있습니까? 은혜의 자리에서 이탈되어진 결과라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남의 탓으로 돌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늘 목사님께서 내 마음을 왜 부담스럽게 하는가 하는 마음도 품지 마세요. 오직 감사의 생활을 여러분의 심령에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무엇으로 인해 감사의 생활을 할 수 있습니까?
옛날 중국인들은 요. 순 임금의 백성 됨을 자랑하고 영국인들은 대 주인 됨을 자랑하며 스위스인들은 자유인임을 자랑하였다고 합니다.
그리스의 철학자 탈레스는 희랍인들의 3대 감사에 대해 말하기를 ①금수로 지음 받지 않고 사람으로 태어난 것과 ②여자가 아닌 남자로 태어난 것 ③그리고 야만인이 아닌 희랍인이 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감사의 생활을 하려면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구원받은 천국 백성의 무리 속에 속해 있음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구원의 은혜를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예수님을 통한 구원의 은총을 아무 조건 없이 값없이 주셨습니다. 이러한 확신 속에 거할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의 주인이 되시고 내 생명의 주인이 되심을 깨달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영국 트렌치 감독은 어떤 사람은 자기의 가는 평탄한 길에 조그마한 구렁텅이만 있어도 하나님을 원망하고 사람을 원망하고 어떤 이는 자기의 가는 길이 험하고 캄캄할 때에 조그마한 빛만 비추어 주어도 하나님 주시는 자비로운 빛이라 하여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또 어떤 사람은 화려한 궁전에 살면서도 삶이란 왜 이렇게 괴로우며 기쁜 일은 하나도 없느냐고 얼굴을 찡그려 불평도 하지만 작은 오막살이에 살면서도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한없다고 그 사랑을 진심으로 감사하는 사람이 있다 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그가 기록한 시편 중에서 자기의 영혼을 깨우치며 하는 말이 시 103:02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람은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은혜를 많이 입었으면서도 그 순간만 지나고 나면 언제 은혜를 입었느냐는 듯이 은혜를 쉽게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계속하여 하나님께 고백하기를 시 116:12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13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14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다윗은, 대상 29:13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14 나와 나의 백성이 무엇이관대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김해삼일교회 성도 여러분! 열 사람의 고침 받은 문둥병자 중 사마리아인 한 사람의 감사를 기억하고 계시겠지요(눅 17:11~19). 아홉 명은 가장 은혜를 많이 입은 유대인임에도 감사에서 떠났고 반대로 가장 적게 은혜를 받은 사마리아인 한 사람이 오히려 감사하러 왔을 때 주님은 무엇이라고 말씀 하셨습니까?
눅 17: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18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우리가 아는 대로 열 명의 나병 환자 중 이방인 한 사람이 고침을 받고 주님께 사례할 때에 어떤 은혜와 축복이 임했습니까?
그것은 아홉 사람이 전혀 모르는 영혼의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것이 감사한 자의 결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만물을 그저 주셨거니와 특별히 예수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은총을 아무 조건 없이 그저 값없이 주셨습니다.
롬 0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벧전 01: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말씀을 맺습니다.
요한 웨슬레는 감사하는 마음은 그리스도인의 성숙한 표시라고 하였습니다. 예물을 드리되 우리의 깊은 감사의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형식적인 예물은 하나님께서 싫어하십니다.
이 시간 우리의 몸과 마음을 원하시고 계십니다 나에게 가진 것이 정말 없습니까? 몸 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찬송 141장) 라는 고백을 진정으로 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감사를 드리는 사람은,
①지나간 시절을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지냈다고 고백하고 ②현재도 하나님의 은혜로 지낸다고 고백하면서 ③미래도 하나님의 은혜로 지낼 수 있을 것이라고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하루는 메튜헨리 목사님이 저녁 늦게 집에 돌아오다가 그만 골목에서 강도를 만나 얻어맞고 옷도 찢기고 시계와 그 밖의 돈도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만신창이의 모습으로 집에 돌아온 목사님의 모습을 본 가족들이 너무나 분해하면서 경찰에 신고하려 하자 만류를 하고는 자기의 서재에 들어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를 하나님!
①내가 다치고 돈을 빼앗기긴 했지만 생명을 잃지 않았으니 감사합니다.
②지금까지 이 골목을 12년 간을 다녔으나 오늘 같은 날이 없어서 감사합니다. ③세상에는 남을 헤치려는 못된 강도가 많은데 나는 목사가 되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하면서 그 강도를 위하여 예수님을 믿도록 기도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