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여호와를 바랄찌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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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7장 1절-14절 2004년 02월 22일
세상 살다보면 별일 다 있습니다. 늘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지 않았던 문제를 만나고 괴로울 때도 있습니다. 다윗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반역을 일으키고 아버지가 궁에서 쫓겨났으니 얼마나 기가 막힌 상황입니까?
이런 상황 속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바라봤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믿음 없는 사람들이 볼 때는 거의 미친 수준이라고 말할 수 있으나 정말 대단한 믿음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과 상황에 대한 태도가 다릅니다. 30평 아파트에서 살다가 7평 짜리 판자 집으로 이사를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던 일이 안돼서 망했기 때문에 이사를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사하는 사람들은 참 괴로울 것입니다. 그런데 유독 한 집안 식구들은 이사하면서도 근심이나 괴로움이 없습니다. 좁은 집으로 이사가는데도 신이 났습니다. 그들은 7평 짜리 아파트로 이사하는 이유가 망해서가 아닙니다. 50평 아파트를 분양 받아서 들어가는데 잠시 7평 판자 집을 거치는 것뿐입니다. 같은 상황인 것 같으나 완전히 다른 상황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들과 없는 사람들이 처한 현실에 반응하는 것도 이런 식의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1-3절).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은 압살롬에게 기울어졌고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두렵지 않다고 말합니다. 2절에 보면 원수들이 다윗의 살을 먹으려고 다윗에게 왔으며 3절에서는 군대가 자신을 대적하여 진치지만 두렵지 않다고 말합니다. 두려움이 없는 인생입니다. 복된 인생입니다.
다윗은 완전히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원수에 대한 승리를 확신했습니다(2,11,13절). 다윗의 고백을 보면 마치 이미 승??것 같이 말하고 있으나 아직 상황은 승리한 상황이 아닙니다. 오히려 쫓기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승리를 확신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이미 일어난 것처럼 확신하게 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현실적으로는 다윗이 쫓기고 있지만 그의 믿음의 눈은 승리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사실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느냐가 중요합니다. 결국 우리가 바라보는 것이 우리의 생각을 변화시킬 것이며 우리의 생각은 믿음을 결정짓게 되고 우리의 믿음은 우리의 인생을 결정 짓게 되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질병이 찾아오면 병에 대한 반응이 사람마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그 병이 더 커져서 결국 자신이 병에 지배당하여 병든 모습으로 인생을 마감하는 것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하나님이 주신 믿음으로 병이 줄어들고 자신에게서 완전히 떠나게 되며 결국은 건강해 질 것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난에 대해서, 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반응이 있을 수 있습니다. 다윗은 곤란한 상황 속에서도 원수에게 참패할 것을 바라봤던 것이 아니라 승리할 것을 바라봤던 것입니다.
3절에서 그는 전쟁이 일어나서 자신을 치려 할지라도 안연히 거한다고 고백합니다. 안연히 거한다는 말은 흔들림이 없다는 말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흔들림이 없는 견고한 신앙입니다. 대단합니다. 신앙의 견고함은 환난을 당해보면 드러납니다. 평소에는 믿음에 대하여 큰 소리를 치지만 환난이 일어나면 흔들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평탄할 때는 잘 믿는 것 같으나 시험과 환난을 만나면 신앙이 뿌리째 흔들리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런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흔들림 없이 하나님만을 바라봅니다.
고난 중에 드러난 다윗의 신앙의 아름다움은 기도 응답에 대한 확신입니다(4, 7, 8절).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들 중에 기도는 열심히 하는데 현실이 기도한 내용과 반대로 가는 것 같으면 기도한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불신앙의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기도응답의 축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기도응답은 믿음으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자신이 기도한 내용과 현실이 반대로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도응답을 확신하고 기도응답에 대한 확신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현실보다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더 믿었던 것입니다. 그의 믿음은 시간이 지난 후 기도응답의 축복을 누리게 했습니다. 압살롬의 군대는 패배했고 압살롬은 망했으며 자신의 군대는 승리했고 자신은 승리한 왕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믿음의 기도의 결과입니다.
다윗의 신앙의 아름다운 모습은 하나님의 전과 관련되어 드러났습니다. 그는 그런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고 있습니다. 4절에 보면 자신의 평상시 하나님 앞에 청하였던 한 가지 기도제목을 말하고 있습니다.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 여자 신자들의 경우는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고 늘 하나님의 전을 찾으려고 합니다. 일 주일에 몇 번씩 교회를 찾아옵니다. 그런데 남자들은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히 부족합니다. 꼭 필요할 경우에 교회를 찾습니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도 주일 예배만 드리면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 생각을 고쳐야 합니다. 이것은 가치관의 문제입니다. 시편 기자는 주의 전에서 한 날이 세상에서 천 날보다 귀하다고 고백했습니다. 초대교회성도들은 날마다 성전에 모이고 집에서 모였습니다. 그들은 왜 그렇게 했을까요? 다른 이유가 아닙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 때문입니다. 신앙적인 가치가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했던 것입니다.
