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족하며 삽시다.
본문
디모데전서6장 3-10절 2004년 04월 25일
세상에 돈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요? 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있다면 돈의 가치를 전혀 모르는 사람일 것입니다. 성직자인 저도 돈이 좋습니다. 돈에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들어보세요. 미국의 어느 한 할머니가 100만달러짜리 복권에 당첨됐습니다. 그 할머니에게 그 사실을 알리면 분명 기절할 것이 분명했습니다. 만에 하나 심장마비라도 일으키면 큰일 아닙니까. 복권회사는 고민하다가 마침내 해법을 찾아냈습니다. 그 할머니가 다니는 교회의 목사님에게 부탁하기로 했습니다. “할머니가 기절하지 않도록 이 사실을 조심스럽게 전해주십시오”목사님이 할머니에게 다가가서 조심스럽게 그 사실을 말해 주었습니다. “할머니께서 100만 달러 짜리 복권에 당첨되었습니다”“그럴 리가 있겠습니까”“사실입니다”“그게 사실이라면 그 돈 모두 목사님께 드리겠습니다” 그 할머니 말을 듣자마자 목사님이 기절해버렸다는 이야기입니다.
돈을 좋아하는 정도는 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돈을 의지하고 돈을 사랑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돈에 대한 잘못된 가치관이 문제인 것입니다. 제가 전에 돈에 대한 설교를 했습니다. 그 때 외쳤던 것이 '돈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돈이 목적이 된 사람은 돈이 우상이 된 사람이지만 돈이 수단에 불과한 사람은 돈을 다스리는 사람입니다. 아내를 사랑하는 것과 아내가 걸친 옷을 사랑하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남편을 사랑하는 것과 남편이 가진 재산을 사랑하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돈은 목적이 아닙니다. 수단입니다. 돈은 생활의 수단입니다. 신앙표현의 수단이며, 자신을 변화시키는 수단입니다. 복을 받는 수단이며, 사랑표현의 수단입니다. 돈은 상급의 수단이며, 하나님의 일을 하는 수단입니다. 돈이 없으면 두렵고, 불행하다고 생각하며 돈이 있으면 담대하고 행복해 진다면 돈이 어느 정도 목적이 된 것입니다.
바울은 선교여행을 하면서 돈이 필요한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늘 풍족했던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배고프고 궁핍함을 경험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돈을 사랑하고 돈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어떠한 형편에 있든지 자족하는 비결을 배웠던 사람입니다. 그가 자족했던 이유는 자신에게 능력을 주시는 주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빌4:13에서 고백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본문에서는 돈에 대한 태도가 신앙생활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1.이단 사상을 따르는 자들은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3-5절)
대부분의 이단의 무리들에게 공통적으로 따르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성적인 문제, 가정파괴 문제, 돈의 문제입니다. 그들은 기성교회를 공격하지만 깊이 파고 들어가 보면 자신들이 비판하는 문제에 자신들이 더 깊이 빠져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특히 돈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한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종교시설을 부를 축적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직을 돈버는 직업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특히 종말론을 깊이 있게 다루는 집단의 경우는 신도들에게 재산 헌납을 강요합니다. 세상의 종말이 멀지 않았고 주님이 재림하시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끝나고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는 것입니다. 그 가르침 자체는 문제가 없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종말에 대한 준비보다는 종말이라는 사상을 이용해서 신도들의 돈을 갈취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교주들은 신도들에게는 재산 헌납을 강요하면서 자신은 그 돈으로 초 호화판 생활을 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삼는다는 정통기독교 안에 있는 우리들에게도 경고의 말씀입니다. 목회를 하는 목사가 교회 부흥을 자신의 명예나 부와 연관시켜서 생각한다면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또 열심히 교회봉사를 하고 헌금하는 성도들의 중심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보다는 더 큰 축복을 위한 투자 정도로 생각한다면 이 또한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삼는 것입니다.
2.만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됩니다(6절).
지족하는 마음은 자족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즉 만족하는 신앙생활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현재 주어진 환경에 만족하며 하나님 앞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생활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비전을 갖지 말라는 말은 아닙니다.
만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됩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예배하고, 봉사하고, 말씀을 실천하는 경건한 생활이 이익이 목적은 아니지만 자신에게 이익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만족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익이 되는데 기왕이면 큰 이익이 된다면 더 좋은 것입니다.
신앙생활이 자신에게 약간의 이익이 되는 사람이 있고 큰 이익이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기왕이면 큰 이익이 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려면 주어진 환경에 만족하십시오. 하나님께서 가장 합당한 환경을 주셨다고 생각하시고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워치만니의 말대로 성령께서 가장 합당한 환경으로 안배하신 것을 믿고 신앙에 흔들림이 없기를 바랍니다.
광야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어진 광야의 환경에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광야 훈련을 통해서 그들 속에 있는 애굽적인 속성들을 제거하고 가나안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사람들로 준비시켜나가고 계셨지만 그들은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원망하고 불평하고 불신앙으로 반응하다가 최상의 훈련 장소에서 발전하지 못하고 죽어갔던 것입니다.
3.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이기 때문에 만족해야 합니다(7절).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날 때에도 모든 것을 놓고 빈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인생은 공수래공수거입니다. 욥의 표현을 빌리면 적신으로 왔다가 적신으로 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알몸으로 왔다가 알몸으로 가는 것입니다.
인생은 빈손으로 왔기 때문에 지금 있는 것이 다른 사람보다 적어도 감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처음 올 때보다 많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집에 한이 맺힌 사람들 같습니다. 내 집 장만하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집 있는 사람들은 더 큰 집을 소유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집 없는 서러움을 말하는데 지구상에 자기 집을 소유한 사람은 약3%밖에 안됩니다. 사실 집이 없다고 너무 서럽게 생각할 일도 아닙니다. 처음 올 때보다 많이 가지고 있으니 감사해야 합니다.
