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된 종입니까?
본문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동무들을 때리며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마24:45-51 )
본문에 나오는 비유는 앞에 나오는 예수님의 재림을 배경으로 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전혀 생각지 않은 때에 마치 도적같이 오신다. 그러므로 항상 깨어있어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준비하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본문의 비유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준비하여야 하는가에 대해서 주님이 주시는 교훈입니다. 한마디로 “충성된 종이 되어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충성된 종은 어떤 종인가? 본문을 통하여 충성된 종의 세 가지 조건에 대하여 생각해 보길 원합니다.
첫째,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본문 45절에,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이되어” 라고 말씀합니다. 충성된 종이 될려면 지혜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충성과 지혜는 결코 나눌 수 없습니다. 여러분, 지혜가 무엇일까요? 지혜는 한마디로 ‘잘 듣는 마음’입니다. 왕상 3장에, 솔로몬이 왕위에 즉위한 후 하나님께 감사해서 일 천 번제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환상중에 나타나서 묻습니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무엇이든지 말하라” 그러자 솔로몬 왕이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라고 대답합니다. 여기 ‘지혜로운 마음’의 원어적 의미는 ‘듣는 마음’입니다. 즉 “하나님, 제가 하나님 말씀을 잘 귀담아 듣게 해 주십시오” 그게 지혜라는 것입니다. 이솝우화에 ‘수레에 치인 개구리’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에 개구리 두 마리가 있었습니다. 한 마리는 사람과 수레가 많이 다니는 길가 웅덩이에 살고 있었습니다. 다른 한 마리는 큰 연못에 살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큰 연못에 사는 개구리가 길가 웅덩이에 사는 개구리에게 찾아 왔습니다. “친구야, 이렇게 좁고 위험한데서 살지말고 나랑 같이 넓고 안전한 연못에서 살자” 그러자 좁은 웅덩이에 사는 개구리는 “난 좋기만 한데 왜 그래. 너나 잘 살아라” 하고는 거절했습니다. 어느 날, 연못에 사는 개구리가 길가 좁은 웅덩이에 사는 개구리에게 다시 찿아 왔습니다. 그런데 친구 개구리가 보이질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제 친구가 어떻게 됐나요? 그러자 “그 개구리요? 수레에 치여 죽었어요” 여러분, 친구 아니라 아이 말이라도 옳은 말이면 들어야 합니다. 그게 지혜입니다. 여러분, 학교 다닐 때 제일 많이 들었던 부모님 잔소리가 뭐죠? 녜, ‘공부해라’지요. 그런데 성인이 된 어른들에게 “학창시절로 다시 돌아가면 무엇을 하고 싶느냐?” 하고 물으면 95%가 다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싶다고 대답합니다. 그때는 왜 그 소리가 안들리는지요. 여러분, 듣는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들려야 은혜받습니다. 들려야 구원받습니다. 들려야 복을 받습니다. 따라합니다. “잘 듣는 두개의 귀는 100개의 혀보다 낫다” 여러분,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쉬지않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성경을 통해서 말씀합니다. 강단을 통해 말씀합니다.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 말씀 합니다. 어떤 사건을 통해서 말씀합니다. 시19:3이하에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가 없으나 하나님의 소리가 온땅에 가득하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지혜가 있길 바랍니다.
