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교회를 세우리라!
본문
마태복음 16:13-20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읽은 말씀은 예수님의 공생애에 있어서 마지막 부분을 기록한 것입니다.
생의 마지막이 가까워 온 예수님께서는 될 수 있는 대로 제자들과 함께 조용한 시간을 가지고 싶어하셨습니다.
비록 예수님의 말씀을 다 받아서 이해하고 소화시키지는 못했지만 제자들에게 가르치시고 부탁하실 말씀이 아직 많이 있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지상의 생활을 끝낼 때 자기의 사업을 이어받아 수행해 나아가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일할 사람을 찾으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에게 있어서 매우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이것은 기독교 신앙의 존속 여부를 좌우하는 문제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의 제자들이 자기를 누구로 믿고 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세상 사람들이 자기를 누구라고 하는 지를 물었습니다.
그때 제자들이 대답합니다.
“어떤 사람은 세례 요한이라, 어떤 사람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예레미야라. 또 다른 사람은 선지자 중에 하나라 하더이다.”
이 대답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제자들에게 있어 예수님의 이 질문은 아주 중요한 질문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도 예수님의 이 질문은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예수님의 질문을 받은 제자들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제자들의 마음에는 거의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두려움마저 느꼈을는지도 모릅니다.
그때 베드로가 고백을 하였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베드로의 이 고백이야말로 위대한 발견이요, 위대한 고백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을 엘리야 혹은 예레미야 또는 예언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말했을 때 그들은 자기들이 찾아낼 수 있는 한에서는 가장 높은 범주의 한계에다가 예수님을 올려놓은 것입니다.
400년간이나 예언자의 소리가 잠잠하던 이스라엘 나라에 이제 예수님께서 다시 직접적이고 권위있는 말씀으로 하시게 될 때 유대인들에게는 신념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표현할 수 있는 최선의 찬사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나타내기에는 충분하지 못했습니다.
전에 나폴레옹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나는 사람을 안다. 그런데 예수는 사람 이상이시다.”
옳은 말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이면서도 사람 이상이십니다.
분명히 베드로가 예수님을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을 때 이 말은 신학적인 설명이나 철학적인 표현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확신할 수 있는 한 가지는 단순한 인간의 말로는 도저히 예수 그리스도를 정확하게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여기서 우리가 꼭 기억할 것은 우리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발견은 개인적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도 ‘너희가’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 대하여 우리가 가지는 지식은 결코 간접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가끔 경우에 따라 사람이 생각해 낸 기독론만을 알고 주장합니다.
또는 무슨 위대한 사상가들이나 학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말한 비슷한 지식을 종합해서 기억하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기독교의 진리는 아닙니다.
기독교는 결코 예수에 관하여 아는 지식에 있지 아니하고 언제나 예수님을 아는 데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도 우리에게 개인적인 판단을 요구하십니다.
“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예수님께 베드로와 같은 신앙 고백을 할 수 있습니까?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까?
베드로의 고백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말씀은 신약 성경 해석상으로 논쟁의 중심을 이루는 말씀입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는 교황의 위치를 이 말씀에 확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카톨릭 교회에서는 베드로를 제 1대 교황으로 모십니다.
베드로가 사람을 하늘나라에 들어가게 하거나 하늘나라에서 제외할 수 있는 열쇠를 가지고 있으며, 사람을 그 죄에서 놓아주거나 놓아주지 않을 수 있는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교리가 개신교 신자들에게 있어서는 얼마나 엉뚱한 말인지를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인정하지 아니합니다.
이에 대하여 윌리암 바클레이는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베드로여, 그대의 이름은 반석을 의미하는 것인즉 그대의 본분은 반석이 되는 것입니다.
그대는 내가 누구인지 처음으로 안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따르는 자들로 이루어지는 성도의 교제를 세우는 건물에 처음 놓인 돌입니다.