다윗의 신앙의 또 다른 장점 하나는 그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5,6,11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키시고 숨기시고 견고한 곳에 세우시며 높은 곳에 서게 하실 것이고 원수 앞에서 높아 질 것을 믿었습니다. 자신이 승리의 제사를 드릴 것을 믿었으며 원수가 있음에도 하나님께서 평탄한 길을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13절에서는 자신이 살게 될 것이며 결국 하나님의 은혜를 볼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믿음이 좋고 그 믿음으로 하나님의 능력과 축복을 누리게되는 사람들의 특징은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을 믿고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을 고백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시편을 보면서 이런 확신을 더 갖게 되었습니다. 시편을 소리내서 읽어보십시오. 시편기자들은 환난 중에도 계속해서 하나님이 자신들의 힘이요 방패라고 고백합니다. 그들은 그런 상황 속에서도 승리를 고백하며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 고백대로 하나님은 역사하셔서 고백의 능력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성도들이 변해야 할 많은 부분 중에 믿음과 믿음에 합당한 고백의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고 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생활을 하려면 하나님 앞에 합당한 믿음을 가져야 하며 그 믿음에 합당한 고백을 쉬지 않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다윗이 환난 중에도 어떤 믿음의 태도를 지녔는지를 살펴봤습니다. 이제 그가 그렇게 반응할 수 있었던 원인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반응한 이유는 오직 한 가지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 때문입니다. 결국 그가 가진 믿음이 그를 그런 사람으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럼 다윗이 하나님에 대하여 갖고 있던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첫째, 하나님은 나의 빛이라는 믿음입니다.
빛은 어둠을 밝혀줍니다. 빛이 임하면 어둠은 사라지게 됩니다.
다윗에게 하나님이 빛이라는 의미는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임한 어두움을 처리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어둠에서 빠져 나오고 싶어도 빛이 없으면 빠져 나올 수 없습니다. 다윗이 당한 상황은 어둠입니다. 어둠에 빛이 임하듯이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을 인정하면 빛이 임하는 것입니다. 빛이 임하면 어둠은 사라지듯이 하나님의 임재로 어둠은 물러가는 것입니다. 내가 처한 상황이 어둠이라면 빛 되시는 하나님을 인정하십시오. 빛 되신 하나님이 일하시도록 하나님을 인정하십시오. 어둠은 물러갈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윗의 빛이라는 의미는 하나님께서 그 상황 속에서 빠져 나올 길을 가르쳐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어두워서 길을 보지 못하고 현실에 더 깊이 빠져가고 있는데 빛이 임했습니다. 그러면 길이 보이는 것입니다. 인생의 길은 주님 안에서 보이는 것입니다. 사망에서 빠져 나오는 길도, 환난에서 빠져 나오는 길도 인생의 참 빛이 되시는 하나님 안에서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의 빛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빛나게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달이 빛나는 것은 태양 빛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태양이 빛을 잃어버리면 달도 빛을 잃게 됩니다. 사60:1에서 일어나 빛을 발하는 비결을 가르쳐줍니다. 빛이 임하는 것입니다. 빛을 받는 것입니다. 빛을 받으면 빛을 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라는 믿음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자신의 구원자로 믿었고 그 믿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압살롬의 군대에서 자신을 구원해 줄 분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다는 고백입니다. 자신의 구원자는 요압 장군도 아니고 애굽의 군대도 아닙니다. 블레셋의 친구들도 자신을 구원해 줄 자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이 자신의 구원자라고 믿었습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다윗의 구원자가 되셨습니다. 압살롬의 죽음을 보면 하나님이 다윗의 구원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머리카락이 자랑거리였던 압살롬이 나귀를 타고 달리는데 머리카락이 나뭇가지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나귀는 빠져나가고 압살롬은 나무에 매달렸습니다. 결국 나무에 매달려 있다가 창에 찔려서 죽고 그 전쟁은 끝이 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영혼의 구원자일 뿐만 아니라 전쟁 중에 구원자였으며 원수에게서 구원하신 구원자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영혼의 죽음으로부터 구원하시며 어려운 환경에서 구원하시며 질병으로부터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영혼의 구원이 영혼의 구원자가 되시는 주님에 대한 믿음과 고백으로 되어지는 것처럼 환경과 질병으로부터의 구원도 역시 주님의 구원에 대한 믿음과 고백으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은 내 생명의 능력이라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다윗의 생명의 능력이시니 다윗의 생명을 빼앗을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다윗의 생명을 빼앗으려면 하나님보다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하나님 보다 능력 있는 존재가 우주 가운데 하나도 없습니다.
이 고백은 다윗의 고백만이 아니라 예수를 구주로 믿는 모든 신자들의 고백입니다. 이 사실을 사도 바울은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롬8장에서 확신에 찬 고백을 합니다.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누가 우리를 송사하리요. 누가 우리를 정죄하리요.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아무 것도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생명의 능력이기 때문에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위험이나 칼이나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의 생명을 해할 수 없습니다.
다윗은 환난 속에서도 은혜를 알았고 믿었고 누렸습니다. 그렇게 누렸던 이유는 하나님을 자신의 빛이요 구원이요 생명으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가 우리들에게 권면하는 것이 있습니다. 14절에서 "너는 여호와를 바랄찌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바랄찌어아"라고 권면합니다.
하나님을 기대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만을 믿고 바라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의 결국은 다윗의 일생을 통해서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베들레헴의 목동이었습니다. 8형제 중에서 별 볼일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목동 일을 하면서도 하나님만을 바라봤습니다. 하나님은 무명의 목동이었던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리게 하셔서 이스라엘의 영웅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는 그 이후에도 하나님만을 바라봤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셨고, 왕 중의 왕으로 우뚝 서게 하셨습니다. 인생의 참된 성공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으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짧은 인생이 영원한 가치를 갖게 되는 것도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의 권면 중에서 반드시 집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담대히 여호와를 바라라는 말입니다. 왜 그는 '담대히'라고 말했을까요?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결코 싶지 않다는 암시입니다.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은 큰 모험이 따릅니다. 손해를 감수하고 위험을 무릎 쓰고 주님만 바라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담대히 하나님만 바라보십시오.
마경훈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