둘째, 책임감이 있어야 합니다. 본문 45절 중반에, 종에게 주어진 사명이 나옵니다. “그 집사람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줄 자” 라고 했습니다. 여기 ‘집사람’은 주인의 식솔들을 가리킵니다. 예를들면, 주인의 아내나 자녀들 그리고 수하의 여러 종들입니다. 그들에게 때를 따라 식사를 제공하는 것이 이 종의 사명입니다. 사람은 대개 하루 세 끼를 먹습니다. 이 종의 사명은 하루에 세 번 정한 시간에 맞춰 음식을 장만해 내야 합니다. 주인이 올 때까지요. 여기에 요구되는 종의 성품이 있습니다. 바로 책임감입니다. 여러분, 하기 싫을 때도 있지 않겠습니까? 몸이 힘들 때도 있지 않겠습니까? 예기치 않은 개인적인 사정도 있지 않겠습니까? 어디 놀러도 가고 싶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음식을 장만하는 일, 하나를 위해서 모두 포기합니다. 그게 충성입니다. 충성은 부여받은 하나의 사명을 위해서 다른 것을 기꺼이 내려놓는 성품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충성’을 다른 말로 ‘신실함’이라고 합니다. 신실함은 변하지 않는 일관된 마음입니다. 신앙생활 하다보면 항상 좋은 일만 있겠어요? 어려울 때도 있고, 하기 어려워지는 때도 있고, 하기 싫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충성이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맡겨진 일에 책임을 다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뭐든 한가 지 일을 맡았으면 끝까지 하십시오. 끝까지 할때 복이 있습니다. 그리고 변함없이 일관성을 갖는 것보다 사람을 감동시키고 믿음을 주는것이 없습니다. 주후 79년에 이탈리아의 폼페이시 근처의 베스비우스 산이 폭발했습니다. 이 폭발로 폼페이시가 폐허가 되었습니다. 훗날, 고고학자들이 폼페이 시가지를 발굴했습니다. 발굴하면서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화석이 나왔습니다. 그것은 폼페이 성문을 지키는 한 보초병의 화석입니다. 용암이 흘러내라고 화산재가 날라 오는데 무기를 손에 들고 부동자세로 최후를 맞은 것입니다. 여러분, 일의 시작보다 중요한건 일의 끝입니다. 하나님은 일의 시작보다 일의 끝을 보십니다. 왜냐하면, 충성은 일의 시작에서 드러나는 게 아니라 일의 끝에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따라 합시다. “처음보다 끝이 좋은 사람이 되자”
셋째, 실천력이 있어야 합니다. 49절에, 악한 종이 나옵니다. 이들이 뭐했습니까? 술친구들과 함께 먹고 마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종들도 역시 사명이 있었습니다. 48절 보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종들 역시 자신의 사명을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종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실천력이 없습니다. 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실천이 없습니다. 그래서 악한 종으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다케자와 노부유키가 쓴 <당연한 것인데도 모르고 있는 경영의 교과서> 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 그런 내용이 나옵니다. 어떤 사람이 100만 엔을 주면서 “이 돈을 드릴테니까 지금 담배를 끊으십시오. 대신에 끊지 못하면 두 배로 돌려주셔야 합니다” 라고 제안을 했습니다. 여러분이 만일 애연가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자는 두 가지 이유때문에 라도 끊어야 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첫째는, 보상적 가치입니다. 천만 원이 공짜로 내 수중에 들어오는 데 마다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이죠. 둘째는, 금연 자체의 가치입니다. 금연하면 자기 건강에 이롭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실행력입니다. 목표나 생각도 좋지만 실행해야 그 돈이 자신에게 들어오는 것입니다. 당연한 얘기 아닙니까? 그런데 사람들이 이걸 안한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이에 대한 여러 가지 해결책을 제시하는 데 요약하면 세 가지 입니다. 첫째, 뜻을 품어라. 둘째, 열정을 가지라. 셋째, 문제를 피하지 말고 부딪혀라. 저는 여기서 세 번째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뜻도 좋고 열정도 좋은데 문제는 부딪혀야죠. 도전해야 내 것이 되는 거 아닙니까? 헐리우드의 명배우 ‘줄리아 로버츠’를 아실 것입니다. 이 여배우는 자신감 넘치는 배우로 유명합니다. 한 번은 그녀가 TV 토크쇼에 출연한 적 있습니다. 한 방청객이 “당신처럼 자신감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라고 질문 했습니다. 로버츠는 “저도 사실 연기 할 때마다 늘 불안했고 자신감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자신감이 넘치는 것처럼 계속 행동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렇게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여러분, 충성된 종은 어려운 문제에 대해 부딪힐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입니다. 여러분, 주님이 말씀하실 때 생각만 하지 말고 피하지 말고 부딪혀 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것이 되어 여러분을 복되게 하실 것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