반대로 좀 가졌다고 자랑할 것도 없습니다. 빈손으로 왔던 것처럼 빈손으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많은 재산을 소유했다 하더라도 다 놓고 가게 됩니다. 옛날에는 권세 있는 사람이 죽으면 많은 보물과 함께 종들까지 매장을 시킨 일도 있었지만 다 쓸데없는 일입니다. 저승 가는데 노자 돈이나 하라고 관에 돈을 넣어 장례를 치러주는 일도 있지만 다 소용없는 일입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이니 현재 있는 것으로 감사하며 삽시다.
4.먹을 것과 입을 것만 있어도 족한 줄 알아야 합니다(8절).
바울은 신앙인들의 만족의 수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 즉 족한 줄로 알라고 말합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은 생명유지의 수단에 불과합니다. 내 생명을 유지할 수만 있으면 만족하라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먹을 것도 먹을 것 나름이고 입을 것도 입을 것 나름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또 사람이 어떻게 먹을 것과 입을 것만 가지고 만족 할 수 있느냐고 말할 것입니다. 요즘처럼 삶의 질을 따지는 시대에 먹을 것과 입을 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느냐고 말합니다. 기독교인들도 이런 말을 서슴없이 할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이 말하는 삶의 질이라는 것이 결코 행복의 조건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봐도 삶의 질이 높다는 나라일수록 자살율이 높고 행복지수가 낮다는 것은 이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2000년 로버트 우스터 교수가 발표한 자료를 소개하겠습니다. 전 세계 54개국을 대상으로 어느 나라 사람들이 가장 행복을 느끼는지 행복지수를 조사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제일 못 사는 나라, 제일 천재지변이 많은 나라, 방글라데시 사람들이 1위였습니다. 그들이 제일 행복하다고 고백했습니다. 예상을 완전히 뒤엎는 결과였습니다. 그러면 54개국 중에서 미국은 몇 번째인지 아십니까? 46번째입니다. 한국은 23번째입니다. 이 자료는 잘 사는 것과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입증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더 나은 삶의 질이 결코 행복을 좌우하는 것은 아니라 것입니다.
5.만족하지 못하고 욕망을 따라 살면 자신을 해롭게 하는 것입니다(9-10절).
'부하려 하는 자들은' 이라는 말은 '부가 목적인 사람들은' 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을 해롭게 하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입니다.
9절에서는 부 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에 떨어진다고 했는데 이 말은 마귀의 유혹에 넘어간다는 말입니다. 올무는 사단이 쳐놓은 덫에 걸린다는 말입니다.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진다는 말은 하나님과 원수 되는 여러 가지 일을 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또 침륜과 멸망에 빠진다고 했는데 침륜은 현세에서의 파멸을 의미하며, 멸망은 사후의 파멸을 뜻한다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또 유사한 의미를 갖는 단어를 중복시킴으로 물질의 지나친 추구가 멸망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강조한 말로 보기도 합니다. 여기서 '빠지게 하는'의 헬라어 '뷔디주신'은 '배가 바다깊이 침몰하는' 것을 묘사한 말입니다. 바다 깊이 침몰한 배가 다시 수면위로 올라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그 배는 세상 끝날 까지 바다 깊은 곳에 그대로 있게 되는 것입니다. 즉 소망이 전혀 없다는 뜻입니다.
10절에서는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미혹을 받아서 믿음에서 떠나게 된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믿음에서 떠난 다는 말은 참으로 무서운 말입니다. 우리의 구원이 믿음으로 되어진 것이며,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과 천국백성의 특권 그리고 영생에 대한 소망 등이 믿음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난다는 말은 영원한 멸망에 이른다는 무서운 말입니다. 결국 지옥형벌이 기다리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무서운 말입니다.
6.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됩니다(10절)
돈을 사랑하는 한 가지 사실로 인하여 1만 가지의 악을 행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한 그루의 나무에서 수많은 열매가 열리듯이 돈을 사랑하는 한 가지 사실이 만 가지의 악을 행하게 만드니 돈을 사랑하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일입니다.
결국 돈을 사랑하는 것은 자신을 죽이는 것입니다. 1만 가지 악을 행하면서 행복한 사람이 있겠습니까? 신앙이 있는 사람이 1만 가지 악을 행한다면 그 악으로 인한 근심 때문에 자신을 찌르고 자신을 괴롭게 만드는 것입니다. 결국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가룟유다는 특별한 축복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이고 그 시대의 많은 사람 가운데서도 주님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은 30에 예수님을 팔아버렸습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그가 받은 특별한 축복을 상실하게 만들었으며, 영원한 멸망으로 들어가게 만든 것입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은 오히려 돈을 잃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있는 환경을 주시는 것입니다. 건강도, 재능도, 돈도 하나님을 잘 섬기라고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보다 하나님을 잘 섬기라고 주신 것을 더 사랑한다면 하나님은 그것을 거둬가지 않겠습니까? 자기 자녀를 공부 잘하라고 학원에 보냈더니 공부는 안하고 학원친구들과 못된 짓을 한다면 학원을 보낼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학원을 중단 시켜서라도 못된 짓을 못하게 하는 것이 부모의 심정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을 섬기라고 돈을 주는데 하나님 보다 돈을 더 사랑한다면 어찌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꿈과 환상은 가져야 합니다.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이 소망에 미치지 못한다고 불평하면 안됩니다. 만족하며 행복하게 삽시다.
마경훈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