이 성도의 교제를 반역하여 싸우는 악의 세력은 이제 더 이기지 못하리니 원수가 나를 사망에 가두어 둘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장차 올 그 날을 그대는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다 함께 들어오게 될 하늘나라의 문을 열어주는 청지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대는 지혜로운 관리자가 되고 안내자가 되어 이제 자라나기 시작하는 어린 이 무리들의 문제를 해결하고 사명을 지시해야 할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와 같이 위대한 발견을 통해 위대한 사명을 맡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누구나 자기 스스로가 발견해야 합니다.
그리고 발견했을 때는 이에 따른 특권과 책임이 부과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메시아가 되신다는 것은 이해하였지만 아직도 그들은 이 큰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알지 못했었습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메시아와 예수님이 생각하시는 메시아는 달랐습니다.
그들은 아직까지도 팔레스틴에서 로마의 세력을 몰아내고,
이스라엘의 주권을 회복할 그러한 정복자로서의 메시아,
혹은 무력의 왕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눈을 열어 자기가 가시는 길에는 십자가 외에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보게 하시고자 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장로들과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의 손에 의해서 고난을 당하지 아니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있던 베드로는 예수님을 붙들고 간청했습니다.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능력과 영광과 정복의 메시아로만 생각하던 베드로에게 고통 당할 메시아,
십자가와 관련된 메시아는
타협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사탄아, 물러가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광야에서 당하셨던 시험을 기억하십니까?
마귀는 예수님을 시험하여 말합니다.
“그들에게 떡을 주어라. 그들에게 물질적인 것을 주어라. 그러면 그들이 너를 따를 것이다.”
“그들에게 감동적인 것을 보여 주어라. 그리고 신기한 일들을 보여 주어라. 그러면 그들이 너를 따를 것이다.”
“세상과 타협하라. 네 가치 표준을 맞추어 세상과 짝하라. 그러면 사람들이 너를 따를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고 하는 베드로의 말은 이와 똑같은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의 교회도 이와 똑같은 시험을 당합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도 이와 똑같은 시험을 당합니다.
아무도 십자가와 고통을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것을 알고 있는 마귀는 십자가 외에 다른 방법을 택하라고 유혹합니다.
사탄의 문자적인 의미는 “반대자”란 뜻입니다.
사탄이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제시해 놓은 어려운 길에서 우리를 돌아서게 하려는 세력, 그것이 곧 사탄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인간의 욕망으로 바꾸게 하는 어떤 압력, 그것이 곧 사탄입니다.
그런데 무서운 것은 이런 유혹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을 통해서 왔다고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그런 고난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것을 도저히 견딜 수 없으리만큼 예수님을 사랑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시험 중에 가장 어려운 시험은 보호하고자 하는 애정에서 오는 시험입니다.
달콤한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길을 걷는 모험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사랑이란 안일한 삶을 위해서가 아니라 위대한 삶을 위해 그를 전장에 내어 보내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다시 말해서 “나를 따르는 자가 되어라”고 하셨습니다.
사탄은 예수님 앞에서 추방되었습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추종자가 되기 위하여 다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베드로는 비록 잘못 하여 넘어지고 죄를 범했다 하더라도 다시 한번 그리스도를 따를 기회와 도전이 주어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베드로와 사탄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는 사탄은 결코 예수님의 뒤를 따르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마음의 각오가 서 있기만 하면 그가 비록 넘어졌어도 아직 그에게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 하나님을 경배할 영광의 소망이 남아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예수님은 우리를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교회의 갱신을 위해서 할 일이 무엇입니까?
주님의 말씀을 새롭게 듣고 따르는 길이 아니겠습니까?
이에 성경은 다음과 같이 증거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그렇다면 교회가 새로워지는 길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 있습니다.
주님께서 그의 몸인 교회를 향하여 주신 세 마디 말씀이 있습니다.
첫째는 자기를 부인하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십자가를 지고 가라는 것입니다.
셋째는 나를 따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 한국교회에,
바로 우리 교회에 세계 선교를 위한 특별한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 교회가 주안에서 다시 새로워져서 그리스도 위에 바로 서서 이 시대에 맡겨진 사명을 다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이 사명 잘 감당함으로 이후에 주 앞에 섰을 때 잘했다 칭찬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월간목회설교